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07화 (107/173)

< 라스트 펀치 (3) >

‘앞서갈 수 있다.’

단 한 번의 공격이 무산된 걸로, 상대에게 기회를 줬다는 표현은 축구에 있어서는 통용되기 힘든 표현일지 몰랐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한 번의 펀치가 빗겨 갔다는 건 매우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회였다.

허공을 가른 펀치에,

상대의 급소가 훤히 드러났으니.

슈우우웅-

픽포드 키퍼의 던지기로 시작되는 공격.

리드를 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온 맨유의 차례.

앞으로 남은 40여분 동안, 상대와 몇 번이나 더 주먹을 주고 받을 것이라고 예상해고 있어야 하는 상황.

이 기회를 잡고 가야 했다.

지금,

이 공격이 승부처라고 도훈은 판단했다.

“헤이!”

파아앙-!

모두가 역습을 위해 올라갈 때, 홀로 중앙 쪽으로 내려오며 공을 받는 도훈.

역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빠르게 올라가는 정확한 패스.

그 연결 고리 역할을 도훈이,

뻐어어엉-!

정확히 수행했다.

“정확히 마샬에게 연결 됩니다!”

오른쪽의 마샬에게 연결되는 낮고 빠른 패스.

질 좋은 패스 덕분에 속도가 전혀 죽지 않고 이어지는 역습.

동시에 도훈은 박스를 향해 뛰었다.

마샬은 박스 근처에서 위협적인 드리블을 선보일 수 있는 선수이기에, 역습에서의 첫 번째 패스를 전달하기 안성맞춤인 선수였다.

왜냐하면,

“마샬, 돌파 해 봅니까!”

저렇게 정말 돌파를 하지 않아도, 그저 공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 상대 수비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시간이 벌어지기 때문.

“...”

드리블하는 척하며 시간을 벌다, 동료들이 충분히 침투했다고 판단했을 때,

파아앙-!

마샬은 중앙으로 스루 패스를 내려 주었다.

그 공을 잡는 도훈.

“막아!”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외침 소리.

목소리를 들어보니, 음바페였다.

그 소리를 들으니, 도훈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

여전하구나.

도쿄에서부터의 앙금이 아직도 녀석에겐 남아있는 듯 했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녀석이 오늘 하는 플레이만 봐도 알 수 있으니.

‘좋아, 무너뜨려주지.’

이번 공격으로,

맨 시티의 수비진을 무너 뜨리는 동시에, 음바페 마저도 무너뜨릴 공산인 도훈.

도훈이 박스를 향해 공을 몰고 달려 들었다.

“그대로 들어 가나요!”

좁혀드는 라포르테와 스톤스.

그러나 속도를 줄일 시간은 없었다.

뒤에서 페르난지뉴와 데 브라이너가 달려드는 것이 느껴졌으니.

수적 열세.

앞뒤로 지키고 서 있는 건 8개의 다리.

그러나,

도훈은 8대2의 싸움을 8대8로 만들어 버렸다.

휘이익-

휘이익-!

소용돌이치는 도훈의 다리.

8개의 다리로 덤비는 상대에게 8개의 다리로 응수하는 도훈.

그러나 중요한 건,

도훈은 상대 8개의 다리를 모두 보고 피할 수 있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파아앙-

타타탓-!

“막으라고!!”

음바페의 절규.

하지만 누군가 절규한다고 해서 도훈의 드리블이 막아지는 것이라면, 지금껏 그 수많은 수비수들이 왜 도훈을 막지 못했을까.

“뚫고 들어갑니다!”

“저 사이를!”

허망하게 사이 공간을 내주고 마는 스톤스와 라포르테.

도훈은 지주신보로 맨 시티의 빗장을 무너뜨리고 박스 안을 밟았다.

괴력이었다.

뻐어어엉-!

촤아아아-

철썩-!

‘잡았다.’

4번째 골.

전반전 내내 맨 시티가 틀어 쥐고 있던 그 리드를 도훈이 뺏어오는 순간이었다.

“고오오오올-!”

“이거지! 이거야!”

들썩이는 올드 트래포드.

도훈의 네 번째 골이 터지는 순간, 올드 트래포드도 터져 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만 여명의 관중이 동시에 자리에서 뛰어 올랐다.

광란의 도가니.

그 관중들을 바라보며, 코너 플래그를 향해 뛰는 도훈.

전반전때,

보란듯이 건방진 셀레브레이션으로 홈팬들의 심기를 건드렸던 음바페.

그 음바페 때문에 속이 상해야 했던 팬들을 위해,

도훈도 이번만큼은 조용히 지나칠 수 없었다.

“예에에에에-!”

펄쩍 뛰어 오르며 포효하는 도훈.

사실,

그 셀레브레이션은 음바페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지만, 음바페는 고개를 돌려 그 셀레브레이션을 보지 않았다.

볼 수가 없었다.

속에서 미칠듯한 열불이 끓어 오르고 있었으니까.

‘대체, 대체 얼마나 더..!’

킥 오프를 위해 하프 라인에 서 있는 음바페.

그러나 마음 급한 음바페와 달리 맨유 선수들은 한참이나 셀레브레이션을 즐긴 뒤, 이제야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들이 꼴 보기 싫은 음바페.

하나같이 뭣도 아닌 녀석들인데.

저 중 그 누구도 자신보다 뛰어난 선수는 없는데.

딱 한 명.

‘그 녀석’ 때문에 경기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니.

“표정 풀어, 임마.”

“...”

자신의 앞을 지나치며 한 마디 던지고 가는 포그바.

평소엔 친하게 지내는 대표팀 동료지만, 지금만큼은 한 대 갈겨 버리고 싶은 면상.

“4대3, 맨유가 역전 합니다!”

“자, 이제 어떻게 경기가 흘러 갈까요!”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아직 30분 이상이 남은 시간.

충분히, 충분히 다시 앞서 나갈 수 있다.

오늘 경기가 끝나는 건, 종료 휘슬이 울리는 그 순간일 뿐이다.

“다시 경기가 재개 됩니다.”

맨유도 3점 이상의 실점을 한 것이 처음이지만, 맨 시티도 4점 이상의 실점을 한 것은 오늘이 처음.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겨를도 없었다.

실점은 얼마가 되든 좋으니, 딱 한 점 상대보다 앞서면 될 일이니까.

“움직여! 올라가!”

터치 라인에 바짝 붙어 선수들에게 외치는 과르디올라 감독.

평소의 과르디올라 같지 않았다.

무조건 올라갈 것을 주문하는 과르디올라 감독.

“준비해! 끊으면 바로 올라갈 준비해!”

바로 옆에서,

나겔스만 감독도 지지 않고 외쳤다.

잘 막아낼 것을 주문하는 게 아니라, 막고 나서 곧바로 역습을 올라갈 준비를 하라고.

마치 선수들에게가 아니라, 서로에게 외치는 듯한 두 감독.

기세 싸움.

평소같지 않은 두 감독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오늘 경기의 분위기.

어쨌든, 이번엔 맨 시티의 턴이었다.

“데 브라이너.”

워낙 메시와 음바페에게 모든 포커스가 몰려 있지만, 사실 데 브라이너야 말로 박싱데이 기간때 까지 도훈에 이어 파워 랭킹 2위를 찍었던 선수.

오늘은 워낙에 전방에서 파괴력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후방에 내려서서 활동량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고 있지만,

“계속 몰고 들어 갑니다!”

데 브라이너도 공격을 한다면 하는 선수.

데 브라이너가 공을 몰고 중앙으로 올라가자 좌우에서 메시와 음바페가 수비 뒤로 돌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 만으로 급격히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맨유 수비진.

“나가!”

어찌됐든 한 명은 데 브라이너에게 붙어줘야 하는 상황에, 에레라가 달려 나왔다.

그 순간,

‘쟤가 왜 여기서?’

데 브라이너의 뒤로 음바페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뒤로 공을 밟아주는 데 브라이너.

“큭..!”

에레라는 자연스럽게 음바페에게 붙으려 했으나, 데 브라이너가 몸으로 막아섰다.

그리고 그 사이, 박스를 향해 달려드는 음바페.

‘위험한데.’

박스를 향해 달려드는 음바페의 뒷 모습을 보며, 직감적으로 느끼는 도훈.

녀석은 자극 받은 상태였다.

방금의 자신의 플레이를 보고.

똑같이 할 셈.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음바페만 막아!”

동료들에게 외치는 도훈.

그 외침에 곧바로 맨유 선수들이 음바페에게 좁혀 들어갔다.

사실, 똑같은 상황이었다.

아까 음바페가 막으라고 외친 거나, 도훈이 지금 외친 거나.

하지만,

두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얘만 막아!”

“좁혀!”

한 가지는 그 말의 무게감.

동료들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

도훈의 말은, 맨유에게 있어 특히나 그라운드 위에선 절대적.

도훈이 음바페만 막으라고 하니, 동료들은 음바페만 막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달려들 뿐이었다.

다른 일절의 의구심은 없었다.

파아앙-!

“아!”

“너무 좁죠! 지금은 위 쪽의 메시를 봤으면 좋았을 텐데요.”

좁은 공간을 어거지로 돌파하려다 공을 빼앗기는 음바페.

한 번에 4명이 달려든 맨유였다.

그리고 다른 점 나머지 한 가지.

사실 이 쪽이 훨씬 더 결정적인 것인데,

‘이제 인정 좀 해라.’

도훈은 그 4명 사이를 뚫어낼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것과,

음바페는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분하다고, 오기로 달려든다고 될 게 아니었다.

뻐어어엉-!

곧바로 공을 위험지역에서 걷어내는 린델로프.

그러다, 린델로프는 깜짝 놀라며 귀를 가렸다.

“으아아아!”

음바페가 갑자기 고함을 내질렀기 때문.

공을 빼앗긴 뒤 제 자리에 서서 하늘에 대고 고함을 내지르는 음바페.

맨유 선수들은 피식 웃으며 자리를 떴고,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는 음바페에게 한 선수가 다가왔다.

“킬리안.”

“...”

“너 혼자의 힘으로 백도훈을 이길 순 없다.”

“...!”

안 그래도 분노에 차 있는 음바페.

그런 음바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러나, 음바페 마저도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 다음 말 때문에.

“나도 나 혼자의 힘으론 백도훈을 이길 수 없으니까.”

메시의 말이었다.

리오넬 메시.

아무리 모두를 제 발 아래로 보는 음바페라 하더라도, 메시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왜?

메시의 명성 때문에?

아니었다.

10년 후엔 자신의 명성이 메시의 명성을 뛰어 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음바페인데.

당연히 아니었다.

음바페가 메시의 말이라면 뭐든지 신뢰하게 된 건, 첫 훈련 이후부터였다.

‘이 사람이라면..’

메시라면, 백도훈과 겨뤄도 절대 밀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그게 메시와의 첫 훈련 소감.

또한,

“충분히 이길 수 있어.”

그런 메시도 음바페의 실력을 칭찬하며 자신감을 실어 주었고.

하지만,

그 말의 뜻은 음바페 혼자서 백도훈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힘을 합한다면’ 이었다.

“나를 이용해라, 킬리안.”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 않다.

자신의 힘만으로 해내 보이고 싶다.

그러나,

음바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 한 템포 쉬나요.”

“그럴만도 하죠. 경기는 뭐 70분 정도 진행 됐습니다만, 이미 전력을 다 쏟은 느낌이니까요. 양 팀 모두.”

말 그대로 70분간, 90분간 할 걸 이미 다 쏟아부은 듯한 경기.

리드를 잡은 맨유기 때문에, 일단은 한 템포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파아앙-

파아앙-!

중원에서 공을 돌리는 선수들.

마치 농구처럼 워낙에 템포가 빠르게 왔다 갔다 했기 때문일까, 맨 시티 선수들도 체력적인 부담이 올라오는 듯 이전보다는 강하게 압박을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

이대로 분위기를 잡아간다면, 경기를 잡을 수도 있어 보였다.

“천천히 해, 천천히!”

뒤로 다시 공을 돌리며 동료들에게 외치는 포그바.

그러나,

“안 돼! 앞으로 줘!”

“안 돼! 앞으로 줘!”

동시에 두 명이 포그바와는 다른 생각을 한 듯 외쳤다.

도훈과, 나겔스만 감독이었다.

나겔스만 감독은 여전히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라는 듯 팔을 휘젓고 있었다.

“멈추면 안 돼! 지금이 기회야!”

그 둘만은 다른 선수들과 다른 생각인 듯 했다.

현재 시간은 73분.

권투로 따지면 상황은 이런 셈이었다.

이번 라운드의 남은 시간은 30초.

그리고 다음 라운드가 마지막 라운드인 상황에서.

상대에게 펀치 한 방을 더 먹여 놓은 상태라, 조금 만 더 몰아 붙인다면 그로기에 몰 수도, 다운을 뺏어낼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이 쪽의 체력도 많이 남은 것은 아니기에 쉬면서 다음 라운드를 대비할 수도 있다. 왜? 판정으로 가면 무조건 이긴다는 판단이 있으니.

4대3으로 앞서며 70분을 지나고 있는 맨유가 공을 잡고 있는 상황이 바로 그 상황이었다.

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안전한 길일까?

보통은 후자라고 생각하기 쉬울 수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발바닥의 화상을 감수하고서라도 불씨를 밟아 완전히 꺼버리는 게 훨씬 안전한 선택이 될 수도 있었다.

그 불씨가, 타오를 준비만 된다면 다시 거대한 산불이 될 수도 있는 불씨라면.

‘여기서 먹여야 돼, 라스트 펀치를. 안 그러면, 상대는 다시 주먹을 뻗어 올거다.’

상대의 펀치력은 이미 세 대나 맞아 봤기에 알고 있다.

어마어마하게, 강력하다는 걸.

무너뜨린다면, 지금이어야 했다.

파아앙-!

“아닙니다, 숨을 고르지 않습니다! 다시 길게 롱 패스를 찔러 넣는 린델로프!”

지금이 라스트 펀치를 먹일 찬스였다.

< 라스트 펀치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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