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 쓰지 않고도 (2) >
파아앙-
파아앙-!
올드 트래포드에서 몸을 푸는 셀타 비고 선수들.
활기찬 관중들로 가득 들어찬 관중석.
워낙 가까워 관중들의 말 소리도 귓가에 들리는 듯한 경기장.
잘 정돈되어 패스가 유려하게 미끄러지는 그라운드.
축구 선수로서 경기를 하기엔 이보다 좋은 환경이 없을 듯한 올드 트래포드.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악재로 느껴지는 듯한 셀타 비고.
만약,
모두가 100퍼센트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들이 맨유와 정면 대결을 펼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백도훈이 출전하는 그 맨유와.
과연,
8강 진출의 희망은 1퍼센트라도 있긴 한 걸까.
‘해봐야지, 뭐.’
어쨌든,
1퍼센트라도 있다면 부딪혀 보는 수밖에.
0퍼센트와 1퍼센트의 차이는,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차이보다도 큰 것이니까.
공은 둥글고, 그라운드 위에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와 셀타 비고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이 시작 되었다.
경기 초반,
먼저 공세를 밀어붙였던 1차전 때와 달리, 아래로 확실히 내려 앉으며 수비 태세를 취하는 셀타 비고.
그 모습이, 도훈의 눈에는 단단히 잠구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기 보단, 그저 잔뜩 위축되어 있는 듯한 모습으로 밖에 비추지 않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미 4대1이라는 스코어로 시작되는 경기였다.
3점이나 뒤지고 있는 셀타 비고는 8강 진출을 위해선 4점차 이상의 승리를 거두어야만 하는 입장이거늘.
저렇게 먼저 가드를 올린다는 건 경기를 포기하고, 더 이상의 망신만은 피하겠다는 의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파아앙-
파아앙-!
“천천히 공을 돌립니다, 맨유.”
“압박을 좀 올라와 줘야죠, 셀타 비고 선수들. 지키기만 해서는 답이 없는 경기인데요.”
여유 있게 중원에서 동료들과 공을 주고 받는 도훈.
당연히 급할 게 없는 입장.
그런 맨유를 보며, 셀타 비고 선수들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1퍼센트도 되어 보이지 않는 기적의 확률.
어차피 정석대로 해서는 그 1퍼센트의 바늘 구멍을 통과할 순 없다.
3점의 점수차를 따라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서는 걸로는 말이었다.
어차피, 맨유라면.
그리고 백도훈마저 출전한 맨유라면 아무리 자신들이 3점이나 앞서고 있다고 해도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한 셀타 비고였다.
그렇다면, 어차피 역습의 기회는 찾아오게 될 것이다.
일단은 그렇게 역습을 통해 한 점씩 차근히 만회하며 점수 차를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
그렇게 판단한 셀타 비고였다.
‘절대 실점하지 않고, 모든 역습을 성공시켜야 한다.’
8강 진출의 기적을 위한 기본 전제.
무척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1퍼센트의 기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파아앙-
“왼쪽의 린가드에게. 린가드, 파고 듭니다!”
“맨유가 먼저 득점을 노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셀타의 예상대로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 공격을 시도하기 시작하는 맨유.
‘넓어졌다.’
그리고 자신 주변의 공간이 훤히 펼쳐지는 것을 느끼는 최전방의 이아고 아스파스.
막아내기만 해준다면.
기회가 온다면, 그 기회 창출에 대한 보답을 할 자신이 있는 아스파스였다.
기적을, 현실로 만들어 보자.
뻐어어엉-!
“린가드의 크로스!”
날카롭게 문전으로 향하는 린가드의 크로스.
그러나 셀타의 센터백 듀오 아라우호와 카브랄의 제공권은 꽤나 경쟁력이 있는 수준.
오늘 루카쿠는 출전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 도훈이 가짜 스트라이커로 기용된 전형.
때문에 그 둘이 동시에 공을 향해 떠오르는 순간 이미 맨유에게 헤더 경쟁력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가짜 가짜 스트라이커란 말 들어봤나.’
그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머리 하나.
도훈이었다.
보통 가짜 스트라이커라고 하면 본래 스트라이커가 아닌 선수가 포메이션 상으로만 스트라이커 역할을 부여받는 걸 의미하는 것.
도훈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라이커지만 때로는 윙어처럼, 때로는 미드필더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가짜 스트라이커들과 차별화되는 점.
도훈은 가짜 스트라이커지만, 진짜 스트라이커의 역할 마저도 할 수 있는 선수였다.
이 때 만큼은, 가짜 가짜 스트라이커, 진짜 스트라이커인 셈.
뻐어엉-!
“백도훈의 헤더!”
슈우우웅-
철썩-!
아라우호와 카브랄의 틈을 비집고 뛰어올라 기어이 이마에 공을 가져다 맞히는 도훈.
그 헤더는 골키퍼가 반응할 틈도 없이 골망을 출렁였다.
힘이 넘쳤다.
마치 수면 위로 뛰어 오르는 돌고래처럼.
“...”
그 골에, 기적을 꿈꾸던 셀타 비고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그 때부터.
기적은 없었다.
현실은,
지난 번의 형편 없었던 손님 대접에 화가 난 유럽 최강의 팀이자 올드 트래포드의 주인에게 일방적으로 얻어 맞는 것뿐이었다.
바이에른 뮌헨 (5:3) 올림피크 리옹
CSKA 모스크바 (2:7) 맨체스터 시티
레알 마드리드 (3:4) 유벤투스
리버풀 (2:0)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4:1) 나폴리
토트넘 (3:2) 인터 밀란
첼시 (4:4) 도르트문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9:2) 셀타 비고
맨유의 무자비한 승리를 마지막으로 결정된 이번 시즌 챔스 8강 진출 팀.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 유벤투스, 리버풀, 바르셀로나, 토트넘, 도르트문트, 그리고 맨유까지.
역대급으로 치열한 시즌이 될 듯한 이번 8강.
그리고,
곧바로 대진 추첨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완성된 다음과 같은 대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도르트문트
바이에른 뮌헨 vs 맨체스터 시티
유벤투스 vs 리버풀
바르셀로나 vs 토트넘
도훈의 맨유는 분데스리가의 난적, 도르트문트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도르트문트의 파브르 감독은 아찔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ㆍㆍㆍ
“두 경기 연속 헤더 골! 백도훈 선수, 발을 쓰지 않고 득점포를 이어 나갑니다!”
주말 리그 21라운드, 웨스트 브롬 알비온 전.
도훈은 셀타 비고 전에 이어 다시 머리로 골을 터뜨리며 물 오른 이마 감각을 이어 나갔다.
이젠 187센티미터인 에릭 바이와 나란히 서도 언뜻 별 차이 없어 보일 정도의 체격인 도훈.
가진 놈들이 더 하다고 했던가.
도훈은 쓸 수 있는 무기를 더 늘리기 위해 최근 헤더 연습의 비중을 늘리고 있었다.
그 결과, 지금처럼 타점 높은 헤더로 상대를 무력화시키고 있었고.
“새로운 무기를 장착한 백도훈, 대체 어디까지 더 무서워 질 셈일까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선수가 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이젠 발을 쓰지 않고도 상대를 제압하고 있는 도훈이었다.
온 몸이 무기.
어디까지 발전할까.
두려움 마저도 드는 백도훈이라는 선수.
그런 도훈과, 맨체스터 시티가 리그 22라운드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첼시와 마찬가지로, 겨울 이적 기간 동안 엄청난 영입을 성공시켰던 맨체스터 시티.
단연 화제인 것은 위대한 선수, 리오넬 메시와 위대한 감독 펩 과르디올라의 재만남.
언제나 서로를 최고라고 평하며 다시 한 번 함께 일하고 싶다던 뜻을 밝혀왔던 둘.
그러나 일평생을 바르셀로나에서 뛰었고, 당연히 바르셀로나에서 은퇴할 것 같았던 메시기에 과르디올라가 다시 바르샤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둘의 만남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 생각됐었다.
하지만, 메시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세리에로 도전에 나선 자신처럼 도전해보라고 말하던 호날두의 말에 자극을 받아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만수르 구단주가 엄청난 돈을 약속했기 때문일까.
어쨌든,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게 된 메시.
그리고 한 달여.
메시의 이피엘 성적표는, 사실 별 게 없었다.
딱히 발전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냥, 바르셀로나에서와 비슷했다.
남들에겐 발전 없이 그대로라는 게 부정적인 의미일 수 있었다.
하지만, 메시에게 그렇다는 건,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메시는 변함 없이 최고라는 뜻이었다.
이적 후 리그에서 5경기.
챔피언스 리그 16강 2경기.
그리고 FA컵 한 경기.
도합 8경기에서 7골 7도움을 기록한 메시였다.
이피엘에서도 메시는 메시였던 것.
하지만,
그런 메시보다 주목을 더 받는 선수는 사실 따로 있었다.
어쩌면 메시보다도 과르디올라가 더 원했던 선수.
킬리안 음바페는 더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7경기에서 12골 3도움.
파괴적이었다.
음바페는 과르디올라 체제 아래서 날아 다녔다.
특히 주목을 모았던 메시와의 호흡 부분에서 많은 사람이 우려하던 불협화음 대신, 엄청난 시너지를 보여준 음바페였다.
과거 호나우지뉴와 메시의 느낌이 재현 됐다고 할까.
메시는 음바페의 조력자 역할에 충실하는 느낌이었고, 음바페는 돌격대장 역할을 맡으며 최전방에서의 파괴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거기에, 기존 선수들의 활약은 지금까지 그러했으니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고.
완벽해 보였다.
메시와 음바페가 합류한 이후로, 맨유와 마찬가지로 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는 맨시티.
이 팀이라면,
맨유를 잡아내 줄 지도.
아니, 어쩌면 맨유가 도전자의 입장이라고 봐야 할 지도.
아무리 리그 21연승 중인 맨유라도 결과를 함부로 예측할 수 없는 경기.
맨체스터 시티와 맨유의 리그 22라운드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올드 트래포드 입니다.”
올 시즌 두 번째로 개봉하는 맨체스터 극장.
첫 번째 극장은 맨유의 승리로 막을 내렸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의 결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경기장.
[맨체스터 시티 FC (4-3-3) 감독 : 펩 과르디올라]
GK 에데르송
CB 아이메릭 라포르테
CB 존 스톤스
LB 파비안 델프
RB 카일 워커
MF 페르난지뉴
MF 베르나르도 실바
MF 케빈 데 브라이너
FW 리오넬 메시
FW 킬리안 음바페
FW 세르히오 아구에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4-2) 감독 : 율리안 나겔스만]
GK 조던 픽포드
CB 크리스 스몰링
CB 빅토르 린델로프
LB 루크 쇼
RB 디오고 달롯
MF 안데르 에레라
MF 폴 포그바
MF 제시 린가드
MF 마커스 래시포드
FW 앙토니 마샬
FW 백도훈
“양 팀 모두 뭐 베스트 전력입니다. 역시나 주목할 점은 양 팀의 공격력이겠죠. 메시, 음바페, 아구에로가 이루는 쓰리 톱. 린가드, 래시포드, 마샬, 그리고 백도훈이 이루는 전방. 이 쪽에서 만약 한 쪽으로 무게추가 쏠리게 된다면, 그게 곧 경기의 승패가 되겠죠.”
“삐이이이익-!”
경기가 시작 되었다.
‘절대 그런 게 아니야.’
시작된 경기.
오른쪽 날개로 배치되어, 빠르게 몇 번 동료들과 패스를 주고 받으며 호흡을 맞추는 음바페.
정말 오늘만을 기다려 온 음바페였다.
벌써 몇 달만인가.
지난 시즌 챔스 16강에서 이후로, 백도훈을 다시 상대로 만나게 되는 것이.
그리고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올림픽 결승에서.
그 때부터였다.
음바페가 백도훈이라는 선수를 라이벌이라고 인식하게 된 것은.
앞선 10년은 메시와 호날두가 양분했던 축구계.
그리고 이후 10년은 자신과 백도훈이 양분하게 될 것이리라고, 음바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재 세간의 평가는 10명 중 10명이 자신보단 백도훈이 나은 선수라고 평가할 것이고, 그건 음바페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의 맞대결이 음바페에겐 너무나 중요한 것.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의 10년을, 백도훈에게서 양분해 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테니.
그래서일까.
음바페는 언론이 만들어내고 있는 이 경기에 대한 프레임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백도훈에게 패배했던 두 천재, 힘 합쳐 다시 도전한다.. [22R 맨유 vs 맨시티 프리뷰]
백도훈을 이기기 위해 메시와 음바페가 힘을 합쳤다는 것.
그러나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난 내 힘으로 백도훈과 맨유를 패배시킬 것이다.’
음바페는 자신이 메시와 팀을 이끌고 백도훈을 넘어설 생각일 뿐이었다.
“데 브라이너, 오른쪽으로. 킬리안 음바페가 넘겨 받습니다.”
전반 5분, 오른쪽에서 공을 잡는 음바페.
음바페의 앞을 가로 막는 루크 쇼.
그러나 음바페는 루크 쇼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파아앙-
타타타타탓-!
사이드로 길게 차놓고 달리기 시작하는 음바페.
마음 먹고 달리는 그 음바페의 속도는,
“빠릅니다!”
루크 쇼가 아니라 누가 와도 지금으로써는 막기 힘든 수준이 분명했다.
‘잘 봐. 힘을 합친 게 아니라.’
사이드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들어가, 박스를 향해 대각선으로 공을 몰고 들어가는 음바페.
그리고 마주하는 크리스 스몰링.
음바페는 리듬감 있게 상체를 흔들며 들어가다,
스르륵-
슈팅 페인팅을 주며 골 라인을 향해 한 번 더 치고 들어갔다.
반응이 늦는 스몰링.
곧바로 열리는 슈팅 각도.
번개 같은 속도였다.
‘내가 백도훈을 꺾는거다.’
뻐어어어엉-!
음바페의 오른발이 불을 뿜었다.
< 발 쓰지 않고도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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