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03화 (103/173)

< 발 쓰지 않고도 (1) >

“네, 결국 올드 트래포드는 오늘도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21/22 카라바오 컵 4강 2차전! 맨유가 첼시에게 2대1로 승리를 거두며 합계 5대2로 결승에 진출합니다!”

주중 셀타 비고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맨유는, 숨 돌릴 틈 없이 리그 20라운드 사우스햄튼 전을 치뤘고 4일 뒤 다시 카라바오 컵 4강 2차전을 치뤘다.

결과는 모두 승리였고, 도훈은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해 완벽한 기량을 뽐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다시 만난 첼시와의 경기에선 2골을 터뜨리며 결승골을 기록했고.

맨유의 연승 행진이 오늘도 깨지지 않게 됨으로써, 엄청난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도훈의 맨유.

그러나,

“아무리 도훈이라도, 인간인 이상..”

“많이 지쳤을테지.”

나겔스만 감독은 그런 것들 보다 도훈의 체력적인 부분에 더 신경을 쓰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훈의 성격상, 힘드냐고 물어봐도 절대 힘들다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기에 감독인 자신이 알아서 관리를 해줘야 했다.

지금은 뭐가 중요한 것인지 정확히 판단해야 될 때였다.

연승 기록도 물론 중요했다.

선수들에게 크나큰 동기부여가 되고 있었고, 만약 그게 깨진다면 팀의 사기가 순간 저하될 수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연승이 가능했던 것도 백도훈이라는 선수가 있었기 때문.

또한, 앞으로 애초의 목표였던 우승컵을 위해 달려가기 위해선 더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지금보다 더욱 백도훈이 필요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나겔스만 감독은 백도훈을 갈아 넣어 절대 깨지지 않을 연승 기록을 세우느니, 연승이 멈추더라도 아껴야할 땐 아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맨유의 다음 경기 일정은 첼시와의 경기가 끝나고, 또 다시 3일 뒤였다.

잉글랜드 FA컵 32강 선덜랜드와의 경기.

박싱데이가 끝났음에도 참여할 수 있는 모든 대회에 참가 중인 맨유기에,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일정.

벌써 몇 경기째 계속해서 선발 출장을 하고 있는 도훈을 쉬게 해줄 적절한 타이밍이 찾아온 듯 했다.

1월 28일, 올드 트래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선덜랜드의 FA컵 32강 경기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벤치에 앉아 입장하는 선수들을 지켜보는 도훈.

도훈뿐만이 아니라, 오늘 꽤나 힘을 뺀 듯한 맨유의 선발 라인 업.

포그바와 스몰링, 루크 쇼 등의 주전 선수들 또한 벤치에서 도훈과 함께 나란히 앉아 경기가 시작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대인 선덜랜드는 2부 챔피언쉽 소속.

1부에서도 적수가 없는 맨유에겐 충분히 쉬어갈 수 있는 상대임은 틀림 없었다.

아무리 힘을 뺐다 해도, 후안 마타나 포수멘사 등의 백업 멤버들도 타 팀에 가면 충분히 주전을 차지할 수 있는 선수들이기에.

실제로 경기 초반부터 맨유는 주도권을 잡고 몰아 붙이기 시작하며 선제 골 사냥을 시작했다.

“마타의 프리킥! 아, 그러나 아쉽게 골 포스트를 넘어 갑니다.”

“선덜랜드가 잘 막아내고 있네요. 소위 말하는 텐 백인데, 아무튼 빠르게 선제 득점이 필요해 보이는 맨유입니다. 경기를 쉽게 풀어 나가기 위해서는요.”

그러나,

계속해서 아쉽게 무산되는 찬스들.

도훈이 없기에 대신해서 도훈의 역할을 맡고 있는 마타나,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한 린가드가 몇 번의 찬스를 맞이 했으나 마무리의 날카로움이 부족했다.

전원이 수비 태세인 선덜랜드를 상대로 빠른 선제 득점이 절실한 상황.

전반 10분,

20분,

30분...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급해지는 쪽은 오히려 맨유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역습 입니다!”

“보리니, 슈웃-! 픽포드 키퍼의 선발! 위험 했습니다!”

오히려 더욱 날카로움을 더해가는 선덜랜드의 역습.

쉽지 않은 경기가 되고 있었다.

결국,

“삐익, 삐이익-!”

0대0으로 전반을 마치는 맨유.

답답한 전반전이었다.

“가끔씩 느끼는 건데 말이야.”

“뭔데?”

“역시 뭐든 체감보단 역체감이 크게 와닿는 것 같아. 백도훈이 있다가 없으니까,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냐.”

“하긴. 뭐 원래 이랬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닌데, 맨날 백도훈이 나오기만 하면 이겨주니까 익숙해진 거지 뭐.”

그런 전반을 지켜보며, 올드 트래포드의 팬들은 도훈의 출전을 갈망할 수밖에.

그러나,

그런 갈망은 후반이 진행될 수록 더욱 커져만 갔다.

특히,

후반 12분 터진 선덜랜드의 선제 득점 이후론 더더욱.

“보리니의 골! 선덜랜드가 먼저 앞서 갑니다!”

“텐 백이 이게 무서운 거죠. 이렇게 시종일관 몰아붙이다가도, 결국 골문을 열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한 방 역습에 오히려 끌려가게 되는 거에요. 이렇게 되면, 더 어려워졌죠. 선덜랜드는 더 마음 놓고 잠굴 수 있습니다.”

한숨을 내쉬는 나겔스만 감독.

결국 나겔스만 감독은 어쩔 수 없이 벤치에서 대기하던 선수를 준비시킬 수밖에 없었다.

“앙토니 마샬이 몸을 풉니다.”

후반 17분 투입되는 앙토니 마샬.

마샬은 투입 되자 마자 특유의 드리블을 선보이며 사이드를 흔들기 시작했다.

확실히 텐 백을 뚫는 데 제격인 건 개인 능력을 통한 드리블로 균열을 만들어 내는 것.

그런 역할에 제격인 마샬이 투입되니, 조금씩 틈이 보이기 시작하는 듯 했다.

“마샬로 저 정도면, 차라리 백도훈을 넣지.”

“근데 아끼는 것도 이해가 가. 솔직히 휴식이 절실한 입장이잖아. 벌써 몇 경기나 연속으로 뛰었는데. 스페인도 갔다 왔고. 그래도 봤으면 좋겠는 건 어쩔 수 없네.”

그러나,

그런 마샬의 모습에 오히려 더 백도훈의 생각이 간절해지는 팬들.

마샬에게도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저 선덜랜드의 수비라면, 백도훈이 나온다면 5분 안에도 골을 터뜨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똑같이 하고 있는 게, 다름 아닌 선덜랜드의 원정팬들과 스미스 감독.

한 점을 앞서고 있지만 자꾸만 불안할 수밖에 없는 선덜랜드였다.

선덜랜드가 이기고 있는 지금의 맨유는 100퍼센트의 맨유가 아니니까.

또한, 여기에 단 한 선수만 추가 되어도 100퍼센트를 훌쩍 뛰어 넘어 버리니까.

‘출전시키면 그건 쓰레기 감독인거야.’

제발 백도훈을 출전시키지 말아달라고 생각하는 스미스 감독.

만약 자신이 맨유의 감독이었어도, 백도훈은 출전시키지 않았을 것이었다.

선수 보호는 감독의 기본.

오늘 단 5분을 출전하더라도 혹사인 최근 백도훈의 상태.

그리고 그 백도훈만 출전하지 않는다면,

‘이 경기 잡는다.’

맨유를 잡을 수 있었다.

“후반 25분을 지나 갑니다. 아직까진 선덜랜드가 잘 막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마샬이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하곤 있는데, 선덜랜드의 수비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저 집중력을 흩뜨릴 수 있는 빠른 공격이 필요해 보이는데, 애초에 텐 백이다 보니.. 어렵네요.”

이제 남은 시간은 20분여.

뭐라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판단하는 나겔스만 감독.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있던 나겔스만 감독은 벤치에 앉아 있던 도훈을 손짓해 불렀다.

결국 도훈을 준비시키는 듯 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준비할까요?”

“응. 가볍게 준비 ‘만’ 해.”

‘준비만’ 할 것을 강조해 말하는 나겔스만 감독.

분명한 건, 오늘 절대로 도훈을 경기에 투입시킬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오!”

“몸 푼다!”

나겔스만 감독의 지시에, 조끼를 입고 터치 라인을 따라 설렁 설렁 뛰기 시작하는 도훈.

경기를 준비하는 듯한 그 모습에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백도훈 선수가 준비하는군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맨유로써도 어쩔 수 없겠죠.”

이내 박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투입이 된 것도 아니고, 그저 몸을 풀기 시작했을 뿐인데.

경기와 전혀 상관 없이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에, 선덜랜드 선수들도 주변을 두리번 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몸을 푸는 도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결국 나오는 건가.’

‘이제부터 쉽지 않겠는데.’

도훈이 투입 된다면, 안봐도 뻔히 예상되는 경기 내용.

분명 자신들의 수비를 휘저어 놓을테고, 최악의 경우 남은 시간 동안에도 충분히 경기를 역전시켜 놓을 수 있는 선수였다.

때문에, 앞서가고 있음에도 오히려 위기감을 느끼는 선덜랜드.

나겔스만 감독이 노린 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상대가 비교적 수월한 선덜랜드인데, 백도훈 선수는 이번 경기에도 출전 합니까?”

“백도훈 선수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선수입니다. 팀이 어려울 때 항상 필요한 선수죠.”

경기 전, 나겔스만 감독의 인터뷰.

절대 도훈을 출전시킬 생각은 없지만, 말은 그렇게 해놨던 나겔스만 감독이었다.

인터뷰에서 절대 출전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해버리면, 상대도 안심하게 될 테니까.

출전시키지 않을 것이라도, 언제든 출전할 수 있을 것처럼 여지를 남겨둔 나겔스만 감독이었다.

때문에,

“마샬, 뚫고 들어갑니다! 마샬!”

지금처럼,

도훈이 터치 라인을 왔다 갔다 거리며 몸을 푸는 것만으로도,

선덜랜드가 동요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마샬! 마샬!”

“슈웃-! 고오오올-! 들어 갔어요, 앙토니 마시-얄!”

텐 백을 뚫어내기 위해 필요했던 집중력 흔들기.

그 집중력 흔들기는, 필드 위의 그 누구도 아닌.

터치 라인에서 몸을 풀던 도훈이 해주었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앙토니 마샬의 환상적인 드리블과 마무리.

“1대1!”

경기에 출전하지도 않은 도훈이 경기를 바꿔놓고 있었다.

그 정도였다.

현재,

도훈의 위상은.

‘비길거면, 차라리 지는 게 낫다.’

1대1이에서,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여.

도훈뿐만이 아니라, 선수단 전체가 강행군에 지쳐있는 상황.

어쩌면 여기서 패배해 탈락하는 것보다, 동점으로 연장전에 돌입하는 게 맨유에겐 최악의 상황일지도.

때문에 아무리 확고하게 다짐을 하고 나온 나겔스만 감독이라도 고민을 하게 되는 시점이었다.

차라리 10분이라도 도훈을 뛰게 하는게, 전체적으로 봤을 땐 팀의 체력을 아끼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하는.

어차피 10분이라고 해도 도훈이라면 결정을 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

“백도훈 선수가 이제 투입 되나요?”

“조끼까지는 벗었습니다.”

조끼를 벗고 유니폼을 입는 도훈의 모습에 다시 한 번 터져 나오는 홈팬들의 박수.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한 번 흔들리는 선덜랜드의 집중력.

“마타, 내주고! 린가드, 들어 갑니다! 때려야죠, 슈웃-!”

“들어 갑니다!”

이번엔 완벽하게 경기 내용 때문에 터져 나오는 함성.

린가드의 역전 골이 작렬한 것.

“오케이! 됐어!”

“다시 입어!”

나겔스만 감독은 쾌재를 부르기도 전에, 도훈을 다시 벤치에 앉히고 외투를 입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나서야,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는 나겔스만 감독.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린가드의 역전 골 덕분에, 최상의 시나리오가 가능하게 되었으니.

연장전을 가지 않고 승리하는 동시에, 도훈을 아낄 수 있다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린가드의 골 마저도 도훈이 관여했다는 것이었다.

마치,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는 삼국지의 한 구절처럼.

경기에 출전하지도 않은 도훈이 선덜랜드를 무너뜨린 것이었다.

그렇게,

“삐익, 삐이익, 삐이이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맨유의 2대1, 역전승! 어려운 경기였으나, 결국에는 승리를 거두게 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입니다!”

오늘도 맨유는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오늘도 도훈은 맨유의 승리에 기여했다.

단지, 15분 가량 터치 라인 부근에서 몸을 푼 것만으로 말이었다.

ㆍㆍㆍ

“어떻게든 해보자.”

“뭐든 끝까지 가봐야 아는 법이야.”

“기적이 괜히 기적이야? 어려우니까 기적이지. 해보자.”

사뭇 비장하게 버스에서 내리는 선수들.

선수들은 드레싱 룸에 모여 다같이 파이팅을 외치고, 몸을 풀기 위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아스파스에게 올드 트래포드는 참으로 오랜만.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을 위해 셀타 비고가 올드 트래포드를 찾은 것이었다.

이미 홈에서 1대4 대패를 당한 셀타 비고.

그런 셀타가 8강에 진출하기 위해선 정말 기적이 필요한 시점.

그러나,

“나온데?”

“나온다네.”

이미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셀타의 입장에선 지독하게 느껴질 정도로 불운한 소식.

지난 FA컵에서 휴식을 취한 도훈의 선발 출장 소식이었다.

그것만으로, 또 다시 셀타 비고의 사기는 확 꺾이고 말았다.

< 발 쓰지 않고도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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