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02화 (102/173)
  • < 복병 (2) >

    자신들의 요새.

    이 곳 발라이도스의 경기장에서라면 그 누구를 상대해도 자신이 있는 셀타 비고의 선수들.

    세계 최강의 미국이 월남에서 패배를 겪었듯이.

    셀타 비고는 낯선 환경에 어려워 하는 적들을 게릴라로 격파하듯 선제골을 터뜨렸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

    셀타 비고의 홈 팬들만 제외하고.

    그들은 기뻐할 뿐,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나이스!”

    “됐어!”

    선제 골이 터진 후, 환호하는 셀타 비고의 벤치.

    셀타 비고는 현재 챔피언스 리그에 올인한 상태였다.

    지난 시즌 기세 좋게 4위를 하며 정말 정말 오랜만에 챔스에 진출한 셀타 비고는, 올 해 다른 컵 대회나 리그 경기보다 챔스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 입장.

    모든 대회에서 모든 우승컵을 들어 올리겠다던 맨유와는 정반대였다.

    맨유는 이 경기를 비교적 쉬어갈 수 있는 단계라고 생각한 반면,

    셀타 비고는 이 경기를 위해 목숨을 건 상태.

    그런 태도의 차이는 생각보다 경기의 승패에 크게 작용할 수 있었다.

    “감독님! 됐어요!”

    “좋았어!”

    이 경기를 위해 지난 리그 경기에서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을 빼는 강수까지 뒀었고, 맨유를 잡기 위한 맞춤 전술 훈련을 했던 셀타 비고였다.

    그리고 그것이 통했다.

    그러니 셀타 비고가 환희하는 것은 당연했으나, 그 환희의 모습이 ‘예상대로다’ 라는 느낌.

    굉장한 자부심이자 자신감이었다.

    “여기가 어딘데! 마드리드, 바르샤도 쉽게 경기하지 못하는 곳이야!”

    “우리의 축구는 절대 쉽지 않을거다, 신사분들!”

    누구도 이 곳에서 쉽게 경기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리고 그것이 올 시즌 최강이라는 맨유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 했기에.

    정말 맨유의 연승을 깰 수 있는 기회가, 그리고 모두가 예상하던 우승 후보를 꺾고 8강에 진출할 수 있는 파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기에.

    셀타 비고는 여기서 완전히 차이를 벌리고 싶었다.

    단지 상대 선수들이 경기장에 적응하지 못해 기본적인 것들에서 실수를 보였다는 이유로,

    맨유를 얕잡아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포그바, 뒤로 다시 내줍니다. 지금도 볼 컨트롤에 어려움을 겪었죠?”

    “상당히 강하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 셀타 비고인데요. 평소같았다면 포그바가 능숙하게 탈압박을 시도하며 전진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방금은 첫 터치부터가 불안하니까 허겁지겁 뒤로 내줄 수밖에 없는 거죠.”

    중원부터 상당히 강하게 전방 압박을 올라가는 셀타 비고.

    빠르게 패스 플레이로 풀어 나가거나, 개인 능력을 통한 탈압박으로 그 압박을 풀어 나가야 하는 맨유였다.

    평소라면 충분히 그럴 능력들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이 곳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

    ‘젠장.’

    몇 번이나 미드필더들에게 공을 전달했건만, 벽처럼 다시 돌아오는 공에 스몰링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렇게 전진에 어려움을 겪는 건 정말 오랜만.

    아예 준비했던 전술을 버리고 롱 패스 위주로 풀어 나가야 하는가.

    하지만 애초에 오늘은 루카쿠도 출전하지 않았고, 사전에 플레이를 약속한 적도 없는데.

    어찌해야 하는가, 스몰링의 고민이 깊어지던 그 때.

    “헤이!”

    스몰링은 전방에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짧게 앞으로 내줬다.

    ‘괜한 고민을 했군.’

    이번엔, 공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을 하며.

    “백도훈, 내려와서 받습니다!”

    도훈이 내려와 공을 받았다.

    스몰링의 그 짧은 패스 마저도 바운드가 생기며 도훈에게 흘러오는 공.

    곧바로 뒤에서 압박을 들어오는 상대 선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공을 감각적으로, 아주 예쁘게 차기로 유명한 도훈.

    ‘이런 곳에선 너도 똑같아.’

    그렇기 때문일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도훈의 뒤에서 달려드는 셀타 미드필더 로보트카도 마찬가지였다.

    천재 엘리트.

    항상 좋은 환경에서 공을 차왔겠지.

    그렇다면 아무리 백도훈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라고 로보트카는 생각했다.

    그러나,

    “...!”

    퉁-!

    “돌아 섭니다!”

    그건 도훈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였다.

    발 앞에서 튀어 오르는 공.

    예상치 못한 불규칙 바운드.

    그러나 도훈은 오히려 그걸 역이용해, 터치 한 번만으로 공을 띄워 달려드는 로보트카의 머리 위를 넘기며 돌아섰다.

    그리고,

    파아앙-!

    다시 발등으로 공을 받아 치고 올라가기 시작하는 도훈.

    드리블이 쉽지 않았다.

    특히 짧은 드리블을 즐기는 도훈에게는 더욱 최악의 잔디.

    하지만,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고수는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타타타탓-!

    평소보다 조금 더 집중하면 될 뿐이었다.

    아주 ‘조금’ 더.

    도훈은 이딴 잔디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급류에서도 공을 차며 놀았던 사람이었다.

    전혀 어렵지 않았다.

    쉬이익-

    타타탓-!

    “호자베드까지 제쳐냅니다!”

    셀타의 중앙 미드필더 호자베드까지 쉽게 제쳐내며 계속해서 올라가는 도훈.

    당황하며 빠르게 뒤로 물러나는 셀타 수비진.

    오늘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이 곳에서만큼은 아무리 백도훈이라 해도 평소와 같이 편안하게 날아다니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백도훈의 날개는 물에 푹 젖은 것처럼 무거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도훈의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는 건,

    “아무도 저지하지 못합니다!”

    “그대로 끝까지 갈 생각이에요!”

    셀타 비고의 수비수들로는, 도훈을 막아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쉬이익-

    쉬이익-

    번개같이 셀타의 중앙 수비 사이를 파고드는 도훈.

    지금 이 순간.

    열악한 잔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건 공을 가진 선수가 아니라 오히려 그걸 막아내는 선수들인 듯.

    그렇게,

    도훈은 순식간에 상대 중원부터 최종 수비까지.

    혼자서 모두를 제쳐낸 뒤,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동점 골을 만들어 냈다.

    “...”

    침묵에 빠지는 셀타 비고의 벤치.

    불과 5분 전, 아니 15초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던 벤치였다.

    그러나 환호하며 자신감 넘치던 그들의 얼굴이 불과 15초만에 사색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사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전략이라면 통하지 않을까.

    우리의 노림수라면 맨유의 연승을 부술 수 있지 않을까.

    왜 못 막지?

    이렇게 하면 백도훈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직접 대면해보면 누구도 표정이 싹 변하고 만다.

    그 압도적인 힘 앞에.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제?’

    허무하게 실점을 당한 뒤, 벤치를 바라보는 셀타 비고의 선수들처럼.

    그런 선수들에게, 셀타 비고의 안토니오 감독은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한 점을 실점했다곤 하지만, 셀타 비고가 전술을 바꿀 수는 없었다.

    전반 15분이 지나가는 시점임에도, 백도훈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아까보단 아니지만 여전히 제 플레이를 100퍼센트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전반 초반 동안 차이를 벌려 놓는다는 계획은 실패지만, 어떻게든 홈에서 펼쳐지는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계획은 어쨌든 변함이 없었다.

    셀타는 공격을 나섰다.

    “이아고 아스파스.”

    셀타의 에이스는 누가 뭐라 해도 이아고 아스파스.

    셀타 출신으로 스페인 국가대표 공격수 자리까지 차지했었던 아스파스는 팀의 레전드였다.

    또한 아직까지 라리가의 수위 공격수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라리가의 킬러인 게 아스파스.

    그러나,

    그런 아스파스에겐 하나의 흑역사가 있었다.

    바로, 2013년 리버풀로 이적했던 그 때 말이었다.

    라리가에서의 준수한 활약과는 다르게, 리버풀에서 아스파스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좀처럼 프리미어 리그에 적응하지 못한 아스파스는 다시 라리가로 돌아왔고, 다시 라리가 정상급 공격수로 돌아왔었다.

    “주고, 다시 아스파스! 중앙으로 돌파 합니까!”

    동료와 리턴 패스를 주고 받으며 중앙 돌파를 시도하는 아스파스.

    그러나,

    프리미어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스몰링과 에릭 바이는 왜 아스파스가 이피엘에 적응하지 못한 것인지의 이유를 보여줬다.

    퍼어억-

    파아앙-!

    스몰링이 아스파스에게 강하게 어깨 경합을 부딪히자, 아스파스는 금새 중심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그 사이에 공을 걷어 내는 바이.

    아스파스는 억울한 표정으로 심판을 쳐다 봤으나, 심판은 일어나라는 손동작을 취할 뿐이었다.

    이 경기는 라리가 경기가 아니라 챔피언스 리그 경기였다.

    “...”

    뜻 대로 되지 않기 시작하는 경기에, 안토니오 감독은 얼굴을 쓸어 내렸다.

    푸욱-!

    뻐어어엉-!

    “아이고, 마치 골프를 보는 것 같은데요. 킥을 할 때마다 잔디가 움푹 움푹 패입니다.”

    경기 중에 잔디가 바뀔리는 없고.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는 맨유 선수들.

    그러나, 2류와 1류의 차이는 상황에 불평만 하고 끝나느냐, 아니면 빠르게 적응하는 방법을 찾느냐 하는 것일 터.

    맨유 선수들은 최대한 효율적인 플레이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문제는 그게 너무 간단한 방법이라는 것이었지만.

    스몰링이 고민 끝에 도훈에게 공을 건넸듯이.

    “백도훈, 다시 한 번 치고 올라 갑니다!”

    “이런 경기장에서 드리블을 하는 걸 보니까 오히려 백도훈의 무서움이 새삼 느껴지네요. 마치 역풍을 뚫고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도훈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었다.

    도훈은 거의 모든 플레이에 관여하며 경기를 풀어 나갔다.

    특히 하프 라인 너머부터는 단독 플레이가 대부분일 정도로 탐욕을 가졌다.

    자신을 위한 탐욕이 아니었다.

    팀을 위한 탐욕이었다.

    “한 명!”

    “두 명!”

    그리고 이피엘에서 실패를 겪은 이아고 아스파스는, 먼 발치에서 도훈의 플레이를 보며 생각했다.

    언제나 최고의 선수들만이 모이던 이 라리가에 왜 변화의 바람이 불었는지.

    왜 라모스가, 크로스가, 메시와 음바페가 라리가를 떠나 프리미어 리그로 ‘도전’ 에 나섰는지를 말이었다.

    예전엔, 라리가의 팬들이나 선수들은 잉글랜드의 축구를 단순하고 빠르기만한 것으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축구의 정수는 기술이라며, 그런 면에서 라리가가 가장 수준 높은 축구를 한다는 자부심을 가졌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저 프리미어 리그의 공격수가,

    “네 명을 제쳐 냅니다!”

    “엄청난 드리블! 믿을 수 없습니다!”

    라리가의 수비수들을 저렇게 현란한 드리블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버리는데?

    기술이라면 라리가에서도 최고라 자부하는 자신조차도,

    “...”

    이렇게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될 수밖에 없는데?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고오오올-! 백도훈의 두 번째 골! 전반이 끝나기 전 역전 골을 터뜨리는 백도훈입니다!”

    얼핏 매복은 성공인 듯 했다.

    천하통일을 위해 진군하던 맨유가 복병의 기습에 어처구니 없이 무너지나 싶었다.

    그러나,

    지형도, 형세도, 전술도 모두 무시하는 힘.

    지금까지 맨유를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선봉에 서서 모든 적들을 무참히 베어버렸던 그 힘.

    그 압도적인 힘 앞에, 결국 복병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삐익, 삐이익, 삐이이익-!”

    “네, 경기 끝났습니다. 최종 스코어, 4대1!”

    “자, 1차전이 이렇게 끝이 났네요. 셀타 비고가 경기를 잘 준비해 나온 듯 싶었으나, 역시 맨유는 맨유였습니다. 이제 1차전이 끝난거고, 2차전이 남아있으니 셀타 비고도 남은 기간 동안 잘 준비해봐야 겠으나, 사실상 저는 끝난 승부라고 보네요. 이미 홈에서 1대4의 패배를 올드 트래포드에서 뒤집기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고 보니까요.”

    결국 4대1로 셀타 비고의 반란은 진압이 되었다.

    모두가 맨유의 승리를 예상할 때, 자신들의 요새에서의 경기를 기대했던 홈팬들은 아쉬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의 패배보다도 더 암담한 사실은 이제 올드 트래포드에 가서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것.

    “젠장, 9살 때 이후로 이런 경기장에서 뛰는 건 처음이었어.”

    “잉글랜드에서 보자고, 친구들. 우린 누구처럼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짓은 안할테니. 멋지게 관리된 잔디 위에서 다시 만나자고.”

    흙으로 엉망이 된 채로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맨유 선수들.

    그런 맨유와 2차전을 붙으러 올드 트래포드로 가야 한다는 건,

    셀타 비고에게 사형 선고와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복병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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