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01화 (101/173)
  • < 복병 (1) >

    “어.. 아임 베리 베리 헝그리, 소 나우 아이 원트 잇 딜리셔스 푸드.”

    “하하! 너무 귀여워.”

    “큐트? 아임 큐트?”

    “예아! 유 아 소 큐트!”

    로레나, 소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

    운전면허를 발급 받았기에 이제 임찬주 없이도 차를 몰 수 있는 도훈의 차에 올라타는 셋.

    운전 중인 도훈은 혼자 놔두고 자기들끼리 뒷좌석에 타고 화기애애한 로레나와 소윤.

    둘은 만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절친한 언니 동생처럼 친해져 있었다.

    어떻게 여자들은 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1초도 끊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도훈으로서는 이해가 안 될 따름.

    다만.

    집에서는 항상 조용하고 퉁명스러운 줄로만 알았던 동생이 저렇게 잘 웃고 말이 많은 모습을 보니 도훈은 미안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동생의 신난 모습을 보니까.

    집엔 무뚝뚝한 아버지와 사춘기의 오빠뿐이었으니 얼마나 재미없고 외로웠을까.

    그런 소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며 언니처럼 행동해주는 로레나에게도 고마울 뿐이었다.

    “고기 먹고 싶댔지?”

    “응!”

    “응. 소윤이가 고기 먹고 싶대.”

    고기가 먹고 싶다는 소윤의 말에 도훈은 포그바가 추천해줬던 레스토랑으로 차를 몰았다.

    사실 이렇게 맛집을 찾아 다니는 일은 로레나와 소윤이 없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 아직 가본 적도 없는 곳이긴 하지만.

    밀라노에서 임찬주와 함께 살던 시절엔 좀 특별한 게 먹고 싶다고 하면 무조건 시켜 먹는 게 전부인 정도였으니.

    “다 왔어.”

    “배고프지? 빨리 내리자.”

    “넹!”

    오빠와 영어 공부를 꽤 열심히 했는지 잔뜩 배가 고픈 듯한 모습으로 차에서 내리는 소윤.

    그런 소윤이, 자신이 어디에 온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 보기 시작했다.

    중세 유럽 풍의 아름다운 건물.

    황금빛의 멋진 조명.

    건물 밖으로 잔잔하게 들려오는 클래식 소리.

    그리고 식당 입구에 깔려 있는 레드 카펫까지.

    난생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역시 폴 취향은..”

    차에서 내려 식당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 도훈.

    역시 포그바가 추천해주는 모든 건 다 이런 식이다.

    확고해도 너무 확고한 녀석의 취향.

    뭐, 그걸 알고 있으니 오늘같은 날 녀석의 말을 믿고 온 것이지만.

    “어서 오십시오.”

    “네. 백도훈으로 예약 했는데요.”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이 쪽으로 오시죠.”

    깔끔한 정장을 입은 중년의 신사가 셋을 고급스러운 프라이빗 룸으로 안내했다.

    번쩍 번쩍한 식당을 지나며 토끼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소윤.

    오빠가 뭐가 먹고 싶냐길래 그냥 고기라고 대답했고, 그냥 적당한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겠거니 생각했던 소윤이었다. 그게 소윤에게 고기라는 개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상상초월.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

    누군가는 이런 세상을 살고 있었구나.

    “말씀하신 프리미엄 코스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능숙한 영어로 주문을 하는 도훈.

    그런 오빠가 오늘따라 다른 사람같이 느껴지는 소윤.

    “솔직히 우리 오빠지만, 오늘은 좀 멋있네. 태어나서 오늘이 그나마 제일 멋있는 것 같아요.”

    “하하.”

    도훈이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로레나에게 얘기하는 소윤.

    “오늘이? 근데 난 네 오빠가 축구할 때가 제일 멋있던데.”

    “아.. 그건 그래. 저도 한 번 본 적 있거든요. 한국에서.”

    로레나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소윤도 로레나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솔직히 멋있었지만, 축구를 할 때만큼은 아니었으니.

    “음식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도훈도 화장실에서 돌아오고, 어느 덧 음식도 테이블 위에 정갈히 플레이팅 되었다.

    단순히 수프와 에피타이저만 서빙이 됐음에도 어떤 최상급 재료를 사용했고, 어떤 조리법을 사용했는지 설명하는 서버.

    도훈은 좀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소윤의 눈에는 그마저도 멋있어 보일 뿐.

    “자, 먹자.”

    “잠깐!”

    “으이구.”

    설명이 끝나고, 도훈이 곧바로 스푼을 집어들자 로레나와 소윤이 동시에 스톱을 외쳤다.

    둘은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 카메라를 켜 테이블 위를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다 똑같으니까 그렇게 빨리 친해지는 거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도훈.

    그렇게 포토 타임이 끝나고.

    “이제 진짜 먹자.”

    “맛있게 먹어.”

    식사를 시작하는 도훈과 로레나.

    그러나, 배고픈 와중에도 뭔가 망설이는 모습의 소윤.

    “이런 덴 막 예절같은 거 있지 않아? 안지키면 뭐라고 하는 거 아니야?”

    도훈에게 속삭이며 묻는 소윤.

    도훈은 피식 웃었다.

    “보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뭘. 그냥 먹던대로 우걱우걱 먹어.”

    “...그래도 되려나.”

    “눈치 볼 필요 없어. 자, 봐.”

    스프 그릇을 손으로 들고 후루룹 마시는 도훈.

    그 모습을 보니, 집에서 컵라면을 먹던 그 오빠가 맞긴 맞다고 생각하는 소윤.

    어쨌든 그런 오빠 덕분에,

    “그럼, 잘 먹겠습니다.”

    소윤도 마음 놓고 식사를 시작했다.

    참,

    도훈도 간만에 기분 좋은 식사였다.

    ㆍㆍㆍ

    첼시와의 카라바오 컵 경기를 마친 맨유는, 이어진 주말 리그 19라운드 경기를 스완지 시티와 가졌다.

    결과는 4대0 대승.

    풀타임 출전한 도훈은 2골 1도움으로 팀의 리그 19연승째를 이끌었다.

    이미 팀이 10연승을 달릴 때부터 나온 얘기지만, 무패 행진도 아닌 이 말도 안되는 연승 행진이 대체 언제 깨질지는 유럽 초미의 관심사.

    이미 최다 연승 기록을 애저녁에 갈아치운 이 맨유의 질주를 대체 누가 멈출 것이란 말인가.

    “기회는 백도훈이 결장한 날 뿐이죠. 하지만 그것도 어려운 게, 팀이 지고 있을 때 백도훈이 벤치에 있는데 투입시키지 않을 수 있는 강심장의 감독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미 몇 경기 생각나는데요. 번리와의 경기 였나요. 그 때도 백도훈이 20분만에 지고 있던 팀을 역전시켜 놨었죠.”

    맨유의 연승이 깨지려면, 최소 조건으로 도훈이 경기에 나오지 않아야 했다.

    그나마 도훈이 유리 몸이라든가, 체력적으로 부족했다면 다른 팀들이 편했을텐데.

    그러나 도훈은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다.

    매 경기 경기에 나설 때면 힘들 법도 하건만,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갈망 덕분이었다.

    아직, 100년간 동굴에 갇힌 채로 몸 속에 채워져간 축구에 대한 갈망은 바닥을 드러내긴 커녕 스스로도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게 남아 있었다.

    쉬고 싶다는 마음보단, 1분이라도 더 뛰고 싶을 뿐인 도훈이었다.

    그리고 그런 도훈이 있는 한, 맨유의 리그 연승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었다.

    “올 시즌 목표는 단순히 리그 우승이 아닙니다. 우리가 출전하는 모든 대회에서의 우승이 목적이죠. 프리미어 리그, 두 개의 잉글랜드 컵 대회,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까지요. 올 해의 모든 걸 우리 것으로 가져올 겁니다.”

    그렇게 무적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는 만큼, 나겔스만 감독이 밝힌 것처럼 맨유의 트레블을 바라는 팬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걸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많았고.

    “하지만, 백도훈에게는 작년보다 더 어려운 해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같은 곳에서 말이죠. 작년 밀란의 우승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란이었습니다. 하지만 올 해의 맨유는 모든 팀이 견제하고, 꺾기 위한 연구의 대상인 팀이죠.”

    그럴수록.

    적들의 저항도 심해지는 것은 당연.

    매 경기 매 경기 맨유는 갈고 닦은 칼을 들고 달려드는 적들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다행이라고 할 만한 건,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의 상대가 수월한 편에 속하는 셀타 비고라는 점일 것이었다.

    물론 라리가의 셀타 비고가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인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 국가대표 공격수인 이아고 아스파스를 위시로 좋은 전력을 보여주고 있는 셀타 비고는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 같은 거함도 리그나 국왕컵에서 심심치 않게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팀이니까.

    하지만 올라올 팀 대부분이 16강에 올라온 올 시즌의 16강은 매치업 하나 하나가 결승전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빡센’ 대진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레알 마드리드 대 유벤투스, 리버풀 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의 대진이 완성 되었으니까.

    그런 팀들에 비해 셀타 비고는 맨유에게 훨씬 수월한 상대인 것이 맞았다.

    때문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스페인 폰테베드라 비고, 발라이도스 스타디움으로 향했던 맨유.

    그러나,

    그 곳에서 실제로 마주한 것은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ㆍㆍㆍ

    촤아아아-

    퉁-!

    “프레드의 어이 없는 트래핑 미스! 셀타 비고의 스로인이 되겠습니다.”

    “실수가 너무 많아요. 맨유 선수들. 이 곳 발라이도스 스타디움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경기 전.

    몸을 풀기 위해 경기장에 나온 맨유 선수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장 경기가 시작될 참인데, 경기장의 상태가 몇 달간 관리를 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

    잔디가 문제였다.

    흔히 말하는 떡잔디.

    빽빽하게 자란 잔디는 전혀 고르지 못했고, 여기저기 뭉쳐있기까지 했다.

    때문에 땅볼 패스를 하는데 공이 울퉁불퉁한 잔디를 지나며 불규칙적으로 튕겨 오르기까지.

    잉글랜드의 잔디와는 180도 딴 판이었다.

    잉글랜드에서 보다 스터드가 훨씬 깊게 박히고, 그 스터드를 잔디가 붙잡는 것처럼 발을 떼기도 힘들었다.

    조금 과장해 이야기한다면 모래 사장에서 축구를 하는 느낌이랄까.

    맨유 선수들이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하고, 미스를 연발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

    그러나 중요한 건, 셀타 비고 선수들은 익숙하다는 듯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연했다.

    이 곳이 그 들의 홈이니까.

    오히려, 정상적인 플레이뿐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플레이까지 펼쳐 보이는 셀타 비고였다.

    이 곳은 셀타 비고의 요새였다.

    뻐어어어엉-!

    “코스타, 길게 전방으로 뿌립니다.”

    제 집에선 고양이도 호랑이로 변하는 법.

    객관적인 전력은 누가 봐도 맨유가 우세.

    그러나, 셀타 비고는 거인을 상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경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하는 셀타 비고.

    그 중심은 롱 볼이었다.

    짧은 패스가 용의치 않은 경기장 때문에, 킥 앤 러쉬의 전술을 갈고 닦아왔던 셀타 비고.

    때문에, 전반 초반만 보면 어디가 잉글랜드 팀이고, 어디가 스페인 팀인지 헷갈릴 정도.

    셀타 비고는 경기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맨유를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 붙였다.

    애초에, 맨유를 잡을 비책으로 생각했던게 ‘초반 러쉬’ 였으니.

    어차피 홈 앤드 어웨이기 때문에 올드 트래포드로 간다면 많은 이점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셀타 비고였다.

    2차전의 승산은, 셀타 비고가 생각해도 적었다.

    셀타 비고에겐 1차전 전반 초반인 지금이 이미 8강 진출을 위한 승부처인 셈.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결국 그 노림수는 결실까지 맺는데 성공하기까지 이른다.

    뻐어엉-

    슈우우웅-

    촤아아-

    파아앙-!

    롱 킥으로 오른쪽 포워드인 멘데스에게 연결된 공.

    멘데스는 곧바로 낮은 크로스를 박스 안으로 붙였고, 그 공이 떡잔뒤 위에서 불규칙하게 흘러 들어갔다.

    그런 바운드에 당황하며 공을 놓치는 맨유 수비수들.

    그러나, 이아고 아스파스는 그 공을 놓치지 않았다.

    철썩-!

    “아스파스! 전반 8분만에 맨유의 골문을 열어 젖힙니다! 이게 웬 일입니까!”

    프리미어 리그의 어떤 팀들도 하지 못했던 걸,

    셀타 비고가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선제 실점을 허용하고 마는 맨유.

    어이가 없었고, 억울함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같은 환경에서 경기를 하는 입장.

    억울한 마음도 이해되나, 그걸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으음.’

    킥 오프를 위해 하프 라인에 서서 동료들을 둘러보는 도훈.

    기본적인 패스조차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다들 이런 환경에서 공을 차본 적이 없는 모양.

    하긴, 다들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한 선수들이었니.

    ‘오늘은 탐욕을 좀 부려야 겠는데.’

    파아앙-!

    도훈의 킥 오프로 재개되는 경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도훈이 탐욕을 가져야 하는 경기였다.

    < 복병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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