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00화 (100/173)

< 등급 외 (2) >

가끔씩 그런 불평을 터뜨리는 팬들이 있었다.

“현실의 백도훈을 기대하고 게임에서 백도훈을 영입했는데, 그 맛이 안난다.”

축구 게임내 최고 사기 캐릭터인 백도훈을 쓰는데, 거의 모든 능력치가 99로 떡칠된 그 카드를 쓰는데도 현실의 백도훈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것.

당연한 일이었다.

게임으로 현실의 백도훈을 구현했다간, 그건 더 이상 축구 게임이 아니라 판타지 게임이 되어 버리고 마니까.

“정말.. 축구 중계를 벌써 십몇 년간 해왔지만 이런 장면은 저도 처음 보는데요.”

“엄청난 파워입니다. 공을 골망에 그대로 박아 버렸습니다.”

파아앙-!

주먹으로 쳐 골망에 박힌 공을 빼내는 케파 키퍼.

촘촘했던 골망이, 넓게 늘어나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헛웃음만 나오는 장면이었다.

랑리스테 월드 클래스.

피파 월드 베스트.

유에파 올 해의 팀.

올 해의 선수.

발롱도르.

선수 개인의 평가하는 잣대, 등급은 참으로 여러가지였다.

선수들은 좋은 평가를 받고, 좋은 등급에 속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등급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도훈은 달랐다.

이미 발롱도르라는 최고 등급으로 규정된 도훈이지만.

‘나도 발롱도르 위너와 10년 가까이를 뛰었고, 10년 넘게 상대해왔지만.’

라모스는 도저히 그런 등급으로는 지금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저 상대를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규정해야 한다면,

“규정이 불가능한 등급 외”

정도뿐만 일 것이었다.

“백도훈의 믿을 수 없는 골로 다시 앞서가는 맨유 입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축구가 부정받는 느낌에, 희열 대신 무력감이 들 정도로.

“삐익, 삐이이익-!”

더 이상의 골 없이 전반은 그렇게 2대1로 마무리가 되었다.

도훈이 중원에 강하게 개입하기 시작한 이후로, 경기의 승패가 중원 싸움에서 갈리겠다고 판단한 첼시도 허리에 대단히 힘을 주었다.

기존의 3미들에 양 쪽 날개인 아자르와 윌리안 역시도 내려와 플레이하는 모습까지 보여줬고, 절대 밀릴 수 없다는 듯한 두 팀의 중원 싸움은 매우 치열하게 흘러 갔다.

그렇게 전반전을 마치고.

드레싱 룸으로 돌아온 크로스와 라모스.

첼시에서의 첫 전반전을 마친 둘.

그 둘은 하프 타임 내내 말없이 휴식만을 취하다,

“다시 힘내보자!”

후반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말 없이 웃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둘.

이 곳은 절대 녹록치 않은 곳이라는 의미였다.

이어지는 후반전.

홈에서 한 점을 뒤지고 있는 첼시.

치열하게 맞서고 있는 경기 상황.

첼시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 승부는 단판이 아니라 홈 앤드 어웨이로 치뤄지는 2차전 방식.

오늘로 끝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오늘의 패배가 곧 토너먼트에서의 탈락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것.

잘 생각해야 했다.

“조르지뉴, 뒤로. 크로스에게.”

특히 지금처럼 공을 잡은 상황에.

만회 골을 위해 분주히 공격 시도를 하는 게 당연한 일.

하지만, 전반에도 확인했듯 공을 이 쪽이 아니라 저 쪽에서 소유하고 있을 때의 싸움은 현재 첼시의 중원진이 갖는 강점을 전혀 살릴 수 없게 되고 만다.

때문에 함부로 과감한 공격을 시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단순히 소유만 하고 있는 것도 능사는 아니었다.

애초에 크로스의 강점은 볼 소유와 공격 전개에 있는데, 그 중 하나인 공격 전개를 하지 못한다는 건 스스로 강점을 지워 버리는 일이 되니까.

‘백도훈만 없었으면.’

첼시의 사리 감독은 자꾸만 입 주변을 매만졌다.

담배 한 대가 무척이나 간절한 듯.

사실 약점이 없는 선수는 있을 수가 없다.

완벽하지 않은 선수들 11명이 모여, 각자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한 팀이 될 뿐.

하지만, 단 한 명의 예외가 있다면.

바로 저 백도훈.

저 백도훈 때문에, 최고의 선수들이 약점 투성이인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어찌됐든, 약점도 강점도 살릴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입장.

“터치 라인을 벗어 납니다. 첼시의 스로인.”

잠시 벤치와 가까운 쪽에서 공이 나가 경기가 멈춘 틈에, 사리 감독은 직접 적은 쪽지 하나를 아자르에게 건넸다.

아자르는 그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뒤, 크로스에게 건넸고.

‘동점=대박. 현상 유지=만족.’

쪽지의 내용은 그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정답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

사리 감독은 지금 이 45분 동안 그 답을 찾는 대신, 다음 2차전까지 남아 있는 2주간 생각해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뭐, 시간이 길게 주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답을 찾는 건 어려울 테지만.

‘고생은 내일의 나한테 맡겨두자고.’

지금으로썬 2차전의 가능성을 최대한 높게 남겨두기 위해, 이대로 경기를 유지하는 게 나아 보였다.

“윌리안을 빼고 로스 바클리를 투입합니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격수를 빼고 미드필더를 투입한다는 의미는 뭘까요?”

“중원 싸움에 워낙 많은 게 달려 있으니까요. 또한, 어느 정도 이 상황에 만족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 점 차.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2차전이 또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리 감독의 쪽지를 보고, 솔직히 크로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2차전을 위해 가능성을 남겨 둔다지만, 오늘은 홈 경기였다.

게다가 원정 2차전에서 지금같은 백도훈을 상대해 1점 이하의 실점을 기대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 될테고.

‘더 냉정하게 봐야 돼.’

이건 이탈리아인과 독일인의 성향 차이 일지도 몰랐다.

사리 감독은, 1대2만 된다고 해도 분명히 역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크로스는, 2대2로 끝난다해도 그 가능성이 적으며, 오히려 역전을 시켜놔야 그나마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라고 봤다.

2차전의 백도훈은 더 강해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할 수 있는만큼 해놔야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뒤에서 라모스가 부추겼다.

“오른쪽 봐!”

뻐어어어엉-!

“크로스, 길게 전방으로 뿌립니다!”

다시 아자르를 향해 긴 패스를 전달하는 크로스.

패스 하나는 기가 막혔다.

받기 싫어도 받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확한 패스를 넘겨 받는 아자르.

공에는 메시지가 실려 있었다.

솔직히, 아자르도 크로스와 비슷한 생각이기도 했고.

파아앙-

타타탓-!

“파고 듭니다!”

루크 쇼를 상대하는 데 있어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아자르.

아자르는 다시 한 번 우측면을 깊게 파고 든 뒤,

뻐어어엉-!

문전을 향해 날카로운 크로스를 붙였다.

이번엔 정석대로, 지루의 머리를 향한 크로스.

그 크로스를 향해 지루가 힘차게 뛰어 올랐다.

파아앙-!

“픽포드의 펀칭!”

그러나, 먼저 공에 닿는 픽포드 키퍼의 주먹.

이미 충분히 대비하고 있는 코스였고, 때문에 픽포드 키퍼의 판단이 빨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역습.

파아앙-

세컨 볼을 따낸 포그바가 곧바로 프레드에게 내줬고, 프레드가 다시 앞 쪽의 도훈에게 내줬다.

“치고 올라 갑니다!”

공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진행시키며 돌아서는 도훈.

그 노 터치 페인팅에 조르지뉴가 아무것도 못하고 떨쳐졌다.

빠르게 올라가는 도훈.

다행인 건 캉테가 아랫선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공을 달고 하프라인을 넘는 도훈에게 캉테가 따라 붙었다.

아까와는 다른 상황이었다.

아까는 캉테가 다른 쪽을 커버하는 틈에, 드리블로 크로스를 공략하며 상대 중원 조합의 약점을 파고 들었었던 도훈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캉테가 붙어오고 있었으니, 약점을 파고드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 중원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고, 강점만으로 제대로 대처가 되는 상황인 것.

그러나.

“...”

분노에 찬 표정으로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는 사리 감독.

그런 사리 감독의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크로스와 사리 감독의 상반된 두 의견 중, 어떤 것이 맞았을 지는.

약점이든 강점이든.

도훈 앞에선 모두 약점일 뿐이었다.

타타탓-

툭-!

빠르게 올라가다, 하프 라인 부근에서 갑자기 멈춰서는 도훈.

그 급제동에, 캉테도 멈춰선 뒤 도훈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곧바로,

쉬이익-

타타탓-!

도훈이 다시 출발했다.

환영신보를 사용하며.

그 눈속임에, 캉테가 속았다.

“캉테를 제쳐내고 올라 갑니다!”

너무나 쉽게 벗겨진 캉테.

물론 제쳐지자 마자 다시 뒤따라붙는 캉테였다.

그러나, 도훈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뿐더러,

파아앙-

타타탓-!

“크로스마저 제쳐냅니다!”

도훈은 멈출 생각 역시 없었다.

또 다시 아무런 저지력도 보여주지 못하는 크로스를 제쳐내고 중앙으로 파고드는 도훈.

‘그만해도 돼, 임마!’

이젠 더 충격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받을만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라모스에게 달려드는 도훈.

‘굳었군.’

이전과 달리 달려 나오지 않는 라모스를 보며, 도훈은 더 이상 라모스를 어려운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굳어 있는 게 보였으니까.

쉬이익-

뻐어어어엉-!

그저 간단히 헛다리 한 번.

그리고 짧게 쳐 슈팅 각을 만든 뒤, 왼쪽 구석을 향해 대각선 코스로 슈팅.

슈우우웅-

철썩-!

그 슈팅은 허망하게 첼시의 골문을 다시 한 번 갈랐다.

“젠장!”

사리 감독은 격노했다.

“삐익, 삐이익, 삐이이익-!”

도훈의 헤트트릭으로.

결국 경기는 3대1, 맨유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렇게 경기가 끝날 때.

“...”“...”

두 명의 신입 아닌 신입생은 벤치에 있었다.

후반 77분 동시에 교체된 라모스와 크로스.

그 둘이 교체되어 나올 때, 사리 감독은 터치 라인에 서 있었지만 그 흔한 하이 파이브조차 하지 않았다.

문책성 교체였다.

너희가 아무리 세계최고의 선수들이라고 해도.

너희가 아무리 라리가나 챔피언스 리그, 월드컵에서까지 최고의 자리에 올라 본 선수들이라고 해도.

여기선 그렇게 생각하고 뛰면 안된다는.

이 곳에선, 특히나 백도훈의 맨유를 상대할 땐.

사자를 만난 거북이처럼 웅크리는 걸 부끄러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쨌든.

그렇게 카라바오컵 4강 1차전은 맨유의 3대1 승리로 끝이 나게 되었다.

ㆍㆍㆍ

“그 때 생각나냐?”

“언제?”

“너 미술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빠가 안된다고 해서 너 막 울었잖아.”

“그랬지.”

도훈의 집.

방학을 맞은 동생 소윤이 이 곳에 와 있었다.

“그 때 아빠가 엄청 힘들어 했던 거 알아?”

“그래? 몰랐는데.”

“하긴. 너한테는 아무 내색도 안하시니까.”

이제 중3이 되는 동생.

그런 동생이 중학교 1학년일 때.

동생은 그 때 미술부를 했었는데, 담당 선생님이었던 선생님이 동생에게 재능이 있다며 미술을 해볼 것을 강력히 권유했었다고.

동생도 미술을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터라 아버지에게 그런 장래 희망에 대해 말씀을 드렸었다.

하지만, 미술이라는 게 워낙 좀 돈이 드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학원도 다녀야 하고, 재료도 사야하고.

아버지는 지금은 안된다고, 중학교 때는 공부나 하는 게 맞다고 하셨었다.

동생은 그저 안된다고 하는 아버지에게 화가 많이 나고 속상했을 터.

그러나, 자식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줄 수 없는 아버지라고 마음이 편했겠나.

하루는 술을 진창 먹고, 도훈 앞에서 주정을 부리다 잠든 적도 있었다.

술 주정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주정이었다.

“아무튼, 이제 쉬는 시간 끝. 다시 집중하자.”

“뭐 먹을 거 더 없어?”

“돼지같은 소리 좀 그만하고. 자, 이 문장부터 보자.”

책상에 앉아 책을 펴놓고 동생에게 영어 과외를 해주는 도훈.

도훈은 소윤이 대견했다.

이제는 얼마든지 이뤄줄 수 있는 꿈.

소윤에게 한국보단 영국에서 유학을 하며 미술을 공부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을 때, 싫다고 할 줄 알았건만 소윤은 하겠다고 단번에 대답했었다.

쉬운 결정이 아니고, 용기가 필요했을텐데.

그런 동생을 도훈은 물심양면으로 돕고 싶었고, 누구보다 팍팍 밀어줄 수 있었다.

꿈을 이룬다는 게 그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라는 걸, 도훈은 알고 있었으니까.

“근데, 아까 그 언니 진짜 이쁘더라.”

“신경 꺼라.”

“오빠 돈 보고 만나는 거 아냐?”

“신경 끄라고.”

이렇게 까불때면 어릴 때처럼 한 대 쥐어박고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 등급 외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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