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99화 (99/173)

< 등급 외 (1) >

수천 억의 거금을 들이고도 이전과 똑같이 무기력한 패배를 당할 수는 없는 일.

올리비에 지루의 킥 오프로 경기는 재개 되었다.

“토니 크로스.”

캉테, 조르지뉴와 함께 중원을 이루게 된 토니 크로스.

그 중원의 구색만 놓고 본다면, 유럽에서 손꼽을 만한 중원을 갖추게 된 첼시.

사실 라모스의 영입보다도 크로스의 영입에 더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였다.

“중원 장악력을 가져 갑니다, 첼시.”

“캉테와 크로스의 조합은, 이론적으로는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해줄 수 있는 완벽한 조합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는데, 그러한 모습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네요. 공을 가지지 않았을 땐 캉테의 수비력이, 공을 잡았을 땐 지금처럼 크로스의 안정감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경기가 진행될 수록 위력을 발휘하는 첼시의 중원.

중원 장악력을 바탕으로 점유율을 조금씩 높여가며 첼시는 경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발롱도르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은골로 캉테는 명불허전이었다.

공을 잡은 포그바를 압박하고 있다가, 어느 새 프레드의 공을 뺏어내고, 루크 쇼의 패스를 끊어내는 캉테.

마치 세 명의 캉테가 그라운드에 있는 듯한 존재감.

한 편,

토니 크로스는 첼시가 공을 잡았을 때의 안정감을 대폭으로 증폭해주고 있었다.

프레드나 포그바가 함께 압박을 가해도 여유있게 탈압박하거나 간결하게 공을 돌리는 모습은 첼시팬들에게 마치 과거 미하엘 발락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까지.

“괜히 랑리스테 월드 클래스 등급을 다섯 번이나 받은 게 아니죠.”

독일 키커지에서 정기적으로 선수 등급을 메기는 시스템인, 랑리스테.

월드 클래스,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으로 나뉘는 이 등급은 매우 엄격한 잣대로 평가되기로 유명.

웬만큼 뛰어난 활약을 보여도 월드 클래스를 받는 선수가 드물 정도로.

그런 랑리스테에서, 토니 크로스는 총 다섯 번이나 월드 클래스 등급을 평가 받았다.

한 마디로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라는 의미였다.

그런 크로스가 캉테라는 날개까지 달았으니, 훨훨 날아 다니는 건 당연한 일.

“두 미드필더의 장점이 합해지니, 이건 뭐 약점이 없어 보이는데요.”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보완해주고 극대화 시켜주는 최적의 조합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첼시가 크로스 영입에 사활을 건 이유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보다 완벽한 미드진은 없어 보였다.

뻐어어엉-!

“반대쪽으로 길게 연결 합니다.”

“정확하게 아자르에게 향합니다. 사실 이런 전개를 즐겨쓰진 않았던 첼시인데요. 크로스의 날카로운 패싱력이 맨유의 중원을 건너뛰고 아자르에게 단번에 연결할 수 있는 옵션이 되고 있습니다.”

왼쪽의 윌리안이 돌파를 시도하다, 여의치 않자 공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그 공을 넘겨 받은 크로스가 반대편으로 전환하는 롱 패스를 뿌렸다.

날카로우면서도 안정감 넘치는 패싱.

빠른 반대 전환을 위해선 꼭 필요한 것이 이렇게 정확하고 빠른 패서인데, 크로스의 합류로 그것이 되고 있는 첼시였다.

“아자르.”

오른쪽에서 토니 크로스의 정확한 패스를 넘겨 받는 아자르.

맨유가 알론소를 첼시의 약점으로 보고 있다면, 첼시가 맨유의 약점으로 보고 있는 건 왼쪽의 루크 쇼.

마찬가지로, 아자르를 통해 그 약점을 공략하려는 첼시.

“아자르, 파고 들어 갑니다!”

거침 없이 1대1을 시도하는 아자르.

확실히, 왜 루크 쇼를 약점으로 봤는지 이해될 정도로 아자르는 쉽게 루크 쇼를 벗겨내고 사이드를 파고 들기 시작했다.

“지루 봐야죠!”

박스 중앙에는 지루가 있었다.

지루의 헤더 능력은 이피엘에서도 손 꼽히는 정도.

확실히 측면을 파고드는 아자르와 모라타 대신 선발 출장한 지루의 조합은 의도가 분명해 보이는 느낌.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는 약점이 약점이 아니 듯, 모두가 알고 있는 강점도 강점이 아니었다.

첼시는 그걸 파고들기 위해 준비해 온 합이 있었다.

파아앙-!

박스 오른쪽까지 파고 든 아자르는 크로스를 띄워 올리는 대신, 박스 뒷 편으로 꺾어 내줬다.

박스 안의 맨유 수비 대부분이 지루에게 주의가 끌린 상황.

굴러오는 그 패스를 향해 뒤 쪽에서 토니 크로스가 달려들었다.

크로스를 향한 땅볼 크로스였다.

“슈웃-!”

뻐어어엉-!

다이렉트 슈팅으로 연결하는 크로스.

마음 놓고 때리기 좋게 굴러오는 공이었지만, 크로스는 발등으로 후리는 것이 아니라 인프론트로 정확히 가져다 대는 슈팅을 때렸다.

크로스의 전매특허.

정확한 컨트롤 슈팅.

촤아아아-

그 슈팅은 날카롭게 골문 구석으로 흘러 들어갔고,

약간의 역동작이 걸린 픽포드 키퍼가 뒤늦게 몸을 날리며 손을 뻗어 봤지만,

철썩-!

닿지 못했다.

“고올-! 토니 크로스의 동점 골입니다!”

“프리미어 리그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네요! 토니 크로스!”

데뷔 골의 기쁨을 표하는 크로스.

확실히, 달랐다.

이미 모든 대회와 리그에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 명실상부 월드 클래스로 규정될만한 선수는.

첼시의 경기력은 무서울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역시는 역시구만!"

"월드 베스트, 발롱도르 30인. 더 말 할 필요가 있나? 의심하지 말라고."

환호하는 스탬포드 브릿지.

전반 8분만에 백도훈에게 선제 골을 내줬을 땐, 솔직히 많이 실망이었다.

후반기부터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원했는데, 별 다를 게 없어 보였으니.

솔직히 라모스를 의심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중원의 장악력을 바탕으로 이어진 동점 골까지.

달랐다.

첼시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첼시 팬들은 잠깐이나마 의심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만만치 않습니다. 맨유는 조금 더 중원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올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그렇죠. 사실 그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그렇죠. 저렇게 백도훈이 내려 가는거죠.”

생각보다 고전하는 포그바와 프레드의 중원 조합.

확실히 캉테와 크로스 조합은 상대가 그 누구라도 장악력을 가질 수 있는 조합이었다.

때문에 오른쪽에서 조금씩 중원으로 내려가며 동료들을 돕는 도훈.

‘참 편하다니까.’

슬슬 지시를 내려야 하나 생각하던 나겔스만 감독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언제나 도훈에겐 스타팅 포지션만 부여해줄 뿐, 경기 내 플레이에 있어선 전적으로 위임.

지금도 내려가 중원을 도우라고 지시를 내리려 했으나, 알아서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주니 이래서 도훈에겐 플레이를 제한해 줄 필요가 없었다.

도훈에게 역할을 규격해주는 건, 오히려 그 재능을 제한하는 일이 될 뿐.

파아앙-

파아앙-!

오랜만에 여유있게 중원에서 패스를 돌리는 맨유.

도훈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계속해서 동료들과 삼각 대형을 만들어 상대의 압박을 피해내고 패스를 이어 나갔다.

‘크로스의 존재감을 지워야 한다.’

지금은 굳이 빠르게 공격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도훈이었다.

첼시의 경기력에 가장 크게 관여하고 있는 건 지금으로썬 캉테와 크로스였다.

하지만, 그 중 크로스는 캉테보다 활약할 수 있는 상황이 제한적이었다.

공을 잡았을 때만 그 능력이 극대화되는 타입이니까.

수비 시에 크로스는 솔직히 평범한 미드필더 정도도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

때문에 맨유가 이렇게 공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캉테가 부지런히 압박해 봅니다. 하지만 백도훈, 여유롭게 뒤로 볼을 넘깁니다.”

크로스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캉테의 역할만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언뜻 보면 크로스와 캉테의 조합은 완벽해 보일 수 있었다.

공격 쪽을 풀어줄 수 있는 크로스.

수비 쪽을 담당해 줄 수 있는 캉테.

그러나, 그렇게 선수 개인에게 확실한 강점으로 인해 역할이 구분되어 있다면.

파아앙-

스르륵-

타타탓-!

“백도훈, 빠르게 돌아 섭니다!”

“속도를 높여 보나요!”

오히려 공략법도 쉬울 수 있었다.

천천히 공을 돌리다, 갑자기 돌아서며 속력을 높이기 시작하는 도훈.

갑작스러운 그 기어 변속에, 원래 공을 가지고 있던 포그바를 압박하는 중이던 캉테는 따라붙을 수가 없었다.

도훈은 크로스를 향해 공을 몰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월드 클래스?'

랑리스테 월드 클래스 5회라는 토니 크로스도 데뷔 시즌엔 3번째 등급으로 평가 받았었다.

그러나 라이프치히에서의 도훈은, 데뷔 시즌에 월드 클래스를 받았다.

캉테가 없는 크로스는 도훈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파아앙-

타타탓-!

"쉽게 제쳐냅니다!"

속도만으로 크로스를 제쳐내고 계속해서 중앙을 파고드는 도훈.

곧바로 뤼디거가 앞을 가로 막으려 뛰어 나갈 준비를 했다.

“...!”

그러나 이미 달려 나가고 있는 라모스를 보고 발을 멈추는 뤼디거.

안 그래도 적극적인 스타일로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는 라모스인데,

지금의 라모스는 도훈과 한 번이라도 더 붙어보고 싶어 안달이 나있는 상태니 기다렸다는 듯 달려나갈 수밖에.

“파고 듭니다!”

“막으러 나옵니다!”

서로에게 정면으로 달려드는 도훈과 라모스.

이전의 맞대결에서.

처음 마주하는 것임에도 도훈이 지주신보를 사용했던 건, 그만큼 라모스의 실력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라모스는 절대 쉽지 않은 상대.

그러나 그래서,

‘재밌어.’

재밌는 상대였다.

파팡-!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달려 나오던 라모스.

그런 적극적인 수비를 벗겨내는데 제격인 건 역시나 유령신보.

순간적으로 도훈의 두 다리 사이에서 사라지는 공을 보며, 라모스는 또 다시 희열을 느꼈다.

확실히 충격적인 녀석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순순히 보내줄 수 없었다.

퍼어억-!

어깨와 다리를 동시에 집어 넣으며 도훈의 진로를 몸으로 차단하는 라모스.

그 부딪힘에 도훈의 밸런스가 무너졌고,

뒤에서 정확히 지켜보던 주심은 휘슬을 입에 물었다.

그런데.

“...!?”

심판은 휘슬을 입에 문 채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도훈이 넘어지는 듯 싶다가,

타타탓-!

기어이 넘어지지 않고 공을 향해 계속해서 달려 들었기 때문.

당황한 것은 라모스도 마찬가지였다.

절대 두 번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몸통 박치기를 하듯 밀어 버렸는데, 생각치 못한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위험지역임에도 공에 대한 집념으로 넘어지지 않는 녀석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고.

그러나,

뻐어어어엉-!

“삐이이이익-!”

이내 휘슬이 울렸다.

라모스의 저지로 도훈의 속도가 준 틈에, 뤼디거가 공을 걷어냈기 때문.

어드밴테이지를 주려다 곧바로 공격 상황이 끊겼기 때문에 주심은 반칙을 선언했다.

그리고,

“옐로 카드가 나옵니다.”

라모스에게 경고를.

라모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심판에게 스페인어로 항의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심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 알아듣지 못한 게 다행일 정도로 거친 말들이었지만.

“뭐, 역시 라모스라고 해야 할까요. 프리미어 리그에서의 첫 카드를 데뷔전에서 수집합니다.”

어쨌거나, 매우 위험한 지역에서 프리킥을 내주는 첼시.

거의 박스 바로 앞, 문전과의 거리는 18미터.

간접 프리킥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케파 키퍼 바로 앞에 벽이 세워졌으며 많은 선수들이 박스 안에 몰려 혼잡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리고 킥을 준비하는 도훈.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선택지는 오히려 좁아진다.

감아차서 벽을 넘기는 건 완벽하게 차지 않는 이상 어렵다고 봐야 하고, 무회전같은 킥도 의미가 없어지니까.

애초에 선수들이 밀집되어 있어 공이 지나갈 길 자체가 좁기도 하고.

하지만,

“삐이이익-!”

도훈은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골이 들어가는 코스는 단 하나고, 그 코스를 향해 정확히 때릴 수 있는 실력이 있으니까.

타타탓-

뻐어어어어엉-!

경기장 전체에 울렸을 정도로 엄청난 임팩트.

공이 터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하게 때려버린 도훈의 프리킥.

타겟은 벽 너머가 아닌, 케파 키퍼가 지키고 있는 벽 옆으로 노출된 골문 쪽.

직선이었다.

슈우우우웅-

도훈의 킥은 일직선을 그리며 레이저처럼 쏘아져 나갔다.

눈깜짝할 새였다.

파지지직-!

그리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골대를 때리는 경쾌한 소리도, 골망에 감기는 마찰음도 아니었다.

뭔가가 찢어지는 듯한 파열음이었다.

“...”

어이 없는 표정으로 골대 안을 바라보는 케파 키퍼.

미리 이 쪽에 치우쳐 서 있었음에도 반응하지 못한 케파 키퍼는 자신의 반응 속도를 탓하는 대신, 차라리 막지 않아 다행이었나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죠?”

“공이.. 박힌 겁니까?”

도훈이 때린 공이, 그물망을 뚫고 들어가 그대로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어이없는 모습에 라모스도 더 이상 충격으로 인한 희열을 느낄 수 없었다.

웬만큼 이어야지.

‘이건 미쳤잖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 등급 외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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