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격변 (1) >
12월,
지옥의 박싱데이.
그 시작을 리버풀과의 경기로 시작한 맨유는, 귀중한 승리를 거두며 기분 좋게 박싱 데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박싱데이라는 게 기분 좋게만 다가올 수는 없었다.
정말, 12월 한달 간의 일정을 보면 지옥이라는 말이 왜 붙었는지 금새 이해가 될 정도.
리버풀전 이후부터 1월 6일까지 근 한달간.
휴식일은 고작 11일뿐이었다.
한 달 동안 리그에서만 9경기를 치루는 일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챔피언스 리그와 카라바오 컵 일정까지 포함한다면 맨유는 13경기를 치루는 셈.
그러니까 한 주에 두 경기, 많으면 세 경기까지.
미친 일정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프리미어 리그의 박싱 데이.
인간이라면 3일에 한 경기씩 한 달을 뛴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도훈도 처음 겪어보는 일정이었고, 또한 도훈이라고 해도 이제부턴 매 경기 모두 풀 타임을 소화할 수는 없는 일.
어떻게 선수들의 체력을 효과적으로 돌려가며 이 일정을 소화하고, 그러면서도 챙길 건 다 챙기느냐 하는게 맨유가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
나겔스만 감독의 적절한 선수 운용과, 선수들의 강인한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다행히, 선수들의 의지는 충만한 상태였다.
우승 경쟁자들인 빅5 클럽을 상대로 모두 승리를 거둬놓은 상태이고, 전승으로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입장인 맨유.
어느 덧 10년 전이 되어버린 마지막 우승을, 다시 현재의 역사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선수들은 똘똘 뭉치고 있었다.
평소엔 장난기 넘치는 선수들도, 훈련 때나 우승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그 누구보다 진지해질 정도로.
그렇게 맨유는 원 팀이 되어, 12월의 힘든 일정을 다같이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미 강 팀들을 상대하는 일정들을 소화한 뒤라, 상대하는 팀들에 있어 상대적으로 수월한 팀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는 것.
12월 10일, 10라운드에서 맨유는 카디프 시티를 상대했다.
결과는 3대0, 승리.
도훈은 71분을 소화했고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3일 뒤, 11라운드는 왓포드를 상대.
도훈은 풀타임을 뛰었고, 2골을 기록하며 팀은 4대1로 승리를 거두었다.
다시 3일 뒤, 챔피언스리그 조별 4차전.
이 경기는 모스크바로 원정을 떠나야 하는 경기였다.
그 일정 자체가 부담이기 때문에, 도훈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고 부득이한 경우 교체로 출전하게 될 상황이었으나 팀이 전반에만 2대0으로 앞서갔고, 결과적으로 3대1 승리를 거두며 도훈은 휴식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그 뒤 리그 12, 13, 14라운드.
도훈은 세 경기 총합 198분을 뛰고 4골 4도움으로 활약해 3승 수확을 이끌었다.
그리고 다시 챔스, 갈라타사라이전.
도훈은 풀타임을 뛰며 4골을 몰아쳤다.
다음 일정은 카라바오컵 8강, 버튼 알비온전.
나름 8강 경기라지만, 맨유의 손 쉬운 승리로 경기는 끝이 났다.
도훈은 79분을 소화하며 2골을 터뜨려 팀의 4강 진출을 견인했다.
리그 15라운드는 번리전이었다.
이 번리전이 아마 맨유로써는 생각치 못한 12월의 가장 큰 위기였을 것이다.
본래 마라톤에서도 35km 지점을 마의 구간이라고 하는 것처럼, 위기는 항상 마지막이 아니라 마지막을 향해가는 지점에서 오는 법.
이날 도훈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고, 포그바와 마샬 등도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던 상황.
그런데 막상 경기를 시작하고 보니, 생각보다 번리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쉽게 경기를 풀어가기는 커녕 도리어 전반 28분 선제골을 내줬고, 0대1로 전반을 마치기까지.
나겔스만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포그바와 마샬을 동시에 투입시켰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중원 자원인 프레드가 거친 파울로 퇴장을 당하고 만 것.
아찔한 순간이었다.
0대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핵심 미드필더가 퇴장이라니.
이대로라면 리그 전승가도가 깨지고 말 상황.
결국 나겔스만 감독은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아끼고 싶었던 도훈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고, 도훈은 구원을 바라는 팬들의 염원이 담긴 박수를 받으며 73분 그라운드를 밟았다.
팀의 전승이 깨질 대위기.
지금껏 모두가 역사에 남을 위업을 달성해 보자며 지금까지 그 고통들을 버텨온 것인데.
도훈은 쉽게 그것을 버릴 수 없었다.
“백도훈, 치고 들어 갑니다!”
“맨유의 공격 속도가 한 순간에 바뀌기 시작합니다!”
다행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도훈을 벤치에 대기시켰던 것은.
지난 5경기에 모두 출전했던 도훈을 만약 명단 제외라도 시켰다면, 대위업은 예상치 못한 상대 번리에게 일찌감치 깨져버리고 말았을 지도.
도훈은 그 날 경기의 구세주였다.
한 명이 없음에도, 도훈이 공을 잡고 공격을 할 때면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동점 골입니다!”
도훈은 투입된 지 8분만에 천금같은 동점 골을 터뜨렸다.
순전히 개인 능력으로 사이드를 부수고 들어가 만들어낸 골.
그렇게 동점이 된 뒤, 경기는 기이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한 명이 많은 번리가 오히려 수비적인 태세를 취하며 동점을 유지하고픈 듯한 의지를 내보였기 때문.
그러나 그런 번리의 의지도, 도훈과 맨유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도훈이 중심이 된 맨유는 하나였다.
“아아아! 백도훈입니다!”
89분.
종료를 1분 앞두고 터진 도훈의 역전골.
나겔스만 감독과 맨유 선수들은 리버풀전에서의 승리보다도 더욱 기쁜 환호를 터뜨렸다.
그 날 경기에서 얻어낸 승점 3점은, 지쳐가던 맨유의 경기력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너무도 귀중한 3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 날의 두 골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지는 골들이었다.
한 시즌이 아닌, 2021년 한 해 동안 도훈이 터뜨린 골 기록에서, 이 두 골이 100호, 101호 골이 되며 마침내 세 자릿수를 넘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상초유의 기록이었다.
종전 한 해 최다골 기록은 메시의 92골.
그 기록을 9골 앞서고, 사상 최초로 세 자릿수 득점의 기록을 갖게 되는 도훈.
이후 2021년 마지막 경기인 챔스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 바젤전에서, 이미 1위를 확정한 맨유가 도훈을 휴식시키면서 결국 도훈의 2021년 골 기록은 101골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 그 때가 세리에에서 득점 선두를 달리던 호날두의 골 기록을 무섭게 추격할 때였다.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겠다.’
역사상 절대 깨질 수 없어 보이는 무수한 기록들.
그 모든 기록들에 도전하겠다고 마음 먹었었던 도훈.
세계 축구사의 모든 곳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야 말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도훈은 차근차근 한 계단씩 밟아 나가며 현실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땐 모두가 어이 없이 웃었던, 한 시즌 양대 리그 득점왕부터 시작해서,
한 시즌 88골,
그리고 한 해 101골까지.
도훈은 아름답게 2021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해피 뉴이어.”
“응, 해피 뉴이어. 이렇게 같이 새 해를 맞이할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해.”
해가 바뀌었다.
2022년 새 해를 로레나와 맞이하며 잠깐이나마 행복한 휴식을 보낸 도훈은, 새 해 첫 날 리그 16라운드 레스터 시티전에 선발 출장했다.
그리고, 맨유 팬들과 고국의 국민들에게 새 해 큰 선물을 안겼다.
레스터 시티는 절대 만만한 팀이 아니었으나, 도훈의 압도적인 화력에 3골을 내주고 말았고 도훈은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후일담으로, 이 날 세 번째 골을 기록하고 도훈은 큰 절 세레머니를 선보였는데, 이게 영국에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선 이렇게 새 해에 절을 하는 문화가 있다고 BBC 뉴스에서 소개가 되기도 했고, sns 상에선 큰 절을 하는 모습을 인증하는 팬들의 분위기가 형성되며 ‘Korean bow 챌린지’ 로 화제가 되기까지.
도훈은 그 존재만으로 영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좋은 인식을 갖게 해주는 축구 외교관을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었다.
17, 18라운드는 각각 본머스, 크리스탈 팰리스전이었고 도훈은 두 경기 모두에 출전해 각각 1골과 2골을 기록하며, 이번 해 역시도 자닌 해가 다를 바 없이, 아니 지난 해의 자신을 뛰어 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도훈은 몇몇 동료들과 더불어 박싱 데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그 만큼 도훈은 자신의 건강함을 증명했고, 왜 자신이 정상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는 지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길었다.”
“이렇게 긴 한 달은 저도 처음이네요.”
그렇게, 프리미어 리그 박싱데이의 지옥같은 일정이 마침내 종료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숨 돌릴 틈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1월부터 열리는 유럽 겨울 이적 시장.
새로운 지각 변동이 예고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8/19시즌부터 철폐된 컵 타이드 룰(cup-tied rule).
이 룰이 삭제되며 전반기 챔스 출전 여부와 관계 없이 겨울 이적 후 새 팀에서 챔스 출전이 가능해진 마당.
그 이후로 겨울 이적 시장의 중요도는 더욱 커졌고, 전반기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나 이미 빅클럽에서 뛰던 거물급 선수가 이 즈음에 이적하는 경우도 매우 빈번해진 유럽 축구계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그런 이적을 추진하는 구단과 선수들이 유독 많은 느낌이었다.
특히, 타 리그에서 프리미어 리그로 넘어오려는 경우가.
그리고 그러한 선수들 중엔 초대형 선수들도 많았고.
-토니 크로스, 첼시 선수되나? 관건은 아자르 잔류 여부
-겨울부터 이피엘에서 메시를 볼 수 있다? 바르샤, 사실상 재계약 포기
-킬리안 음바페, 1년 반만에 재이적 추진.. 맨시티 등 물망
-쿨리발리, 리버풀행 가시화... 클롭 감독과 저녁 회동
보통이라면 프리미어 리그에서 라리가로, 특히 뛰어난 선수들이 레알과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왜?
그 둘이 명실상부 최고이자 최강의 팀이고, 또한 라리가가 유럽 최고의 리그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곳에 최고의 선수가 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현재 챔피언스 리그 우승후보로 가장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백도훈이 있기에.
백도훈이 맨유에 있는 한, 현재 최고의 팀은 맨유였다.
또한, 최고를 상대하는 그 상대 역시 최고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맨유와 우승 경쟁을 해야하는 팀들은 필연적으로 전력 보강을 꾀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적당한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선수를 데려와야 할 정도로.
그것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별들이 잉글랜드로 움직이고, 새로운 판도가 꾸려지고 있는 것이었다.
지난 여름, 맨유로 둥지를 옮겼던 도훈의 선택.
그 선택이, 프리미어 리그를 유럽 최고의 리그로 발돋움 시키려 하고 있었다.
도훈의 파급력은 그 정도였다.
박싱데이가 끝난 후 일주일간의 휴식 기간.
짧다면 그 짧은 일주일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겨울 이적 시장이었을 것이다.
그 많은 일들 중,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여섯가지 사건은 다음과 같았다.
1. 칼리두 쿨리발리, 리버풀 이적
2. 악셀 비첼, 리버풀 이적
3. 토니 크로스, 첼시 이적
4. 세르히오 라모스, 첼시 이적
5. 리오넬 메시, 맨체스터 시티 자유 이적
6. 킬리안 음바페, 맨체스터 시티 이적
쿨리발리를 영입하며 반 다이크와 더불어 최강의 센터백 듀오를 구축, 그리고 비첼로 중원 보강에 성공한 리버풀.
토니 크로스와 라모스, 두 레알 선수들을 품으며 거대한 경험을 끌어 안게 된 첼시.
리오넬 메시, 그리고 킬리안 음바페.
공존할 수 있을까, 아니 공존해서 되는가 싶은 두 공격수의 충격적인 맨체스터 시티 입단.
여름에 이미 도훈을 영입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썼었던 맨유를 제외한 우승 경쟁자들 모두 과감한 투자를 보인 상황.
도훈의 합류로 너무나도 강해진 맨유.
그 만큼.
경쟁자들도 덩치를 불렸다.
떄문에, 이제부터 다시 시작될 리그 후반기,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가 기대를 모으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곧바로 다음 경기부터 폭발이 될 것으로 보였다.
홈 앤드 어웨이로 펼쳐지는 카라바오컵 4강.
맨유와 첼시가 결승진출을 놓고 격돌하기 때문이었다.
< 대격변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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