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 공의 사나이 (4) >
마샬의 선제골에 거대하게 터져 나오는 함성.
더비 경기에서의 선제골, 그것도 홈 팀의 선제골에 터져 나오는 함성은 원정 팀 선수들의 골이 울리게 만들기 충분할 정도.
“아, 이런 건 드문 경우인데요. 이번 실점엔 반 다이크의 지분이 8할은 돼요. 백도훈을 전혀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중앙에 공백이 생겼고, 로버트슨이 커버를 들어올 수밖에 없었죠. 백도훈은 영리하게 마샬에게 패스를 넘겼고, 마샬이 정확히 마무리 했습니다.”
“전반 15분, 맨유가 먼저 앞서 갑니다! 스코어는 1대0!”
마샬에게 실점을 당하는 순간.
그걸 뒤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반 다이크는 주저 앉고 말았다.
완벽히 자신의 책임이었다.
동료들은 다른 어느 팀들의 선수들 보다도 실력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이었다.
그러나, 백도훈을 막을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고 반 다이크는 생각했고 그건 동료들과 코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자신이 책임지겠노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막지 못했다.
반칙으로라도 끊어낼 셈이었으나, 그것마저도 실패했고.
그러나 가장 무서운 건.
“두 번 맞붙어 한 번은 반칙을 유도해냈고, 이번엔 완벽히 제쳐냈던 백도훈입니다.”
“반 다이크와는 첫 맞대결인데,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는 듯 거침이 없네요. 대단합니다, 정말로. 과연 발롱도르를 탈만한 선수에요.”
이제 고작 두 번의 맞대결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8경기 동안 고작 3실점.
고작 3실점만을 했던 리버풀의 수비가, 오늘 15분 동안 벌써 몇 번이나 허점을 드러낸 상황.
리버풀로써는 공격으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헨더슨, 체임벌린에게. 체임벌린, 끌고 올라 갑니다.”
속도를 내보는 체임벌린.
이미 초반부터 그랬지만 좀 더 템포를 올려보는 리버풀 선수들.
자신들의 수비진이 허점을 보였다 해도, 어차피 자신들의 공격진도 상대의 수비진 정도는 부숴낼 수 있다.
“마네에게! 마네, 돌파 합니다!”
“좋은 돌파에요!”
오른쪽의 마네가 루크 쇼를 제쳐내며 물꼬를 트는 리버풀의 공격.
뻐어엉-!
“뒤로 꺾어줍니다!”
박스 오른쪽에서 컷 백을 강하게 내주는 마네.
살라와 피르미누는 골문을 향해 쇄도해 들어가고 있었다.
맨유의 수비도 그 둘을 막기 위해 골키퍼와 거리를 좁히고 있었고.
그러나 마네의 컷 백은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체임벌린에게 향했다.
뻐어어어엉-!
다이렉트로 강력한 슈팅을 뿜어내는 체임벌린.
오른발등에 제대로 걸린 슈팅은,
슈우우우웅-
골문 상단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철썩-!
“터졌습니다! 리버풀의 동점 골! 실점한 지 10분만에 동점골을 만들어내는 체임벌린!”
“이야, 이거죠. 이게 리버풀과 맨유의 경기죠.”
“쉽게 기울지 않습니다!”
체임벌린의 골에 허공에 주먹을 몇 번이나 내지르며 포효하는 클롭 감독.
난타전으로 경기를 끌어나가려는 리버풀.
그게, 약이 될 지 독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경기는 다시 뜨겁게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한 번씩 주고 받은 두 팀.
이후로도 양 팀은 간담을 서늘케 하는 장면들을 주고 받았다.
골문을 살짝 빗겨간 포그바의 중거리 슈팅이 있었고, 빠른 드리블로 스몰링을 이겨내고 때린 살라의 왼발 슈팅은 골대를 맞고 벗어났다. 또한 루카쿠의 아쉬운 헤더도 다시 한 번 있었고.
“맨유로써는 공격이 대부분 슈팅까지 마무리 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겠네요.”
“그렇죠. 그건 뭐 리버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수비를 볼 때요. 맨유도 실점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누가 봐도 무게추는 리버풀 쪽으로 기울고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공간이 꽤나 생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백도훈 때문이죠. 백도훈이 반 다이크를 제대로 묶어두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동료 공격수들에게 기회가 생기는 거에요.”
도훈에게 직접적인 찬스가 오고 있진 않지만, 반 다이크가 항시 도훈의 주위에 묶여있는 것만으로 찬스는 다방면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난번, 밀란 시절 나폴리와 경기를 펼쳤을 때와 비슷했다.
나폴리의 쿨리발리를 도훈이 제압하니 쉽게 풀렸던 그 때의 경기처럼.
그러나.
아쉽게 한 끝이 부족한 동료들의 슈팅을 보며, 도훈은 슬슬 자신도 동료들의 덕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도훈에게.”
이전과 비슷한 위치에서 다시 한 번 공을 잡는 도훈.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붙어오는 반 다이크.
둘의 세 번째 맞대결.
절치부심한 반 다이크.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로 반 다이크가 얼마나 좋은 선수인 지를 알 수 있는 모습.
그러나,
솔직히.
“백도훈!”
“빠르게 흔들고 들어 갑니다!”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마음보다,
과연 막을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마인드 컨트롤로도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지주신보.’
소용돌이 치는 도훈의 다리.
처음 마주하는, 다른 공격수들의 무의미한 헛다리와는 궤를 달리하는 그 움직임에 조금씩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는 반 다이크.
또 다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을 선사하는 백도훈.
첫 번째엔 반칙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고,
두 번째엔 반칙으로도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엔,
‘이게 무슨..!’
막으려는 생각조차 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전의를 상실케 하는 괴이한 움직임이었다.
파아앙-
타타탓-!
“다시 한 번!”
“반 다이크의 반응이 늦어요! 전혀 예상을 못하는 겁니다!”
도대체 어디로 향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모습에,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감에도 도훈을 따라가지 못하는 반 다이크.
다시 한 번 반 다이크를 제쳐내고 중앙으로 공을 몰고 들어가는 도훈.
첫 골 때와 유사한 상황.
그러나,
똑같지는 않았다.
‘젠장.’
반 다이크의 자리를 커버해야 할 로버트슨이 망설였기 때문.
“...”
슬쩍 오른쪽에 눈길을 주는 도훈.
이전 상황에서, 로버트슨이 마샬을 버리고 중앙으로 왔기 때문에 마샬에게 실점을 했던 터였다.
그러니 로버트슨이 그 눈길만 봤을 뿐인데도, 주춤한 것이 당연.
그리고 그건 도훈의 계획대로였다.
도훈은 단숨에 중앙을 돌파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빨라요!”
전광석화같은 순간 스피드.
그 의도를 눈치 챈 로버트슨과 조 고메즈가 뒤늦게 문을 양 쪽에서 닫아보려 했지만, 도훈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다.
심지어 조 고메즈는 리버풀에서 가장 빠른 선수였다.
살라보다도 더.
그러나, 그런 고메즈도 도훈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박스 안까지 치고 들어간 도훈은,
뻐어어어엉-!
지체 없이 오른발을 당겼다.
결과는 안봐도 뻔했다.
슈우우웅-
철썩-!
도훈의 슈팅은 골문 좌측 상단에 꽂혀 들어갔고, 다시 한 번 올드 트래포드가 들썩였다.
“삐익, 삐이이익-!”
그렇게, 전반은 2대1 맨유의 리드로 종료.
경기는 후반전으로 이어졌다.
도훈에게 내준 두 번째 실점 이후,
리버풀은 수비 전술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반 다이크가 자존심을 버리고 현실을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세계 최고의 수비수는 자신이라는, 자부심 넘치는 그 반 다이크가,
“나 혼자로는, 역부족이야.”
그 말을 내뱉어야만 했다는 것.
반드시 백도훈을 묶어내 보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던 반 다이크였건만.
어찌됐든, 리버풀은 좀 더 협력적으로 백도훈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며 후반전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공격 쪽에서는, 어떻게든 빠르게 동점골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떄문에 여전히 후반도 빠른 템포로 경기는 이어졌다.
“좋은 프리킥 기회입니다, 리버풀. 살라가 준비 합니다.”
“아, 지금은 조금 약했네요. 너무 유효슈팅을 가져가야 한다는 부담에 아쉬운 킥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빨리 동점 골을 터뜨려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까.
좀처럼 열리지 않는 맨유의 골문.
맨유는 소중한 한 점을 잘 지켜내갔다.
반면,
리버풀도 2,3선의 간격을 넓히면서까지 조던 헨더슨과 바이날둠이 내려와 수비에 치중했고, 두텁게 수비 라인을 구축하며 어느 정도 도훈을 비롯한 맨유의 공격을 막아내는 모습.
그러나,
그것만으로 뒤지고 있는 입장인 리버풀로써는 손해.
11명이라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혼자서 3,4명분을 투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도훈은 사기적인 유닛이었다.
‘어렵군.’
자연히 약해질 수밖에 없는 리버풀의 전방 압박도 당연했고.
한숨을 내쉬는 클롭 감독.
결국, 반 다이크를 보유한 리버풀 마저도 그렇게 도훈의 맨유에게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루크 쇼의 발을 맞고 나갑니다. 리버풀의 코너킥.”
후반 40분.
리버풀에게 찾아온 거의 마지막 기회.
이미 공격수처럼 올라와 있던 반 다이크를 비롯해 거의 모든 리버풀 선수들이 맨유의 박스 안으로 집결했다.
그리고, 코너킥을 처리하는 마네.
뻐어어어엉-!
빠르게 감겨 문전으로 향하는 공.
‘이렇게라도..’
그 공이, 힘차게 뛰어오른 반 다이크에게 향하고 있었다.
오늘 유독 책임감을 느끼던 반 다이크.
두 번이나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동료들에게 보답하고, 책임을 다하는 방법은 이것뿐.
파아아앙-!
이마로 강하게 찍어 내리는 반 다이크.
린델로프도, 스몰링도 저지하지 못한 반 다이크의 헤더.
그 헤더는 골문 구석으로 향했고,
경기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 듯 했다.
그러나,
파아아앙-!
“골대!”
골대가 살렸다.
크로스바를 맞고 강하게 튕겨 나오는 공.
머리를 감싸쥐는 리버풀 선수들.
그러나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뻐어어엉-!
튕겨나온 공을 걷어내는 프레드.
그 공은 하프 라인을 향해 떠갔다.
“알리송이..!”
“아, 안돼요! 백도훈이 빨라요!”
코너킥 상황에서.
알리송 키퍼는 최후방 수비수라도 되는 것처럼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게 거의 골대보다 하프라인에 가까운 위치.
만에 하나 지금처럼 공이 다시 튕겨 나온다면, 재차 롱 킥을 때려 박스로 붙이기 위함.
그러나, 낙구 지점이 애매했다.
그리고 도훈이 공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위치 자체는 알리송이 가까울지 몰랐다.
실제로, 결단력있게 달려들었다면 알리송이 먼저 공을 잡았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기세.
무섭게 달려드는 도훈의 모습에.
공을 먼저 잡지 못한다면 골문을 완전히 내주게 된다는 부담때문에.
알리송 키퍼는 뒷걸음질 치다가, 이내 몸을 돌려 골대를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훈이 하프라인에서 가장 먼저 공을 잡았다.
고민은 없었다.
뻐어어어엉-!
잡지도 않고, 한번 땅에 튕긴 공을 그대로 발리 킥으로 때리는 도훈.
슈우우우웅-
그 공은 큰 아치를 그리며 리버풀 진영을 떠갔고,
슈우우웅-
골문을 향해 정확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투우웅-
출렁-!
“이게...”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비어 있는 골문에 도훈이 쐐기를 박아 버리는 순간이었다.
2대2가 될지도 몰랐던 경기.
그러나,
이게 축구.
그리고, 백도훈이 있는 축구였다.
“삐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익-!”
“네, 경기 끝났습니다! 결국, 리버풀도 맨유의 무패 행진을 막지 못했습니다! 최종 스코어 3대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승점 3점을 획득하며 우승을 향한 독주를 이어나갑니다!”
아직 절반도 오지 않은 리그.
이 날, 리버풀의 패배는 단순한 1패의 의미가 아니었다.
우승을 위해 달리는 나머지 구단들에게도 큰 의미였다.
리버풀도, 반 다이크도 결국 백도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고작 10라운드도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른 구단들의 전의를 상실케 하는 승리였다.
ㆍㆍㆍ
“와!”
“사인 좀 해주세요!”
리버풀의 한 축구 교실.
리버풀 유스도 아닌, 정말 어린 아이들이 모여 있는 산하 축구 교실.
그 곳에 구단 행사 차원에서 리버풀 선수 몇몇이 나타났다.
꼬마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선수들.
미래의 리버풀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이 선수들의 눈에는 마냥 귀엽게 보일 뿐.
“저, 수비수에요!”
“저도 꼭 아저씨같은 수비수가 되고 싶어요.”
특히나 아이들에게 인기 폭발인 건, 반 다이크.
집에서 항상 아빠와 함께 축구를 보면 듣는 소리가 반 다이크 잘한다는 소리니, 아이들도 당연히 반 다이크를 좋아할 수밖에.
반 다이크는 그런 아이들에게 기꺼이 레슨을 해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반 다이크에게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아저씨는 어릴 때 존경하던 수비수가 누구였나요?”
“글쎄. 리버풀에서라면 캐러거를 좋아했지.”
“아저씨가 살라보다 달리기가 빠르다는데 진짜에요?”
“내가 조금 더 빠르지. 나보단 고메즈가 빠른데. 어쨌든 내가 두 번째야.”
와아, 하고 터지는 아이들의 탄성.
귀여운 반응에 미소를 짓는 반 다이크.
“그럼 아저씨는 꿈이 뭐에요?”
“꿈? 나는 간단해. 발롱도르. 수비수로서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거야.”
“와, 나돈데! 저도 꿈이 그거에요!”
“그럼, 지금까지 상대해 본 선수 중에 제일 막기 어려웠던 선수는요?”
“...”
한 아이의 질문.
그 순간, 반 다이크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답은 너무나 확실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쉽사리 말할 수가 없었다.
짓밟혀진 그 날의 자존심, 그 기억 때문에.
“...백도훈.”
“아...”
“그 형아, 발롱도르잖아.”
“맞아. 우리 졌었지.”
“야! 그런 얘긴 하지마.”
“하하, 괜찮단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 다이크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발롱도르가 꿈이라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발롱도르가 꿈이라고 했지?”
“네.”
“정말, 정말 열심해 해야 할거다. 나랑 같이 열심히 해보자. 그건, 정말 위대한 꿈이니까.”
“...넵!”
그 날의 패배가 끝은 아니다.
앞으로 수 없이 부딪힐 것이다.
그 녀석과.
그리고 그 땐.
반드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 것이다.
반 다이크는 축구 교실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곧바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 황금 공의 사나이 (4)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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