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 공의 사나이 (3) >
도훈이 페널티 박스와 거리가 있는 중앙 부근에서 공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달려 나와 일찌감치 자리를 잡는 반 다이크.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백도훈이라면 박스까지 접근하는 건 식은 죽 먹기.
그리고 박스 안에서도 짧은 드리블 돌파를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는 실력.
‘반칙도 염두에 둘 수밖에.’
백도훈을 막으려면 반칙도 불사해야 했다.
그래서 먼저 필드로 나온 것.
다른 어떤 공격수들을 상대로도 이렇게 까지 대비를 하지는 않는 반 다이크였다.
오히려 공격수들이 반 다이크를 어떻게 상대할 지 대비하면 했지.
그러나,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반 다이크는 오늘 백도훈과의 대결에 상당히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백도훈은 경기 전에 봤듯, 황금 공의 주인, 발롱도르 위너였다.
그리고 그 발롱도르는, 반 다이크의 축구 인생의 목표이기도 하고.
칸나바로 이후 최초의 수비수 발롱도르.
그것이 반 다이크의 목표라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그럴 자격이 있으려면, 발롱도르 위너를 막아낼 수 있어야 하는 게 당연지사.
반 다이크는 반드시 백도훈을 막아내고 싶었다.
‘단단하다.’
그런 반 다이크와 마주서는 도훈.
처음으로 마주선 감상은, 단단하다는 느낌이었다.
193센티미터에, 92킬로그램.
떡 벌어진 어깨와, 잘 잡혀져 있는 바디 밸런스.
그리고 위압감을 주는 외모와 눈빛까지.
마치 부족 최고의 전사같은 느낌을 주는 반 다이크.
반 다이크는 자세를 바짝 낮추며 도훈의 발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 때밖에 없어 보이는데요.”
“분석을 할 수록 구멍이 좁아지는 느낌이야..”
오늘 경기를 준비하면서.
코치진과 함께 백도훈에 대해 면밀히 분석했던 반 다이크.
그러나 분석을 하면 할수록 드러난 건 백도훈의 괴물같은 실력뿐.
그래도, 그나마 유의미한 데이터를 찾자면 하나 정도를 꼽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첫 드리블.
그래봐야 남들의 절반 수준도 안되지만, 그나마 백도훈이 가장 공을 많이 빼앗긴 건 바로 시합 시작 후 첫 드리블이었다.
백도훈은 항상 처음 마주하는 상대에게 탐색전을 펼치듯 1대1을 거는 습성이 있었다.
마치 수비수의 패턴과 반응을 파악하려는 듯, 한 번에 빠른 돌파를 하기보단 이리 저리 흔드는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고.
때문에 이 때가.
첫 대결을 하는 이 때가 백도훈의 공을 빼앗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였다.
‘동료들의 사기를 높인다.’
자신과 백도훈의 대결은 상징적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반 다이크였다.
백도훈은 맨유 공격의 핵이고, 자신은 리버풀 수비의 핵이니까.
그 둘간의 대결에서 승리한 쪽의 기세가 확 살아날 것은 당연한 일.
이 뒤부턴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막아낸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신뢰를 불어 넣는다.
반 다이크는 그러한 생각으로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도훈의 발 끝을 노려 보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었다.
‘탐색전은 필요 없어.’
반 다이크는, 도훈이 동굴에 들어갈 시기에 이미 현역 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인 즉,
도훈은 이미 반 다이크로 빙의한 스승님과 대련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고.
그러니 탐색전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에이, 그래도 현역 최고라고 쳐줄 순 있어도, 말디니급은 아니지.”
“안될 게 뭐 있어? 솔직히 완벽하잖아. 난 반 다이크 정도면 충분히 역대급이라고 봐.”
중요한 건 순서였다.
아래서부터 차근히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갔던 도훈.
그 때 스승님은 반 다이크의 순서를 어디다 두었을까.
말디니, 네스타의 앞? 뒤?
‘마지막은 베켄바우어였고..’
동굴에서의 마지막 대련 상대는 베켄바우어였다.
그러나 그는 보너스 스테이지같은 느낌.
스승님이 상정했던 실질적인 마지막 상대는 프랑코 바레시였다.
그 전이 파울로 말디니였고.
그 전이 네스타, 칸나바로였다.
반 다이크는 그 다음이었다.
대단한 선수임에는 틀림 없었다.
동굴에서 나온 뒤 1년 반의 시간 동안 그 실력은 더욱 향상되었을 수도 있고.
하지만.
“달려 듭니다!”
도훈은 반 다이크가 자신을 쉽게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령신보.’
파팡-!
“...!?”
반 다이크의 시야에서 공이 사라졌다.
그리고 유령처럼 자신의 옆을 지나는 백도훈.
‘탐색전을 하지 않아?’
당황하는 반 다이크.
첫 드리블부터 주력 기술인 라 크로케타를?
분석 때와 전혀 달랐다.
촤아악-!
그러나, 당황한 것 치고는 반 다이크의 반응도 빨랐다.
자신의 옆을 지나치는 도훈을 향해 몸을 돌린 반 다이크는 이미 어깨를 집어 넣기엔 늦었다는 걸 알았기에 팔을 뻗었다.
뒤에서 잡아끄는 그 손길에 도훈은 달려가다 멈출 수밖에 없었고,
“삐이익-!”
파울 선언이 되었다.
“후.”
한숨을 내쉬는 반 다이크.
확실히 박스 안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박스 안이었다면 이렇게 저지하지도 못했을 것.
“나이스, 버질.”
“괜찮아, 좋아!”
어찌됐든 파울로라도 영리하게 끊어낸 반 다이크에게 나이스를 외치는 동료들.
그러나 반 다이크의 표정은 굳어졌다.
반칙도 불사할 생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첫 대결에선 깔끔하게 공을 빼앗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첫 대결부터 이 정도라면,
앞으로는 더욱 힘들어질 게 분명할 것이었다.
프리킥으로 이어지는 경기.
“거리는 28미터. 백도훈이 준비합니다.”
반 다이크가 박스 밖으로 나오는 순간 직감한 도훈.
반칙으로라도 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셈.
하지만, 도훈에게도 대처법은 있었다.
함부로 반칙을 범할 수 없도록, 간담을 서늘케 해주면 될 일.
“삐이익-!”
타타탓-
뻐어어어엉-!
꽤 거리가 있는 위치.
그러나 도훈은 거침없이 달려들어 강하게 직접 프리킥을 가져갔다.
도훈의 장기.
“무회전!”
슈우우웅-
부우우웅-!
벽을 넘어선 이후부터 뚝 떨어지는 공.
“큭...!”
파아아앙-!
슈팅은 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알리송 키퍼가 어찌저찌 쳐내기도 했고.
그러나 매우 불안했다.
정면으로 날아오면서도 몇 번이나 이리저리 움직였으니까.
그리고 끝이 아니었다.
세컨 볼을 향해 쇄도하는 맨유 선수들.
촤아아아-
파아앙-!
“반 다이크가 걷어 냅니다! 코너킥!”
그래도 그나마 알리송이 한 번만 막아준다면, 리버풀로서도 세컨볼 집중력은 살아 있었다.
특히, 백도훈을 상대하지 않는 반 다이크는 맨유의 그 누구에게도 공을 내주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당연히 반칙 이후의 프리킥을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닌 리버풀이었다.
“상당히 위협적인 프리킥이었어요. 저 프리킥 때문에 가까운 위치에서의 반칙 또한 위험합니다. 백도훈의 드리블을 막을 수 있는 게 반칙뿐이라고 하더라도요. 참 그래서 막기 어려운 거죠.”
그저, 최대한 벽으로 길을 막아두고 알리송의 선방을 바랄 뿐이긴 하지만.
“코너킥으로 이어집니다.”
“후안 마타가 처리합니다.”
마타의 코너킥.
그리고 박스에서 반 다이크와 자리 싸움을 벌이는 도훈.
‘강해.’
힘이 느껴지는 반 다이크.
박스 중앙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는 반 다이크를 밀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도훈이 반 다이크를 맡아주고 있는 것만으로,
뻐어어엉-!
슈우우웅-
루카쿠에게 한결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것이었다.
파아아앙-!
“루카쿠!”
슈우우웅-
파아앙-!
“알리송이 잡아 냅니다!”
조 고메즈를 이겨내고 이마에 공을 가져다 대는 루카쿠.
그러나, 다시 한 번 알리송의 선방.
과연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키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알리송.
“레드 더비가 싱겁게 기울어질 리는 없죠.”
“리버풀의 차례입니다.”
한 차례 폭풍을 막아내고, 최후방부터 빌드업을 시작하는 리버풀.
공격의 시작도 역시나 반 다이크로부터.
뻐어어엉-!
사람을 향해가 아니라, 맨유의 최후방과 3선 사이 공간으로 패스를 넣는 반 다이크.
그리고, 리버풀의 세 명의 공격수가 동시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들어갔다.
그들이 얼마나 훈련을 해온 것인 지 느껴지는 장면.
파아앙-
공은 피르미누가 잡았고, 곧바로 사이드로 패스를 찔렀다.
공을 이어받는 사디오 마네.
마네는 디오고 달롯을 앞에 두고 상체를 휘젓다가, 박스 깊숙한 곳으로 공간 패스를 툭 넣었다.
“빠릅니다!”
그 패스를 향해 스몰링의 뒤를 타고 들어가는 모하메드 살라.
당연히 스몰링이 커트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패스를 순간 속도로 이겨내며 공을 잡는 살라.
그러나 골 라인 바로 앞이라 더 이상 파고들 틈이 없는 상황.
살라는 스몰링을 등지고 동료를 찾으며 뒤 쪽으로 공을 몰고 움직였다.
그러다,
스르륵-
순간적으로 다시 몸을 돌리며 공을 접는 살라.
그 속도에 삐끗하는 스몰링.
뻐어어엉-!
살라는 곧바로 오른발 슈팅을 때렸다.
그러나,
슈우우웅-
철썩-!
“옆그물!”
옆그물을 때리는 살라의 슈팅.
살라는 손뼉을 치며 아쉬워 했다.
“오른발에 걸린 게 맨유로써는 다행이네요.”
“맨유 수비는 살라의 왼발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을 겁니다. 방금의 슈팅이 그 이유죠. 왼발만큼은 더할 나위 없는 살라지만, 오른발은 솔직히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어요.”
왼발이 아닌 오른발 슈팅이었기에 조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슈팅.
살라의 오른발에 아쉬움이 남는 리버풀의 공격이었다.
“반면 리버풀은 그럴 수가 없죠.”
다시 반격을 올라가는 맨유.
시소 게임처럼 상당히 빠른 템포.
리버풀 선수들은 맨유가 쉽게 공을 전진시키지 못하도록 강하게 압박을 밀어 넣고 있었다.
역시나 매 번 격렬한 시합을 펼치는 두 팀 다운 경기.
“프레드, 어렵게 백도훈에게.”
파아앙-
다시금 2선의 위치에서 공을 잡고 돌아서는 도훈.
이번에도 반 다이크는 도훈을 쫓아 나왔다.
반 다이크는 도훈을 막아서며, 전술대로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료들은 강한 압박으로 상대가 천천히 공을 잡고 있을 수 없게 만들어 주고 있었고, 자연히 키핑이 되는 백도훈이 낮은 위치로 내려가며 공을 잡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지금의 위치는, 처음으로 마주쳤던 방금보다 더 낮은 위치.
이 위치라면 혹시나 또 다시 파울을 범하게 되더라도 부담이 없다.
그러나,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아주 찰나의 순간 이후에, 반 다이크는 스스로를 욕했다.
백도훈과 상대하는 건,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잠깐이나마 방심을 해버리고 말았으니까.
‘이게 뭐야?’
왼쪽으로 치고 나가려는 도훈을 향해 어깨를 집어넣은 반 다이크.
그러나 그 곳엔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다시 돌리자, 이미 자신을 지나쳐 박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백도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뿐.
반칙으로 막는다는 생각조차, 방심이었다.
“반 다이크가!”
“완전히 속았습니다!”
탄성이 터져 나오는 관중석.
맨유 팬들에게 리버풀 선수 중 가장 싫은 선수를 꼽아보라면, 아마 대부분은 반 다이크를 꼽을 것이었다.
왜?
가장 잘하니까.
라이벌 팀의 팬들이 싫어한다는 건, 그만큼 인정한다는 뜻.
리버풀 팬들이 도훈을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 어느 공격수 앞에서도 반 다이크가 완벽히 돌파를 허용한 걸 본 적이 없는 맨유 팬들이었다.
그러나,
“백도훈이 못 뚫는 것도 본 적 없어!”
“반 다이크가 막을 수 있었으면 발롱도르를 반 다이크가 받았겠지!”
도훈이 누군가를 뚫지 못하는 것 역시도 보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반 다이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단 두 번째만에, 백도훈은 발끝을 건드릴 수조차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으니.
“반 다이크가 없습니다!”
루카쿠와 묶여 있는 조 고메즈.
그리고 비어 있는 반 다이크의 자리.
그 자리를 향해 로버트슨이 오른쪽의 마샬을 버리고 채워 들어왔다.
어쩔 수 없는 선택.
그리고 당연한 선택.
도훈은 얼마든지 순식간에 그 빈 자리를 뚫고 지나칠 수 있는 선수였고, 실제로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도훈은 로버트슨이 앞으로는 좀 더 고민하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다.
공격은 이번만 하는 게 아니니까.
이후 이와 같은 상황이 다시 한번 펼쳐진다면, 그 땐 이렇게 고민 없이 중앙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파아앙-!
오른발 바깥으로 패스를 찌르는 도훈.
그 패스는 쇄도해 들어가는 마샬의 발 앞에 정확히 흘러갔고,
툭-
뻐어어어엉-!
딱 좋게 차려진 밥상에 마샬이 숟가락을 얹었다.
촤아아아아-
파 포스트를 향해 낮게 깔려 들어가는 마샬의 슈팅.
아무리 알리송 키퍼라고 해도, 그렇게 노 마크 찬스에서 때리는 슈팅을 막기란 역부족.
철썩-!
“와아아아아앗-!”
도훈의 완벽한 어시스트에 이은 마샬의 선제 득점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 황금 공의 사나이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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