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90화 (90/173)
  • < 알면 다쳐 (2) >

    “우연히 만난 분이셨어. 축구에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이었지.”

    “성함이 어떻게 되셨어요?”

    “그게 궁금하니? 왜?”

    “사실 저희 엄마가 만나면 꼭 물어 보랬어요.. 요즘 한국에서 난리거든요.”

    “한국에서?”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9월 있었던 피파 베스트 어워즈.

    올 해의 선수상을 받고 했던 도훈의 수상 소감이 한국에서 화제였다는 것.

    그 때 스승님에 감사한다고 짧게 언급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스승님이라는 사람이 누구냐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안 그래도 도훈 때문에 일고 있는 축구 붐.

    남자 아이들 장래희망 1순위가 축구선수가 된 것은 당연한 정도였고, 그에 따라 축구 교실도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면서 당연히 백도훈이라는 최고의 선수가 축구를 배운 그 곳이 어디고, 그 스승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들 궁금해하는 건 당연했을 것.

    성운의 부모님도 성운이 맨유 유스에 간다고 했을 때, 혹시나 도훈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꼭 물어보라고 하셨단다.

    그 스승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어디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어디 팀의 코치라도 하고 있는건지.

    “하하..”

    도훈은 웃으며 성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포지션이 어떻게 되니?”

    “저, 여기 와서는 왼쪽 포워드로 배우고 있어요.”

    “그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많겠네. 같이 훈련할까?”

    “어.. 괜찮으시면.. 대박이죠.”

    짧은 시간이지만, 도훈은 원 포인트 레슨식으로 성운과 함께 훈련했다.

    “그렇지. 잘 하네.”

    “감사합니다.”

    어려워하면서도 곧잘 따라하는 성운이 기특한 도훈.

    제자까진 아니지만 후배가 간단한 코칭 하나로 훨씬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자, 도훈은 왜 자신이 동굴에 빠져 들어왔을 때 스승님이 그렇게 반가워했던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노하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누군가를 가르치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때문에 이 순간, 도훈은 먼 훗날 은퇴를 하게 된다면 후진 양성을 위해 힘써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멀리 갈 필요 없이 당장 백도훈의 축구 교실같은 걸 세워 유망주들을 키워도 좋고.

    아직 도훈도 매우 어린 나이기에, 어쩌면 10년 뒤 백도훈 축구교실 출신의 후배와 같이 뛰는 날도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정말 뿌듯하고 재밌는 일이지 않을까.

    “여기 좋은 스승님들 많이 계셔. 잘 배우고, 열심히 해봐. 생활하는데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지 형한테 연락해도 돼. 도와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도와줄게.”

    “넵, 감사합니다. 정말 영광이에요. 저, 사진 한 번만..”

    “그럴까?”

    얼른 핸드폰을 꺼내 도훈과 사진을 남기는 성운.

    “와, 바로 프사할게요.”

    “열심히 해. 너, 정말 큰 재능을 가졌어. 잘할거야.”

    뜻 깊은 만남을 끝내고 돌아가는 도훈.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성운의 눈에는 선망이 가득했다.

    ‘다른 코치님들 보다 훨씬 좋다..’

    도훈이 떠난 뒤, 도훈이 가르쳐줬던 노하우들을 상기하며 혼자 훈련해보는 성운.

    짧은 시간이 갈증 날 정도로 더, 더 배우고 싶다.

    성운은 도훈의 제자가 되고 싶었다.

    비록 엄마가 꼭 물어 보라던 그 스승님의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게 누구든 도훈에게 직접 배우는 것과 비할 바는 못될 것이 분명했다.

    ‘도훈이 형보다 잘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언젠간 그 사람이 자신이 되길 꿈꾸는 소년 한성운이었다.

    ㆍㆍㆍ

    프리미어리그 득점 순위

    1위 백도훈 13골

    2위 모하메드 살라 7골

    3위 로베르토 피르미누 6골

    4위 해리 케인 6골

    .

    .

    .

    6경기 13골.

    경기당 득점이 2가 넘는 페이스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는 도훈.

    역시나 무대가 바뀌어도 도훈의 득점포는 지칠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10월 첫째 주.

    도훈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 1년여가 남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을 1위로 통과한 뒤, 이제 1년 동안 담금질에 들어가야 할 대표팀에 소집되었기 때문.

    리그, 컵, 챔피언스 리그까지.

    이미 유럽에서만 소화할 일정이 산더미인 도훈에게 대표팀 일정까지 더해진다면 다소 무리라는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도훈 없는 대표팀을 상상할 수 없는 것도 맞았다.

    도훈의 국적이 브라질이나 독일, 프랑스였다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어느 나라의 국가대표팀이라도, 도훈을 부르지 않을 수는 없을 것.

    “뭐 일 처리는 깔끔하게 된 거지?”

    “아주 투명하게 제대로 했지.”

    한국에 돌아와, 간만에 만난 임찬주와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도훈.

    둘이 도착한 곳은 펜스가 둘러쳐진 공사 현장이었다.

    양 손 가득 음료수와 먹을 것들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 도훈.

    바쁜 일정에 짬을 내 가장 먼저 도훈이 향한 곳은 역시나 아버지의 공사 현장이었다.

    “아빠.”

    “어, 왔구나. 뭘 또 이렇게 들고 오냐.”

    “그냥 음료수요. 쉬엄쉬엄 하시라고.”

    “아이고! 도련님 오셨구먼!”

    도훈이 얼굴을 내비치자, 일도 내팽개치고 한걸음에 모이는 인부들.

    인부들은 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도훈을 반갑게 맞이했다.

    “손은 왜 잡어, 임마. 귀한 손에 먼지 묻게.”

    “아이, 이 때 아니면 언제 잡아 봐. 아이고, 체격이 훤칠한게 멋드러지는구마.”

    “그라게. 티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크네. 모델해도 되겄어.”

    “하, 하하..”

    솔직히 말하면, 지난 날 동안 아버지와 몇 년을 현장에서 구른 이들은 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도훈이 아버지에게 사무소를 차려주고, 이들을 정식으로 고용해 이제 따박 따박 월급을 받으며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안정된 삶을 살고 있으니 이들이 도훈에게 고마워하는 건 당연했다.

    어쩌면, 아버지보다도 도훈을 사랑하는 게 직원들이었다.

    “야, 야. 니네 먹으라고 사온 걸 왜 애를 줘.”

    “네, 네. 드세요. 저는 괜찮아요.”

    “아이고, 염치없이.”

    “쉬엄쉬엄 하세요.”

    “아, 그래. 도훈이 니가 발주자니까 브리핑 한 번 싹 훑어야지. 일로 와봐라.”

    이제 막 땅을 파내고 고르고 있는 시점.

    아버지는 도훈을 데리고 현장 이 곳 저 곳을 살피며 여기엔 어떤 게 들어 갈거다, 골조는 어떤 걸 써서 어떻게 될거다, 방은 몇 개고 어디로 문이 날거다 등등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솔직히 도훈으로서는 아버지가 사용하는 용어 자체가 워낙 현장 용어다 보니 알아 듣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공들여 설명하시는 아버지의 모습.

    굉장히 열정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도훈은 그저 마음이 뿌듯할 뿐이었다.

    “예, 그럼 가볼게요.”

    “조심히 가라. 이번에 거 경기 하는 거, 다치지 말고.”

    “네.”

    “요령껏 해. 그 뭐야 상대 애들이랑 기싸움 같은 거 하지말고. 반칙 당하면 적당히 넘어져 주고.”

    “알았어요.”

    거의 코치가 다되신 아버지의 모습에 웃고 마는 도훈.

    짧은 방문을 뒤로 하고 차에 오르는 길.

    워낙 바빠진 탓에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낼 순 없지만.

    이런 거였다.

    악기로, 독기로 수련을 거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자, 그 궁극적인 목표.

    모두의 행복.

    축구계에 이름을 알리고, 여기까지 차근차근 올라 왔듯이.

    행복의 목표도 차근차근 올라가고 있었다.

    ‘잘 하고 있다, 백도훈.’

    아버지의 손으로 지어지고 있는 저 건물처럼.

    10월 6일, 10월 9일.

    각각 상암과 천안 운동장에서 치뤄진 두 번의 평가전.

    월드컵에 나갈 선수들을 가려내는 기간인 만큼 모두 진지한 마음으로 임한 평가전의 상대는 온두라스와 사우디 아라비아였다.

    이강인, 손흥민, 그리고 도훈 등의 유럽파들을 모두 소집해 정예 멤버가 가동된 대한민국은 그 두 경기에서 각각 3대1, 4대0 압승을 거두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물론 절반 이상은 도훈의 활약 덕분이었다.

    도훈은 두 경기에서 각각 77분, 83분을 뛰며 총 4골 3도움을 기록해 7골에 모두 관여하는 모습을 보여 역시나 대표팀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자원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최고의 선수네요.”

    “세계 최고의 선수가 이렇게 조국에서 펼쳐지는 평가전에 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저희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도훈을 보러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붉은 옷의 관중들.

    국민들이 도훈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클럽에서와 대표팀에서의 활약상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일 것이었다.

    팀 동료들의 수준, 잔디 등의 환경.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변명을 하지도 않고.

    그저 실력 하나로 모두가 아는 그 모습을 눈앞에서 그대로 보여준 도훈.

    “이번 월드컵이 기대되는 이유죠.”

    “지난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세계 1위 독일을 잡는 파란을 일으키고도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만, 이번 월드컵이야 말로 12년만에 16강을 노릴 적기라고 봅니다.”

    사상 처음으로 겨울에 펼쳐지는 카타르 월드컵.

    내년 11월이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ㆍㆍㆍ

    A매치 주간을 끝내고 돌아온 맨체스터.

    지난 6라운드, 맨더비를 승리로 장식했던 맨유는 홈으로 스완지 시티를 불러 들였다.

    챔피언십과 프리미어를 왔다 갔다하고 있는 스완지는 올 시즌도 6경기 1승 2무 3패로 불안한 입장.

    나겔스만 감독은 대표팀에 차출되었던 선수들에게 부분적으로 휴식을 부여했다.

    특히나 가장 비행거리가 길었던 도훈은 벤치에 앉아 경기를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맨유가 전반 4분 터진 에쉴리 영의 골을 시작으로, 이미 전반이 끝날 무렵 3대0으로 앞서가며 도훈이 출격할 필요는 없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한 주 휴식을 취한 도훈은 10월 넷째 주, 다시 돌아온 챔피언스 리그 주간에 다시 득점포 가동을 시작했다.

    터키 리그의 전통 강호 갈라타사라이와의 홈 경기.

    한주 전 휴식을 치뤘던 멤버들과 경기에 나선 도훈은 프리미어 리그 팬들의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가도록 만들어 주었다.

    “암, 그렇지. 터키 리그팀 따위가 상대가 될 리 없지.”

    “저 팀은 유로파에나 어울려 보이는구만. 첼시처럼 말이야.”

    사실 프리미어리그와 터키 리그의 차이라기보단, 그저 도훈이 있냐 없냐의 차이인 듯 싶었지만 어쨌든.

    맨유가 더 강한 팀인 것은 맞았고, 현재 프리미어리그 1위팀 다운 모습으로 맨유는 갈라타사라이를 4대0으로 압살하는 그 날의 경기였다.

    그리고 11월로 접어드는 프리미어 리그.

    리그 8라운드이자 11월 맨유의 첫번째 상대는 토트넘 핫스퍼였다.

    “바빠서 미리 연락을 못했네.”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질 경기.

    도훈은 바쁜 와중에, 뒤늦게나마 예전의 약속을 떠올렸다.

    런던에 꼭 와보고 싶다던 로레나와, 런던에서 경기를 할 때 초청하겠다던 자신의 약속.

    이탈리아를 떠나온지 벌써 어언 4개월여.

    솔직히 기억이나할까.

    어딜가나 사랑받을만한 그 여자아이가 자신과의 약속을.

    도훈은 티켓을 보낼까하다, 관뒀다.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 때였다.

    “여, 번호는 안바뀌었네?”

    “뭐야. 조르지오냐.”

    마티니에게서 온 전화.

    간단히 서로 안부를 묻는 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던 마티니는, 전화를 건 목적을 꺼냈다.

    “동생이 전화 좀 해보라고 해서.”

    “로레나가? 왜?”

    “자기랑 한 약속 안잊었냐고 물어 보던데. 뭔 약속 말하는 거냐?”

    “아...”

    도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다. 그렇게 전할게.”

    “고생해라.”

    전화를 끊은 뒤, 미소를 짓는 도훈.

    이번 토트넘 전엔 간만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올 듯 했다.

    ㆍㆍㆍ

    “안녕하십니까, 웸블리 스타디움입니다. 오늘은 리그 선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4위 토트넘 핫스퍼의 리그 8라운드 경기를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거대한 웸블리 스타디움이 관중으로 가득.

    특히나 오늘은, 관중석 곳곳에서 유난히 태극기와 한글로 된 응원문구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백도훈과 손흥민.

    현 한국 축구의 쌍두마차인 두 선수가 오늘 상대팀으로 격돌하기 때문.

    그러나 단순히 두 한국인 선수의 격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프리미어 리그 최고 선수들의 격돌로 주목을 받고 있는 오늘의 경기였다.

    “진짜 많이 오셨네..”

    “멋지게 해보자.”

    경기 전, 몸을 풀며 인사를 나눈 도훈과 손흥민.

    자신들을 보러 와준 한국 관중들을 위해 멋진 경기를 펼칠 것을 다짐하는 둘.

    또한 도훈은,

    ‘저기 어디쯤일텐데.’

    자신이 로레나에게 구해준 티켓의 좌석을 살피며 몸을 풀었다.

    워낙 사람이 많아 잘 보이지 않는 얼굴.

    그 때,

    “아.”

    도훈은 관중석에서 일어나 크게 손을 흔드는 금발의 미녀를 발견하고 입을 가리며 미소를 지었다.

    마음같아선 마주 손을 흔들어주고 싶지만, 얼마 전 아스날의 토레이라에게 경기 중 한 마디했던 것이 그대로 방송에 나가 가십거리가 되었던지라 그라운드 위에서의 행동을 조심하고 있는 도훈은 한 번 시선을 주곤 몸을 푸는데에만 집중했다.

    어쨌든, 오늘은 여러모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경기.

    맨유와 토트넘의 리그 8라운드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알면 다쳐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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