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89화 (89/173)
  • < 알면 다쳐 (1) >

    “와아아아앗-!”

    원정석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소리.

    “무서운 스피드에 이은 득점! 백도훈이 환상적인 역습을 환상적인 마무리로 득점으로 연결 시킵니다!”

    역습이 나오기 힘든 경기였다.

    애초에 공의 소유권은 맨유에게 있던 상황이었고.

    하지만, 도훈은 일부러 상대 선수들을 높게 끌어 들였고, 탈압박을 해내며 멋진 패스로 순식간에 상황을 역습인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압도적인 주력과, 환상적인 마무리 슈팅으로 결국 두 번째 득점까지 만들어 내는 도훈.

    이게 도훈이었다.

    “춤 한 번 추자.”

    도훈에게 달려들어 셀레브레이션을 펼치는 맨유 선수들.

    한참이나 기쁨을 표한 맨유 선수들은, 포그바를 기점으로 댄스까지 선보이며 맨유팬들의 환호와 맨시티팬들의 야유를 이끌어 냈다.

    “그만 깝쭉대라, 새끼야!”

    “신성한 곳에서 어디 저 따위 춤을...!”

    점점 경기장의 분위기는 맨체스터 더비답게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한 번에 두 선수를 투입합니다. 귄도안과 베르나르도 실바가 나오고요,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리로이 사네가 들어 갑니다.”

    “결국 승부수를 띄웁니다, 맨시티.”

    후반 15분, 스코어는 2대1.

    30분이 남은 시점에서 공격적인 변화로 승부수를 띄우는 과르디올라 감독.

    중요한 건 승점 1점이냐 3점이냐지, 점수 차이가 아니었다.

    도저히 질 것 같지 않은 최근 맨유의 기세라면,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건 자신들뿐.

    우승이 하고 싶다면 이겨야 했다.

    “동점골을 위해 분주히 움직입니다.”

    들어가자마자 경기의 템포를 바꿔놓는 리로이 사네.

    왼쪽 윙 포워드로 투입된 사네는 공을 받자 마자 빠르게 움직이며 사이드를 흔들기 시작했다.

    중앙 미드필더처럼 뛰었던 베르나르도 실바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

    그런 실바를 상대하던 풀백 달롯은 사네의 빠른 스피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

    “돌파합니다!”

    “역시 빠르죠, 사네!”

    달롯을 제쳐내고 왼쪽 사이드를 깊게 파고드는 사네.

    그리고 중앙에는 아구에로가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고 불리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골잡이, 아구에로.

    파아앙-!

    그런 아구에로를 향해 땅볼 크로스를 올리는 사네.

    골키퍼와 수비 사이를 빠르게 찌르는 좋은 크로스.

    그 공을 향해 슬라이딩하며 발을 뻗는 아구에로.

    파아앙-!

    “크리스 스몰링!”

    그러나 한 발 빨랐던 건 스몰링이었다.

    먼저 몸을 날리며 공을 골 라인 밖으로 걷어내는 스몰링.

    “좋아!”

    “나이스!”

    좋은 수비에 선수들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포효했다.

    맨시티 선수들도 좋았던 시도에 박수를 치며 파이팅을 돋우었고, 다비드 실바는 빠르게 공을 주워 코너 플래그로 향했다.

    이에 함성을 보내며 선수들을 독려하는 맨시티 팬들.

    “자, 경기는 이제 진짜 시작인 것 같습니다.”

    “이래야 맨더비죠.”

    확실히 빨라진 경기 템포와, 뜨거워진 경기장의 분위기.

    ‘더비는 이래야 제 맛이지.’

    이제야 재밌어지는 경기에 도훈도 고개를 끄덕이며 박스 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리드를 잡고 있는 건 본인들.

    이런 순간에 경기의 분위기가 뜨거워진다는 건, 재밌긴 해도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부턴 재미가 없어야 했다.

    빠르게 주변 선수들의 동향을 살피는 도훈.

    도훈이 마킹해야 하는 건 스털링.

    그러나 헤더에 강점이 없는 스털링은 사실상 박스 안에서 머릿수를 채우는 시선분산용.

    도훈은 언제든지 다른 선수를 향해 뛰어들 준비를 하며 코너킥을 기다렸다.

    이제부터는 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해야 하는 상황.

    수비를 해야한다면,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최종 수비수라고 생각하고 뛰어야 했다.

    뻐어어어엉-!

    문전으로 날카롭게 올라오는 실바의 코너킥.

    역시나 공은 공격에 가담한 라포르테와 존 스톤스 쪽으로 향했다.

    다른 선수들의 높이가 그다지 경쟁력있지 않기에, 비교적 쉽게 예상할 수 있었던 방향.

    맨유도 스몰링과 에릭 바이가 그 둘을 마크하고 있었다.

    그런데,

    “크윽..!”

    라포르테와 몸싸움을 펼치며 공을 향해 뛰어 오르려던 바이가 순간 디딤발을 미끌리고 말았다.

    발목에서 느껴지는 통증.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바이는 뛰어오를 수 없었고,

    파아아앙-!

    거의 프리 헤더로 이마에 갖다 맞히는 라포르테.

    강하게 찍어내린 그 헤더는, 픽포드 키퍼도 꼼짝할 수 없는 골문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두가 동점골이라고 직감한 그 순간.

    뻐어어어엉-!

    라포르테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거, 걷어 냅니다!”

    “백도훈!”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던 공을 시저스 킥으로 걷어내는 도훈.

    모든 맨시티 선수들과 팬들, 그리고 과르디올라 감독이 머리를 감싸 쥐는 순간.

    완전히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걸?

    “나이스!”

    “플레이!”

    멋진 슈퍼 세이브에 도훈에게 나이스를 외치는 동료들.

    그러나 도훈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세우며 인플레이 상황임을 동료들에게 상기시켰다.

    다행이었다.

    집중하고 있었기에, 에릭 바이의 발이 미끌리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랬기 때문에 라포르테가 헤더를 따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고, 픽포드 키퍼가 커버할 수 없는 곳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땅을 치는 맨시티.

    “백도훈 선수가 골을 넣는 것도 모자라, 한 골을 막아냈네요!”

    “거기서 그렇게 걷어내는 것도 정말 대단하네요. 쉬운 동작이 아니었을텐데.”

    위급한 상황에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선풍각.

    도훈의 발이 동점을 막아내는 순간이었다.

    뜨거워지던 경기장의 분위기가 순간 식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사네, 아! 달롯이 빼앗아 냅니다. 바로 포그바에게.”

    “포그바, 좋은 드리블! 성큼성큼 끌고 올라 갑니다!”

    맨시티의 공격 시도가 늘어나면서.

    맨시티에게 좋은 장면도 늘어나고 있었지만, 맨유에게 공이 넘어가는 장면도 자연히 늘어나고 있었다.

    파아앙-

    도훈에게 패스를 연결하는 포그바.

    공을 건네받은 도훈은, 공을 소유하며 경기 템포를 조절했다.

    이제 급한 건 맨시티.

    전반과 상황은 반대였다.

    마음먹고 공을 소유한다면야 맨유도 못할 게 없었다.

    도훈이 있는 맨유라면.

    “뒤 쪽으로 공을 돌립니다.”

    “급할 게 없는거죠.”

    역습인 듯한 상황에서 도훈이 공을 잡자 부리나케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아가던 맨시티 선수들.

    그러나 도훈이 뒤로 접자 다시 압박을 위해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벌써 후반 30분이 지나가는 시점.

    슬슬 체력적인 부담이 올라오고 있는 시점이었다.

    도훈의 두 번째 골 이후, 한 발 더 뛰고 있는 건 맨시티쪽이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으니.

    “백도훈, 여유있게 키핑합니다.”

    “수비수들 사이에서도 공을 쉽게 지켜내는 백도훈인데, 저렇게 급한 압박으로는 빼앗아내기 힘들죠.”

    해설자의 말 대로 위험지역에서도 빼앗아내기 힘든 게 도훈의 공.

    하물며 공격수들의 압박은 도훈에게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어 보였다.

    리로이 사네와 다비드 실바가 도훈에게 달려들어 보지만, 도훈은 여유있게 빙글빙글 돌며 그 압박을 유린했다.

    전반과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

    도훈은 절대로 상대에게 공을 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완벽하게.

    기회조차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저들이 그러려 했던 것처럼.

    뻐어어엉-!

    “반대편으로 전환 합니다.”

    “공간이 많이 비어 있어요.”

    한참이나 상대 선수들을 이끌어내다, 반대편 사이드로 패스를 전환시키는 도훈.

    뜨거워지는 경기장과 더비의 분위기는, 앞서가고 있는 맨유로써 득이될 게 전혀 없었다.

    도훈은 그걸 알고 있었고, 찬물을 확 끼얹는 듯한 플레이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맨시티는 미칠 노릇이었다.

    “어느 덧 추가시간에 돌입합니다.”

    “급하디 급한 맨시티인데, 이렇다 할 공격 기회도 잡지 못하고 있어요. 교체 투입된 아구에로는 보이지 않은 지 20분이 되어가는 것 같네요.”

    자신들이 했던 플레이에 그대로 당한 채 황금같은 시간을 날려 버리는 맨시티.

    “그러니까 진작에..”

    이렇게 되니 전반전 동안 그 길었던 45분이 이젠 스스로 날려버린 셈이 되는 맨시티였다.

    결국,

    “삐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과르디올라의 완벽주의는, 그 스스로의 목을 옭아매게 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결과적으로.

    “경기 끝났습니다! 2대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승리! 맨유가 맨더비에서 승리하며, 맨시티에게 시즌 첫 패배를 선물합니다!”

    “오늘 경기, 과르디올라 감독이 정말 많은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였는데요. 그런 과르디올라의 치밀함을 백도훈이 무너뜨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전술이란 것의 한계죠. 결국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니까요.”

    아쉬운 패배로 경기를 마치고.

    그라운드로 들어와 선수들을 독려하는 과르디올라 감독.

    선수들은 자신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해줬고, 좋은 플레이를 펼쳐 보였다.

    자신의 선수들 모두와 포옹을 마친 과르디올라는,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도훈에게 다가왔다.

    “멋졌다, 소년.”

    단지, 이 말도 안되는 한 명의 플레이어 때문에 경기의 승패가 갈렸을 뿐.

    도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과르디올라 감독.

    과르디올라 감독은 오늘 느낄 수 있었다.

    과거 유럽을 제패했던 바르셀로나 왕조시절.

    자신의 팀과 메시를 상대했던 상대팀 감독이 어떤 심정이었을 지를.

    “오늘도 이겼다!”

    맨유가 무패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ㆍㆍㆍ

    “여기가 부지여? 아따, 땅 한 번 넓구마이.”

    “넓지 뭐. 건물이 한 50평 들어설 거니까.”

    “대단혀. 성공혔어, 백형. 아니, 백 사장님.”

    “내가 뭘 했다고.”

    “자식 농사 대박쳤잖여. 그게 와따지. 아주 인생 최고의 로또를 터뜨린겨.”

    동료, 아니 부하 직원들과 함께 공사 부지에 나온 아버지, 백승태.

    어엿한 건설 업체의 사장이 된 아버지는 첫 공사로 다른 누구의 건물이 아닌 자기 가족을 위한 집을 짓게 되었다.

    자기 건물을 지어보는 게 꿈이었던 아버지.

    공사를 수주한 건 다름 아닌 도훈이었다.

    “우리 집 짓는 거니까 신경써서 해주세요, 아빠.”

    “에라이, 말이라고 하냐 이 놈아.”

    서울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도훈의 고향인 수원도 대도시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규모도 커 건물 평수만 50평에 다다르는 주택이니.

    그러나 도훈에겐 기꺼이 부담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어차피 자신의 집을 짓는 일이고, 아버지 회사에 지불하는 돈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기도 하고.

    “비용 처리는 확실하게 하셔야 하는 거 알죠?”

    “안 그래도 네 회사에서 한참 교육받고 오는 길이다. 뭔 놈의 탈세한 축구 선수들이 그래 많냐.”

    “저희는 그러지 말자고요.”

    “나도 귀찮은 짓은 안한다.”

    물론 일 처리는 확실하게.

    괜히 좋은 일 하려다 오해받긴 싫으니까.

    철저하고 정확하게 비즈니스로.

    “첫 삽은 사장님이 뜨쇼.”

    “어허, 그럴까.”

    우리 집을 짓는다.

    꿈만 같은 요즘의 나날에서도 더욱 꿈만 같은 일.

    열정이라곤 구 시대의 유물처럼 느끼던 자신이 요즘엔 매일 아침이 기다려질 정도로, 정말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사는 게 즐겁다.

    죽었던 열정이 샘솟음 치는 듯한 요즘이었다.

    “자!”

    기분 좋게 첫 삽을 떠올리는 아버지.

    그런 사장님의 모습에 직원들이 박수를 쳤고, 그렇게 도훈의 한국 집 공사는 시작이 되었다.

    ㆍㆍㆍ

    “아, 안녕하세요..”

    “어, 너가 성운이구나?”

    “네..”

    맨유 유스 훈련장.

    도훈은 훈련이 끝나고 잠시 이 곳에 들렸다.

    얼마 전 맨유 유스에 입단했다는 한 한국인 친구를 보기 위해서.

    15살의 나이로 유스에 입단한 한성운이라는 친구.

    역시나 도훈의 활약으로 한국인 선수들에게 관심이 생긴 구단은 적극적으로 한국인 유망주들을 물색하기 시작했고, 그 덕에 이 친구도 발굴이 되어 이 곳에 오게 되었다고.

    한 마디로 스카웃된 재능있는 친구라는 건데.

    소년 한성운은 도훈을 선망이 가득한 눈길로 올려다 보았다.

    그런 성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도훈.

    “형한테 평소에 궁금한 거 없었어?”

    “어... 많은데. 어.. 가장 궁금했던 건 그거요.”

    “어떤 거?”

    “어떻게 그렇게 단 시간에 축구를 잘 하게 되었는지요. 어.. 제가 알기론 16살때 축구를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어서..”

    성운의 질문에 미소를 짓는 도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단은 축구로 성공해야 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어. 그래서, 죽도록 훈련했지. 정말 죽도록. 그러니까 안되는 게 없더라고. 너는? 너는 축구를 시작한 계기가 뭐니?”

    “저요? 저는..”

    성운은 별 고민없이 대답했다.

    “계기는 형보고.. 형보고 축구 시작했어요.”

    “그래? 그럼 성운이도 1년 정도밖에 안됐겠네?”

    “6개월 됐어요.”

    “그래? 대단한데. 6개월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엄청난데.”

    도리어 놀라는 도훈.

    자기야 실제론 100년을 했다.

    하지만 이 친구는 15살에, 축구를 시작한지 6개월만에 맨유 유스에 스카웃될 정도라니?

    진짜 재능이 아닌가.

    “아, 근데 저 진짜로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뭔데?”

    “혹시, 스승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스승님? 내 스승님?”

    “네. 축구를 가르쳐주신 스승님이요.”

    갑자기 뭔가 다르게 느껴지는 성운의 눈빛에, 순간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 알면 다쳐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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