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88화 (88/173)
  • < 완벽주의자 (3) >

    머리를 매만지며 생수를 들이키는 과르디올라 감독.

    이건 감독이 아무리 공을 들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것도, 그 시도를 성공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실력도.

    과르디올라 감독의 완벽주의에 거대한 흠결을 내는 도훈이었다.

    “어떻게 그걸 그렇게 넣을 생각을 한 거야?”

    “키퍼가 나와 있더라고요.”

    다른 선수가 그런 골을 넣었다면, 모두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지 몰랐다.

    그러나 그것이 도훈이었기에, 또한 애초에 노림수였던 듯한 아웃프런트 킥이었기에 모두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거기서 슈팅을 시도할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오늘 찬스는 몇 번 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몇 번 되지 않을 찬스를 완벽하게 살려야 할 생각을 하는게 당연한 일.

    그런데도,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코너킥 슈팅을 시도할 생각을 하다니.

    “어쨌든 골은 시도해야 들어가는 거니까요.”

    “맞는 말이네요.”

    그러나.

    어차피 골이라는 결과가 나오려면, 불확실을 감수하고라도 시도를 해야 나오는 것.

    지나친 완벽주의는, 어쩌면 축구라는 스포츠에는 맞지 않는 것 일수도 있었다.

    도훈은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이건 에데르송 키퍼의 미스기도 해요. 안일했죠.”

    “에데르송 키퍼도 저렇게 빨려 들어갈 줄은 몰랐을 겁니다. 맨유가 백도훈 선수의 선제골로 1대0, 앞서 갑니다!”

    그렇게 경기는 맨유가 리드를 잡고 흘러가기 시작했다.

    꽤나 이른 시간부터 0대1로 끌려가는 맨시티.

    남은 시간은 아직 많았다.

    그러나, 그게 과연 유리한 건지 불리한 건지 판단이 어려웠다.

    만회할 시간이 많은 건 좋지만, 어쩄든 만회를 하기 위해선 지금의 전술을 바꿔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백도훈에게도 시간이 많아지게 되니까.

    따라서 맨시티와 과르디올라 감독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 점을 끌려가고 있으니 당연히 공격적으로 바꾸느냐?

    아니면, 그럼에도 이대로 유지하느냐?

    “일단 전반전은 그대로 가.”

    과르디올라 감독의 선택은 현상 유지.

    그렇게 맨시티는 실점 후에도 원래의 전술을 이어 나갔다.

    파아앙-

    파아앙-

    “뭐하는 거야..”

    “이건 아니지..”

    그 모습을 보며 슬슬 불만을 터뜨리는 맨시티의 홈팬들.

    오늘 이들이 기대한 것은 불이 튀기는 더비였다.

    워낙 맨유의 기세가 좋긴 하지만, 자신들의 기세 또한 좋았기 때문에.

    또한 어떤 팀을 상대로도 압도하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맨시티였기에.

    치열한 경기를 기대하고 표를 구입해 이 곳을 찾았던 이들.

    그런 그들이 지금 같은 경기 내용에 실망하는 것은 당연지사.

    물론 선수들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기기 위해선 참을 줄도 알아야 했다.

    지금은 참아야 했다.

    “삐익, 삐이익-!”

    “네, 전반전 종료 되었습니다. 느리면서도 빠르게 지나간 전반전이었네요.”

    “별 내용이 없었으니까요. 후반전엔 뭔가 변화가 있길 바랍니다.”

    결국 지리멸렬하게 끝난 전반.

    양 팀 모두 몇 번의 공격은 있었지만, 이렇다할 상황 없이 정말 45분 내내 탐색전의 느낌을 풍겼던 전반.

    맨유 vs 맨시티

    1 골 0

    2 슛 2

    1 유효슛 2

    32 점유율 78

    89 패스 209

    간단히 지표만 놓고 보더라도, 정말 별 것이 없는 전반전이었다.

    그렇게 전반을 끝내고 돌아온 맨시티의 드레싱 룸.

    먼저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무표정하게 들어오는 선수들을 맞았다.

    무언가 한 마디 하려는 듯한 과르디올라 감독의 표정을 살핀 선수들이 좌불안석으로 라커 앞에 앉자, 과르디올라 감독이 입을 열었다.

    “전반전은 좋았다.”

    의외의 말.

    과르디올라 감독은 선수들에게 박수를 쳤다.

    “운이 나빴던 실점빼고, 사실상 무실점으로 전반을 마쳤다. 아주 좋아.”

    계속해서 선수들의 플레이를 칭찬하는 과르디올라 감독.

    좀 더 어떻게 해라, 좀 더 잘해봐라라는 말들 대신, 선수들이 하프 타임동안 들은 말들은 모두 칭찬 뿐이었다.

    때문에, 후반전을 위해 드레싱 룸을 나서는 선수들은 오히려 이것이 정말 칭찬인지 비꼬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

    그러나 과르디올라 감독은 진심이었다.

    선수들은 완벽하게 자신의 지시를 이행하며 플레이 해줬다.

    다만, 제한은 풀어야 했다.

    어찌됐든 지고 있으니까.

    좀 더 슈팅과 전진패스를 가져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선수들.

    물론, 전반전처럼 최대한 점유율을 가져가라는 전제는 여전히 동일.

    경기는 후반전으로 이어졌다.

    “이젠 맨시티도 전반처럼 움직일 수는 없을텐데요.”

    “어찌됐든 동점, 역전을 위해 경기를 풀어 나가야 겠죠. 무패팀들간의 대결입니다. 우승을 위해선 절대로 물러서기만 할 수는 없는 경기에요. 아직 리그가 많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요.”

    여전히 패스를 돌리며 자신들의 스타일대로 후반전을 시작하는 맨시티.

    그러나, 확실히 그 패스의 방향이라든가 속도라든가 전반전과는 차이가 있어 보였다.

    조금씩 빈번해지는 전진 패스와, 계속해서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전방의 공격수들.

    특히나 스털링과 다비드 실바가 패스를 주고 받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스털링. 아, 돌파 시도 하나요.”

    웬만해서는 백 패스로 넘기던 스털링이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는 모습까지.

    이것이 원래 맨시티의 모습.

    “그래, 좀 해봐라!”

    “안 들어가도 좋아! 공격을 하라고!”

    루크 쇼를 상대하는 스털링.

    빼앗긴다면 그것 자체로 다시 ‘위기’.

    그러나, 그렇다면 안뺏기게끔 최선을 다하면 그만.

    파아앙-!

    타타탓-!

    “벗겨 냅니다! 빨라요, 스털링!”

    루크 쇼를 이겨내고 빠르게 골 라인까지 침투해 들어가는 스털링.

    그리고,

    뻐어엉-!

    촤아아아-

    뒤로 땅볼 컷백.

    그걸 향해 달려들던 다비드 실바가 다리 사이로 공을 흘렸다.

    실바가 슈팅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맨유 수비수들이 몰린 순간.

    그 뒤에서 한결 여유있는 데 브라이너가 달려 들었다.

    현재 데 브라이너는 파워랭킹 2위의 선수.

    날카로운 킥 감각이 살아 있는 상태였다.

    뻐어어어엉-!

    때리기 좋게 굴러오는 공을 다이렉트로 때리는 데 브라이너.

    고도의 집중력이었다.

    슈팅을 때리는 순간, 데 브라이너는 슈팅이 빗나갈 경우 과르디올라 감독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를 떠올렸다.

    정말 최선을 다해 때릴 수밖에 없는 슈팅이었다.

    슈우우우웅-

    빨랫줄처럼 골문 구석으로 향한 그 슈팅은, 픽포드 골키퍼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철썩-!

    “고오오올-! 케빈 데 브라이너의 대포알 슈팅이 골문을 가릅니다!”

    “그렇죠, 이거죠!”

    “역시 맨체스터 극장은 오늘도 시시하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데 브라이너는 기쁨의 포효보다, 먼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작에 이렇게 하지!”

    “전반전 동안 뭘 한거야?”

    데 브라이너의 동점골에 환호하면서도,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는 맨시티 팬들.

    못해서 안한게 아니라, 이렇게 공격할 수 있음에도 전반전 동안 소극적인 경기를 펼쳤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러나, 과르디올라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운이 좋았군.’

    완벽하게 골문 구석을 가른 방금의 골.

    원더골이라 볼 수 있는 멋진 골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한끝 차이로 들어가지 않을 뻔했던 골이라는 뜻이기도.

    자신들의 축구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이번 결과는 좋았다.

    동점을 만들어 냈고, 다시 원래대로 경기를 이끌어갈 수 있게 됐으니.

    아직 이 경기는 승리할 수 있는 경기였다.

    “삐이익-!”

    도훈의 킥 오프로, 동점에서 재개되는 경기.

    킥 오프를 하자 마자, 라인에 서 있던 맨시티 선수들은 물 밀듯 맨유의 진영으로 밀고 들어갔다. 역시나 전방 압박으로 공을 다시 빼앗아오기 위함.

    맨유도 몇 차례 보여줬듯, 압박에 길게 걷어낸다 하더라도 루카쿠를 통해 공을 따낼 수 있음을 보여주기는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루카쿠라 해도 공을 따낼 확률은 어찌됐건 50대50이었다.

    도훈은 상대의 경기력을 체감하며, 좀 더 완벽을 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렵게 찾아온 골을 허투루 내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파아앙-

    “백도훈이 낮은 위치까지 내려 옵니다.”

    상대의 압박을 분산시키기 위해 아래까지 내려가기 시작하는 도훈.

    완벽을 기해야 했다.

    누군가는 럭키 펀치라고 생각하겠지만, 완벽하게 의도하고 찬 첫 골 때처럼.

    툭-

    중앙 미드필더인 포그바와 마티치 사이에서 공을 잡는 도훈.

    도훈에게만큼은 강하게 압박을 가하지 않는 맨시티였지만, 위치가 위치인만큼 이번엔 양 쪽에서 상대가 빠르게 달려 들었다.

    툭, 툭-

    달려드는 두 실바의 견제를 피해내며 공을 컨트롤하는 도훈.

    아직.

    두 명으로는 부족했다.

    최소한 두 명은 더 끌어 들여야 했다.

    “귄도안과 스털링까지 가세 합니다!”

    이윽고.

    도훈이 꽤 오랫동안 실바들의 압박에서 버텨내자 귄도안과 스털링까지 압박에 가담했다.

    따지자면 위험지역이었다.

    빼앗아내기만 한다면 곧바로 찬스기에, 과감히 달려드는 것.

    그러나 도훈은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툭-

    가까이 있는 스몰링에게 공을 툭 내주는 도훈.

    그리고 곧바로 네 명의 상대 사이에서 빠져 나오며 몸을 전방 쪽으로 돌린 도훈은,

    파아앙-

    다시 내주는 스몰링의 패스를,

    뻐어어어엉-!

    그대로 전방으로 차냈다.

    그 패스가,

    슈우우우웅-

    높지 않게, 선수들의 어깨 높이 정도로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궤도가 절묘했다.

    대지를 가르는 패스.

    그 패스는 정확하게,

    “루카쿠에게 향합니다!”

    루카쿠에게 향했다.

    맨시티는 이미 보여줬었다.

    에데르송의 정확한 킥력 덕분에, 전방압박을 단번에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담 맨유도 그대로 대응하면 될 일이었다.

    하물며, 도훈의 킥력이야 에데르송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타타타타탓-!

    또한.

    도훈은 패스를 때려놓는 동시에 스타트를 끊었다.

    전방 압박을 올라오는 사이, 넓어질 수밖에 없었던 맨시티 진영의 광야를 향해.

    “빠릅니다!”

    창조 역습이었다.

    순식간에 비상이 걸리는 맨시티 진영.

    네 명이나 압박을 가하지만, 그래도 보험 역할로 하프라인 부근에서 머물던 데 브라이너나 페르난지뉴는 빠르게 자신의 진영으로 달렸다.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경기장을 주파하는 도훈의 속도는 마치 다른 시공간을 뛰는 듯.

    순식간에 그들을 따라잡았고, 앞서가기 시작했다.

    ‘얼마 안 걸렸지?’

    루카쿠를 위해서였다.

    존 스톤스를 등지며 공을 받아낸 뒤, 피지컬로 공을 지켜내며 선수들이 올라올 시간을 벌어주는 루카쿠를 위해 최대한 빠르게 올라온 도훈.

    파아앙-

    타타탓-

    파아앙-!

    “빨라요!”

    다른 선수들을 느림보로 만들며 올라온 도훈의 예상 경로에 공을 내준 루카쿠.

    그리고 그 공을 도훈이 속도를 그대로 살린 채 길게 차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걸 예상하고 있던 듯, 마치 이어 달리기의 다음 주자처럼 미리 몸을 돌리고 달리고 있었던 라포르테.

    둘의 속도 경합이 펼쳐졌다.

    미리 달리고 있었던 라포르테.

    무서운 속도로 뒤를 따라잡는 도훈.

    박스 왼쪽으로 흐르는 공.

    에데르송 키퍼가 나와 잡기엔 애매한 위치.

    결국 둘 중 먼저 공을 잡는 사람이 임자인 상황.

    “큭..!”

    어느 샌가 느껴지는 인기척에 사색이 되는 라포르테.

    아직 공까지는 대여섯 걸음이 남은 상황.

    이대로라면 공을 내준다.

    “나와!”

    라포르테는 어깨를 먼저 집어넣으며, 도훈을 막아 세우고 공을 에데르송 키퍼가 처리하는 판단을 내렸다.

    라포르테의 외침에 빠르게 달려 나오는 에데르송.

    그러나,

    도훈은 빠르게 붙은 속도만큼 그 힘도 붙어 있는 상태였다.

    도훈은 어깨로 막아서는 라포르테를 피하지 않고 마주 어깨를 집어 넣었다.

    어차피 몸싸움은 잠깐이면 충분했고, 밀려 넘어질 정도만 아니면 충분했다.

    속도로는 이미 도훈이 이기고 있었으니까.

    “이, 이겨냅니다!”

    도훈은 넘어지지 않았다.

    강하게 막아서는 라포르테 때문에 중심이 약간 무너지긴 했으나, 잠깐이었다.

    그리고, 제쳐냈다.

    라포르테의 견제를 뚫어내고 먼저 공을 향해 달려드는 도훈.

    그 때문에, 공을 향해 달려나오던 에데르송만 난처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 몰랐다.

    그나마 위치가 박스 안 쪽이었기 때문에, 몸을 날려 손을 뻗는다면 에데르송에게도 기회가 있을지도.

    파아앙-

    그러나, 공을 먼저 터치한 것은 도훈이었다.

    타타탓-!

    에데르송의 손을 피해 왼쪽으로 공을 차놓으며 골키퍼를 제쳐내는 도훈.

    빈 골문을 향해 자연스럽게 커버를 들어가는 라포르테.

    에데르송이 없는 빈 골대지만, 쉽게 슈팅을 때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공이 왼쪽으로 흐르고 있어 각이 좁아진데다, 전력으로 뛰고 있었으니.

    킥에 대한 자신감과, 빠른 판단이 없다면 10명 중 9명은 슈팅을 때릴 생각을 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나머지 한 명이 도훈이었다.

    잡아놓고 완벽하게 때릴까? 따위의 고민조차 없었다.

    뻐어어어엉-!

    몸을 뒤틀며 때린 왼발로 슈팅.

    그 슈팅은 낮게 깔리는 것이 아닌, 빠르게 휘어 감기며 골문으로 향했고,

    “으읏..!”

    어떻게든 막아보려 몸을 날린 라포르테의 머리 위를 지나쳤다.

    남들에겐 어려운 그 상황도, 도훈에겐 완벽한 기회일 뿐이었다.

    도훈은 모험가가 아니었다.

    완벽주의자였다.

    철썩-!

    도훈의 두 번째 골이 작렬하는 순간이었다.

    < 완벽주의자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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