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주의자 (2) >
계속해서 공을 돌리는 맨체스터 시티.
물론, 90분 동안 한 번도 공격을 하지 않을 것도 아니었고, 단 한 번도 백도훈에게 공을 넘겨주지 않을 가능성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중요한 건 백도훈에게 줄 기회를 최소화하는 것.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의 공격 기회마저 줄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과르디올라 감독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의 기반에는, 자신의 선수들이 적은 기회에서 완벽하게 골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기도 했고.
이것이 완벽주의자, 과르디올라의 선택.
‘지루한데.’
선수들은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시에 따르기 위해, 지루함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공을 소유하고, 패스를 돌렸다.
선수들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성격을 가장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짜놓은 판을 망가뜨리는 플레이를 했다간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맨유가 압박의 강도를 높여 봅니다.”
“이런 축구의 파훼법은 클롭 감독이 잘 보여줬었는데요. 역시나 강한 전방 압박입니다.”
그런 맨시티의 진영으로 높게 올라가는 맨유의 선수들.
동료들의 위치를 지정해주며, 조직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맨유.
파아앙-
“카일!”
파아앙-!
그러나 맨시티 역시도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패스 방향을 외쳐주며 한 마음처럼 움직이는 맨시티 선수들.
애초에 웬만한 압박에 무너졌다면 맨시티는 리그 챔피언이 되지 못했을 것.
또한, 이렇게 높게 압박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그걸 단번에 뚫어버릴 무기를 가지고 있는 맨시티였으니.
파아앙-
“뒤로 내줍니다. 에데르송 키퍼.”
오늘, 유일하게 긴 전진패스를 시도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선수.
키퍼 에데르송이었다.
에데르송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킥 능력이 좋은 키퍼라고 평가받는 선수.
선수들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롱 패스는, 정확하게 동료에게 향할 수만 있다면 높게 올라온 전방 압박을 단번에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무기.
뻐어어어엉-!
전방을 향해 롱 패스를 뿌리는 에데르송.
그리고 그 킥은, 정확하게 라힘 스털링에게 향했다.
그 킥 한 번으로 단번에 전방 압박하는 맨유 선수들을 건너 뛰고, 맨유 진영에서 공격을 시작하는 맨시티.
워낙에 오랫동안 맨시티가 공격의지가 없다시피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일까.
맨유 진영의 공간은 넓어져 있었다.
그 넓은 공간을 빠르게 파고드는 라힘 스털링.
스피드가 좋은 스털링은 바짝 오른 엉덩이를 뽐내며 오른쪽 사이드를 파고 들었다.
그러나 귄도안, 베르나르도 실바로 이뤄져 있는 공격진은 크로스를 올리기엔 적합하지 않은 구성.
또한 확률이 희박한 공격 방법을 택하는 것은 오늘의 전술에도 맞지 않았다.
“막아서는 루크 쇼.”
“다시 뒤로 내줍니다.”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었던 스털링은 잠시 루크 쇼와 대치하다, 다시 뒤로 공을 내줬다.
그 공을 받은 카일 워커는 중앙의 실바에게 내줬고, 실바는 다시 데 브라이너에게 내줬다.
결국 어렵게 올라온 전방에서 다시 중원까지 스스로 내려가는 맨시티.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맨시티는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답답하지만.’
인내심을 가지는 맨시티 선수들.
본인들도 분명히 답답했다.
그러나, 더욱 고구마를 먹은 듯한 느낌인 건 상대일 것.
그건 사실이었다.
‘좀.’
경기 내내 공을 가진 상대를 쫓기만한 맨유 선수들.
벌써 10분째였다.
아직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니라, 공을 잡아 보지도 못한 채 10분.
맨유 선수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에게 좀 더 빠르게 압박을 가하라며 손짓을 하는 선수들.
‘참..’
경기를 지켜보며 쓴웃음을 짓는 나겔스만 감독.
분데스 시절 몇 번 상대해 본 적이 있었던 과르디올라의 맨시티.
그 때마다 느꼈던 건, 정말 완벽함의 완벽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집요함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시를 완벽히 이행하는 맨시티 선수들도 존경스러웠고.
다만.
오늘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이해는 됐다.
백도훈이라는 선수를 상대한다면, 자신도 극도로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을테니.
그러나.
‘지나친 완벽주의가..’
오히려 자신의 목을 옭아맬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든, 90분 내내 한 번도 공을 빼앗기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시간은 양 팀에게 공평했다.
지금은 맨유가 공격찬스를 잡아보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찬가지 아닌가.
완벽한 찬스가 아니면 슈팅조차 가져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상대.
상대도 전혀 공격을 하고 있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찬스가 줄어든다면, 누구에게 유리할까.
상대?
아니면,
단 한 번의 찬스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백도훈을 보유한 자신들?
그건 지켜봐야 알 일이었다.
“아, 맨유의 공입니다!”
“귄도안의 발 맞고 나갔군요.”
처음으로 맨유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건, 전반 12분깨였다.
경기가 시작된 지 12분만에 처음으로 공을 소유권을 갖게 되는 맨유.
그만큼 지독하게 경기를 풀어나가고 있던 맨시티였다.
그러나 어쨌든 맨시티는 수비를 위한 소유를 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이렇게 소유권이 넘어온 이상 진짜 경기는 이제부터.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도훈에게 공을 내주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도훈이 공을 잡는다고 해서 무조건 골을 넣는다는 것도 꼭 성립하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도훈의 슈팅이 골문을 벗어날 때도 있었고, 수비의 몸을 맞고 막히는 일도 있었다.
그 기회 자체를 적게 준다는 것.
12분 동안 도훈에게 기회가 없었다는 것 자체로 맨시티의 경기 운영은 효과적이라고 평가할만 할 지도.
파아앙-
“맨시티도 전방 압박을 강하게 가합니다.”
“공을 최대한 빨리 되찾아오기 위함이겠죠.”
맨유가 그랬던 것처럼.
강하게 전방 압박을 올라오는 맨시티.
공을 소유하지 않았을 땐, 이렇게 강하게 압박을 가해 빠르게 공을 되찾아오는 것이 목표.
압박에 밀리며,
파아앙-
픽포드 키퍼에게 연결되는 공.
귄도안은 그런 픽포드 키퍼에게까지 빠르게 달려 들었고,
뻐어어엉-!
공을 길게 차내는 픽포드.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에데르송 키퍼는 정확한 패스를 한 것이었지만, 픽포드의 킥이 누군가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기에 5대5 싸움.
‘내가 나설 차례구나.’
낙구지점을 포착하며 어깨로 페르난지뉴를 밀쳐내는 로멜루 루카쿠.
최전방 공격수인 루카쿠가 굳이 이렇게 중원까지 내려와 헤딩 경합을 해주는 이유는, 나겔스만 감독이 그러라고 시켰기 때문.
파아앙-!
“루카쿠가 따냅니다!”
“세컨볼, 포그바. 포그바가 백도훈에게!”
루카쿠가 따낸 공을 곧바로 도훈에게 내주는 포그바.
그렇게, 마침내 경기 시작 13분만에 도훈의 발에 들어오는 공.
여기서 맨시티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도훈에게도 강하게 압박을 가할 것인가?
아니면 제 자리를 지킬 것인가.
“곧바로 라인을 내립니다!”
“백도훈만큼은 압박에서 예외네요.”
선택은 후자였다.
압박이 거의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던 과르디올라 감독이었다.
백도훈에게 만큼은.
때문에, 다비드 실바를 포함한 2선 라인부터는 도훈이 공을 잡자 뒤로 쭈욱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가까이 있던 귄도안이 도훈에게 붙어주는 정도.
“압박을 가하는 귄도안!”
그러나, 도훈은 왜 맨시티가 물러서는 선택을 했는지, 귄도안을 가볍게 벗겨내는 것으로 보여줬다.
귄도안을 떨쳐내고 하프라인을 넘으며 전방을 살피는 도훈.
‘니네가 뭘 잘하는지는 알겠다만.’
생각보다도 오래 걸린 시간.
13분만에 공을 잡을 줄은 도훈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만큼 공을 돌리는데에는 도가 튼 상대.
뭐, 나름 효과적인 대처 방법이라고 생각할 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
이렇게 기회 한 번 한 번이 소중해질수록, 도훈도 집중력을 발휘해 기를 쏟아낼 수 있다는 것.
어렵게 온 기회인만큼, 완벽하게 살릴 것이었다.
타타탓-!
오른쪽 사이드를 선택하는 도훈.
완벽하게 제 포지션을 잡고 있는 상대를 공략하는 건, 역시나 사이드부터 허물어 내는 것이 제격.
도훈이 오른쪽을 파고 들자, 맨시티 선수들이 마치 서로에게 끈이라도 연결한 것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풀백 벤자민 멘디는 뛰어난 수비수지만, 확실히 혼자서 도훈을 상대하는 건 역부족.
중앙의 페르난지뉴가 뒷공간을 커버할 수 있도록 움직였고, 데 브라이너는 도훈이 지나온 앞쪽을 막아서며 퇴로를 봉쇄했다.
게다가 센터백 라포르테까지 뒷 선을 구축하며 가담.
완벽하게 도훈을 사이드로 몰아세우는 맨시티.
오른쪽은 멘디, 정면은 페르난지뉴, 왼쪽은 데 브라이너. 그리고 뒤는 터치라인.
사방이 막힌 상황.
“어떤 선택을 보여주나요, 백도훈”
그러나,
터치라인을 벗어날 수 없는 건 공뿐.
툭, 툭-
도훈은 번개처럼 멘디의 다리 사이로 공을 차놓고,
타타탓-!
터치라인을 벗어나 돌아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적인 움직임에 허수아비가 되는 세 명의 수비.
하지만, 남은 한 명의 반응도 빨랐다.
현재 프리미어리그에서 리버풀의 반 다이크와 더불어 최고의 센터백으로 분류되는 라포르테였다.
촤아아아-
파아앙-!
“라포르테가 걷어 냅니다!”
몸을 날려 공을 바깥으로 차내는 라포르테.
간신히 발끝에 닿아, 터치라인이 아닌 골 라인 바깥으로 차내 코너킥이 되긴 했지만 어쨌든 도훈의 돌파를 막아낸 것.
그것만으로 좋은 수비였다.
“나이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 하는 라포르테.
맨시티 관중들도 박수를 보냈다.
마음먹고 돌파하는 도훈을 막아냈다는 건 대단한 성과였으니.
‘차라리 쉬웠어.’
한숨을 내쉬며 박스로 돌아가는 라포르테.
차라리, 분명히 포위망이 뚫릴 것이라 생각하고 대비하고 있어 반응이 쉬웠다.
보통 선수라면, 오히려 반응이 늦었을 지도.
그나마 백도훈이었으니 뚫릴 것을 대비하고 있어 망정이었다.
“코너킥으로 이어집니다.”
코너킥을 처리하기 위해 다가오는 후안 마타.
그러나, 도훈은 마타에게 무언가 이야기했다.
그러자 마타는 돌아갔고, 도훈이 공을 놓고 코너킥을 준비했다.
“백도훈이 오른발로 올릴 준비를 합니다.”
“루카쿠, 포그바, 스몰링. 대비해야 할 선수들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박스 안에서 거칠게 자리싸움을 펼치는 양 팀 선수들.
장신의 선수들이 꽤 포진한 맨유는 오늘 높이 싸움에서는 절대 밀리지 않는 전력.
때문에 맨시티 선수들도 자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 거칠게 선수들을 밀었고,
“삐이익-!”
주심이 잠시 코너킥을 보류시킨 뒤 선수들을 불러 주의를 줄 정도.
그만큼 중요한 순간이었다.
경기는 벌써 전반 15분을 지났지만, 제대로 된 공격 상황이라고 할만한 첫 번째 순간이었으니.
“...”
다시 휘슬이 울리고.
손을 한 번 든 다음, 공을 향해 달려드는 도훈.
그런데, 그 킥 폼이 조금 이상했다.
뻐어어어엉-!
“어?”
오른발로 코너킥을 때리는 도훈.
그런데, 보통 코너킥은 인프론트로 감아차는 것이 대부분.
그러나 도훈은 아웃프론트로 코너킥을 때려 버렸다.
때문에, 마치 왼발로 감아때린 것같은 궤적을 그리며 박스를 향해 날아가는 공.
‘뭐야?’
에데르송 키퍼는 정확히 보지 못했다.
때문에, 순간 구질의 판단이 늦었고, 뛰어 나가 잡아야 겠다는 판단이 들어 나가는 순간.
슈우우우웅-
공이 휘어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골대를 향해.
‘초승달 차기.’
그 각은 아주 날카롭고도 예리했다.
“크윽..!”
뒤늦게 역동작이 걸리며 점프하는 에데르송 키퍼.
있는 힘껏 머리 위로 손을 뻗어 보지만,
킥은 빨랐다.
슈우우웅-
철썩-!
“고, 골...!”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한 박자 느리게 반응하는 해설자들.
그대로 들어가 버렸다.
도훈이 찬 코너킥이, 휘어져 그대로 골문 반대편 옆그물에 쳐박힌 것.
코너킥 골이었다.
“...”
“와아아아-!”
거대한 침묵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원정팬들의 함성 소리.
셀레브레이션을 위해 달릴 필요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두 팔을 벌리는 도훈.
곧바로 동료들이 포효하며 도훈에게 안겨 들었다.
전반 16분, 도훈의 선제골이 터지는 순간.
“하하하하핫!”
그 어이없는 순간에.
침묵에 빠진 맨시티의 벤치에서, 한 남자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누구도 뭐라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게 과르디올라 감독이었으니.
‘미친건가?’
골을 먹어 놓고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과르디올라 감독을 보며 생각하는 뒷자리의 팬들.
그러나, 과르디올라가 그렇게 웃는 것도 어찌보면 이해될 일이었다.
‘어이가 없어, 어이가 없어.’
밤을 새워 준비한 시나리오에서도, 이런 건 없었으니까.
그렇게 대비하고, 조심스럽게 했는데도.
이 따위로 골을 넣어버리고 마니 웃음이 안 나오고 배기나.
‘정말..’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 완벽주의자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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