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86화 (86/173)

< 완벽주의자 (1) >

아스날과의 원정 경기에서 기분 좋은 대승을 거둔 맨유.

그렇게 리그 4연승을 거두고, 맨유는 챔피언스 리그 조추첨 결과를 받았다.

C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CSKA 모스크바

-갈라타사라이

-FC 바젤

조 편성은 무난했다.

바이에른 뮌헨과 같은 조에 속한 리버풀이나,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가 같은 조에 속하는 등의 다른 조들에 비하면 무척이나.

9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조별 예선.

지난 시즌과 달리 조별 예선부터 출격이 가능한 도훈은, 벌써부터 자신의 기록을 넘어서는 골 기록을 세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 전에, 리그 5라운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원정을 나서는 맨유.

뉴캐슬 원정을 떠나며, 도훈은 솔직히 조금 긴장한 상태였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뉴캐슬에 대선배인 기성용이 뛰고 있기 때문.

사실 기성용은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지 꽤 된 선수니 도훈과 만날 일은 없었다. 그러나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물어 물어 안 것인지, 도훈이 처음 영국행이 결정되었을 때 기성용에게서 한 번 연락을 받았었고, 런던에서 식사 자리를 가진 둘이었다.

영국 생활에 어려운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 말하라며 형처럼 대해주던 기성용.

둘의 나이 차이는 무려 16살 차이.

기성용 입장에선 10대 꼬맹이가 영국 생활을 시작한다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어이, 대한민국의 미래~”

“안녕하십니까.”

도훈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어갈 재목이니, 전 주장인 기성용으로서 더 챙겨주고 싶었을 테고.

“오랜만이다.”

“게임 뛰시는 것 잘 봤습니다.”

“많이 뛰지도 못했는데, 뭘. 짜식이, 나 놀리냐?”

“아뇨. 하하..”

왠지 모르게 포스가 넘치게 느껴지는 기성용.

도훈이 느끼기에도 기성용은 관록이 넘치는 베테랑의 느낌을 풍기는 선배였다.

“오늘 살살해라.”

“하하, 죄송합니다.”

“오, 제대로 하겠다 이거지.”

“프로 아니겠습니까.”

웃으며 도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가는 기성용.

고마운 선배지만 오늘만큼은 죄송할 따름.

적당히 하는 건 오히려 선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뉴캐슬의 홈,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시작되는 경기.

“코리안 더비네요.”

“꽤 오랜만에 보는 코리안 더비입니다.”

평소보다 활기찬 듯한 한국 중계진의 목소리.

도훈은 당연히 선발이었고, 기성용도 오늘 경기 선발로 나섰다.

공교롭게도, 중앙 공격 미드필더인 도훈과 수비형 미드필더인 기성용은 오늘 90분 내내 부딪혀야 하는 자리.

둘의 첫 대결은 전반 4분, 하프라인 부근에서부터였다.

먼저 공을 잡은 건 기성용이었다.

그리고 압박을 가하는 것이 도훈.

도훈은 빠르게 주변 뉴캐슬 선수들의 동향을 파악하며 기성용에게 달려 들었다.

가장 패스를 하기 좋은 동료가 서 있는 방향으로.

‘죄송합니다, 선배.’

기성용을 곤란에 빠뜨리는 도훈.

그러나, 기성용도 괜히 기성용이 아니었다.

툭-

도훈이 차단하며 들어온 방향 반대로 공을 접은 기성용은,

뻐어어어엉-!

반대편을 향해 길게 패스를 뿌렸다.

그 모습 자체는 도훈의 압박에 허겁지겁 공을 걷어내는 느낌이었으나,

“좋은 시야입니다, 기성용!”

패스는 시원하게 뻗어나가 무토 요시노리의 발에 안착했다.

어느덧 프리미어리그에서만 10년차가 다되어가는 기성용.

역시, 그 관록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듯.

물론 세월로 다져진 도훈이야말로 세월의 힘을 알고 있기에, 절대 방심은 없었다.

경기는 이어졌고, 둘은 자주 부딪혔다.

기본적으로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주도하는 맨유.

공을 잡고 있는 시간이 가장 긴 건 당연히 도훈이었다.

기성용은 섣불리 달려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달려드는 쪽은 도훈이었다.

1대1은 아니었다.

사실 기성용이 수비에 장점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기에, 짝으로 배정된 아이작 헤이든이 항상 수비 시에 기성용을 보좌했다.

때문에 중앙을 선택한다면 언제나 그 둘을 상대해야하는 도훈이었다.

‘뭐 굳이 선배라서가 아니라.’

페어를 상대할 땐 약한 쪽을 공략하는 것이 당연지사.

도훈은 헤이든을 주로 공략했다.

경험이 부족한 헤이든은 진득하게 기다리는 기성용보다 급한 느낌이라 상대하기 훨씬 쉬웠고,

“오, 또 헤이든이야.”

“제발 수비 좀 잘 해봐!”

도훈에게 뚫리는 모습을 보며 뉴캐슬의 홈 팬들은 헤이든의 이름을 읊조리며 이마를 짚었다.

선배에 대한 보이지 않는 배려라면 배려였다.

첫 골은 전반 13분에 터져 나왔다.

오른쪽에서 오버래핑을 올라온 풀백 디오고 달롯이 문전으로 길게 크로스를 올렸고, 박스 반대편에서 마커스 래시포드가 그 공을 머리로 떨궈 놓았다.

그걸 포그바가 다이렉트로 슈팅을 때렸는데, 그 슈팅이 수비수를 맞고 튕겨 나온 것이 하필 도훈에게 향했다.

그 세컨 볼을 재차 논스톱 슈팅으로 가져가는 도훈.

뻐어어어엉-!

촤아아아아-

그 슈팅은 낮고 묵직하게 깔려 골문 구석으로 향했고,

철썩-!

혼잡한 선수들 틈에서 하나밖에 나지 않았던 길을 뚫으며, 맨유의 선제 득점이 되었다.

이후 경기는 꽤나 뻔하게 흘러 갔다.

맨유는 계속해서 공격했고, 뉴캐슬은 수비를 단단히 세우며 이따금씩 기성용의 날카로운 롱 패스를 통해 역습을 노렸다.

그러나 공격수들의 마무리가 이뤄지진 않았고, 결국 전반 22분 제시 린가드의 추가 골이 터져 맨유가 2대0으로 앞서가며 전반전이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후반전.

헤이든과 기성용 페어는 여전히 도훈을 상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특히 후반 13분엔 박스 정면에서 파울을 범하며 도훈에게 아주 좋은 찬스를 내주고 말았다.

그 프리킥을,

뻐어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도훈이 오른발 감아차기로 완벽히 골문 구석을 찌르며 득점에 성공.

3대0으로 달아나는 맨유였다.

이후 뉴캐슬의 이렇다할 반격은 성공하지 못했고 경기는 무난히 흘러갔다.

결국,

“삐익, 삐이익, 삐이이익-!”

3대0, 그대로 경기 종료.

오늘도 멀티골을 기록하며 승리와 함께 수훈 선수에 선정될만한 활약을 이어가는 도훈이었다.

“짜식이, 살살 하라니까. 고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유니폼은 주고 가라. 가보로 삼을란다.”

“영광입니다.”

기성용과 유니폼을 교환하는 도훈.

도훈을 기성용은 아주 기특한 얼굴로 바라봤다.

“대표팀 가서도 지금처럼만 해라.”

“열심히 하겠습니다.”

팀은 패배했지만, 아직도 전 주장으로서 애착이 남아있는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으니 기성용의 표정은 어둡지만은 않았다.

또한, 녀석과 함께라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대표팀에서 뛰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기성용이었고.

ㆍㆍㆍ

리그 5라운드 이후, 맨유는 CSKA 모스크바를 홈으로 불러 들였다.

21/22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첫 경기.

모스크바와의 첫 경기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펼쳐지는 건 맨유 입장에선 다행이었다.

워낙 이동거리가 긴 탓에 모스크바 원정은 꽤나 체력적인 부담이 큰 일정인데, 이 경기 다음에 있을 리그 경기의 상대가 상당히 난적이었기 때문.

어쨌든 그 날의 경기는 상당히 무난한 맨유의 승리였다.

모스크바는 러시아 리그의 복병이었지만, 도훈은 러시아의 찬바람을 뜨거운 화력으로 녹여 버렸다.

헤트트릭.

도훈은 모스크바와의 경기에서 3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제 도훈에겐 새삼스럽지도 않은 헤트트릭.

첫 경기부터 기분 좋게 득점 선두 자리에 오르며, 과연 이번 시즌 도훈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몇 골을 기록할 수 있을 지 기대를 모으게 만드는 경기였다.

그리고,

“드디어 올 것이 왔군요.”

“언제나 극장같은 승부를 펼쳐왔던 두 지역 라이벌의 경기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곧바로 그 주의 주말.

우승 경쟁자이자 지역 경쟁자,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가 이티하드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이 경기를 준비하며, 맨시티의 감독 펩 과르디올라는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

과르디올라는 완벽주의자 중의 완벽주의자였다.

비교적 쉬워 보이는 상대를 만나도 철저히 준비해 완벽한 승리를 목표로 하는 감독이 바로 과르디올라.

그러한 과르디올라가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 하는 오늘 경기를 두고 많은 고민에 휩싸인 것은 당연할 지 몰랐다.

하지만, 평소보다도 더 머리를 싸맨 건 역시나 반드시 막아내야 하지만, 많은 팀들이 풀어내지 못한 난제.

백도훈의 존재 때문일 것이었다.

“흐음..”

코치들과 함께 백도훈의 많은 영상들을 분석했던 과르디올라 감독.

과르디올라는 영상을 분석할수록, 과거 자신이 지도했던 한 선수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메시는 나조차 감당할 수 없었지.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하곤 했어. 내가 만약 내가 만든 팀의 상대팀 감독이라면, 어떤 전략을 짜와야 할까?”

“답이 나오덥니까?”

“안나오더라고. 메시 때문에 말이야. 그는 언제나 전술 위에 있던 선수니까.”

“그럼..”

“솔직히 지금도 답이 나오지 않는군.”

한숨을 내쉬는 과르디올라 감독.

솔직히 아무리 영상을 봐도 답이 떠오르기는 커녕, 오히려 어이없음만 커졌다.

이걸 뭔 수로 막아내란 말인가.

지금껏 많은 수비 전술이 백도훈을 위해 사용이 되어 졌었다.

이러면 어떨까, 라고 제시한 과르디올라 감독의 의견을 그대로 썼던 팀도 있었고.

그러나, 모두 격파 당했다.

순수 실력 하나만으로.

“커피 좀 부탁하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할 과르디올라 감독은 아니었다.

언제나 최선의 답을 찾을 뿐.

커피를 부탁하는 그의 말에, 코치들은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답이 나올 때까지, 이 회의는 끝나지 않을 것이었으니까.

“이티하드 스타디움입니다. 먼저 홈팀 맨체스터 시티의 선발 라인업, 살펴 드리겠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4-3-3) 감독 : 펩 과르디올라]

GK 에데르송

CB 아이메릭 라포르테

CB 존 스톤스

LB 벤자민 멘디

RB 카일 워커

MF 페르난지뉴

MF 케빈 데 브라이너

MF 다비드 실바

FW 라힘 스털링

FW 베르나르도 실바

FW 일카이 귄도안

“4-3-3의 맨시티인데요. 오늘은 가브리엘 제주스와 세르히오 아구에로, 두 선수가 모두 선발 라인업에 없습니다.”

“전문 공격수를 두지 않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선택인데요. 어떤 의미일지는 경기를 지켜보며 알아가야 겠군요.”

조금은 특이한 선택.

중앙 공격수로 지명이 되어 있는 건 일카이 귄도안.

그러나 귄도안은 분명 미드필더 자원이었다.

전문 공격수를 두지 않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선택.

과연 어떤 의미일지.

“준비한대로 움직이자.”

“전술대로만.”

경기 전, 원진을 그리고 모여 오늘 경기의 중점을 상기하는 맨시티 선수들.

그리고 파이팅을 한 번 외친 뒤,

“삐이이익-!”

맨체스터 더비가 시작 되었다.

파아앙-

파아앙-!

맨시티의 선축으로 시작된 경기.

여유 있게 공을 돌리며 템포를 맞추는 맨시티 선수들.

프리미어 리그를 제패했던 맨시티의 스타일이라고 하면, 역시나 발 기술이 좋은 선수들의 패스 플레이와 그걸 바탕으로 한 높은 점유율, 그리고 그 점유율을 바탕으로 언제나 경기 주도권을 잡고 풀어나가는 것.

그것이 맨시티가 리그를 제패한 방법이었다.

오늘도 맨시티가 준비해온 것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은 자신들의 장기를 극대화해야 하는 경기였다.

“루즈하다고 생각돼도 참아라. 인내심이 오늘 경기의 포인트다.”

경기 전 과르디올라 감독이 했던 말을 상기하는 다비드 실바.

실바는 중앙에 서서 패스의 허브 역할을 하며 계속해서 폭 넓게 패스를 전달했다.

‘패스 놀이하러 왔나.’

그런 상대를 보며 생각하는 도훈.

맨더비라고 해서 기대하고 왔었건만.

밀란에서 뛸 때 경험했던 밀란 더비와는 너무 느낌이 달랐다.

그 땐 서로를 죽일듯이 치열한 경기를 펼쳤었는데, 지금 상대는 패스 놀이를 하러 나온 것처럼 높게 올라오지도 않은 채 공만 돌리고 있었다.

오늘 점유율은 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오긴 했다만.

공격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상대의 태도는 의외.

‘욕먹을 짓이라는 건 알지. 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과르디올라 감독과 코치진들이 밤새 회의를 하며 내린 결론.

백도훈을 상대하는 최선의 해법이었다.

“최대한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면서, 상대에게 절대 공을 주지 않겠다는 마인드로 경기를 풀어 나가는 거죠.”

도훈은 공을 잡기만 하면 사고를 치는 선수였다.

그러니, 어찌됐든 절대 공을 잡게 해서는 안됐고.

때문에 이렇게 맨시티는 공을 돌리며 점유율을 끌어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백도훈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들이 공을 가지고 있는 것 뿐이었다.

< 완벽주의자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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