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85화 (85/173)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4) >

‘신기하다니까.’

주장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니.

평소보다 경기를 좀 더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느낌이었다.

팀을 대표한다는 것 때문일까.

단순히 플레이 내적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외부적인 요소까지 같이 생각하게 된다는 느낌.

처음 토레이라에게 반칙을 당했을 땐, 그저 페인팅에 속아 실수로 다리를 건 것이라 생각했다. 워낙 수비 스타일이 적극적인 상대니까.

하지만 두 번째 부터는 확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날 화나게 만들려고?’

당해줄 리는 없었다.

오히려 상대의 그런 의도를 역으로 이용할 뿐.

도훈은 일부러 공을 잡은 뒤, 토레이라가 달려들면 공을 빼앗기지 않을 정도만 드리블을 치며 약을 올렸다. 마치 입까지 먹을 걸 갖다준 뒤 먹으려하면 쏙 빼는 것처럼.

‘슬슬 화가 나나봐.’

그러자 점점 토레이라의 반칙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경기는 아스날의 의도대로 되는게 아니라, 도훈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파아앙-!

“백도훈, 포그바에게.”

도훈 덕분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포그바.

토레이라가 아닌 자카를 상대하는 포그바는 비교적 여유롭게 전방을 훑으며 패스 길을 찾았고,

뻐어어엉-!

“좋은 패스입니다!”

오른쪽을 파고드는 루카쿠에게 킬 패스를 연결.

파아앙-

루카쿠가 다시 원터치로 중앙의 린가드에게 연결했고,

뻐어어어엉-!

린가드 역시 논스톱으로 슈팅을 때렸다.

슈우우웅-

철썩-!

“고오오올-! 린가드의 선제골이 터져 나옵니다!”

아스날의 수비 공간을 완벽하게 무너뜨리는 패스 플레이.

맨유가 린가드의 선제골로 전반 12분, 앞서가기 시작했다.

“자, 이 골의 시발점은 사실상 백도훈 선수였습니다. 하프라인에 가까운 곳에서 토레이라를 끌어 들이죠. 도훈을 묶어야 하는 토레이라는 높은 위치지만 올라올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나 백도훈이 공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포그바에게 내줬고, 포그바는 여유롭게 루카루를 봅니다. 그리고 빠른 패스 플레이로 골까지 연결이 됐습니다.”

“앞선에서 공간이 열리니 여지 없군요.”

생각보다 쉽게 상대의 골문을 연 맨유.

공간이 헐거웠다.

그건 역시나 도훈 덕분일 것.

도훈이 토레이라를 묶어두고 있으니, 아스날의 중원은 전혀 저지력을 가질 수가 없었다.

“루카스, 뚫리면 안 돼.”

“근데..”

“막기만 하자. 경기 전에 했던 말은 잊어.”

실점 후 토레이라에게 이야기하는 외질.

그러나 토레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열이 받을 대로 받았는데, 이젠 막기만 하라고?

누구 때문에 반칙을 벌써 5개나 하면서까지 달려 들었는데.

‘내 탓인 것처럼 말하네.’

토레이라는 주장 외질의 등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골을 리드하는 맨유.

그러나 어쨌든, 원래 목표가 전반전에 크게 차이를 벌리는 것이었으니 아직은 멀은 셈.

맨유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 기세에 홈임에도 일단 내려 앉고 보는 아스날.

토레이라도 꾹 참으며 일단은 내려섰다.

솔직히, 이젠 더 달려든다고 해서 공을 빼앗아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프라인까지 쉽게 올라옵니다.”

“아스날이 압박을 포기한 것 같네요. 압박을 하다가 뒷공간을 내주면서 실점을 했으니까요.”

공을 잡고 한결 여유롭게 전방을 훑는 도훈.

도훈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토레이라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도망인가?

그렇담 이 쪽에서 붙으면 그만이었다.

타타탓-!

“치고 올라 갑니다!”

“오늘 중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던 백도훈인데요, 드리블을 보여 주나요!”

토레이라를 향해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도훈.

지금까지 토레이라가 달려들었을 땐 ‘소유’ 를 위한 드리블을 했다면, 이젠 ‘돌파’ 를 위한 드리블을 선보일 차례.

저들 나라에 사자성어라는 건 없지만, 몸으로 한 번 겪고 나면 곧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진퇴양난’ 이라는 사자성어의 의미를.

툭, 툭-

잔뜩 자세를 낮추고 기다리는 토레이라 앞에서 툭툭 치며 리듬감을 살려보는 도훈.

똑바로 알아라.

지금까지 못제쳐서 같이 놀아준 게 아니라는 걸.

쉬이익-

왼쪽으로 파고드는 도훈.

그런 도훈을 향해 몸을 뒤틀며 따라가는 토레이라.

그러나 몸을 돌린 순간, 그 곳에 도훈은 없었다.

“완벽한 바디 페인팅!”

“어쩜 저리 완벽하게 속여 낼까요!”

오른쪽으로 파고드는 도훈.

그 뒤에서 기다리는 소크라티스.

하지만 도훈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대로 오른발을 크게 당겼다.

스르륵-

“페이크!”

그 동작에 몸을 웅크리는 소크라티스.

그러나 슈팅 페이크.

슈팅 대신 발바닥으로 공을 왼쪽으로 굴린 도훈은, 다시 바깥발로 공을 밀었다.

스르륵-

그 공이 소크라티스의 다리 사이를 지나고,

“한 명 더 제쳐 냅니다!”

“완벽한 찬스!”

도훈은 소크라티스를 제쳐내며 완벽히 박스 안으로 침투하는데 성공.

레노 키퍼와 마주하는 도훈.

도훈은 아주 집요했다.

스르륵-

골대 왼쪽으로 시선을 주며 다시 오른발을 당겼던 도훈.

그러나 이번에도 슈팅 페인팅.

그 페인팅에 레노는 미리 몸을 날려 버리고 말았고,

툭-!

도훈은 가볍게 오른쪽으로 공을 찼다.

출렁-!

마치 연습 경기처럼 너무도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키는 도훈.

“고오올-! 너무도 침착한 마무리!”

“의심의 여지가 없네요. 17살짜리 주장, 누가 말도 안된다 하겠습니까. 저리도 완벽히 팀을 이끄는데요!”

고개를 끄덕이며 관중석의 한 귀퉁이, 맨유 원정석으로 달려가는 도훈.

맨유의 원정팬들은 양 옆으로 아스날 팬들에게 둘러싸인 채 펄쩍 펄쩍 뛰며 환호성을 보내왔고,

“컴 온-!!”

도훈은 그런 원정팬들의 기를 살려주듯 포효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쉽게 경기를 풀어가는 맨유.

아무리 슬로우 스타터라지만, 이렇게 전반전부터 완전히 경기를 내줄 수는 없는 일.

아스날도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메수트 외질, 이워비에게.”

요즘 아스날에서 가장 폼이 좋은 이워비.

이워비는 왼쪽에서 발렌시아를 상대로 흔들고 들어가더니,

파아앙-!

사이드로 길게 차놓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선수 생활 황혼기에 접어든 발렌시아.

그의 자기관리는 도훈도 존경할 정도지만, 한창 때인 이워비를 따라갈 수는 없는 듯.

뻐어어엉-!

“크로스!”

발렌시아를 제쳐낸 이워비의 크로스가 날카롭게 문전으로 향했다.

슈우우웅-

파아앙-!

그러나 멋지게 날아올라 주먹으로 쳐내는 픽포드 키퍼.

“나이스!”

지난 시즌, 데 헤아의 빈 자리를 잘 메꿔주었다는 평을 받는 픽포드였다.

뻐어엉-!

그리고 그걸 다시 걷어내는 스몰링.

어느덧 맨유의 최고참이 되어가는 스몰링은 맨유 수비의 리더.

솔직히 도훈이 느끼기엔, 당연한 말일지 모르지만 밀란보다 맨유가 훨씬 강한 팀이었다.

좋은 선수들이었고, 능력있는 선수들이었다.

다만 지난 시즌까진 내부 사정을 알 수 없으나 분위기가 많이 안좋았을 뿐, 나겔스만 감독 체제에서 선수들은 불만이 없어 보였고 모두 제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 열심이었다.

처음엔 그저 유쾌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지만,

“헤이!”

확실히 잠재력 있는 동료들이었다.

공을 받은 뒤 전방을 향해 몰고 올라가는 포그바.

참 구설수가 많은 녀석이지만, 그라운드 안에서의 그 실력만큼은 도훈도 인정하는 포그바는 왼쪽 사이드로 로빙 스루패스를 띄워 보냈다.

그 패스를 향해 빠르게 배후를 침투해 들어가는 린가드.

린가드도 가벼울 땐 한없이 가벼운 녀석이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녀석.

가끔은 축구보다 셀레브레이션에 더 열정적인 것 같긴 하지만 뭐 어쨌든.

파아앙-!

“뒤로 꺾어내 줍니다!”

“백도훈이 있죠!”

루카쿠가 듬직하게 무스타피를 등지며 내준 공간.

박스 외곽에서 린가드의 컷백을 받는 도훈.

그리고 역시나 뒤에서 달려드는 토레이라.

스르륵-

툭-!

그러나 도훈은 멋진 드래그백으로 뒤에서 달려드는 토레이라를 지나치게 만들었고,

‘백날 달려들어 보라고.’

곧바로 오른발 슈팅 각도를 만들어 냈다.

뻐어어어엉-!

파포스트를 향해 보고 감아 때린 슈팅.

그 슈팅은 골대를 벗어날 듯 쏘아져 나갔으나,

부우우웅-

곧바로 크게 휘어지며 골문 구석으로 파고 들었고,

철썩-!

맨유의 세 번째 골이 되었다.

차이를 벌리자던 전반전.

맨유의 의도대로 정확히 흘러가는 전반전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3대0, 성공적으로 전반전을 마친 맨유.

그러나 후반전도 방심은 없었다.

루카쿠와 도훈을 제외하고 모두 라인을 내리며 좁은 간격을 유지할 것을 지시하는 나겔스만 감독.

원 톱인 루카쿠는 물론, 도훈을 전방에 놔두는 것은 상대가 마음 놓고 올라올 수 없게 하기 위한 보험책.

실제로 하프 라인 근처에 도사리고 있는 도훈 때문에 쟈카와 콜라시나치는 공격에 쉽게 가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힘을 내보는 아스날.

폼이 좋은 오바메양이 몇 차례 슈팅을 시도하는데까지는 성공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한 번은 픽포드에게 막히고, 두 번은 골대를 벗어나긴 했어도.

“전반전보다는 확실히 아스날의 경기력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끝 부족한 느낌이네요.”

이젠 익숙해진 나겔스만 감독의 수비 전술대로 단단히 뭉쳐 아스날의 공격에 대응하는 맨유 수비진.

솔직한 말로, 처음엔 설마 또인가 싶었다.

전 감독이었던 주제 무리뉴가 경질되었던 이유가, 버스라고 조롱받는 수비 전술 외엔 별 다른 전술이 없어 졸전을 거듭하는 경기력을 질타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는데, 후임인 나겔스만 감독도 수비 전술을 강조하며 훈련 시간의 대부분을 수비 훈련에 할애하는 것 아닌가.

당연히 선수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이 바뀌긴 했는데, 제 2의 무리뉴가 온 건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지금은 다들 알고 있었다.

수비에 집중하는 게 맞았다.

어차피 공격 전술은, 백도훈 하나로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수 있으니까.

어쩌면, 무리뉴는 운이 나쁜 것일수도 있었다.

도훈이 한 시즌만 일찍 팀에 합류했다면, 무리뉴는 경질 당하지 않았을지도.

“라카제트, 라카제트!”

“아, 지금은 너무 공을 끌었죠.”

뭐라도 해보려 애를 쓰는 라카제트.

그러나 턴 오버.

공격의 흐름이 턱턱 끊기는 아스날.

“빨리 줘야지.”

“거기 서 있으면 어떻게 주라고.”

그러자 슬슬 서로에게 짜증을 부리는 일까지.

마음에 드는 게 없는 경기였다.

‘이따구로 된거.’

후반도 중반을 지나는 시점.

경기에 진전은 없고.

벌써부터 이기긴 그른 것 같다고 생각하는 토레이라.

그렇게 생각하니 목표는 오히려 또렷해졌다.

이렇게 그냥 질 바에야, 단 한 번이라도 해보자고.

‘한 번만 뺏어보자.’

백도훈의 공을.

툭-

마침 근처에서 공을 잡는 도훈.

마음먹고 다가서는 토레이라.

딱 한 번만 뺏어보면, 경기는 져도 마음은 편할 것 같은 이 기분.

지금까지 누구도 마음 먹고 달려들어 공을 빼앗아보지 못한 선수는 없었다.

다른 것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공만 빼앗으면 그걸로 족했다.

설마 그것도 못하겠나.

스르륵-

토레이라가 달려들자 현란하게 공을 좌우로 굴리는 도훈.

공에 시선을 꽂은 채 골키퍼같은 자세를 취하며 붙어서는 토레이라.

그런 토레이라의 모습을 보며, 그 의도를 감지하는 도훈.

목숨 걸고 빼앗아 볼 생각일 터.

물론 마음대로는 안된다.

쉬이익-

쉬이익-

왼발을 뻗고, 안되자 오른발을 뻗어보는 토레이라.

그러나 도훈은 쇽쇽 공을 빼며 그 발을 피해냈다.

보이곤 있었다.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발만 더 빠르면, 한 발만 더 깊으면.

그런데 왜 빼앗질 못하는 건지.

하지만 그건, 도훈의 미끼였다.

오히려, 빼앗을 수 있을듯 공을 보여주는 것.

그러자 토레이라의 동작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때릴 수 있을 것 같은 만만한 공을 상대하는 홈런 타자처럼.

게다가 오기로까지 번진 감정이 실린 상태이니 더더욱.

타자의 스윙이 커지듯, 토레이라의 동작도 커졌고 그러니 도훈의 눈에는 다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토레이라는 절대 도훈의 공을 빼앗을 수 없는 것이었다.

‘놀아주는 건 여기까지.’

결국 토레이라의 발이 깊게 들어왔을 때, 도훈은 공을 발 뒤로 접으며 토레이라를 어깨로 막아섰다.

그리고,

타타탓-!

순식간에 속도를 높이며 토레이라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도훈.

완벽한 패배.

순간 토레이라의 꼭지가 돌아 버렸다.

‘에라이, X발X끼야.’

퍼어억-!

뒤에서 도훈의 발목을 걷어차는 토레이라.

아차싶은 느낌도 없었다.

이미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걷어찬 것이니.

“어이!”

“이봐!”

심판의 휘슬보다도 먼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맨유 선수들.

누가 봐도 고의적인 반칙이었으니, 화가 날 수밖에.

곧바로 모여들여 서로에게 고함을 지르는 선수들.

“하지마요, 하지마요.”

그러나, 당사자인 도훈은 선수들을 말리기 시작했다.

분명 가장 화가 날 당사자가 도훈이거늘.

“필요 없어, 그만해요. 괜찮아요.”

도훈은 침착하게 동료들을 말렸다.

“토레이라에게 경고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정리된 뒤.

침착한 얼굴로 동료들을 말리던 도훈이, 무서운 얼굴로 바뀌더니 토레이라에게 다가가 똑바로 얼굴을 가리키며 똑똑히 말했다.

“축구 똑바로 하자.”

미간을 찌푸리며 도훈을 올려다보는 토레이라.

분통이 터졌지만, 토레이라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삐익,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네, 이렇게 경기가 종료 됩니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아스날과 맨유의 경기, 4대0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멘탈리티가 완전히 무너진 아스날은 반격할 힘이 없었다.

결국 맨유의 완승으로 끝난 경기.

“어이, 주장. 오늘도 좋았어.”

껄껄 웃으며 도훈의 머리를 쓰다듬는 포그바.

다른 동료들도 경기를 승리로 이끈 도훈을 칭찬했다.

“땡큐!”

“글로리 글로리 맨유!”

승리의 기쁨을 원정팬들과 함께 나누는 맨유 선수들.

도훈의 실질적 주장 데뷔전은 대성공이었다.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4)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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