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84화 (84/173)
  •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3) >

    지난 시즌, 한 시즌 동안 88골을 기록했던 도훈.

    그 88골은 어느 누구도 범접해보지 못했던 영역이었다.

    신계라는 호날두와 메시도 근접조차 해보지 못했던, 천상계 위의 천상계.

    천외천의 기록을 세웠었던 도훈.

    그러나, 더욱 경악스러운 건 도훈이 그렇게 많은 경기를 소화했던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라이프치히에 있을 땐 챔피언스 리그와 포칼컵을 뛰지 않았었고, 밀란에서도 코파 이탈리아를 뛰지 않았었다.

    그러니 올 시즌, 맨유에서 컵 대회와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경기까지 모두 나서게 된다면 그 마의 기록은 다시 기록의 주인인 도훈에 의해서 깨지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카라바오 컵 32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버튼 알비온의 경기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맨유가 올 해 참가하는 대회는 총 4개였다.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스 리그, 잉글랜드 FA컵, 그리고 카라바오 컵까지.

    사실 카라바오 컵은 그다지 중요도가 높지 않은 대회로, 맨유 정도 되는 팀은 상위 토너먼트 이전까진 선발 명단의 대부분을 유스로 채우거나 하는 정도로 비중을 두는 대회였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주 수중전을 치뤘던 대부분의 주요 선수들은 명단 제외로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강력하게 출전 의지를 불태운 도훈만큼은 나겔스만 감독도 막을 수가 없었다.

    도훈이 원하는 건 휴식이 아니라 야망이었으니까.

    “백도훈 선수가 유스 선수들과 함께 선발 출장 했습니다.”

    “근데, 사실 백도훈 선수도 유스 나이잖아요? 심지어 오늘 명단에서도 어린 축에 속합니다. 7명의 유스 선수들이 출전한 오늘 경기에서도 말이죠.”

    “새삼 백도훈 선수의 나이가 체감이 되네요.”

    1군에서 확고한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도훈이지만, 사실은 유스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아니, 그게 당연한 나이.

    오늘 출전한 유스 선수들 중에는 도훈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도 많았다.

    그러나, 나이에 상관없이 그들에겐 도훈이 무척이나 거대한 선수로 느껴질 수밖에.

    같은 팀으로 뛰는 것임에도,

    “오늘, 잘 하자.”

    “잘해보자. 많은 것들을 배우자.”

    유스 선수들은 설렘을 감출 수 없어 보일 정도였고, 도훈은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캡틴 백의 주장 데뷔전이었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경기였다.

    상대는 3부리그의 팀이었고, 딱히 도훈으로서 크게 힘을 쏟아야 할 경기는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팔에 노란 완장이 채워져 있기 때문일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주장을 맡게 된 도훈은 여타 경기와 다를 바 없이 아니 더 열심히 경기에 임했다.

    “뒤!”

    “아, 미안.”

    “좀 더 집중하자!”

    “오케이!”

    자기보다도 어린 도훈의 한 마디에 정신을 번쩍 차리는 선수들.

    그 날, 버튼 알비온과의 경기에서 도훈은 유스 선수들을 이끌고 5대2 대승을 거두었다.

    결과는 헤트트릭.

    64분만을 뛰고 나온 결과였다.

    ‘괜찮은데?’

    그리고 그 경기에서, 나겔스만 감독은 주장 완장을 달고 뛴 도훈에게서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이미 그라운드 위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도훈이지만, 정식으로 주장 역할을 부여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17살 짜리 1년차 선수에게 주장을 맡긴다는 게 비상식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고정관념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결과일 뿐이지.

    ㆍㆍㆍ

    -백도훈, EPL 파워랭킹 압도적 1위.. ‘당연한 결과’

    시즌 파워랭킹

    1 - 백도훈 2,422

    2 - 케빈 데 브라이너 1,642

    3 ↑ 버질 반 다이크 1,566

    4 ↑ 델레 알리 1,431

    5 ↓ 모하메드 살라 1,299

    -백도훈, 프리미어리그 8월 이 달의 선수상 수상.. ‘새삼스럽게’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활약 여전.. 백도훈, 리그 3경기 평균평점 ‘9.6’

    -맨유 레전드 퍼디난드, 백도훈 극찬.. “이때껏 본 맨유 선수 중 최고, 호날두 미안”.. “초코파이 맛이 그립구나?” 네티즌 반응도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이어지는 도훈의 활약.

    그런 도훈의 활약에 힘입어, 여느 때보다 쾌조의 스타트를 보이고 있는 맨유.

    1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승 0무 0패 9점

    2위 맨체스터 시티 FC 3승 0무 0패 9점

    3위 리버풀 FC 3승 0무 0패 9점

    4위 아스날 FC 2승 1무 0패 7점

    5위 토트넘 핫스퍼 2승 1무 0패 7점

    6위 첼시 FC 2승 0무 1패 6점

    .

    .

    .

    또한 빅6라 불리는 팀들 역시도 이변없이 시즌을 시작하고 있어,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는 벌써부터 역대급으로 치열한 우승경쟁이 치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리그 4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4위, 아스날과 맞붙게 되었다.

    사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두 팀의 대결은 분명 빅 매치가 맞긴 하나, 다른 빅6 팀들간의 맞대결만큼 큰 기대를 모으지는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경기 내용 자체도 지루한 부분이 없지 않았고.

    하지만 이번 대결만큼은 다른 어느 팀들의 대결보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나겔스만 감독 체제, 그리고 도훈이 있는 맨유의 상승세는 물론, 상당히 짜임세 있는 축구를 하는 아스날 역시도 경기력이 우승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요즘이었기에.

    이번 4라운드는 앞으로 우승을 향해 도전할 두 팀의 행보에 있어 큰 갈림길이 될 수도 있는 시합이었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입니다.”

    북런던으로 향한 맨유.

    아스날의 홈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오늘의 경기.

    [아스날 FC (4-3-3) 감독 : 우나이 에메리]

    GK 베른트 레노

    CB 소크라티스

    CB 슈코드란 무스타피

    RB 헥토르 베예린

    LB 세아드 콜라시나치

    MF 그라니트 쟈카

    MF 루카스 토레이라

    MF 메수트 외질

    FW 알렉스 이워비

    FW 피에르 에메릭 오바메양

    FW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다음은 맨유의 라인업입니다. 음, 조금 특이한 게 있군요?”

    “주장이 백도훈 선수네요?”

    “17살 막내가 주장이라니, 재밌네요. 분명히 스몰링이나 에쉴리 영같은 베테랑들이 출전한 맨유입니다만, 백도훈 선수가 주장 완장을 차고 나옵니다.”

    80년대생인 크리스 스몰링, 에쉴리 영, 안토니오 발렌시아 같은 선수들의 앞에 서서 경기장에 입장하는 04년생 도훈의 모습은 참으로 생소했다.

    “하지만 백도훈 선수의 별명이 애늙은이라죠?”

    “실력도 그렇지만, 성격이나 평소 생활도 17살같지는 않다네요. 흔한 요즘 노래 하나를 모른다는군요.”

    그러나, 사실 나이를 떠나 고참인 발렌시아나 영이 느끼기에도 도훈은 어른스러운 면이 많았다. 아니, 오히려 어린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까. 자신들 보다도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여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낄 정도였다.

    특히나 그라운드 위에서라면, 도훈만큼 믿을만한 동료도 없었다.

    때문에 오히려 먼저 나겔스만 감독에게 도훈에게 주장을 주자고 한 것도 현 주장이었던 에쉴리 영이었다.

    “다른 애들이 불만을 가지진 않을까?”

    “다 동의할 겁니다. 신뢰는 우리들이 가장 크니까요.”

    그리하여 정식으로 도훈에게 주장 자리가 넘어간 건 아니지만, 시험의 의미로 이번 경기에서도 주장 완장은 도훈이 차게 되었다.

    10년, 아니 20년 이상 맨유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도훈에게 건네진 주장 완장.

    솔직히 그 완장을 건네 받으면서 도훈은 별 생각 없었다.

    그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

    그러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달까.

    지난 경기 완장을 차고 뛰니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는 걸 느꼈던 도훈이었다.

    뭔가 승리에 좀 더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매 경기 그랬지만, 오늘은 더욱 승리를 하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페어 플레이 부탁합니다.”

    경기 시작 전.

    ‘이 꼬맹이가 주장이라고?’

    도훈과 악수를 나누는 아스날의 주장 메수트 외질.

    도훈의 실력이야 모든 선수들이 인정하는 바지만, 그래도 주장이라니.

    맨유의 위계질서가 의심되는 모습.

    외질은 피식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경기는 안봐도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그러한 경기에선 선수들간의 신경전 역시도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을텐데.

    과연 이 꼬맹이가 그런 경기의 분위기를 컨트롤할 수 있을까.

    주장이라면 그런 것에도 신경을 써야하거늘.

    외질은 그런 쪽으로 맨유를 자극한다면, 경기를 유리하게 풀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쪽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진영을 선택하고 각자 자리로 돌아가는 두 주장.

    원진을 그리고 있는 맨유 선수들은 도훈이 오길 기다린 뒤, 시작 전 각오를 다졌다.

    “준비한 대로만 풀어갑시다. 초반이 중요해요.”

    “오케이.”“훈련한 대로만 하자고.”

    그리고, 도훈의 브리핑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

    “삐이이이익-!”

    오늘 경기야 말로 진정 도훈의 주장 데뷔전이 될 경기.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아스날과의 리그 4라운드가 시작 되었다.

    ‘전반전, 확실하게 차이를 벌린다.’

    오늘 경기에서 맨유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온 것은, 전반전 동안 최대한 큰 점수차로 리드를 잡아내는 것이었다.

    지난 시즌 아스날은 리그에서 20승을 거뒀는데, 그 중 14경기에서 결승골이 후반에 터져 나왔다.

    그만큼 후반에 강했던 게 아스날.

    그렇기 때문에 맨유는 전반전에 차이를 벌려두려 하는 것.

    뻐어어엉-!

    킥 오프와 동시에 전방으로 때려놓고 시작하는 도훈.

    오늘 도훈의 포지션은 4-3-3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상대 중원에서 가장 경계를 해야 할 대상은 물론 외질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루카스 토레이라였다.

    ‘하얀 캉테’ 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수비력과 활동량을 갖춘 토레이라.

    그런 토레이라는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며 맨유 선수들을 괴롭힐 것이었다.

    그러나 도훈은 자신이 토레이라를 묶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토레이라가 자신을 묶어두는 게 아니라.

    파아앙-!

    도훈에게 다시 돌아오는 공.

    아니나 다를까.

    도훈에게 공이 향하는 동시에 루카스 토레이라는 도훈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확실히 넓은 활동량을 자랑하는 토레이라답게, 그는 도훈에게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라 이 곳 저 곳을 폭 넓게 움직이면서도 도훈에게 공이 갈 때면 도훈에게 달라붙는 역할.

    토레이라를 묶어둔다는 것이 이런 의미였다.

    토레이라가 동료들에게 다가갈 틈조차 주지 않는다면, 그의 활동량을 의미 없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니.

    툭-

    공을 잡고 서는 도훈.

    빠르게 다가서는 토레이라.

    스르륵-

    “거칠게 달려 듭니다.”

    키가 작은 토레이라지만, 거칠게 도훈을 밀어 붙이며 적극적으로 발을 뻗어보는 토레이라.

    ‘신경을 긁으라고.’

    토레이라는 경기 시작 전, 외질이 선수들에게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상대의 신경을 자극해라.

    상대를 흥분시키고, 통제할 수 없도록 만든다면 경기가 쉬워질 것이라고.

    ‘내 전문이지.’

    얄밉게도 공을 요리조리 컨트롤하며 토레이라의 발을 피해내는 도훈.

    퍼어억-!

    그런 도훈의 발목을 은근슬쩍 걷어차는 토레이라.

    도훈이 곧바로 중심을 잃고 쓰러지자, 토레이라는 순진한 표정으로 두 손을 바짝 들어 올렸다.

    “삐익-!”

    휘슬을 부는 심판.

    그러나 애초에 토레이라의 수비 스타일이 워낙 적극적인 스타일이었기에, 고의적인 반칙으로 보지는 않았는지 별 다른 경고는 없었다.

    파아앙-!

    빠르게 재개되는 경기.

    그러나 그 뒤로도 몇 번이나.

    토레이라는 도훈에게 달려들다가 파울을 범했고, 도훈은 밀려 넘어지거나 발등을 밟히는 등 화가 날만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잘 하고 있어.’

    흑막처럼 조용히 토레이라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외질.

    역시 토레이라는 똑똑한 녀석이었다.

    팀에 필요한 플레이를 기가 막히게 수행해주는 녀석.

    이대로 계속해서 경기 흐름을 끊으면서 간다면 아스날로써는 나쁠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게 있었다.

    “...”

    도훈의 신경을 긁으려 계속해서 교묘하게 달려들었던 토레이라였다.

    도훈이 요리조리 피해가면 슬쩍 뒷다리를 걸어 버리거나, 공이 이미 떠났음에도 괜히 한 번 밀어 버리면서.

    짜증은 도훈이 나야할 상황이었다. 누가 봐도.

    그런데 왜,

    ‘왜 내가 짜증이 나지?’

    토레이라의 심기가 점점 불편해지고 있을까.

    반칙은 토레이라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백도훈, 화려한 발재간!”

    “토레이라가 정말 고생합니다, 아이고. 또 반칙이네요. 저건 고의적인 반칙이라기 보다, 백도훈 선수의 움직임이 워낙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응이 늦는 거에요.”

    토레이라가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도훈은 공을 잡으면 무조건 토레이라가 달려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돌파를 위한 드리블보다, 공을 빼앗기지 않는 발재간을 부리며 토레이라를 끌여 들였고 반칙을 얻어냈다.

    당한 게 아니라 얻어냈다는 것이었다.

    ‘개빡치네..’

    점점 감정이 실리는 반칙.

    먼저 짜증 게이지가 차오르고 있는 건 토레이라였다.

    그리고 그것은, 토레이라가 원래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뻐어어엉-!

    “잘 봤네요.”

    “반대편으로 크게 패스를 엽니다. 공간이 많이 열려 있습니다!”

    어느 새 토레이라는 도훈에게 착 달라 붙어 있었다.

    원래라면 폭 넓게 움직이며 여러 맨유 선수들을 방해해야할 토레이라가.

    토레이라를 제외하면, 딱히 맨유 선수들에게 방해가 되는 중원이라고 할 수 없는 아스날.

    도훈은 토레이라의 압박을 다시 한 번 피해내며 반대편의 린가드에게 롱 패스를 뿌렸고, 넓은 공간에서 린가드가 편하게 그 패스를 받아낸 뒤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겔스만 감독은 다시 한 번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거지.’

    막내에게 주장을 준 자신의 행동은 틀린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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