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1) >
“백도훈.”
수상자의 이름이 발표되자, 도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옆 자리에 앉은 데 브라이너, 네이마르 등과 악수를 나눈 도훈은 무대로 향했다.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도훈에게 건네지는 올 해의 선수 트로피.
도훈은 트로피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 소감이 어떠신가요?”
“네, 일단 감사합니다.”
흐뭇한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청중들에게 이야기하는 도훈.
솔직히, 올 해만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던 시즌은 없었다.
메시도, 호날두도, 네이마르도.
데 브라이너나 살라, 음바페 마저도 도훈의 경쟁자가 될 수는 없었으니까.
모두가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고, 그 주인공이 아직도 앳된 얼굴의 소년이니 다들 따뜻한 미소로 도훈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도훈은 유창한 영어로 수상 소감을 이어 나갔다.
“저한텐 아주 뜻 깊은 상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받는 올 해의 선수상이고, 그 동안 해왔던 노력이 인정받는 기분이라 뿌듯하네요. 누군가는 제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이 순탄하기만 했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제가 느끼기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노력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 결실을 이렇게 맺게 되어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박수가 터져 나오는 시상식장.
그리고 그 모습을, 새벽 잠도 설친 채 티비 너머로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
“...”
아버지는 말 없이 도훈의 모습을 바라보다, 결국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다.
나 참, 이 나이에 눈물을 보인다니.
그러나 한 분야의 세계 최고가 된 자식을 보는 어느 부모가 울컥하는 마음을 감출 수 있으랴.
“어.. 시작했어?”
“어, 어.”
잠이 막 깬 얼굴로 방문을 열고 나오는 소윤에 황급히 눈가를 훔치는 아버지.
“오빠야? 오빠가 탄거야?”
“응. 오빠가 탔다. 오빠가 세계 최고의 선수상 받았다.”
“오.. 쩌는데..”
흐뭇하게 티비를 바라보는 아버지와 동생.
가족들에게도 가슴 벅찬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잠깐 한국어로 이야기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무너질뻔한 가정을 지켜내느라 고생하신 아버지, 어릴 때부터 혼자 큰 거나 다름 없는 동생. 저희 가족들, 정말 고생 많았어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으니 걱정 말고 행복하게만 살자고요.”
“짜식이..”
결국 딸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마는 아버지.
아버지 앞에선 잘 웃지 않는 동생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스승님께 감사 드립니다. 당신의 축구가 세계 최고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박수가 터져 나오는 시상식장.
지난 시즌 최고의 선수는, 백도훈이었다.
ㆍㆍㆍ
-[1보] 백도훈,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피파 올 해의 선수상 수상
ㄴ주모! 셔터 내리고 오늘 장사접어!
ㄴ진짜 대단하다는 말 밖엔.. 이제 올 해 발롱도르까지 가즈아~~!
-백도훈, 수상 소감 중 언급한 스승은 누구?
ㄴ차범근 아님? 더 찬스 때 차범근이 백도훈 뽑았잖아 ㅋㅋ
ㄴ근데 그 전에 축구 가르쳐준 사람 얘기하는 것 같은데. 백도훈이 축구 시작한 지 몇 달만에 더 찬스 통과했는데 분명히 그 기간 동안 축구 가르쳐준 스승이 있을 듯. 누군지 밝히면 그 축구교실 대박날텐데 누구지.
-일본 언론 “일본 무너뜨린 백도훈, 올 해의 선수상 수상.. 아시아 품격 높여”
ㄴ이럴 때만 아시아로 묶네 ㅋㅋㅋ 지들은 탈아시아라며 개쳐발려놓고
ㄴ진짜 간만에 개속시원한 한일전이었음.. 백도훈 선수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도훈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역시 한국은 난리가 났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수상이 확정되고 트로피를 건네받는 그 모습이 영상으로 송출되니 축구팬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소한 장면에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만 나이로 17살인 한국 선수가, 피파 올 해의 선수상이라니.
일본도 너무나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도훈의 수상소식을 대서특필하며 아시아의 자존심이니, 세계 레벨로 향하는 아시아 축구라느니 떠들어 댔으니까.
일본은 물론 전 아시아가 열광했다.
그렇게 도훈이 유명해지고, 이제 도훈은 단순한 축구 선수가 아니게 되었다.
스타이자 아이콘이 되어가는 도훈.
유명한 축구 선수는 축구뿐만이 아니라 할 게 많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영국 현지에서 판매되는 음료수 광고를 촬영한다든가, 아니면 오늘처럼 축구 예능쇼에 초대를 받아 촬영을 한다든가.
솔직히 처음엔 이런 시간들이 귀찮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이런 걸 할 시간에 수련이라도 하나 더 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그러나 영국이나 이탈리아, 심지어 독일이나 다른 유럽에 나와 살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이 도훈의 유창한 외국어와 당당한 모습을 보며 많은 힘을 얻었고, 도훈 덕분에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는 편지들을 받아보면서 도훈은 생각을 고쳐 먹었다.
이건 단순히 비즈니스가 아니었다.
이런 활동들 덕분에 누군가는 삶이 바뀔 정도의 영향력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영향력을 최대한 좋은 곳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도훈이었다.
“자, 오늘 찾은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입니다.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하죠. 환영합니다, 올 해의 선수 백도훈 선수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영국의 한 축구 쇼에 출연하게 된 도훈.
인피니티 챌린지라는 이름의 이 쇼는 프리미어리그의 팀들을 돌아다니며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 과제를 선수들이 수행하는 컨셉의 쇼로 이미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쇼였다.
“오늘은 정말 쉬운 촬영이 될 것 같아요. 최소한 저번 주처럼 2시간이나 늦게 퇴근하는 일은 없겠죠. 오늘 과제에 도전해주실 선수가 백도훈 선수니까요.”
도전에 성공하면 천만원을 소아암 환우에게 기부할 수 있다고 하니, 도훈도 흔쾌히 출연에 응했다.
자신의 재능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하고 뿌듯한 일.
“그럼 오늘의 도전 과제입니다! 바로, 하프라인에서 골 라인에 세워져 있는 양동이 안에 골인 시키기!”
헛웃음을 터뜨리는 도훈.
말도 안되는 도전 과제가 컨셉인 쇼답게 오늘의 도전 과제도 헛웃음이 나올만 했다.
하지만, 사실 도훈이 헛웃음을 터뜨린 건 과제가 너무 어려워 보여서가 아니었다.
“좀 걱정스러운 게 있는데..”
“뭐죠? 설마 약한 소리를 하시는 건 아니죠? 과제가 너무 어렵나요?”
“그게 아니라.. 이거 예능이잖아요?”
“그렇죠.”
“방송 분량이 안 나올 것 같은데요?”
“예?”
도훈의 말에 이번엔 사회자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쉽단 말씀입니까?”
“한 번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와우. 대단한 자신감이신데요.”
“정말 한 번에 성공해도 됩니까?”
“물론이죠. 저희야 환영입니다. 대신 토크를 좀 더 길게 해야겠죠? 하하.”
도전을 외치며 하프라인에 공을 놓고 서는 도훈.
그리고 저 멀리 골 라인에 작은 양동이 하나가 세워져 있다.
그냥 골대 안에 공을 넣기도 쉽지 않은 거리.
그러나 도훈은 자신만만하게 한 번에 성공시켜 버리겠다고 공언했고,
뻐어어어엉-!
슈우우우웅-
터어어엉-!
“...”
그 주의 방송 분량은 그걸로 끝이었다.
“할 말이 없네요. 여러분. 제 모든 걸 걸고 말씀 드립니다. 어떠한 편집도 없었습니다. 그냥, 단 한 번만에 넣어 버리셨다고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회자.
“천만원이 제 이름으로 기부되는 거죠?”
“예, 맞아요.”
공 한 번 차고 천만원을 기부하게 된 도훈.
그러나 도훈은 그걸로 모자랐는지, 촬영이 끝난 뒤 사비로 1억원을 더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훈은 알고 있었으니까.
이 돈이 지금의 자신에겐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누군가에겐 정말 큰 힘이 될 수 있는 돈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정말 대단한 친구네.”
“역시 최고의 선수가 될 자질이 있는 멋진 남자네요.”
방송 관계자들은 도훈의 마음씨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ㆍㆍㆍ
“나도 한 번 들어보면 안되냐. 야, 사진 찍어줘.”
올 해의 선수상 트로피를 가지고 돌아온 올드 트래포드.
그 트로피를 들어보려고 동료들이 줄을 섰다.
찰칵-
“오케이, 내 차례.”
마치 자신의 것인냥 트로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장난기 넘치는 동료들.
오늘 굳이 이 트로피를 챙겨온 이유는, 구단에서 경기 시작 전 짧게 특별 시상식을 해주겠다고 했기 때문.
구단으로서도 정말 오랜만에 최고 선수를 배출했기 때문인지 구단주부터 회장까지 모두 신이 난 상태였다. 따지고 보면 맨유에서의 활약은 1도 반영되지 않은 트로피였음에도.
“마지막에 이름 호명되면 트로피 들고 나오면 돼.”
“아이 참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선수 입장을 위해 늘어선 선수들.
도훈은 트로피를 들고 열의 맨 뒤에 섰다.
그리고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하고,
“오늘은 특별히 우리 구단의 자랑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모두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2021 피파 올 해의 선수, 백도훈입니다!”
짝짝짝짝짝-
장내 아나운서가 도훈의 이름을 크게 외치자 관중들이 기립박수로 도훈을 맞이했다.
여기저기서 보이는 태극기와 도훈의 응원 문구들.
이 곳이 올드 트래포드인지, 상암 경기장인 지 헷갈릴 정도.
동료들 역시 반원을 그리고 서서 박수를 보내왔고.
그리고, 트로피를 들고 그라운드로 입장하는 도훈.
도훈은 트로피를 관중들에게 들어 보이며 박수에 화답했다.
“...”“...”
그 모습을 지켜보는 원정팀, 사우스햄튼 선수들은 괜스레 위축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특히나,
‘왜 나한테 그러냐..’
며칠 전 도쿄에서 참사를 겪었던 일본 국가대표이자 사우스햄튼의 수비수 요시다는 왜 자기한테만 그러는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자, 하나, 둘, 셋.”
찰칵-
그리고 맨유 선수들의 가운데 서서 트로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도훈.
참, 귀찮았다.
팬들이 자랑스러워 할 거라니까 하긴 한다만, 뭐 이런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유난을 떠나, 도훈은 그런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것보다 더 큰 상들을 앞으로 쓸어 담을텐데.
그럼 그럴 때마다 이런 걸 할 거란 말인가.
벌써부터 귀찮은 도훈이었다.
사실 맨유 구단에서 준비한 건 경기 전 잠깐의 셀레브레이션 정도였다.
그러나, 도훈이 준비한 건 90분짜리 쇼였다.
그 날 사우스햄튼과의 홈 경기.
도훈은 90분 동안 자신이 왜 올 해의 선수상을 받은 선수인 지를 팬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트로피를 보여줌으로써가 아니라, 90분 동안의 플레이로써.
“백도훈, 계속해서 치고 들어갑니다!”
“요시다를 제쳐내고, 슈우웃-!”
“고오오올-!”
전반 12분만에 중앙을 부수고 들어가는 완벽한 드리블로 선취 득점을 올리는 도훈.
그걸 시작으로, 도훈은 지난 A매치의 활약을 그대로 이어가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백도훈. 압박이 강합니다.”
“아, 부드럽게 빠져 나오는 것 보세요. 과연 백도훈!”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도훈의 공.
사우스햄튼의 선수들로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상대할 수가 없었고,
뻐어어엉-!
“대지를 가르는 패스!”
“루카쿠, 슈우웃! 고오올-!”
맨유 선수들은 도훈과 함께 뛰는 것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골을 넣자 마자 도훈을 가리키며 달려오는 루카쿠.
꿀 패스를 받아 먹은 루카쿠의 얼굴은 어린아이 같은 웃음이 가득.
“축구 도사구만..”
“쉽다, 쉬워! 이게 맨유지!”
팬들 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박수를 쳤다.
그저 최고의 선수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
세계 최고의 선수와 함께 다시 세계 최고의 팀으로 도약할 생각에 신이 날 뿐이었다.
그 날 경기는 5대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승리로 끝이 났다.
도훈은 3골,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프리미어리그에 온 지 두 경기만에 첫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너, 갈 거냐?”
“당연히 가야지. 모든 경기를 볼거야.”
“나도 거긴 진짜 가기 싫은데, 가야 할 것 같다.”
만족스럽게 경기를 지켜본 뒤, 팬들은 경기장을 빠져 나가며 벌써부터 다음 경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최근 몇 년간, 애증으로 응원해왔던 것과 달리 이젠 그저 경기 자체가 기다려지는 맨유 팬들.
다음 경기는 스토크 시티 원정.
스토크 원정은 프리미어리그의 어느 팀에게나 녹녹치 않기로 유명했다.
스토크의 날씨 자체가 워낙 변덕스럽고, 홈팬들의 열기도 뜨겁기 때문. 또한 스토크 시티가 펼치는 축구는 어느 팀과 맞붙어도 늪처럼 빠져들게 되는 스타일.
때문에 팬들조차도 스토크까지 원정 응원을 가는 것을 꺼려 했었다.
그렇기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스토크 검증이라는 소리도 나오는 것이었고.
“너 그 말 알고 있어? 스토크 검증.”
“예, 들어 봤어요.”
“어떻게 생각해?”
포그바가 도훈에게 묻자 도훈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웃기는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외쳤던 그 웃기지도 않는 검증을 도훈이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 검증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뜻이었다.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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