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81화 (81/173)

< 도쿄 대공습 (2) >

“삐익, 삐이이익-!”

“전반전 끝났습니다! 아, 대단한 전반전이었어요, 우리 선수들!”

“4대0, 완벽하게 전반전을 마무리하는 대한민국입니다. 화끈한 공격력에 일본이 정신을 못차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전반전이 끝난 후.

밝은 분위기의 한국과 달리 일본 대표팀은 엄숙한 표정으로 드레싱 룸에 모였다.

대위기.

전반전 그대로 후반전에 임했다간, 정말로 6점차 이상의 대패를 하는 수모를 겪을 지도 모르는 일.

그렇게 되면, 아시아 넘버원이라고 자부하던 자신들이 플레이오프라는, 최후의 최후까지 가버리고 말게 된다.

절대로 그런 일만은 있어서는 안됐다.

‘이 말을 하는 게 맞는건지..’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지는 모리야스 감독.

선수들에게 해줘야할 것 같은 말이 있는데, 이 말을 감독이란 사람이 해도 되는 건지 모리야스 감독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어떻게 감독이 돼서 선수들에게 6점차 이상으로 지지만 말아달라고 말을 할 수 있겠어..’

결국 모리야스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모리야스 감독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현재로써는 그게 최선이라는 것을.

‘플레이오프만 가지 말자.’

모두가 입 밖으로 내놓을 순 없었지만, 후반전 임하는 각오는 그것이었다.

지금으로썬, 백도훈의 한국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결연한 얼굴로 후반전에 나서는 일본 선수들.

아시아 넘버원은 고사하고 A조 2위라도 하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래도 아직 두 골의 여유는 남아 있었다.

그걸 여유라고 불러야 할 지는 의문이었지만.

“백도훈, 중앙에서 공을 잡습니다. 오늘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고 있는 백도훈.”

“소속팀처럼 붉은 유니폼이 아주 잘 어울리네요. 백도훈 선수의 국적이 대한민국이라는 게 이렇게 든든합니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고 전방을 살피는 도훈.

그런 도훈의 모습을 보며 두려움 마저 느끼는 일본 선수들.

다가갈 수가 없었다.

전반 초반까지만 해도 패기롭게 공을 빼앗으러 달려갔으나, 몇 번 호되게 당하고 나선 접근을 할 수가 없었다.

다가갔다간,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처참히 벗겨져 버리고 마니까.

“둘러 쌉니다.”

“다가가지는 못하죠.”

때문에 중앙에서 공을 잡은 도훈에게서 거리를 둔 채 빙 둘러싸는 일본 선수들.

다수가 혼자를 포위한 상황이거늘.

왜 가장 여유로워 보이는 건 그 혼자, 도훈인 것인지.

그러나, 그 여유로움이 쉬엄쉬엄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경기 전 선언했던 역사상 최악의 패배 선물.

4대0으론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스르륵-

파아앙-!

“어엇!”

“사포!”

자신을 두고 포위망을 친 상대들.

그 포위망을 빠져 나가기 위해, 도훈은 뒷발로 공을 띄우며 달려갔다.

곧바로 막아서는 상대 선수들.

머리 위를 떠서 지나가는 공을 건드릴 순 없기에, 사포를 막는 정석은 몸으로 몸을 막는 것.

지금도 그랬다.

그러나,

‘약하네.’

새 시즌을 준비하며 만들었던 몸이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도훈은 어깨를 집어넣는 상대를 어깨로 밀쳐내며 활로를 뚫었고,

툭-

자신이 띄웠던 공을 다시 잡아냈다.

포위망을 가볍게 뚫고 나오는 도훈.

순식간에 5명 가까이 되는 선수들이 허수아비가 되는 모습에, 일본 관중들은 다시 한 번 할 말을 잃었다.

타타탓-!

“치고 달립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스피드 경쟁.

사우스햄튼의 요시다를 앞에 두고 공을 길게 차놓고 달리는 도훈.

이 스피드에 전반 내내 쩔쩔 맸던 일본 수비였다.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이를 악 물고 공을 향해 달려가는 요시다.

그러나, 요시다를 앞질러 가는 도훈의 얼굴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빠릅니다!”

주력으로 압도하는 그 모습에, 적임에도 일본 관중들은 원초적으로 돋아 오르는 소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쯤되니 오히려 경기장의 분위기는 바뀌고 있었다.

졸전을 펼치는 일본 선수들을 처절하게 응원하기 보다, 오히려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 백도훈이라는 선수에 대한 솔직한 감탄이 도쿄 국립 경기장을 메우기 시작한 것.

솔직히 몇몇은 처음부터 그랬다.

백도훈은 지금 유럽에서 가장 활약이 뛰어난 월드 클래스의 선수.

그런 선수를 도쿄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솔직한 말로 도훈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일본 관중도 절대 소수는 아니었다.

“백도훈!”

박스 왼쪽에서 공을 잡은 도훈.

뒤늦게 달려와 앞을 가로 막으려는 요시다.

그러나 도훈은 그런 요시다를 놀리듯 뒤쪽으로 한 번 접은 뒤, 박스 중앙을 향해 공을 툭 차놓았다.

관성의 법칙에 의해 몸을 제어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요시다.

요시다를 제쳐낸 도훈은 지체할 것 없이 반대편 포스트를 보고 오른발로 감아 때렸다.

뻐어어어엉-!

슈우우우웅-

철썩-!

“와아...!”

“이건.. 멋진 골이다..”

그렇게 도훈의 네 번째 골이 들어가는 순간.

경기장엔 적막이 찾아드는 대신, 솔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머리론 참담하고 암담한 심정이었지만.

몸은 솔직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소름이 돋는 경기력.

“백도훈...”

“아시아에서 가능한 레벨이란 말인가..”

경기 내내 부르던 응원가의 구호, 아시아 넘버원 울트라 니폰.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그 구호를 선뜻 외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아시아 넘버 원인 자가, 붉은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었으니.

5대0이 된 경기.

그리고 남은 시간은, 여전히 35분 가량.

이대로 패배하더라도 좋다.

1골만 더 허용하지 않는다면.

자존심 따위 다 버려도 좋으니 이 정도만 하고 적당히 끝내줬으면 하는 게 일본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한국은 일본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게 목표였다.

여기까지 온 이유는, 4골차로 벌어졌음에도 템포를 늦추지 않고 5번째 골까지 넣었던 이유는 6번째 골을 넣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멈출 리가 없었다.

오히려 더 하면 더 했지.

“다시 뜁니다! 손흥민!”

오른쪽 사이드를 파고드는 손흥민.

고삐를 늦추지 않는 한국 선수들을 원망하며 따라붙는 일본 선수들.

뻐어어엉-!

강한 발목 힘으로 러닝 크로스를 올리는 손흥민.

그 크로스는 일본 선수들의 머리를 넘어 박스 반대편으로 향했고,

파아앙-!

그 크로스를 도훈이 가슴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멋지게 몸을 뒤틀며,

뻐어어엉-!

발리 슈팅.

슈우우웅-

철썩-!

또, 또!

또 다시 득점에 성공하는 도훈.

그 슈팅은 일본을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리는 골이었다.

절망.

무력함.

아무것도 못하고 얻어 맞기만 할 수밖에 없는 참담함만이 가득한 도쿄 국립 경기장.

6대0.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점수차.

역대 최악의 한일전이 되어가고 있는 경기에, 참담함을 감출 길이 없는 일본 선수들.

이젠 모 아니면 도로 공격에 나서야 하는 일본이었다.

“사카이, 빈 공간을 찾아 봅니다. 아, 기습적으로 크로스!”

“김민재의 헤딩 처리! 높이로는 안되죠!”

그러나 허겁지겁에 가까운 공격이 제대로 될 리 만무.

급하다 보니 원래의 장기인 잘게 썰어 들어가는 패스보다 긴 패스를 통해 한 번에 연결을 시도해보지만, 중앙의 높이도 한국이 우위였다.

수비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이렇다 할 강점을 보여주지 못하는 일본.

전체적으로 완벽히 압도 당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플레이오프로 가게 되는 상황.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점을 따라가야만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몰랐다.

한 골을 만회할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왜냐면, 도훈은 아직도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으니까.

“도안 리츠, 슈웃-! 아, 든든합니다 조현우!”

“역습 올라 가나요!”

일본 기자들이 도훈의 라이벌로 추앙하고 싶어하던 도안 리츠의 슈팅을 가볍게 잡아낸 조현우 키퍼가 곧바로 강하게 공을 던졌다.

빠르게 올라가는 역습.

조현우가 던진 공을 받은 황인범이 볼 것도 없이 전방으로 스루 패스를 찔러 넣었고, 그 패스가 대지를 가르며 도훈에게 향했다.

그리고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은 도훈은 모든 일본 선수들을 뒤로 한 채 무인지경으로 달려갔고,

타타탓-

툭-!

모든 일본 선수들을 그 자리에 무릎 꿇게 만드는 칩슛으로,

투웅-

출렁-!

자신의 다섯번째 골이자 팀의 일곱번 째 골을 완성시켜 버리고 말았다.

“삐익, 삐이익, 삐이이익-!”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을 때.

휘슬이 울리기 이미 몇십 분 전부터 가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오히려 일본 관중들의 반응은 담담했다.

“이런 실력이라면, 플레이오프로 가는 게 맞겠지.”

“오늘부로 일본을 응원하는 대신 맨유를 응원해야겠군.”

8대0.

경기는 8대0,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도훈은 6골, 더블 헤트트릭을 기록해 버렸고, 그 어느 선수들과도 차원이 다르다는 걸 똑똑히 보여줬다.

이제 일본의 그 누구도 도훈에게 라이벌이란 칭호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으며, 아시아 넘버원이라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이 날의 대참사를 설명할 길이 없으니.

“역사상 가장 압도적으로 일본을 무찌른 우리 대한민국 대표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아, 카타르 월드컵도 믿고 지켜보면 되겠어요. 백도훈 선수, 정말 멋진 선수입니다.”

이 날의 경기로 카타르 월드컵 진출을 확정짓는 대한민국.

그리고 플레이오프로 진출을 확정짓는 일본.

도훈이 일본에게 역대 최악의 한일전을 선물하는 순간이었다.

ㆍㆍㆍ

“이 쪽으로.”

일본과의 경기를 끝내고 잠시 한국에 들러 하루 휴식을 취한 도훈은, 곧바로 런던으로 향했다.

향한 곳이 맨체스터가 아닌 런던인 이유는, 꼭 참석할 것을 부탁받은 행사가 있기 때문.

바로 더 베스트 피파 풋볼 어워즈 2021.

지난 시즌을 망라하는 시상식이 런던에서 열리기 때문이었다.

도훈이 관계자로부터 필참할 것은 부탁받은 이유는, 뭐 당연했다.

노미네이트될 수 있는 모든 부문에 도훈이 이름을 올렸기 때문.

그리고 그 대부분에서 도훈의 수상이 유력한 상황이니, 주인공인 도훈이 빠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시상식에 참석한 도훈은 레드카펫을 밟으며 입장해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포토타임을 갖은 뒤,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마련된 자리에 앉아 시상식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거행되는 시상식.

그리고, 도훈이 후보로 오른 부문들의 시상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사람들을 놀라게 한 멋진 골을 선정하는, 푸스카스 상의 시상이 있겠습니다. 먼저, 후보부터 보시죠.”

중앙의 스크린을 통해 소개되는 후보들의 골 장면.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여러 선수들의 골 장면들이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AC밀란의 유니폼을 입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하고 있는 도훈의 모습이었다.

“와우..”

“이거 아니겠어?”

멋진 오버헤드 킥으로 골망을 흔드는 영상 속 도훈의 모습에 탄성이 이는 시상식장.

도훈도 자신의 영상을 보며 슬쩍 미소를 흘렸다.

‘내가 봐도..’

잘 차긴 했다.

영상을 보니 그 때의 짜릿한 기분이 다시 느껴지는 듯.

“그럼, 바로 발표하도록 하죠. 2021 피파 어워즈 푸스카스 상, 수상자는... 백도훈 선수입니다.”

수상자가 발표되고,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 박수를 치는 다른 후보들.

그리고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상대로 향했다.

지난 시즌을 통틀어, 가장 멋진 골을 넣은 선수로 도훈이 선정된 것.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시상이 진행될수록, 도훈은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보다 무대로 향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월드 베스트 11입니다. 각 포지션별로 선정된 11인의 명단을 발표하겠습니다.”

월드 베스트로 선정된 선수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GK 다비드 데 헤아

DF 지오르지오 키엘리니

DF 레오나르도 보누치

DF 호르디 알바

DF 조슈아 키미히

MF 에당 아자르

MF 미랄렘 피아니치

MF 케빈 데 브라이너

F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FW 리오넬 메시

FW 백도훈

재밌는 건, 월드 베스트로 뽑힌 11명의 선수들 중 지난 시즌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챔스 우승팀의 선수는 도훈뿐이었다는 것.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만큼, 도훈이 얼만큼 밀란의 멱살을 잡고 우승을 시킨 건지 알 수 있는 증거였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시상입니다. 정말 멋진 활약을 펼쳤던 이 선수들 가운데, 지난 시즌을 대표할 수 있는 한 명의 선수가 수상을 할텐데요. 피파 더 베스트, 올 해의 선수상입니다. 먼저, 최종 후보로 뽑힌 3인의 명단을 보시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 포르투갈)

-리그 우승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리그 35경기 34골 6도움 득점 2위

-챔피언스 리그 13경기 17골 득점 2위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

-코파 델 레이 우승

-리그 36경기 41골 12도움 득점왕

-챔피언스 리그 10경기 8골 3도움

백도훈(라이프치히, AC밀란, 대한민국)

-챔피언스 리그 우승

-분데스리가 16경기 28골 7도움 득점왕

-세리에 A 16경기 42골 9도움 득점왕

-챔피언스 리그 7경기 18골 4도움 득점왕

-도쿄 올림픽 금메달

“이렇게 보니.. 다들 수상자를 예상하실 수 있으실 것 같은데요. 뜸 들일 것 없겠네요. 네드베드씨? 수상자를 발표해 주시겠습니까?”

“발표하겠습니다. 피파 더 베스트, 올 해의 선수입니다. 백도훈 선수입니다.”

당연하게도, 수상자는 도훈이었다.

< 도쿄 대공습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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