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 대공습 (1) >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파울로 벤투는 아직도 그 날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아마추어라던 어린 소년이 자신이 지도하고 있던 국가대표 선수들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리는 그 장면을.
“이름이?”
“백도훈이라고 하는데..”
그 때부터 뇌리에 박힌 이름.
때문에 1년이 지난 지금, 도훈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어 돌아왔어도 벤투 감독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한 눈에 알 수 있었으니까.
“첫 성인 국가대표 발탁인데요.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가 되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
“뭐 최연소라는 타이틀에 대해서는 기분 좋게 생각하고 있고요. 다만 그것 보다는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이렇게 붉은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는 게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 국가대표 경기를 일본과 치르게 되셨습니다. 이번 일본전에 임하는 각오 한 말씀?”
“선배님들이나 코치님들에게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한국 국가대표에게 일본이라는 상대가 어떤 의미인지, 한일전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경기인지. 말씀들을 들으며 절대 져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고요. 뭐, 내일 역대 최악의 경기를 일본에게 선물할 생각입니다.”
도훈의 당돌한 발언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기자단.
그러나 몇몇 기자들은 도훈의 이야기를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일본 기자들이었다.
“산카이 스포츠의 마츠다입니다. 현재 아시아에서 피파 랭킹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입니다. 48위의 한국보다 9계단 높은 39위인데요. 어떻게 최악의 경기를 선물하겠다는 건지?”
도훈은 통역의 말을 듣고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일본어는 공부하지 않았기에.
“피파 랭킹이 중요한가요. 중요한 건 과연 일본 수비가 절 막을 수 있을까 하는 것 같은데.”
다시 터져 나오는 웃음.
“그럼, 이번 일본전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지?”
“딱히 따로 준비한 건 없습니다. 그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몸관리를 하고 있고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표정이 굳는 일본 기자들.
그러나 거기서 멈출 수 없다는 듯, 기자들은 다시 질문 세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닛산 스포츠의 우메다입니다. 같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고 있는 도안 리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죄송합니다. 누군지 잘 모르겠습니다.”
“에? 어떻게 라이벌 도안 리츠를 모른단 말입니까?”
일본 기자의 말에 이번엔 폭소가 터져 나왔다.
라이벌이라니? 대체 누구의?
“그럼 레알 베티스의 이누이 다카시는?”
“모르겠습니다.”
“헤타페의 시바사키는요!”
“모릅니다.”
“뉴캐슬의 무토 요시노리는?”
“모르겠네요.”
어깨를 으쓱이며 이야기하는 도훈.
솔직히 말하면 정말 몰랐다.
시무룩해지는 일본 기자들.
뭐라도 말이라도 해주면 ‘백도훈, 도안 리츠 지켜보고 있다!’ 라는 식으로 잘 써볼 생각이었거늘.
그렇게 인터뷰는 일본 기자들에게 상처만 남은 채 마무리가 되었다.
ㆍㆍㆍ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도쿄 국립 경기장입니다.”
한일전의 날이 밝았다.
경기가 펼쳐지는 도쿄 국립 경기장은 오후 5시임에도 30도가 넘는 무더위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1년 뒤 월드컵이 펼쳐질 카타르 역시 더위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에 미리 경험을 해둔다 생각하면 편할 일이었다.
경기장에 나와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의 표정은 상당히 결연해 보였다.
조 2위인 일본으로서는 대패를 하게 된다면 3위로 떨어질 수도 있는지라 베스트 멤버로 많은 준비를 해온 것이 당연했다.
반면 한국은 3위로 떨어질 확률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굳이 힘을 줄 필요는 없었던 입장.
그러나,
“플레이오프로 보내버리자.”
경우의 수 상으로 6점차 이상의 승리시 일본을 플레이오프로 보낼 수 있다는 건 한국 선수들에게 무엇보다도 큰 동기부여가 되고 있었다.
재밌는 일이지 않은가.
일본을 나락으로 보내 버릴 수 있다는 건.
“선수 명단부터 살펴 드리겠습니다. 먼저, 일본 국가대표팀입니다.”
[일본 (4-2-3-1) 감독 : 모리야스 하지메]
GK 히가시구치 마사아키(감바 오사카)
CB 요시다 마야(사우스햄튼)
CB 미우라 겐타(감바 오사카)
LB 나가토모 유토(갈라타사라이)
RB 사카이 히로키(마르세유)
MF 히라구치 겐키(하노버96)
MF 시바사키 가쿠(헤타페)
MF 도안 리츠(웨스트햄)
MF 미나미노 타쿠미(라이프치히)
MF 나카지마 쇼야(아인트호벤)
FW 오사코 유야(베르더 브레멘)
“스타팅 라인업 11명 중 9명이 유럽파입니다.”
“전력은 상당히 탄탄합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고 있죠. 하지만 문제는, 사우스햄튼과 감바 오사카 라인으로 이뤄진 중앙 수비가 우리의 백도훈 선수를 막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죠.”
“대한민국의 라인업입니다.”
[대한민국 (4-4-2) 감독 : 파울로 벤투]
GK 조현우(세레소 오사카)
CB 김민재(텐진 취안젠)
CB 권경원(텐진 취안젠)
LB 김진수(전북 현대)
RB 김문환(전북 현대)
MF 이재성(홀슈타인 킬)
MF 황인범(묀헨 글라드바흐)
MF 황희찬(함부르크SV)
MF 권창훈(올림피크 리옹)
FW 손흥민(토트넘 핫스퍼)
FW 백도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한민국도 해외파로 이루어진 공격진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손흥민, 백도훈 이 오늘의 투 톱은 솔직히 말해 아시아가 아니라 세계 최고라고 봐도 무방해요.”
“과연 오늘 이 도쿄 국립 경기장에서도 유럽을 폭격한 그 가공할 공격력을 보여줄 수 있을 지.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양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한일전이 시작 되었다.
지난 월드컵 아시아 유일의 16강 일본.
현재까지도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피파랭킹을 마크하고 있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기술적인 축구를 구사한다고 평가받는 팀.
파아앙-
파아앙-!
“연결이 좋습니다, 일본. 나카지마 쇼야, 도안 리츠에게.”
빠른 패스 연결로 경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하는 일본.
확실히 서로의 위치를 빠르게 파악하고 패스를 돌리는 게 잘 훈련이 되어 있는 듯한 모습들이었다.
다만,
“황희찬, 강하게 붙어 줍니다!”
“압박 좋아요. 더 강하게 밀어 붙여야죠!”
그런 일본을 상대로 초반부터 강하고 빠르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는 한국.
“삐이이익-!”
“네, 지금은 반칙입니다. 하지만 좋아요. 쉽게 쉽게 패스를 넘기도록 놔두면 안됩니다. 황희찬 선수, 잘 했어요.”
반칙을 불사하고 일본 선수들을 강하게 다루는 선수들.
예쁘게 공을 차려는 일본을 피지컬로 강하게 부딪히며 압박을 가하는 건 한국의 전통적인 상대법.
곧바로 일본 관중들의 야유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식하게 밖에 못하는 한국!”
“기술은 우리가 아시아 넘버 원이다! 페어하게 플레이해라, 한국!”
울트라 니폰이라 불리우는 일본팬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항상 아시아 넘버원을 외치는 일본은, 기술 축구로서 탈아시아 축구로 유럽 축구에 근접했다는 자평을 할 정도로.
따라서 한국을 항상 무식하게 축구하는, 투박한 축구로 폄하하곤 해왔다.
그러나,
“황인범, 공을 빼냅니다! 곧바로 백도훈에게!”
도훈에게 공이 가고,
슈우우웅-
툭-!
“멋진 터치!”
“이야, 네이마르의 터치를 보는 것 같네요.”
도훈이 뒷발바닥으로 로빙 패스를 발 앞에 떨어뜨리는 순간부터, 울트라 니폰의 야유 소리가 잦아 들었다.
그리고 도훈은 진짜 기술 축구가 뭔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툭, 툭-!
“마르세유 턴! 우아합니다, 백도훈!”
“지금 이 그라운드 위에서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백도훈 선수입니다. 그 다음은 손흥민 선수고요. 두 선수의 몸값만 합쳐도 일본 전체 몸값을 압도해요.”
공을 잡자 마자 달려드는 상대 선수들의 발을 피해내며 우아하게 돌아서는 도훈.
중앙에서 공을 잡은 도훈은 일본 선수들을 이끌며 경기장을 가로 질러 내려가다,
파아앙-!
“노룩 패스!”
“모두를 속입니다!”
백 패스를 할 듯 시선을 두다 바깥발로 패스를 찔러 넣었다.
당황하는 일본 수비.
도훈의 패스를 수비 사이를 가로질렀고, 그 패스를 향해 오른쪽에서 손흥민이 무섭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손흥민, 빠릅니다!”
“나가토모를 앞지르는 손흥민!”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많은 일본이었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정상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선수들이 있는 건 한국.
“손흥민!”
“1대1 해보나요!”
박스 오른쪽에서 공을 잡아 툭툭 치고 들어가는 손흥민.
앞을 가로 막는 나가토모를 제쳐낼 듯 하던 손흥민은 이내,
파아앙-
뒤로 공을 내줬다.
어느 새 도훈이 그 곳에 있었다.
망설임 없이 박스를 향해 뛰어드는 도훈.
그 모습은 마치,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라는 듯.
‘한국의 에이스.’
정면으로 달려드는 도훈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는 일본의 미우라 겐타.
한국을 잡기 위해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게 바로 이 눈앞의 백도훈.
미우라는 칼을 갈고 나온 상태였다.
‘목숨 걸고 막는다.’
울트라 니폰이 지켜보는 앞에서, 일본 축구의 저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무리 상대가 유럽 최고의 폼을 보여주고 있는 상대라 해도.
그러나,
“...!?”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틈에 이미,
“백도훈! 빠르게 돌파 합니다!”
백도훈은 자신의 옆을 지나치고 있었다.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른 흐름.
게다가 상대는 공을 발에 달고 있는 상태인데, 어떻게 이런 스피드가?
백도훈은 발이 없는 유령같았다.
미우라는 전혀 도훈을 저지할 수 없었고,
“때려야죠!”
도훈의 오른발이 불을 뿜었다.
뻐어어어엉-!
슈우우웅-
니어 포스트를 향해 쏘아져 나가는 슈팅.
맞고 죽으라는 듯 때린 그 슈팅에, 히가시구치 키퍼는 키퍼로서는 절대 금물인 행동을 취하고 말았다.
공에 위협을 느끼고 만 것.
히가시구치 키퍼가 움찔하는 사이, 도훈의 슈팅을 골대를 꿰뚫어 버렸다.
철썩-!
“고오오올-! 백도훈! 역시 백도훈입니다!”
“도쿄 국립 경기장이 조용해졌습니다!”
할 말을 잃는 울트라 니폰.
골을 넣었지만, 도훈은 요란한 셀레브레이션을 하지 않았다.
쉬워도 너무 쉬웠으니까.
도훈에게 아시아 레벨이 쉬운 것은 당연했고,
“...”
그저 시무룩한 일본 관중들을 바라보며 가볍게 뛸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깔리는 자막.
[10번 백도훈 17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이것은 과거 박지성 선수의 세레머니를 보는 듯한!”
“아, 통쾌한 순간입니다!”
도훈은 클래스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경기가 흘러가면 흘러 갈수록.
도쿄 국립 경기장은 조용해져만 갔다.
또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차오르고 있었다.
“이러다가..”
“플레이오프 가는 건 아니겠지..”
6점차 이상으로 패배하지 않는 이상 조 2위로 월드컵 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는 일본이었다.
모두가 경기 전엔 생각했을 것이었다.
설마 6점차로 지겠어.
아니, 애초에 한국을 이길 생각이었지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손흥민! 두 번째 골을 만들어 냅니다!”
“한국! 역시 유럽 최정상 공격수들을 보유한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반 6분에 터진 도훈의 선제골에 이어.
전반 14분에는 손흥민의 추가골이 터졌다.
공격은 그렇다 쳐도 수비에서 너무도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는 일본.
스피드로 몰아치는 한국의 공격에 일본 수비진은 허둥지둥 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노출했고, 결국 전반 19분.
2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백도훈!”
“고오오올-! 세 번째 골입니다!”
도훈에게 세 번째 골까지 얻어 맞는 일본이었다.
승리는 커녕 처참해지고 있는 경기.
얼마나 기대감을 가지고 경기를 보러온 것인지 얼굴에 갖은 페인팅과 응원도구를 챙겨온 것이 무색하게,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듯한 얼굴이 되어 버리는 일본 관중들.
그들의 눈에, 도훈은 악마였다.
전반 19분만에 3대0을 만들어 놓고도, 계속해서 일본 선수들을 농락하며 네 번째 골을 노리는 그 모습은.
그리고 33분.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입니다!”
아크서클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
그 공을 두고 나란히 서는 도훈과 손흥민.
그 모습만 보고도 두려움에 떠는 일본 관중들.
누가 차도 위협적일 게 분명하니.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손흥민! 아, 지나가고!”
“백도훈!”
손흥민이 찰 듯하다 그대로 지나치고, 도훈의 오른발이 불을 뿜었다.
‘무회전격.’
뻐어어어엉-!
슈우우웅-
부우우웅-
히가시구치 키퍼의 얼굴 앞에서 요동치는 공.
당황하며 손을 뻗어보는 히가시구치 키퍼.
그러나 공은 예상 궤적을 벗어나 계속해서 요동치며,
철썩-!
일본의 골망을 다시 한 번 흔들었다.
“4대0! 4대0입니다!”
“도쿄 대참사! 아직 전반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완벽하게 일본을 무너뜨리고 있는 대한민국! 백도훈의 헤트트릭입니다!”
도훈의 도쿄 대공습.
작전은 완벽한 성공.
일본 선수들은 처참한 기분으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고,
“이 경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아무도 백도훈을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마.
설마 6점차 이상의 패배를 할 지도 모른단 말인가?
그러한 공포감이, 도쿄 국립 경기장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 도쿄 대공습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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