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78화 (78/173)
  • < 부활의 신호탄 (1) >

    먹고, 운동하고, 자고.

    많은 코치들의 조언에 따라, 도훈은 여름 기간동안 짧지만 굵게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템포가 빠르고 거칠기로 유명한 프리미어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피지컬적인 단단함이 필수적이라 했기에.

    물론 없어도 자신있는 도훈이지만, 누구처럼 스쳐도 넘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열심히 웨이트에 매진했다. 도훈은 날이 갈수록 단단해져갔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되는 유럽의 여름.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의 날이 밝았다.

    비시즌 내내 개막만을 기다려온 열광적인 맨체스터의 축구팬들은 설레이는 표정으로 올드 트래포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거 어디서 샀냐?”

    “인터넷에서. 여기 매장에선 절대 못 사.”

    “아. 나도 미리 사올 걸.”

    등번호 7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온 한 남자를 부러워하는 친구.

    BAEK

    7

    도훈의 유니폼이었다.

    도훈의 영입이 발표된 순간부터 불티나게 팔려나간 도훈의 유니폼은, 이미 전 세계에서 벌어들인 유니폼 수익만으로 이적료의 절반 가량을 회수했다고 알려졌을 정도.

    “정말 기대된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그를 볼 수 있을 줄이야.”

    기다려온 개막전이니 당연하겠지만, 평소보다도 더 들뜬 표정의 사람들.

    매표소와 입구에 붙어 있는 광고판에는 맨유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도훈의 모습을 크게 걸려 있었다.

    모두 도훈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이렇게 들뜬 것.

    “오늘은 다를거야.”

    “복수의 시간이 온 거지.”

    지난 시즌.

    처참한 경기력으로 일관했던 맨유는 첼시와 두 차례 맞붙어 모두 패배했었다.

    예전에만 해도 맨유와 첼시가 맞붙는 경기는 다른 더비에 버금갈 정도로 빅 매치 취급을 받았었다. 승률도 맨유 쪽이 우세했었고.

    하지만 최근 몇 년.

    이젠 두 팀의 경기에 기대를 가지는 팬들은 첼시팬들밖에 없었다. 승점을 안전하게 벌 수 있는 경기라는 기대.

    이젠 빅 매치 취급도 받지 못했다. 그저 빅 클럽과 중위권 클럽의 대결 정도로 인식될 뿐. 경기도 대부분 첼시의 압승, 혹은 맨유의 분전 정도로 끝나기 일쑤였고.

    그러나 오늘만큼은.

    “맨유가 돌아올거야.”

    “우리가 알던 그 맨유로.”

    다를 것이라고 올드 트래포드의 팬들은 기대하고 있었다.

    ‘도전.’

    또한 도훈도 알고 있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이 곳에 온 것이니까.

    많은 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그것.

    잉글랜드 최대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부활.

    그건 충분히 도전의욕을 고취시키는 사명이었다.

    그 사명을 걸고 오늘, 이 곳을 찾아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었다.

    개막전부터 참 좋은 상대였다.

    첼시 FC.

    지난 시즌 리그 2위를 차지했고, FA컵 우승을 차지한 강호.

    보란듯이 꺾어내고, 맨유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 아주 적합한 상대.

    그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ㆍㆍㆍ

    “저기 나온다!”

    “오오! 생각보다 큰데? 연약한 타입은 아니네. 마음에 들어!”

    만원관중이 밀집한 올드 트래포드.

    개막전에 나설 양 팀의 선수들이 일렬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뉴 페이스인 도훈에게 쏟아지는 시선들.

    지난 시즌까지 티비에서 보던 것보다 큰 키에 다부진 체구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미친듯한 활약때문에 다들 잊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도훈은 한창 크고 있는 성장기의 소년이었으니.

    “활기찬 모습의 올드 트래포드입니다. 2021/22 시즌 프리미어 리그 개막전! 많이들 기다리셨습니다! 먼저 양 팀의 선발 명단부터 살펴 드리겠습니다. 먼저, 원정팀 첼시 FC의 라인업입니다!”

    [첼시 FC (4-3-3) 감독 : 마우리치오 사리]

    GK 케파 아리사발라가

    CB 안토니오 뤼디거

    CB 다비드 루이스

    LB 마르코스 알론소

    RB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

    MF 은골로 캉테

    MF 조르지뉴

    MF 마테오 코바시치

    FW 에당 아자르

    FW 윌리안

    FW 알바로 모라타

    “사리의 베스트 멤버가 출전 했습니다. 이번 개막전, 절대 놓칠 수 없는만큼 단단히 준비를 해왔을텐데요. 이를 상대하는 홈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4-2) 감독 : 율리안 나겔스만]

    GK 조던 픽포드

    CB 크리스 스몰링

    CB 에릭 바이

    LB 에쉴리 영

    RB 안토니오 발렌시아

    MF 네마냐 마티치

    MF 안데르 에레라

    MF 후안 마타

    MF 폴 포그바

    FW 백도훈

    FW 로멜루 루카쿠

    “4-4-2의 전형. 최전방의 루카쿠와 미들진 사이에 백도훈 선수가 서게 되겠습니다. 참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선수죠?”

    “이번 여름 최대 이적이니까요. 관건은 오늘이 잉글랜드에서의 첫 경기인데, 과연 프리미어리그의 템포에 곧바로 적응할 수 있을 지가 되겠네요. 한 번 지켜 보시죠.”

    “삐이이이익-!”

    경기가 시작 되었다.

    킥 오프로 경기가 시작 되자마자, 도훈은 피식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들은대로네.’

    지금껏 뛰어왔던 분데스리가나 세리에, 심지어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이렇게 시작하자마자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

    마치 앞부분은 다 스킵하고, 곧바로 15분 정도로 넘어온 것처럼 경기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뭐, 도훈에게 나쁠 건 없었다.

    다른 잡다한 시간이 없다는 건, 그만큼 도훈에게 공격 기회가 많이 올 뿐이라는 것이니까.

    “헤이!”

    파아앙-

    중앙에서 공을 달라고 소리치는 도훈.

    그리고 오른쪽의 포그바가 도훈에게 공을 건냈다.

    부드럽게 첫 터치를 가져가는 도훈.

    사실 개막전을 준비하며 전술 훈련을 했을 때, 팀에 새롭게 부임한 나겔스만 감독의 말을 선수들이 처음부터 곧이 곧대로 잘 따를 리 없었다. 일단은 선수들도 감독의 성향이나 철학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고, 그걸 이해해 녹여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니까.

    특히나 포그바는 볼을 소유하는 시간을 줄이라는 나겔스만 감독의 지시가 매우 못마땅 했을 것이었다.

    원래 자신이 중원에서 풀어나가지 못하면, 전혀 공격 전개가 안되는게 맨유의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몇 번의 전술 훈련을 치루고 나서, 포그바는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나겔스만 감독이 공격 전개의 시작을 자신에게 맡기지 않은 것인지.

    나겔스만 감독은 도훈을 잘 알고 있는 감독이었다.

    ‘역시는 역시구만.’

    스르륵-

    타타탓-!

    “백도훈! 시작부터 조르지뉴의 압박을 피해 멋지게 돌아섭니다!”

    도훈이 조르지뉴의 압박을 유려한 발바닥 컨트롤로 피해내고 돌아서자, 포그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압박은 높은 위치부터 상당히 강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도훈에게 패스가 향할 때도 마찬가지.

    뒤에서 들이받기라도 할 듯 달려든 조르지뉴였고, 자신에게만큼은 그런 압박을 해선 안된다는 걸 도훈은 멋진 턴으로 보여줬다.

    “빠르게 올라 갑니다! 속도를 붙이는 백도훈!”

    “빨라요, 빨라요!”

    중앙을 향해 공을 몰고 올라가는 도훈.

    조르지뉴는 압박에 실패했지만, 첼시는 포기하지 않았다.

    곧바로 도훈의 진행 경로를 막아서는 캉테와 코바시치.

    코바시치는 몰라도, 은골로 캉테는 이미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

    그런 캉테를 손쉽게 벗겨낼 수 있는 선수는 현재 프리미어 리그 내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이젠 말을 정확히 해야할 듯 싶었다.

    현재 없는 게 아니라, 지난 시즌까진 없었다고.

    쉬이익-

    파아앙-!

    달려드는 코바시치를 향해 헛다리를 짚어 속여낸 뒤, 캉테 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도훈.

    곧바로 캉테가 틈을 주지 않고 달려 들었다.

    그러나 도훈은,

    퍼어억-!

    다리를 길게 집어 넣어 달려드는 캉테를 몸으로 저지했다.

    작지만 단단한 느낌의 캉테.

    도훈도 생각보단 그 힘에 놀랐다.

    그러나, 밀리지 않았다.

    타타탓-!

    “뺏기지 않습니다!”

    “몸싸움도 좋은데요, 백도훈!”

    캉테에게서 공을 지켜낸 뒤 곧바로 다시 속력을 높이는 도훈.

    굳이 다른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몸을 부딪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 편이 훨씬 간편하니까.

    오히려 기를 쓰는 것보다 몸을 쓰는 게 체력적인 면에서 부담이 없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이 빠른 템포에서는 부분 부분에서 간결하게 갈 필요가 있었다.

    파아아앙-!

    “포그바에게!”

    “순식간에 박스까지 도달해 공격기회를 잡는 맨유!”

    포그바의 재능은 도훈도 인정하는 바.

    밀란에 있을 때 수소같은 느낌을 주는 동료였다.

    충분히 같이 공격을 이끌어 갈만하다는 느낌을 주는.

    뻐어어엉-!

    “크로스!”

    오른쪽에서 간결하게 크로스를 올리는 포그바.

    도훈이 없었다면 이렇게 공을 간결하게 처리할 리 없는 포그바였다.

    그러나 그 자존심 강한 포그바도 바로 공을 넘기도록 하는 게 도훈의 존재감.

    슈우우웅-

    “루카쿠가 기다립니다!”

    당연히 첼시 중앙 수비수들의 요주의 견제 대상은 로멜루 루카쿠였다.

    워낙 거대한 피지컬을 보유한 루카쿠기에, 조금이라도 자리를 내줬다간 헤더를 내주고 말 수 있는 게 루카쿠.

    그런 의미에서 루카쿠 역시도 도훈에겐 쓸만한 동료였다. 자신에게 쏠릴 수 있는 견제를 가져가줄 수 있으니까.

    박스 안 첼시 선수들의 움직임을 파악한 도훈은, 박스 오른쪽을 향해 대각선으로 파고 들며 크로스를 향해 잘라 들어가는 동선을 보였다.

    슈우우웅-

    “백도훈!”

    발이 빠른 만큼, 그리고 수비의 움직임을 보고 뛰어든 만큼 도훈을 견제할 수 있는 수비는 적었다.

    그나마 도훈의 움직임을 끝까지 눈으로 쫓은 아스필리쿠에타가 어깨 싸움을 해줬으나, 생각보다도 도훈의 높이는 높았고 힘은 강했다.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파아앙-!

    슈우우웅-

    “아, 아쉽게 빗나갑니다! 백도훈의 헤더!”

    그나마 첼시 입장에선 다행으로 골대를 스치며 벗어나는 도훈의 헤더.

    도훈이 헤더에 조금만 더 능숙했더라면 꼼짝없이 골망을 흔들었을텐데.

    “서로 엄지를 치켜세워 보입니다. 아, 맨유의 공격. 매서웠는데요.”

    “백도훈. 이 선수 정말로 크랙입니다.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이런 선수가 맨유에 필요했던 건데, 정말 꿀같은 영입이 아닐 수 없네요. 단 한 장면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단 한 번의 공격.

    그것으로 관중들, 그리고 첼시 선수들은 단번에 직감할 수 있었다.

    맨유가 강해졌다는 것을.

    진행되는 경기.

    “아자르, 돌아 섭니다. 왼쪽으로. 다시 아자르.”

    맨유에 도훈이 있다면, 첼시의 에이스는 역시나 에당 아자르.

    지난 시즌 리그에서 10골 15도움을 기록한 아자르는 사리 감독 체제에서 절정에 다다른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오늘도 컨디션은 나빠 보이지 않았고.

    도훈은 그런 아자르가 궁금했다.

    타타탓-!

    특유의 빠른 잔발을 치며 공을 몰고 올라가는 아자르.

    그 뒤를 도훈이 따라 붙기 시작했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드리블러 중 하나라 평가받는 게 아자르.

    드리블러로서 그런 아자르의 드리블을 직접 마주해보고픈 게 도훈의 마음.

    “아자르를 막아서는 백도훈!”

    도훈이 빠르게 아자르를 앞지른 뒤 앞을 막아서자, 아자르가 공을 멈추고 도훈을 슬쩍 쳐다 보았다.

    드리블러끼리니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1대1.

    ‘중심이 낮다.’

    170초반의 아자르가 작게 느껴질 정도인 게 지금의 도훈.

    아자르의 무게 중심은 상당히 낮았다.

    덕분에,

    타타탓-

    타타탓-!

    빠르게 잔발을 치며 좌우로 흔들려 드는 아자르의 방향 전환은 매우 빨랐다.

    일단 침착하게 거리를 두고 기다리는 도훈.

    어차피 현란하게 좌우로 움직여봤자, 진짜 움직임은 단 한 번.

    앞에 것들은 밸런스를 무너뜨리기 위한 동작일 뿐이기에, 도훈은 무게 중심을 뒤로 놓고 기다렸다.

    툭-

    도훈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자 공을 세우고 멈춰서는 아자르.

    아자르는 드리블 돌파를 포기하는 듯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파아앙-!

    갑자기 공을 차놓고 달리기 시작하는 아자르.

    포기하려는 듯한 그 동작 역시도 속임수.

    그러나 도훈에겐, 별로 참신하지 못한 속임수였다.

    타타탓-!

    타타탓-!

    속도 경쟁을 펼치는 둘.

    도훈은 먼저 어깨를 집어 넣어 아자르를 막아서며 달렸다.

    그러나 도훈은 아자르의 힘을 느낄 수 없었다. 아자르가 어깨를 마주 밀어 넣지 않았기 때문.

    어깨를 넣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신보다 빠른 속도로 앞서 달리는 상대에게 어깨를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도훈의 스피드가 마음 먹고 치고 달리려던 아자르를 능가하고 있었다.

    툭-

    “백도훈이 빼앗아 냅니다!”

    “저 선수, 수비도 잘합니까? 이것 참, 사기네요. 나이 먹으면 수비수해도 되겠어요.”

    어쩌다 보니 코너 플래그 근처까지 다다라 공을 잡은 도훈과, 뒤따라붙은 아자르.

    ‘너도 궁금하니?’

    아자르는 원래 자기의 것이었던 공을 다시 되찾으려 도훈의 등을 열심히 밀었고, 도훈은 아자르를 등지고 버티며 공을 터치 라인 앞에 두고 버텼다.

    아자르도 드리블러인 만큼 자신의 드리블을 보고 싶은 모양인데.

    ‘감출 것도 없지. 왜냐면.’

    휘이익-

    아자르를 엉덩이로 튕겨내며 돌아서는 도훈.

    그리고 공이 노출되자, 곧바로 아자르가 발을 뻗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움직임.

    도훈은 곧바로 유령신보를 통해 아자르의 발을 피해냄과 동시에 앞으로 튕겨 나갔다.

    ‘본다고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도훈이 아자르의 압박을 벗어나 유유히 좁은 공간을 빠져 나오자,

    “이거지!”

    “기다렸다! 새로운 맨유의 7번!”

    올드 트래포드가 관중들의 박수와 함성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 부활의 신호탄 (1) > 끝

    ⓒ 한명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