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77화 (77/173)

< 판의 이동 (2) >

“보셨어요?”

“봤지.”

도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이 발표된 다음 날.

현지는 난리가 났다.

세탁소에서 옷을 찾는 사람도, 패스트 푸드점에서 아침을 사가는 사람도.

모두 첫 인사가 백도훈이 온 거를 알고 있냐는 질문으로 시작 되었다.

그리고 다들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단순히 한 선수의 영입 소식으로 이렇게 기뻐본 적이 얼마만이던가.

이젠 정말 중위권 클럽의 길을 걷나 싶었다.

맨체스터의 주인 자리를 뺏긴지는 이미 꽤나 됐다지만, 정말 에버튼보다도 낮은 순위의 클럽이 되가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었거늘.

하지만 이젠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었다.

백도훈이 오니까.

맨유 팬들에겐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진짜 올 거라곤 어제까지도 안 믿었는데.”

솔직히 정말 도훈이 올 거라고는 예상하기 힘들었었다.

맨유의 상황이 상황인만큼.

도훈 정도의 선수라면 레알이나 바르샤로 갈 것이라고 맨유팬들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맨유를 바르샤나 레알과 같은 급으로 놓을 수 없다는 걸 맨유팬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고.

그런데, 정말로 떡 하니 와 버렸으니.

“다음 시즌은 무조건 우승이겠지?”

“AC밀란보다는 솔직히 우리 팀이 훨씬 낫지.”

도훈의 영입 소식만으로 벌써부터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의 승자가 된 듯한 맨유.

다음 시즌을 장밋빛으로 전망하는데 있어, 백도훈이라는 이름 하나로 충분했다.

ㆍㆍㆍ

밀라노에서의 마지막 밤.

이과인의 집에서 도훈의 송별회가 조촐하게 열렸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저녁 식사를 하며 좋은 시간을 보낸 도훈.

다들 도훈에게 감사를 표했고, 앞날에 건승만이 가득하길 기원해 주었다.

“우리 팀하고 붙을 땐 살살 좀 부탁한다.”

“세레머니 안하는 정도만 할게요. 하하.”

반 시즌뿐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게 될 반 시즌.

유스 팀 소속으로 들어왔던 소년은, 이제 반 시즌만에 유럽에서 가장 높은 이적료를 기록하는 사나이가 되었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나, 나갈 때까지도 모두를 놀라게 하는 소년.

“원더 보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건배한 번 하자고.”

“우리 잊으면 안된다.”

“하하. 평생 못 잊을 겁니다. 다들 정말 감사했어요.”

“우리가 고마웠지. 자, 건배!”

도훈의 유럽 축구 첫 페이지.

밀라노에서의 밤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취한 건 아니지?”

“와인 한 잔 마신건데 뭘.”

식사가 끝나고.

잠시 바람을 쐴 겸 나와 걷는 도훈.

로레나와 함께였다.

동갑내기로 밀라노에서 유일하게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던 로레나.

아무리 축구밖에 모르는 도훈이라지만, 밀라노의 많은 것을 가르쳐줬던 로레나는 알게 모르게 고마운 존재였다.

“다시 또 볼 일이 있을까?”

“무슨 소리야? 여기서 영국이 얼마나 멀다고. 가끔 놀러오면 되잖아. 내가 티켓 구해줄게.”

“정말? 나, 아직 영국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어. 런던에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런던 팀들이랑 경기할 때 초대하면 되겠네.”

순진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도훈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로레나는 미소를 지었다.

“가서도 잘 해야 돼?”

“당연하지.”

“여기서 보다 더 잘 해야 돼?”

“물론이지.”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로레나는 푸훗, 하고 웃었다.

그저, 이 밤이 천천히 가길 바랄 뿐이었다.

“날씨 좋다..”

“그러게.”

어딜 가든 응원하겠다고 했던 말.

거짓말이었던 듯 했다.

지금 이 순간, 로레나는 도훈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날 수 있겠지.

“잘 가.”

“응. 잘 있어.”

둘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인생에 행복만이 가득하길 기원해 주었다.

“그 동안 감사 했습니다.”

“아니, 내가, 그리고 우리 구단이 감사했지. 자네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네.”

다음 날.

밀라노를 떠나는 날.

라이프치히로 떠날 때처럼 공항에 가투소 감독과 구단주가 배웅을 나섰다.

1년전, 라이프치히로 가기 위해 나설 땐 물가에 내놓는 아이보듯 도훈을 바라봤던 가투소 감독.

그 아이가, 구단에 빅 이어를 선물하고 이제 더 큰 물가를 향해 가려하고 있었다.

웃으며 진하게 포옹하는 도훈과 가투소 감독.

도훈에게도 가투소 감독은 고마운 사람이었다.

자신의 진가를 한 눈에 알아보고, 곧바로 함께 해보자고 처음으로 손을 내밀었던 감독이었으니.

결국 서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함께 거머쥐게 된 건, 인연인 것이었다.

“잘 해라.”

“건승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가투소 감독은 웃으며 도훈을 보냈고, 도훈도 웃으며 밀라노를 떠났다.

그리고 도착한 맨체스터.

“여기구나.”

새 보금자리에 도착한 도훈.

지금껏 구단에서 마련해준 집에서 살았던 도훈은, 맨체스터로 이사를 오며 직접 집을 알아 보았다.

그리고 이 집을 계약했다.

훈련장에서 5분 거리.

평으로 따지면 100평 가까이 되는 내부에, 정원과 뒷마당엔 수영장까지 달린 집.

으리으리하지만, 사실 저렴해서 장만한 집이었다.

계약하는 날 집을 둘러보며, 혼자 쓸건데 이렇게 커서 귀찮기만 하지 않을까 싶어 다른 집을 알아보려 했었던 도훈이었다. 그러나 따져보니 1년 집값이 연봉의 300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집 보러 다닐 시간에 그냥 계약하는 게 낫겠다 싶어 곧바로 계약을 한 것이었다.

도훈에겐 저렴한 집이었다.

“찬주 형 없으니까 좀 심심하네.”

이제 멘데스 컴퍼니에서 정식으로 일을 하게 된 임찬주.

임찬주는 지금 포르투갈 본사에 들어가 일을 배우고 있었다. 좀 심심하긴 하지만, 평소 꿈이었던 일을 하게 되어서 기쁘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

“여긴 정말 할 게 없네.”

소파에 몸을 뉘인 도훈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따분한 공업 도시, 맨체스터.

집 주변엔 같은 주택들 뿐이고, 시내로 나가봐야 할 것도 없었다.

결국 축구만 할 수 있는 환경.

뭐, 마음에 들었다.

조금 거슬리는 게 딱 하나 있다면, 이웃 주민들이 대부분 맨체스터 시티를 좋아한다는 것 정도뿐이랄까.

“수련이나 하자.”

도훈은 곧바로 명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동굴 안과 같은 편안함을 주는 이 곳.

이번 여름 동안의 목표는 하나.

프리미어리거 놈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비기 하나를 장착하는 것이었다.

ㆍㆍㆍ

찰칵-

맨체스터의 한 스튜디오.

오늘따라 유독 축구 선수들의 얼굴이 많이 보이는 이 곳.

“판넬을 보시고, 본인의 능력치가 마음에 드시나요?”

“음..”

자신의 얼굴과 그 밑에 적혀진 숫자들을 보고 어깨를 으쓱이는 맨체스터 시티 소속의 선수 케빈 데 브라이너.

오늘은 유명 축구 게임에 쓰일 사진을 촬영하는 스케쥴이 있는 날.

종합 능력치 91짜리 선수 데 브라이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뭐, 쓸만 하네요.”

이어 여러 선수들이 촬영을 이어 나갔다.

능력치 89의 다비드 실바, 88의 리로이 사네, 89의 폴 포그바 등.

그리고 이어서, 99짜리 판넬이 등장했다.

“올 해 최고의 카드가 등장했네요.”

수비 능력치를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99인, 밸런스 파괴 카드.

도훈이었다.

도훈은 자신의 카드를 들고 웃으며 촬영을 마쳤다.

“제 카드는 많이 쓰지 말아주세요. 게임이 재미가 없어 지거든요.”

유쾌하게 인터뷰를 마치고 스케쥴을 끝내는 도훈.

“내 차 타고 갈래?”

“그럼 고맙지.”

촬영이 끝나고, 포그바가 도훈에게 다가왔다.

특유의 친근한 말투로 먼저 말을 걸어준 포그바는 티비에서 보던 것처럼 유쾌한 이미지의 사내였다.

포그바의 차를 타고 훈련장까지 5분간을 가면서, 포그바의 친화력 덕분에 이미 둘은 절친이라도 된 듯.

“어이, 폴. 벌써 순진한 아이를 물 들인거냐.”

“뭔 소립니까. 얘 전혀 안 순진한데요.”

포그바는 훈련장을 돌며 동료들에게 도훈을 소개시켜 주었다.

제시 린가드, 안토니 마샬, 마루앙 펠라이니 등 이제 새롭게 동료가 된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는 도훈.

아직은 어색하지만, 다들 재밌고 유쾌한 느낌이었다. 축구만 좀 더 잘했다면 더 좋은 동료들일텐데.

아무렴 어떤가.

“폴,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이네.”

“같이 축구할 맛 나는 녀석이 왔으니까.”

다들 건강하고 착하기만 하면 됐지.

“어차피 이 녀석이 다 알아서 해줄거야.”

도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리는 포그바.

도훈의 합류로, 맨유의 훈련장 분위기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분위기가 달아오른 건 훈련이 시작되고 나서였다.

맨유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첫 훈련에 나선 도훈.

그리고 도훈이 처음으로 공을 만진 뒤,

타탓-!

타탓-!

타탓-!

일렬로 늘어선 고깔을 지그재그로 통과하기 시작했을 때,

“와..!”

“겁나 빠르네.”

맨유 선수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도훈의 실력이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보니 그 느낌은 차원이 달랐다.

외계인이 하늘에서 떨어진 기분이었다.

“올 핸 우승할 수 있겠군.”

“맨시티놈들 기다려라.”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다음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할 주인공은, 맨체스터 시티가 아니라 유나이티드가 될 것이라고.

도훈은 천군만마, 그 자체였다.

도훈의 존재가 그 자체로 맨유 선수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있었다.

ㆍㆍㆍ

맨유의 여름 프리시즌 일정은 이러했다.

7월 중순까지 시작 훈련을 소화하고, 중순부터 미국 투어를 시작해 미국의 LA 갤럭시, 인터 밀란과 경기를 갖고 8월 4일, 유로파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챔스 우승팀인 AC 밀란과 슈퍼컵을 놓고 맞붙게 된다.

그게 오늘이었다.

“슈퍼 아레나입니다. 오늘은 유에파 슈퍼컵, AC밀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곧바로 친정팀과 경기를 갖게 된 도훈.

밀라노에서 마지막 밤을 함께 보냈던 선수들과 경기장에서,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게 재회를 하게 된 것이었다.

“살살해라.”

“하하.”

경기 전 반갑게 밀란 선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도훈.

마음 같아서야 당연히 살살하고 싶다만.

그라운드 위에 들어가, 휘슬이 울리면 자기도 자기를 모르는 게 도훈이니.

“삐이이익-!”

그리고, 경기가 시작 되었다.

밀란을 가장 잘 아는 건 도훈.

그리고 도훈을 가장 잘 아는 것도 밀란일 것이었다.

오늘 슈퍼컵에 선발로 나온 밀란 선수들은 대부분이 주전 멤버들이었다.

즉, 몇달 전까지 도훈과 함께 경기를 뛰었던 선수들이라는 것.

도훈의 위력이 어떤 지 가장 잘 아는 그들인만큼, 역시나 도훈에게 집중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훈은 그런 밀란을 상대로 차근히 보여주기 시작했다.

오늘 이 자리에 어떻게 밀란이 참여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밀란이 챔스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는지.

툭, 툭-

“백도훈, 멋지게 돌아 섭니다!”

“아직 잘 적응이 안돼네요. 맨유의 유니폼을 입은 백도훈이 밀란을 상대로 압박을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도훈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동료, 케시에를 제쳐내고.

파아앙-!

가장 믿을 수 있었던 동료, 수소를 제쳐내고 올라가는 도훈.

그리고, 언제나 도훈의 등을 바라보며 저 괴물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심했었던,

파팡-!

“라 크로케타! 로마놀리와 자파타를 동시에 제쳐내는 백도훈입니다!”

두 중앙 수비를 제쳐내는 도훈.

정말 좋은 동료들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꼼짝하지 못합니다, 돈나룸마! 전반 6분만에 백도훈의 선제골이 터져 나옵니다!”

밀란이 지난 시즌과 같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그저 도훈이 밀란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예상할 수 있었다.

지난 시즌 밀란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 시즌 괴물과 함께 다시 돌풍을 일으킬 팀이 어느 팀이 될 지를.

“맨유, 강해졌습니다. 5대1! 유로파 챔피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스리그 챔피언인 AC밀란을 꺾고 슈퍼컵을 차지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강해져 있었다.

지난 시즌의 밀란 이상으로.

그리고 어쩌면, 과거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밥 먹듯이 올라가던 시절에 근접할 지도 모를 정도로.

그저, 한 선수의 합류로 인해.

결국 밀란을 꺾고 슈퍼컵을 차지하게 된 맨유.

그리고 이제 팬들의 기대는 다음 주 올드 트래포드로 향하고 있었다.

프리미어 리그 2021/22 시즌 개막.

개막전 첼시 FC 와의 경기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 판의 이동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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