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76화 (76/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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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날씨가 그렇게 좋진 않지?”

    “검증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네요. 모든 게 좋은 환경은 아니니..”

    공항을 빠져 나오자 마자 느껴지는 빗방울과 습한 기운에 도훈은 재킷을 여몄다.

    이 곳은 영국, 맨체스터.

    오늘 맨체스터의 한 구단과 협상을 갖기로 한 날이기 때문에 도훈이 이 곳을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공항에서 나오자 마자 기다리고 있는 차량.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도훈과 멘데스를 반갑게 맞았다.

    “오랜만입니다, 우드워드씨.”

    “그렇네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도훈을 마중 나온 건 다름아닌 에드 우드워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회장.

    지금 모든 유럽 팀들이 모셔가려고 혈안인 도훈이기에, 맨유 회장이라고 해도 버선발로 달려 나와야 하는 게 현실.

    준비된 차량을 타고 셋은 회의실로 향했다.

    “오, 도훈! 오랜만이네.”

    “감독님!”

    거기서 만난 반가운 얼굴.

    새롭게 맨유에 부임하게 된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이었다.

    라이프치히에서 반 시즌 동안 지도를 받았고, 많은 걸 배웠던 나겔스만 감독.

    이젠 너무 커져버린 제자를 바라보며 나겔스만 감독은 아들을 바라보는 듯한 아빠미소를 지었다.

    “대단하더군, 정말로. 난 당연히 네가 세리에가서도 그렇게 잘할 줄 알았어.”

    큰 물에서 놀 선수라고 일찌감치 도훈을 알아봤던 나겔스만 감독.

    그의 짐작보다도 도훈은 더욱 큰 물에서 놀게 되었고, 그건 나겔스만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도훈이 라이프치히를 떠난 뒤, 아쉽게도 라이프치히는 한 계단, 한 계단씩 순위 하락을 겪어야 했다. 도훈이 나가자 팀은 흔들렸고, 겨우내 별다른 영입도 없었기에.

    도훈의 빈 자리를 나겔스만 감독은 크게 느껴야 했다.

    그러니 도훈이 맨유와 협상 자리를 갖겠다고 했을 때, 너무나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맨유라면, 금전적으로 도훈을 잡아줄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선수 본인이 맨유로 올 의사가 있느냐였지.

    “평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어떤 팀이라고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음.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요.”

    “얼마든지요.”

    “퍼거슨 감독 이후로 별 볼일 없어진 중상위권 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도훈의 솔직한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를 짓는 우드워드.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맞는 말이니.

    하지만, 그렇기에 맨유에 끌린다는 게 재밌는 일이었다.

    “저희가 제시한 금액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많이 신경써주셨더군요. 레알보다는 적었지만, 바르샤보단 많았으니까.. 뭐 솔직히 만족해요. 그렇게 큰 돈이라니. 감도 잘 안오고.”

    맨유가 제시한 금액은 연봉 600억 수준.

    그러니까 주급만 11억 수준인 것.

    당연 새로운 팀내 최고액이었다.

    최근 재계약으로 팀내 최고 연봉을 받게 된 폴 포그바의 주급이 7억원.

    그것도 많다는 게 세간의 평인데, 도훈에겐 그보다도 많은 11억을 거리낌없이 제시한 맨유였다.

    물론 아깝지는 않을 듯 했다.

    영입을 할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AC밀란을 데리고 챔스 우승을 한 선수를.

    더군다나, 백도훈을 데려오면 다른 선수들의 영입도 쉬워질 뿐더러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들을 챙길 수 있으니, 손해보는 장사는 절대 아닐 것이었다. 여기서 더 얹어줄 생각도 하고 온 우드워드였다.

    다만 도훈은 그 이상의 돈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미 그 정도만 해도 평생 상상도 해보지 못한 금액이었으니.

    “저를 영입함으로써 이루려는 게 뭡니까?”

    중요한 건 비전.

    어디까지 갈 생각인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왜 자신을 원하는가.

    “4년 계약을 한다면, 4년간 연속 트레블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에 도전하는 팀이 되고 싶소.”

    “다시 유럽 최고가 되는 게 목표입니까?”

    “당연한 것 아니겠소. 시대를 풍미하는 팀을 만들고 싶소.”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따위의 이야기를 했다면 곧바로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할 참이었다.

    그러나, 우드워드의 대답은 마음에 들었다.

    트레블.

    리그, 컵, 그리고 챔스까지.

    그 해를 지배한 팀만이 가질 수 있는 영광의 상징.

    맨유는 도훈과 함께 시대를 압도할 생각이었다.

    “...”

    멘데스에게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도훈.

    그러자 멘데스가 말했다.

    “계약서, 지금 가져올 수 있나?”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정말, 지금 기분을 이루 말할 수 없군. 환영합니다. 정말 환영합니다.”

    스스슥.

    서명을 마치고 일어나는 도훈에게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내미는 우드워드.

    도훈은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겔스만 감독의 얼굴에도 함박 웃음꽃이 피는 순간.

    도훈이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것이었다.

    기간은 2년.

    총 이적료 3,200억에 연봉 611억. 거기에 더해 각종 옵션까지 합하면 최대 701억원의 연봉까지.

    초대형 빅딜이 성사 되었고, 유럽 축구에 새로운 판이 만들어질 준비는 끝났다.

    도훈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에 합의하는 순간이었다.

    ㆍㆍㆍ

    “아버지!”

    “아, 도훈이!”

    맨체스터에서 협상을 마치고 밀라노로 돌아온 도훈.

    오늘은 뜻 깊은 날이었다.

    처음으로 가족들을 해외로 초대하는 날이니.

    “잘 지냈냐.”

    “잘 지냈죠. 몸 건강 하시죠?”

    “나야 요즘 뭐 이래 편해도 되나 싶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아버지와 도훈.

    “공부 잘 하고 있지?”

    “어..”

    동생 소윤은 오빠의 모습이 어색한 듯.

    아니, 것보다도 처음 와보는 이탈리아의 모습을 눈에 담는데 더 정신이 팔려있는 듯 주변을 휘둥그레한 눈으로 둘러 보았다.

    “여기가 이탈리아에요.”

    “날씨가 꽤 좋구나.”

    “타세요.”

    “네 차냐?”

    “아뇨. 구단 차인데, 오늘 하루 쓰라고 주셨어요.”

    도훈이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밀라노를 구경하고 싶다니, 밀란 구단에서는 흔쾌히 차와 기사를 붙여 주었다.

    이제 도훈은 밀란을 떠날 사람이지만, 밀란은 언제까지나 도훈을 사랑하고 감사해할 것이기에 전혀 아깝지 않았다.

    “식사부터 하셔야죠?”

    “소윤이 배 많이 고프다더라.”

    꼬르륵-

    말로는 동생이 배고플 거라고 해놓고 꼬르륵 소리는 왜 아버지 배에서 나는건지.

    도훈은 웃으며 기사에게 예약해둔 식당으로 가줄 것을 요청했다.

    “나 참, 아직도 신기해 죽겠네. 너 외국어는 언제 그렇게 공부한 거냐?”

    “그냥 축구하면서 몸으로 배운거죠, 뭐.”

    “소윤이 영어 과외나 좀 해줘라.”

    “얼마든지요.”

    미소를 짓는 도훈.

    얼마만인가.

    가족과 함께 암울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웃으며 희망찬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축구를 하기 위해 몸이 떨어진 건 1년.

    그러나, 이렇게 다같이 모여 웃으며 이야기를 해본 건 거의 5년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중학교에 올라온 뒤로는 그래본 기억이 없었으니.

    참 신기했다.

    원래 아버지는 이런 분이셨는데.

    그 놈의 돈이 뭔지.

    어쨌든 감사했다.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가족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어서.

    “여기예요.”

    “어이구, 으리으리한데.”

    예약해둔 식당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가족.

    오늘 특별히 신경써 예약해 둔 이 식당은 밀라노에서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맛집.

    “연예인이나 정치인같은 유명인들이 찾는 맛집이래요.”

    유명한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는 맛집.

    맞는 이야기였다.

    남 얘기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도훈 자체가 유명인이었으니.

    “백도훈 선수!”

    “어서 오십시오!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도훈이 가족들과 함께 식당에 들어서자 부담스럽게도 모든 종업원들과 매니저가 나와 맞이했다.

    매니저의 안내를 받아 조용한 룸으로 자리를 잡은 가족.

    “이렇게 쭈루룩 다 주세요.”

    “그걸 다 시킨다고? 비쌀텐데. 얼마쯤 하냐?”

    “글쎄요. 계산은 안해봤는데. 밥 먹는 동안 벌 돈보단 적지 않을까요?”

    이제 주급 11억원 가량을 받게 될 도훈이었다.

    일급으로 따지면 1억 5천.

    시급으로 따지면 6백만원 가량이니, 도훈의 말 대로 밥 먹으면서 버는 돈이 더 많은 것.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 껄껄 웃었다.

    “참.. 이제 돈 걱정은 없겠구나.”

    “없죠. 절대로. 이제 다들 앞으로 인생에서 돈 걱정은 안하셔도 돼요.”

    “참.. 고맙다. 하지만 도훈아. 명심해라. 네가 번 돈은 네 돈이다. 우리 돈, 가족 돈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네가 번 것이니 네 돈이다.”

    “네.”

    “그러니까 네 미래를 위해서 쓰거나 해야지, 우리한테 뭐 해준다고 돈 낭비하면 안돼. 이런 밥 얻어 먹는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우리 뿐만이 아니라 어디서 돈 빌려달라...”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한참이나 이어지는 아버지의 이야기.

    예전엔 이런 잔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지금은 왜 정겨운 느낌이 들까.

    도훈도 비록 100년을 동굴에서 살았지만, 어쨌든 소년은 소년.

    동굴에서 나오자 마자 다시 유럽으로 향했기에 가족과 떨어진 시간은 사실상 101년간 이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오랜 기간 동안의 그리움이 한 번에 밀려오는 듯.

    도훈은 눈앞에 가족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이제 주급을 11억 받게 되었다는 사실 따위보다도 훨씬 더.

    “실례 하겠습니다.”

    “와...”

    하나둘씩 음식들이 서빙되기 시작하자, 동생 소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자연스럽게 꺼내게 될 수밖에 없는 핸드폰 카메라. 소윤은 음식들 하나하나를 모두 사진으로 담았다.

    “드셔 보세요.”

    “평생 이런 건 안먹어봐서 입에 맞을랑가 모르겠다.”

    포크로 엉성하게 파스타를 한 움큼 떠 후루룩 잡숫는 아버지.

    입가에 소스를 가득 묻힌 아버지는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맛있네. 얘가 좋아하겠다.”

    아버지의 말 대로 소윤 역시 이미 너무나 맛있게 음식을 흡입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도훈은 미소를 지은 뒤 함께 식사에 동참했다.

    “이건 쉐프님이 백도훈님 너무 팬이라고 서비스로 드리는 겁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물론, 식사하는 동안 미소를 지은 시간은 아버지가 훨씬 길었다.

    식사 내내 도훈을 바라보며, 이게 내 아들이라니 하는 표정이셨으니까.

    "자, 이제 쇼핑하러 갈까?"

    식사를 마치고.

    도훈이 이야기하자 소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개콜."

    행복한 저녁이었다.

    ㆍㆍㆍ

    -백도훈, 맨체스터 공항에서 포착.. 맨유로 이적 사실화?

    ㄴ진짜임? 실화임? 꿈 아니지? 설마 이러다 또 먹고 버리는 건 아니지?

    ㄴ와 이거  사실이면 진짜 대박인데.. 백도훈 오면 옛날 황유시절로 돌아가는 건 일도 아니지 ㄷㄷ 포그바 재계약한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나

    -맨유 홈페이지 메인 문구, ‘The Next Big Thing’ 백도훈 이적 암시?

    ㄴ진짜 가나보네 ㄷㄷ 벌써부터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거 보면 가긴 가는 듯

    ㄴ다음 시즌 EPL 개재밌겠네.. 백도훈이라니 맨유 진짜 세진다 급 우승후보 ㄷㄷ

    도훈과 맨유의 합의가 이뤄진 다음 날.

    맨유는 곧바로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명 ‘THE NEXT BIG THING.’

    맨유의 홈페이지 메인에는 그 문구와 함께 물음표로 가려진 한 남자의 실루엣이 등장했고, 그 아래에는 이적시장이 개장하는 날짜인 6월 24일에 맞춰 D-DAY를 알리는 시계가 1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누군가가 온다는 문구에 맨유팬들은 그간의 가십과 묶어 백도훈이 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기 시작했고, 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정식으로 발표가 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올 것 같다는 그 이유 하나로, 맨유는 다음 시즌 우승후보로 급부상했으며 맨유의 주가가 급상승해 시가총액이 하루만에 1000억 가까이 상승하는 등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다.

    또한 선수들 사이에선 어느 정도 정보가 돌았는 지, 갑자기 매물로 나온 선수들이 맨유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보도들도 연달아 나오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의 그 남자가 그리즈만? 맨유 이적설 불거져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

    -음바페마저 이적 결심? “맨유같은 팀 가고 싶다”

    -갑자기 꿈의 클럽된 맨유? 디발라도 맨유행 관심

    사실 지난 시즌 유로파 리그를 어렵게 우승하긴 했지만, 맨유는 리그에서 7위를 기록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냈었다.

    그나마 트로피 하나라도 건진 게 기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찬란한 과거를 가지고 있던 맨유는 사라졌고 선수들에게도 더 이상 가고 싶은 클럽이 아니게 되버렸었다. 그렇게 된 게 이미 몇 년 된 이야기였다.

    맨유 갈 바에 자살을 한다느니, 맨유는 이용해 먹는 용이라느니 등의 조롱을 당하는 건 부지기수.

    그런데 이렇게 상황이 급변하자 팬들은 반쯤 확신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D-DAY인 6월 24일 00시 정각.

    수많은 접속자들이 맨유 홈페이지에 몰려 들었다.

    과연 물음표로 가려져 있던 그가 누구인 지 보기 위해.

    "그리즈만? 음바페?"

    그리고 마침내 그 물음표가 사라지고, 유니폼을 든 채 웃으며 나타난 한 남자를 본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맨유 팬들이라면, 아마 모두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The Next Big Thing : Welcome Baek!”

    도훈의 맨유 이적 소식이 유럽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 판의 이동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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