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74화 (74/173)

< 준우승은 없다 (4) >

“백도훈의 도움! 수소의 마무리!”

“밀란이 동점을 만들어 냅니다!”

키엘리니와 칸셀루의 틈 사이에서 기어이 컷 백을 꺾어낸 도훈의 도움에 마무리에 성공하는 수소의 골.

그렇게 결국 동점을 만들어내는 밀란.

“예에에에에-!”

동점골이 들어가는 순간.

저 멀리 홀로 슬라이딩하며 포효하는 돈나룸마부터.

앉아 있던 벤치를 발로 차며 울부짖는 가투소 감독.

그리고 만세를 부르며 수소와 도훈에게 달려드는 동료들.

마음을 졸이던 설움을 단번에 날려 버리듯 통쾌한 함성을 내지르는 서포터즈들까지.

스타드 드 프랑스의 정확히 절반이 미친듯한 함성을 내지르며 동점골의 기쁨을 발산했다.

“길게 해, 길게 해!”

“모여! 모여!”

코너 플래그에 뒤엉킨 밀란 선수들.

노련한 이과인이 선수들을 불러 모으며 오랫동안 셀레브레이션을 이어가자고 말했다.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열세에 몰리는 듯 했던 경기를 마침내 동점으로 만들었고, 조급해지는 건 상대였으니까.

만일 이 승부가 연장으로 간다?

전반 9분만에 두 골을 터뜨리며 앞서갔던 유벤투스로써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기쁨을 오래 누리며 경기장의 분위기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경기의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있습니다. 유벤투스 입장에서는 말이죠. 밀란으로써는 이보다 더 극적인 드라마는 없을 것 같아요.”

“역시 빅 이어는 쉽게 허용되지 않습니다.”

갑분싸.

급격히 어두워지는 유벤투스 선수들의 표정.

사실 원래 결승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 않았는가?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은 준우승을 차지했던 팀이 다름 아닌 자신들이었으니까.

결승에 오를 전력을 갖추었음에도, 항상 한끝차이로 빅 이어를 차지하지 못했었던 유벤투스.

그 숙원을 호날두의 합류로 결국 우승을 차지하며 풀어냈던 유벤투스였는데.

‘그래.’

‘아직 그가 있잖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유벤투스 선수들은 한 사나이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나이는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말하고 있었다.

“괜찮아! 날 믿어! 우승하게 해줄게!”

그 사나이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면, 그건 믿을만한 말이었다.

2대2로 재개되는 경기.

남은 시간은 30분여.

순서가 어찌됐든 한 번씩 위기와 자신감을 확인한 양 팀.

초반부터 무너질 뻔 했던 밀란이고, 동점을 내주며 지금부터 무너질 수 있는 유벤투스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결승전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처럼 양 팀은 견고하게 플레이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두 팀 모두에겐 여전히 믿음이 있었다.

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들은, 각각의 한 남자들에게서 나오고 있었고.

‘도훈과 함께면 질 수가 없어. 기록이 말해주잖아.’

‘크리스티아누가 뛰는 결승전이라면, 준우승은 없어.’

챔피언스리그 우승 청부사라 불리어도 이상하지 않을, 호날두.

단 한 번도 유럽 무대에서 패배를 경험한 적이 없는 백도훈.

그들과 한 팀으로 뛴다면,

‘오늘 패배할 수 없다.’

라는 믿음으로 모두의 생각이 귀결되고 있었다.

무서운 일이었다.

22명의 선수들 모두가, 절대 질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격돌하는 상황은.

다만 태도의 차이가 있는 부분은 있었다.

밀란은 연장전으로 넘어가도 이길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었다면, 유벤투스는 절대 연장까지 가지 않고 경기를 끝내겠다는 마음가짐.

“유벤투스가 먼저 승부를 거나요. 동시에 두 명을 교체 합니다.”

“로드리고 벤탄쿠르가 나오고 더글라스 코스타가 들어갑니다. 파울로 디발라를 빼주고 후안 콰드라도가 투입 됩니다.”

빠른 드리블러 두 명을 동시에 투입하는 알레그리 감독.

확실히 공격적인 배치.

생각은 간단했다.

중앙의 호날두와 만주키치의 제공권과 거기까지 공이 도달할 수 있게 사이드를 돌파할 수 있는 두 자원의 투입.

단순하게 갈 생각.

변화의 효과는 금새 나타나기 시작했다.

쉬이익-

타타탓-!

“더글라스 코스타! 오른쪽을 파고 듭니다!”

도훈은 아닐지 모르지만, 밀란 선수들의 발은 상당히 무거워져 있었다.

이 주전 멤버들이 모든 토너먼트에서 뛰었었으니.

그 약점을 빠른 발로 파고드는 더글라스 코스타.

로드리게스를 제쳐낸 코스타는,

뻐어어엉-!

높게 띄운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그 크로스를 향해 높게 뛰어 오르는 두 명의 장신 공격수들.

로마놀리와 자파타가 온 몸으로 그들을 저지하며 뛰어 올라 보지만,

“호날두!”

역부족이었다.

뻐어엉-!

엄청난 소리가 났다.

헤더로 난 타격음이라 보기엔 무지막지한 소리.

그러나 그것은 분명 호날두의 이마에서 난 소리였고, 소리만큼이나 강력한 슈팅이 골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돈나룸마가 반응할 틈은 없었다.

슈우우웅-

철썩-!

호날두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가는 순간.

“와아아아앗-!”

호날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코너 플래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냐는 듯 가슴팍을 치며 뛰어 올라,

“호우우우우-!!!”

특유의 셀레브레이션과 함께 포효하며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었다.

“내가 우승하게 해준다고 했지!”

“믿고 있었다고, 젠장!”

후반 24분.

호날두의 두 번째 골로 다시 유벤투스가 리드를 잡게 된다.

“17번째 골입니다! 자신의 최다 골 타이를 이루는 호날두!”

“정말 대단하네요. 서른여섯의 나이에, 다시 한 번 자신의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라니요!”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만 17번째 골을 기록하게 되는 호날두.

허세와 자신감은 한끝 차이거늘.

자신을 믿으라던 호날두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그걸 골로 보여줬고, 말의 무게는 더욱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더욱 커진 믿음을 갖고 뛰게 되는 건 유벤투스 쪽이었다.

“자, 20분여가 남은 시점입니다. 자, 밀란. 다시 따라갈 수 있을까요.”

밀란이 그랬던 것처럼, 한참이나 셀레브레이션을 하며 기뻐한 유벤투스.

그 모습을 보며, 도훈은 웃었다.

두 번째 골을 넣을 때까지만 해도, 그 정도로 기뻐하지 않았던 상대였으니까.

그렇게 기뻐하는만큼, 경기도 팽팽해졌다는 뜻일테지.

‘확실히 상대는 강해.’

무대가 무대인만큼, 확실히 유벤투스는 강했다.

동료들은 열심히 해주곤 있지만, 지쳐 있었고.

도훈은 아마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분명히 우승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 믿음이 1퍼센트도 떨어지지 않은 건.

여전히 도훈은 믿고 있었다.

자신을.

누구보다 도훈을 믿고 있는 건, 바로 도훈 자신이었으니.

“콰드라도, 흔들 준비를 합니다!”

세번째 골 이후에도 이어지는 유벤투스의 공격.

“제쳐냅니다!”

“아! 그래도 백도훈의 커버!”

투입된 지 얼마 안 돼 스피드가 살아 있는 콰드라도의 드리블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칼라브리아가 따라가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사이드가 열리는구나 싶던 순간.

칼라브리아 대신 도훈이 한 발 더 뛰었다.

동료를 위하는 마음도 있긴 했지만, 지금은 무조건 사이드에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크로스 자체를 차단해야 했다.

만주키치와 호날두가 버티고 있는 중앙의 제공권은 도저히 대처가 불가능한 수준이었으니.

“백도훈, 콰드라도를 상대합니다!”

도훈을 앞에 두고 리듬감 있게 공을 다루는 콰드라도.

어차피 완벽히 돌파하는데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닐 터.

잠깐의 틈을 벌린 뒤 크로스를 올릴 생각일 것이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라면, 못 막을 것도 없었다.

애초에 속도에서는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보고 따라가도.

쉬이익-

타타탓-!

아니나 다를까.

가볍게 헛다리를 한 번 짚은 뒤 오른쪽으로 치고 들어가려는 콰드라도.

도훈은 그 움직임을 보고, 한 발 늦게 따라 붙었다.

그러나,

뻐어어엉-!

파아앙-!

“크로스 차단!”

그렇게 보고 따라갔다고 해도 콰드라도의 크로스를 막아내는 도훈.

후반 교체로 들어온 선수보다 빠를 만큼 아직 쌩쌩한 도훈은, 재빨리 루즈볼을 잡아낸 뒤 전방을 향해 돌아섰다.

남은 시간 15분여.

‘가능할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도훈.

답정너였다.

불가능할 리 없었다.

동점이?

아니.

두 골을 넣어,

역전이.

‘일단.’

밀란의 박스 왼쪽에서 공을 빼앗아낸 도훈.

높은 위치지만 도훈이 공을 잡자 곧바로 상대의 압박이 들어왔다.

위험 지역이기에 재차 빼앗겨 다시 공격 기회를 내준다면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

때문에 도훈은, 절대 공을 발에서 떼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책임지고 이 공을 데리고 넓은 곳까지 나가야 했다.

“빠져 나올 수 있나요!”

파팡-!

“예. 백도훈이잖습니까.”

유령신보를 활용하며 콰드라도와 마투이디, 두 명 사이를 빠져 나오는 도훈.

그리고,

타타타탓-!

어느 정도 공간이 생기자 중앙을 향해 치고 달리며 속도를 높이기 시작.

“다시 한 번 백도훈이 속도를 높입니다!”

“백도훈도 한 골로 끝낼 수는 없겠죠! 17골을 달성한 호날두와 여전히 두 골 차이입니다! 그런 걸 신경쓰고 있을 여유는 없겠지만요.”

아니, 신경쓰고 있었다.

어찌 탐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 첫 골로 총 15골을 기록한 이번 시즌.

이 기록으로 득점왕을 타지 못한다면 너무도 억울할테니.

이왕이면 두 골 더 넣고,

‘모든 걸 내 걸로 만들어 보자고.’

모든 부분의 정상에 올라서고 싶은 도훈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이번 기회부터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야 했다.

아깐 동료들을 활용했으니, 이번엔 지극히 자신스러운 방법으로.

“어느 쪽을 선택할까요.”

“워낙 빠르게 치고 올라와 공간이 많습니다!”

좌우를 살피며 올라가는 도훈.

왼쪽에서 락살트가, 오른쪽에서 수소가 올라가고 있는 상황.

역시나 상대가 좀 더 경계하는 쪽은 수소쪽.

워낙 오늘 경기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훈의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했었고, 골까지 터뜨렸던 게 수소였으니.

하지만, 유벤투스가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시점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확실히 두 번째 골이 컸어.’

계속해서 중앙으로 올라가는 도훈.

언제 좌우로 뿌려질 지 모르는 패스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유벤투스는, 도훈이 생각보다 깊은 곳까지 올라왔을 때가 되서야 정신을 번쩍 차렸다.

‘어?’

뭔가 착각하고 있었다.

지금 공을 잡고 있는 게 백도훈 아닌가?

“다 붙어!”

키엘리니의 외침과 함께 중앙으로 좁혀들기 시작하는 유벤투스 수비.

그러나 이미 도훈은 너무 가까이 접근해 있었다.

‘지나갑니다.’

더욱 더 속도를 높이는 도훈.

마치 닫히기 시작하는 문을 향해 뛰는 것처럼, 도훈은 유벤투스의 박스 정중앙을 향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사실 도박이었다.

굳이 속도가 아니라, 천천히 개인기로 썰고 들어가도 도훈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을테니까.

하지만, 길이 보인 이상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구멍이 있다면 일단 들이밀고 봐야했다.

남자라면.

“그대로 돌파할 생각입니다!”

“저 사이로 치고 달릴 생각을!”

주먹을 쥐며 일어나는 밀란의 서포터즈들.

두 손을 모으고 지켜보는 유벤투스의 서포터즈들.

그리고 VIP석의 레전드들마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목을 길게 뺐다.

‘못 지나가.’

입술을 깨무는 델 피에로.

순간적으로 키엘리니와 보누치 사이의 간격이 벌어져 있는 건 델 피에로도 포착했었다.

그러나,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가려는 건 도박이었다.

둘은 곧바로 거리를 좁히고 있었고, 속도가 통하지 않는다면 쉽게 공을 내주게 될 뿐.

언제나 공을 잡기만 하면 어떤 마술을 보여줄 지 기대가 되는 선수는 맞았다.

백도훈이라는 선수가.

하지만, 이번만큼은 실수한 것이라고 델 피에로는 생각했다.

물론, 실수를 한 것이 자신이었다고 깨닫게 되는 때까지는 몇 초가 걸리지 않았지만.

‘폭포 오르기.’

허벅지로 쏠리는 기.

이미 멈출 생각이 없는 도훈은, 폭주 기관차처럼 속도를 높였다.

“...!”

충분히 커트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키엘리니의 눈이 커지고.

예상치 못하게 더욱 올라가는 스피드에, 보누치와 키엘리니는 애초에 뻗으려던 발의 각도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공에 직각이 아니라, 골대쪽을 향하도록.

그 정도로 빠르게 도훈이 달려들고 있었다.

두려울 정도였다.

촤아아아-

촤아아아-

문을 닫듯 한 점으로 모이는 둘의 태클.

그러나,

‘열려라 참깨.’

그 사이를 부수듯, 보가 터지듯, 성문이 열리듯.

뚫고 지나가는 공과 도훈.

도훈이 그 사이를 속도로 돌파하는 순간.

“와아아...!”

온 몸에 소름이 돋은 듯 머리를 감싸쥐는 관중들.

모두 숨을 죽인 그 순간에,

뻐어어어엉-!

도훈의 오른발이 불을 뿜었다.

이 순간을 위해 100년을 갈고 닦은 오른발이었다.

실패할 수는 없었다.

슈우우웅-

철썩-!

“다시...!”

“동점...!”

또 한 번의 동점골.

도훈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밀란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하듯.

괴력을 선보이며 다시 한 번 경기의 균형을 맞췄다.

“공을 들고 뜁니다!”

“정말 대단한 집념입니다!”

다시 공을 들고 하프라인을 향해 뛰는 도훈.

균형을 맞춘 이유는, 균형을 깨기 위함이었으니까.

남은 10분.

이 시즌의 마지막 10분.

그 10분에 모든 걸 쏟아부을 셈인 도훈이었다.

< 준우승은 없다 (4) > 끝

ⓒ 한명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