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73화 (73/173)

< 준우승은 없다 (3) >

‘도저히 못 보겠다..’

가투소 감독마저도 손톱을 깨물며 도훈이 피케이를 차는 모습을 제대로 쳐다 보지 못했다.

모두가 긴장하는 순간이었고, 그만큼 그 피케이 하나에 많은 것이 달려있던 상황.

그러나, 도훈은 너무나도 대담한 선택을 했다.

벌벌 떨고 있는 그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니야.’

그렇게 도훈이 가볍게 찍어 찬 공은 유유히 날아가, 이미 지레 쓰러져버린 데 헤아를 넘어 골대 안을 튕겼고,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파넨카 킥을 하는 대담함이라니요! 백도훈이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면서 한 점을 따라 갑니다!”

그 대담한 골이 성공되는 순간 밀란 서포터즈석의 팬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터뜨리며 이 골로 경기의 판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을 부르짖었다.

환상적인 만회골이었다.

단순히 한 점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아직 이 경기의 결과는 모른다는 기대감을 충분히 되살릴 수 있는, 자존심을 지키는 멋진 만회골.

“도훈!”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임마!”

도훈에게 달려드는 동료들.

만회골을 터뜨리긴 했지만, 아직 끌려가고 있는 입장이기에 공을 주워 하프 라인을 향해 같이 뛰면서도, 동료들은 계속해서 방금의 파넨카 킥에 대해 계속 이야기 했다.

“진짜 미친 놈 아니냐?”

“데 헤아가 안 뛰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동료들도 도훈의 대담함에 감탄할 수밖에.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동료들.

그런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도훈은 공을 하프라인에 돌려 놓고 제 자리로 돌아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웃을 정도는 됐구나.’

자신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통한 듯 싶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할 지도 모르겠다만 그걸로 족했다.

이렇게 웃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았다면 그걸로.

“안들어갔으면 쪽팔렸겠죠. 근데, 뭐 어때요. 이거 진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도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동료들에게 이야기 했고, 동료들은 탄복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숨 한 번 쉬고 다시 가봅시다.”

“후우. 그래, 다시 가보자!”

“이길 수 있어! 우리도 정신 단단히 차리고 다시 가보자!”

밀란의 사기를 끌어 올리는 골과 함께 전반 10분 스코어는 1대2가 되었고 경기는 다시 시작 되었다.

“스코어는 2대1. 시간은 이제 전반 11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역대급으로 초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스타드 드 프랑스입니다.”

도훈의 행동으로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렸을까.

경기가 재개된 후 밀란 선수들을 페이스를 조금씩 찾기 시작했다.

확실히, 9분만에 두 번째 실점을 당했을 땐 스스로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토록 꿈꿔왔던 무대였기에, 그 동안 상상해왔던 것들이 많았었다.

모두 상상해왔지 않겠는가.

정말 오랫동안 준비한 무대인만큼, 멋진 플레이들로 멋진 경기를 펼쳐 보이고 싶었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선수들 마저도 적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러나 상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현실과, 9분만에 박살이 난 시나리오에 패닉이 왔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역시 언제나 믿음을 주었던 동료.

도훈이 있었고, 막내인 녀석은 이 무대가 그저 평소의 경기와 다를 게 없다는 듯 멋진 파넨카 킥으로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여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밀란 입장에서는 상대가 유벤투스여서 오히려 다행인 점도 있었다.

리그에서 만나는 익숙한 상대기 때문에, 긴장을 풀고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경기다 라고 스스로 되뇌이는 데 편했기 때문.

‘이건 그저 리그 중의 경기일 뿐이야.’

‘져도 돼. 그럴 수도 있지.’

‘그냥 축구일 뿐이야. 맨날 해오던.’

밀란 선수들에게 퍼져 나가는 긍정적인 바이러스.

마침내, 밀란이 이제야 챔스 결승이라는 무대의 공기에 적응을 해내는 듯 보였다.

물론 그 점은 분명히 알아야 했다.

“피아니치, 벤탄쿠르에게. 벤탄쿠르, 마투이디에게.”

“중원에서의 주도권은 밀란에게 전혀 없네요. 여전히요.”

적응을 했다고 해서 밀란이 앞서 나가거나, 갑자기 경기를 뒤집기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것.

애초에 아무런 긴장도 하지 않고, 그저 실력 대 실력으로 맞붙어도 강한 쪽은 유벤투스 쪽이었다.

그런데 밀란이 긴장까지 해버리니 초반, 그렇게 유벤투스가 몰아 붙이며 두 골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러니까 이제 시작 선상에 겨우 선 것 뿐이라는 것.

밀란 선수들이 정신을 차렸다곤 해도, 유벤투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주도권이 탄탄한 중원을 기반으로 계속해서 패스를 돌리며 기회를 만들어내려 들었다.

그래도 분명히, 경기는 이전보다 훨씬 밀란에게 할만해지고 있는 것은 맞았다.

그 증거가, 일단 전방의 호날두에게 전해지는 패스의 빈도수가 전반 초반보다는 많이 줄었다는 게 하나.

“다 좋은데, 지네딘같은 미드필더 하나만 있었으면 더 완벽했을텐데.”

“갑자기?”

“나도 동의해. 아니면 안드레아처럼 말이지. 창의적인 패스가 크리스티아누에게 향한다면 크리스티아누는 벌써 3골을 넣었을 지도 모르겠는데. 움직임을 캐치하지 못하고 있어.”

경기를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VIP석의 레전드들.

역시나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유벤투스의 미드필더들이 주도권을 확실히 잡고는 있으나 전방으로 향하는 킬 패스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전방의 호날두는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지금.”

경기를 지켜보던 지네딘 지단과 안드레아 피를로가 동시에 ‘지금’ 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패스를 찔러줬다면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냈을 법한 움직임들을 여러 차례 보이고 있던 호날두였던 것이다.

그러나 피아니치가 마투이디는 몇 차례 볼 법했던 그 패스 길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전설들의 눈에는 아쉬움이 보인달까.

반면,

“호날두, 공을 잡습니다. 아, 그대로 슈웃-!”

“오우, 벗어났지만 위협적인 슈팅 시도입니다, 호날두. 저기에서도 슈팅을 가져갈 수 있을 지는 몰랐는데요. 오늘 확실히 한 골로 그칠 것 같지는 않죠?”

어찌저찌 공을 잡아낸 호날두의 터닝슈팅이 아쉽게 골대를 비껴나가자, 전설들은 평가를 내리기 보다 아쉬워하며 감탄의 박수를 쳤다.

그들도 예상 못한 플레이였기에.

사실 이들은 모두 축구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전설들.

현재도 이들을 능가했다는 평가를 받는 현역 선수들은 한 손에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정도.

하지만 호날두는 어떤 선수인가.

이들과 나란히 있어도, 오히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게 호날두였다.

그렇기에 전설들도 호날두의 플레이엔 순수히 감탄하고, 즐거워 했다.

한 때 그를 직접 지도했었던 입장인 지네딘 지단 마저도.

“우리가 평가할 녀석이 아니지.”

“감히 우리가 뭐라고. 하하.”

그저 즐길 뿐.

호날두는 이미 전설들의 전설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사나이니까.

또한,

그런 선수가 한 명 더 있었다.

“오, 믿을 수 없군.”

“정말 다행이야. 100년만에 한 번씩 나올 선수들이 같은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걸 볼 수 있다는 게.”

역시 도훈이었다.

벤탄쿠르의 패스를 차단해낸 뒤 멋지게 돌아서며 공을 소유권을 확보하는 도훈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터뜨리는 전설들.

특히나 그 우아한 턴 동작에, 마르세유 턴이라는 이름의 창시자인 지네딘 지단도 손가락을 튕기며 감탄을 마지 않았다.

이미 이들도 알고 있었다.

저 소년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자신들로서도 무례한 일이라고.

소년은 아직 17살일 뿐이지만, 어쩌면 훗날엔 그 어떤 전설들 보다도 전설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으니.

“밀란이 버티고 있긴 하네.”

“귀가 열리기 시작한 거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어. 이 정도라면 충분히 해볼만 해질 수도 있겠는데.”

토너먼트에서 빛났던 도훈의 리딩을 동료들이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며, 조금씩 유벤투스의 공격이 차단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양상.

경기 초반만 해도 싱겁게 끝날 듯 했던 경기가,

“삐익, 삐이이익-!”

결국 전반전이 끝날 땐 1점차의, 후반전을 기대할만한 경기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변화의 시발점은,

“도훈, 잊을 수 없는 골이었다.”

“덕분에 정신이 들었어. 막내가 이렇게 해주는데..”

역시나 도훈의 발 끝.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상기시켜! 도훈이 보여줬던 것처럼 말야. 이건 그저 한 번의 경기일 뿐이다! 매 주 우리가 하는 그것 말이야. 다를 게 없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 지난 주의 경기도 마찬가지였지. 그 말인 즉, 오늘 경기도 무조건 져서는 안된다는 거다!”

격정적으로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불어넣는 가투소 감독.

별 다른 전술적 지시사항은 없었다.

어차피 준비해온 건 단 하나일 뿐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그 하나 덕분이었으니.

중요한 건 이 위대한 여정의 마지막 순간, 흐릿해질 수 있는 정신을 단단히 부여잡는 것뿐.

거의 다왔다.

하지만, 다 온 건 아니었다.

여기서 한 발을 더 뻗지 못한다면, 목표와의 거리가 가깝든 멀든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준우승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중요한 건 손에 넣느냐, 넣지 못하느냐.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한 발만 더 뻗어서 손에 쥐자. 빅 이어를. 밀란에 8번째 트로피를 안기는 멋진 전사들이, 너희가 되어라!”

“예!”“옙!”

“다시 한 번 말한다! 준우승은 없다!”

끓어 오르는 밀란의 파이팅.

“스스로를 믿어라! 나도 너희들을 믿는다. 그리고, 도훈을 믿어라. 우리에겐 분데스리가, 세리에 동시 득점왕이 있다.”

“솔직히 그게 현실적으로 가장 큰 힘이 되는 말씀이네요.”

분데스리가, 세리에 A 동시 득점왕.

도훈이 있다.

그런 선수에게 준우승을 안긴다는 건, 동료들의 입장에서는 미안해서라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가자!”

경기는 후반으로 이어졌다.

“삐이이익-!”

이번 시즌의 마지막 45분이 될지도 모르는, 후반전이 휘슬과 함께 시작 되었다.

사실, 전반전 멋진 만회골을 넣긴 했으나 생각보다 도훈의 움직임은 조용했다.

워낙에 유벤투스가 주도권을 쥔 채 경기를 풀어나간 것도 있긴 했지만, 도훈 스스로가 조금 여유를 갖기 위해 천천히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할까.

확실히 피케이를 만들어낸 뒤로는 동료들에게 패스를 내주고, 공을 좀 더 만질 수 있게 해주며 경기장을 넓게 쓰려 노력했던 도훈이었다.

그게 버리는 시간이라곤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확실히 첫 피케이를 얻어낼 때 느낀 게 있었으니.

‘조금만 도와주면.’

얼음은 깨줬다.

이젠 상대의 생각을 역이용할 차례.

도훈에게 걸린 게 많은만큼, 동료들이 조금만 도훈을 도와줄 수 있다면 경기는 어쩌면 쉽게 풀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확실히 유벤투스는 자신을 집중견제하고 있고, 동료들을 집중 공략하고 있으니까.

그 전략에 제대로 엿을 먹일 수 있는 건 동료들이 한 건 해주는 것일테고.

그게 가능하다면, 역시 그 다음의 마무리의 기회는 다시 도훈에게 찾아올 수 있을 것이었다.

파아앙-

“백도훈, 수소에게.”

역시 가장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는 수소.

파아앙-

파아앙-

파아앙-!

“수소와 백도훈, 계속해서 공을 주고 받으며 좁은 공간을 나옵니다!”

멋진 호흡을 보여주는 둘.

도훈과 수소는 계속해서 움직이며 원 터치로 서로에게 공을 넘기며 상대의 압박을 피해내고 사이드에서 빠져 나왔다.

그나마 개인능력으로 유벤투스의 중원을 상대로 풀어나올 수 있는 둘의 호흡.

파아앙-

원 터치를 주고 받으며 중앙으로 나온 도훈은 전방의 이과인에게 발 밑으로 찔러 준 뒤,

타타탓-!

곧바로 뛰기 시작했다.

“이과인! 버티면서 공을 받습니다!”

툭-

그리고 그 패스를 이과인이 보누치를 등진 채 버티며 받아냈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듯 다가오는 도훈에게 그대로 결을 살려 가볍게 내줬다.

그렇게 도훈이 원 터치 위주로 패스 길을 살리며 공격을 전개하자, 유벤투스의 수비에 약간의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도훈이 공을 잡았을 땐 무조건 도훈을 집중견제.

그리하여 공이 동료에게 넘어갔을 땐, 그 선수를 다시 집중견제 해 공을 빼오는 게 유벤투스의 수비 전술이었는데, 빠르게 원 터치로 공의 소유가 도훈과 동료 사이에서 넘어가니 어느 쪽에 집중해야 하는 건지 유벤투스로써도 갈피를 잡기 어려워지기 때문.

‘마지막에만 막으면 돼.’

그래도 베테랑 키엘리니는 끝까지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최종 마무리는 도훈이 할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으니.

헷갈려할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막아야 하는 건 백도훈이었다.

툭-

“백도훈!”

박스를 향해 달려들며 이과인이 내준 공을 보누치와 칸셀루 사이로 차놓고 달려 들어가는 도훈.

순식간에 속도 경합.

칸셀루와 키엘리니가 도훈의 양 쪽에서 달려 들었고, 데 헤아 역시 몸을 잔뜩 웅크리며 도훈의 발에 시선을 집중 시켰다.

아무리 이렇게 많은 수비가 달려든다 해도, 어찌됐든 마무리까지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도훈.

때문에 그렇게 유벤투스 수비수들이 끝까지 달려든 것이었는데,

‘트로피는 다같이.’

그걸 기다리고 있던 것도 도훈이었다.

파아앙-!

“크로스!”

“꺾어 냅니다!”

박스 왼편에서 도훈이 왼발을 당기자 칸셀루와 키엘리니가 동시에 몸을 날렸고, 데 헤아도 몸을 움찔했다.

그러나 도훈이 선택한 것은 슈팅이 아니라 컷 백 크로스.

촤아아아-

그 크로스는 뒤에서 달려들던 수소에게 향했고, 도훈은 패스를 향해 달려드는 수소를 보며 안심할 수 있었다.

수소는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였으니까.

뻐어어엉-!

“슈우웃-!”

굴러오는 패스에 그대로 왼발을 가져다 대는 수소.

슈우우웅-

철썩-!

“고오오오오올-!”

“동점 골입니다!”

수소의 슈팅은 가볍게 빈 골대에 꽂혀 들어갔고, 경기 초반까지만 해도 쉽게 갈거라 생각했던 유벤투스의 선수들과 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와아아아앗-!”

반면 밀란의 벤치와 서포터즈들은 함성을 내질렀고.

“동점입니다!”

“경기의 결과를 더더욱 알 수 없게 됩니다!”

역시 결승전인가.

도훈의 도움과 수소의 골.

후반 17분, 2대2로 경기의 균형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 준우승은 없다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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