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71화 (71/173)
  • < 준우승은 없다 (1) >

    “프랑스는 처음 와보네요.”

    “느낌이 어떤데?”

    “뭐, 나쁘지 않은데요.”

    결승 하루 전.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렸던 그 경기장,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적응훈련을 마친 밀란 선수들.

    프랑스 축구의 성지같은 이 곳에서, 이탈리아의 두 팀이 유럽 최정상의 자리를 놓고 격돌하게 되었다.

    그런 양 팀의 에이스는 각각 포르투갈과 대한민국의 국적으로, 그야말로 글로벌한 지구촌 매치.

    세계인의 시선이 모두 이 곳, 스타드 드 프랑스로 향하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챔스에서는 유독 더 날아다니는 이유가.”

    “일종의 징크스 아닐까요. 긍정적인 징크스. 지금까지 챔스에서 잘해왔으니까, 스스로에게 믿음이 생기고. 자신감 있게 플레이 하다보니 다시 결과도 좋게 나오고, 뭐 그런 것 아닐까 싶네요.”

    역시나 요주의 상대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챔피언스 리그 6회 우승에 빛나는 호날두는 챔스와 관련한 불멸의 기록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기록 부자.

    6회 우승.

    6년 연속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챔피언스 리그 11경기 연속 득점.

    토너먼트 2경기 연속 헤트트릭.

    17, 16, 15골로 한 시즌 최다 득점 1,2,3위 모두 독식.

    이 모든 게 한 명의 사나이, 호날두의 발에서 나온 기록들이었다.

    이미 리그에서 호날두를 만나본 바 있는 도훈과 밀란이지만, 무대가 챔스라면 호날두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현재 도훈의 챔스 골 기록은 14골.

    그러나 그 모두가 토너먼트에서만 기록한 골이었다.

    만약 조별 예선까지 모두 뛰면서, 비교적 약팀들과의 경기에서 득점을 더 몰아쳤다면 어땠을까.

    호날두의 최고 기록인 17골 조차도 가뿐히 넘어설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도훈은 그런 생각을 하기보다 현재 상황에서 기록을 뛰어넘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쉽지 않겠지만.

    결승전에서 4골을 기록한다면 넘을 수 있으니까.

    호날두의 17골 기록을.

    “그게 가능하냐?”

    “쟤가 뭐 가능한 것만 해왔나요. 맨날 불가능한 것만 해왔지.”

    “그건 그렇지. 지금 우리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어차피 지금까지 도훈의 행보에 가능했던 것은 없었다.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가능으로 만들어 왔을 뿐.

    내일.

    이 곳에서 펼쳐지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

    챔스의 사나이가 이끄는 유벤투스와 AC 밀란의 결승전에서 도훈은, 다시 한번 불가능에 도전하려 하고 있었다.

    ㆍㆍㆍ

    “야, 니네 오빠 진짜 대박..”

    “진심 싸인 좀 부탁해주면 안돼?”

    교실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한 무리의 여학생들.

    SNS에 게재된 한 장의 사진 때문에 도훈의 동생 소윤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평소 팬클럽에 가입되어 있을 정도로 열렬한 팬인 ‘성탄소년단’ 의 SNS에 오빠의 얼굴이 떡하니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대박!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백도훈님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내일 결승전에서 꼭 승리해 우승하시길 저희 성탄소년단이 기원하겠습니다! 더불어 내일 오프닝 공연도 모두 지켜봐주세요~!

    눈앞에서 한 번이라도 성탄소년단을 보는 게 소원인 소윤인데, 그런 성탄소년단이 오빠를 어렵게 만나서 영광이라고 말하고 있었으니 놀랄만도.

    친구들은 부러워서 난리였다.

    빨리 문자라도 해보라고, 싸인 좀 받아줄 수 있냐고 난리.

    그것보다도, 오빠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는 친구들의 말에 소윤은 괜스레 어깨가 으쓱했다.

    “와, 성탄애들 개부럽네.”

    “도훈이형.. 핥고 싶다..”

    성탄소년단 때문에 도훈과 소윤을 부러워하는 여학생들과 달리, 남학생들은 성탄소년단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백도훈을 만난다는 건,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들에겐 소원이니까.

    “야야, 진짜 니네 오빠 집에 왔을 때 우리 꼭 불러야 된다.”

    “진짜 부탁한다. 소원이야.”

    소윤은 뭐 이미 학교에서 유명인사였다.

    백도훈의 동생으로.

    조금 기분이 이상하긴 했다.

    1년전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했던 오빠가 지금은 학교의 거의 모든 남학생의 우상이었으니까.

    “오빠한테 문자나 해볼까.”

    “오오!”

    “야, 야! 수원사는 수원고 2학년 3반 박우진이 형님 정말 사랑한다고 보내주면 안돼냐!?”

    도훈의 인기를 체감하고 있는 소윤이었다.

    “나 내일은 못 나와.”

    “예? 또 왜요? 백형 없으면 일 누가 하라고.”

    “어이, 내일 백씨 아들 경기 있잖아. 그건 봐줘야지.”

    변함없이 오늘도 새벽같이 일터에 나와 믹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아버지 백승태.

    그러나,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게 있다면 역시나 여유랄까.

    백씨에겐 예전과 같은 하루하루의 막막함은 느껴지지 않고, 여유가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아들 덕분이었다.

    “그 뭐냐, 유럽 최고 축구단을 가리는 대항전이라는 게 있어. 영어로 참피온스 리그라고 하는건데 말야. 아, 유럽이라는 곳이 어디냐. 축구에 있어서는 세계의 중심지다, 이 말이야. 그런 유럽에서 가장 잘 하는 축구 팀을 가리는 게, 참피온스 리그고. 내일이 그 결승전인데 말이야.”

    “알아요, 알아. 몇 번이나 말해놓고서 또 말하네.”

    “도훈이가 이번에 14골을 넣었어. 그 유럽 최고라는 축구팀들 상대로 말이야. 너, 멧씨 알지 멧씨?”

    어느 덧 축구 박사가 된 아버지.

    동료들은 듣기 싫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아들 이야기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백씨를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간에, 내일 새벽에 결승전을 하는데 이 애비가 좀 봐야지. 이해들 좀 해달라고.”

    “아, 예~ 이해 해드려야지, 암.”

    “자, 오늘 두 배로 할테니까 어서들 가자고.”

    “갑시다, 가요.”

    하나둘씩 일어나 일터로 향하는 근로자들.

    다들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지만, 유독 아버지의 발걸음만은 가벼워 보였다.

    ㆍㆍㆍ

    2021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

    유벤투스의 서포터 약 4만명.

    AC밀란의 서포터 약 4만명.

    도합 8만여 명의 관중들이 운집한 스타디움.

    “누가 이길 것 같아?”

    “오늘은 진짜 모르겠네. 작년까진 그래도 찍을 수 있었는데.”

    VIP석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으로 성탄소년단의 오프닝 무대를 보고 있는 안드레아 피를로, 히카르두 카카, 지네딘 지단, 델 피에로, 카푸같은 밀란과 유벤투스의 레전드들이 오늘 경기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전설들은, 하나같이 오늘 경기의 결과에 대해 모르겠다는 의견을 내고 있었고.

    정말 전혀 예측을 할 수 없었다.

    “사실 백도훈만 없었다면 선택하기 쉬웠을텐데.”

    “백도훈이 없으면 무조건 유벤투스지.”

    “아니. 백도훈이 없었으면 밀란이 여기 없었을테지.”

    “그건 그렇군.”

    팀으로써 본다면 단연 유벤투스의 전력이 훨씬 탄탄하다.

    하지만, 지금껏 그런 것들을 모두 부숴온 백도훈이 있기에, 단판 승부의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노릇.

    과연 빅 이어의 주인공은 누가 될 지.

    “한 번만 더 들어올리면 크리스티아누는 신이 되는거야.”

    7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리는 호날두의 유벤투스냐.

    “전설의 시작을 보는 것 일지도.”

    첫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리는 도훈의 AC밀란이냐.

    “선수 입장!”

    그 경기에 나설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7만여 명의 관중들이 모두 기립한 가운데, 선수들이 입장을 마쳤고 곧 챔피언스 리그의 주제가 리그 데 샹피옹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 순간.

    그리고 연주가 끝나자 선수들은 박수를 치거나 껑충껑충 뛰며 각자의 방식으로 경기 시작전 느껴지는 긴장감을 해소했고, 관중들은 기립 박수로 기대감을 표했다.

    “...”

    “...”

    그리고 한 명씩 악수를 나누는 선수들.

    이탈리아의 두 팀이 프랑스에서 만났다.

    조금은 새로운 느낌.

    어쩌면 서로가 반가운 느낌일지도.

    그러나, 어디서 만나든 반드시 이겨야할 상대라는 건 변함이 없는 사실.

    여기까지 온 이상, 어떤 일이 있어도 빅 이어를 양보할 수는 없었다.

    준우승은 가장 큰 패배자일 뿐이니까.

    “자, 왠지 모르게 저까지 긴장되는 순간인데요. 그럼, 오늘 결승전 양 팀의 선발 라인업부터 살펴 드리겠습니다. 먼저 유벤투스입니다.”

    [유벤투스 FC (4-4-2) 감독 :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GK 다비드 데 헤아

    CB 지오르지오 키엘리니

    CB 레오나르도 보누치

    LB 알렉스 산드루

    RB 주앙 칸셀루

    MF 미랄렘 피아니치

    MF 블레이즈 마투이디

    MF 로드리고 벤탄쿠르

    MF 파울로 디발라

    F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FW 마리오 만주키치

    “역시 주목해야 할 선수는 호날두겠죠. 이 호날두의 오늘 컨디션에 따라 경기 결과가 좌우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올 시즌 15골을 기록하고 있는 호날두인데, 다시 한 번 챔피언스 리그 다득점의 역사를 쓸 수 있을 지 기대가 되네요.”

    “다음은 AC밀란의 선발 명단입니다.”

    [AC 밀란 (4-4-2) 감독 : 젠나로 가투소]

    GK 지안루이지 돈나룸마

    CB 알레시오 로마놀리

    CB 크리스티안 자파타

    LB 리카르도 로드리게스

    RB 다비데 칼라브리아

    MF 프랑크 케시에

    MF 루카스 비글리아

    MF 페르난데즈 수소

    MF 디에고 락살트

    FW 백도훈

    FW 곤살로 이과인

    “전형 자체는 비슷합니다. 밀란의 관건은 역시나 중원싸움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냐, 그리고 호날두와 만주키치라는 막강한 공격수들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일텐데요. 그게 가능하다면, 밀란도 오늘 충분히 해볼만 합니다. 백도훈이 있기 때문이죠.”

    MSN을 꺾고 올라온 도훈.

    그런 도훈이 챔피언스 리그의 사나이까지 꺾을 수 있을지.

    “삐이이익-!”

    마침내 20/21 시즌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자, 양 팀의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경험. 경험입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라는 무대가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는 무대거든요. 하지만, 유벤투스 선수들은 이 무대를 밟아본 선수들이 이미 많습니다.”

    “반면 밀란에는 이과인만이 이 무대의 경험이 있죠. 나머지 선수들은 이런 큰 무대가 처음입니다.”

    경기 초반.

    누구나 꿈꾸던 무대이기 때문일까.

    밀란의 선수들은 조금 긴장한 듯한 플레이가 엿보이고 있었다.

    간단한 패스가 조금씩 벗어난다든가, 아무런 견제가 없는 상황임에도 터치 실수를 한다든가.

    확실히 긴장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하긴 했다.

    이미 이런 큰 무대의 경험이 있는 이과인조차 긴장한 듯 보이는데, 다른 대부분의 선수들은 경험조차 없었으니.

    그런 동료들을 보며, 도훈은 빨리 동료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오늘 경기가 어렵게 흘러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동료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경기일 뿐이라고 느끼도록 만들 수 있을까.

    역시, 도훈이 먼저 평소처럼만 플레이하면 될 일이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닌, 그저 매주 치루는 경기 중 하나일 뿐인듯이.

    툭-

    “백도훈, 오늘 첫 터치를 가져 갑니다.”

    “토너먼트에서만 14골. 아주 무자비한 공격수입니다. 밀란을 이끌고 결승까지 온 선수죠.”

    중앙에서 공을 잡는 도훈.

    지난 번 리그에서의 맞대결에선 도훈의 맹활약으로 인해 패배했었던 유벤투스였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보약이었다.

    그 때의 경험을 토대로 오늘 경기를 준비해올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특별한 방법이 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이미 많은 팀들이 밀란을 무너뜨리기 위해 생각했었던 방법이었으니.

    그건 바로 백도훈이 아닌 다른 밀란 선수들을 공략해 무너뜨리는 것.

    그러나 유벤투스의 방법은, 다른 팀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도훈이 공을 잡자 순식간에 사방에서 유벤투스 선수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툭, 툭-

    피아니치, 벤탄쿠르, 마투이디와 디발라가 동시에.

    상대 중원의 네 명 모두가 동시에 도훈에게 달려드는 기이한 장면.

    도훈은 그 사이에서도 공을 빼앗기지 않고 버텨내다,

    파아앙-!

    왼쪽의 락살트에게 패스를 빼냈다.

    과연, 도훈.

    네 명 사이에서도 패스를 해내는 그 모습은 과연 평소 도훈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도훈은 그러한 모습으로, 동료들에게 안정감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락살트, 아. 공을 빼앗깁니다.”

    “긴장하게 되면 시야가 좁아지죠. 지금은 공간이 많아 여유있게 하면 됐는데요. 락살트 선수, 아쉽습니다.”

    패스를 건네받은 락살트는 칸셀루에게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상대에게 공을 내주고 만 것.

    유벤투스의 전략은 이것이었다.

    도훈이 아니라 다른 밀란 선수들을 공략하는 것.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먼저 수반되어야 할 것은, 역설적으로 방금과 같은 도훈에 대한 집중견제였다.

    일단은 공이 백도훈이 아니라 다른 선수에게 있어야 하니까.

    그것이 수비에서의 대처법.

    그리고, 이젠 공격에서의 밀란 상대법.

    이 역시 특별한 것은 없었다.

    뻐어어엉-!

    파아앙-

    “호날두, 공을 잡습니다.”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호날두를 믿는 것 뿐이었다.

    참고로,

    ‘오늘은 질 수 없다.’

    호날두의 오늘 컨디션은, 스스로 느끼기에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또한 이 곳은 챔피언스 리그고.

    자신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패배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 준우승은 없다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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