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70화 (70/173)

< 잘못 건드린 벌집 (2) >

“자, 빨리 경기장 분위기가 정리가 되어야 할텐데요.”

홍염이 날아드는 그라운드.

당장이라도 관중석을 박차고 뛰어들듯한 성난 관중들.

선수 보호 차원에서 경기는 잠시 중단 되었고,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를 빠져 나갔다.

바르셀로나로써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저 상대를 흥분시키려 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화가 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백도훈을 건드린 게 이 정도란 말인가.

그들에겐 이 정도의 의미란 말인가.

밀란 자체를 건드린 것과 맞먹는 것이란 말인가.

“경기가 재개될 준비가 됩니다.”

거의 10분간 중단된 경기.

경기장에 동원된 안전 요원들과 경찰들이 홍염들을 걷어내고, 관중들 몇몇은 경기장에서 퇴장까지 당하는 사태.

어렵게 어렵게 정리가 되고 나서야 선수들이 다시 그라운드로 나오기 시작했다.

“...”

맥이 끊겨 버렸으니 바르셀로나가 노렸던 암수는 실패.

흥분을 유발하고 나발이고, 오히려 자신들의 맥마저 끊겼으니 최악의 상황.

또한 과격한 관중들은 정리가 되었다 해도, 여전히 수많은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나서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향해 거친 말들을 내뱉고 있었다.

괜히 화를 부른 꼴이었다.

‘그러게 왜 벌집을 건드려.’

도훈은 다시 그라운드로 나오면서, 관중석을 한 번 둘러 보았다.

그리고 피식 미소를 짓더니, 두 팔을 서너차례 정도 번쩍 들어올리며 더욱 함성을 지르라는 것처럼 관중들을 유도했다.

“와아아아아-!”

“저 쓰레기들을 정리해줘라-!!”

그런 도훈의 모습에 열광하는 관중들.

바르셀로나는 정말, 정말로 벌집을 잘못 건드린 것이었다.

“삐이이익-!”

어렵게 재개된 경기.

마치 새로운 경기를 시작하듯, 어수선한 느낌의 경기.

그러나 이미 전광판의 시간은 55분부터 흐르고 있었다.

파아앙-

파아앙-

차분하게 공을 돌리며 다시금 몸에 열기를 돋우는 밀란 선수들.

아무리 중단된 시간 동안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풀고 있었어도, 흐름이 끊긴 이상 계속해서 경기를 뛰던 것만은 못한 게 당연.

오히려, 도훈에겐 생각지 못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상대의 수가 자충수가 되며.

툭-

오른쪽에서 공을 잡는 도훈.

자신은 가능했다.

곧바로 중단 전처럼 피치를 끌어 올리는 것이.

그러나 상대는?

타타탓-!

그 속도를 갑자기 따라오기가 힘들 것이었다.

“쿠티뉴를 떨쳐내고 올라 갑니다, 백도훈!”

막아서는 쿠티뉴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중앙의 넓은 공간을 향해 공을 몰고 올라가는 도훈.

어차피 덤벼들지 않을 것 아닌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상대의 그런, 참으며 지역을 방어하는 전술은 이제 도훈에겐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있었다.

기를 응집시켜 방출할 수 있으니.

그리고 그걸 막아낼 수 있는 선수는?

없다는 걸 이미 1차전에서 확인했었다.

타타탓-!

계속해서 끌고 올라가는 도훈.

백도훈식 빌드업.

혼자 세네 명을 지나쳐 박스 근처까지 끌고 들어가는 도훈.

그리고 세워지는 바르샤의 두터운 중앙 마지노선.

‘대체 누가 아쉬운거야?’

도훈은 그 앞에서 공을 발 아래에 세운 뒤 생각했다.

앞서고 있는 건 자신들이었다.

상대는 어떻게든 남은 시간 동안 3골을 터뜨려야 하는 무지 급한 상태고.

근데도 안 덤벼든다고?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거늘.

뭐 하자는 건데.

“백도훈. 백도훈? 가만히 서 있는 백도훈.”

도훈은 공을 세워놓고 계속 대치만 하며 바르샤 선수들을 노려 보았다.

대체 언제까지 참기만 할 거냐고, 상대의 인내심을 테스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겁쟁이들!”

“저게 니들이 자랑하던 축구냐! 집워 치워라!”

곧 관중들의 조롱이 터져 나왔다.

그 조롱을 똑똑히 두 귀로 들으며, 바르샤 선수들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대로 주구장창 보낼 시간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덤벼들러 나간다면..

녀석이 기다리는 걸 해줄 뿐인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 고민 때문에, 누구도 쉽사리 발을 움직일 수 없던 그 때.

‘음?’

도훈은 뒤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기에 왼쪽으로 공을 틀었다.

촤아아-

그리고 원래 도훈이 서 있던 자리에 발 하나가 지나쳤다.

“메시가 붙습니다!”

메시의 수비 가담이었다.

수아레즈도, 네이마르도 동료들에게 수비를 맡기고 전방에 위치한 상황에서 이를 악물고 내려온 메시.

그 장면은, 그가 얼마나 절박한 심정인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자신이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오를 수 있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 무대.

그리고, 그 곳에서 지난 14년여 동안 이어져 왔던 라이벌 관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기회.

그 기회는 만들어 졌는데, 자신이 그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축구의 신이라 불리던 메시의 커리어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툭, 툭-

거칠게 달려드는 메시.

제발 내놓으라는 듯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메시에, 도훈은 이리저리 빙글 돌며 공을 지켜냈다.

처절한 순간.

더 이상 동료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나둘씩 달려드는 바르샤 선수들.

그러나 도훈은 그 상황에서도 냉정했다.

뻐어어엉-!

달라붙는 상대의 숫자가 늘어나자 곧바로 패스를 빼내는 도훈.

슈우우웅-

그 패스는 반대편, 아무런 상대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있는 수소에게로 향했다.

수소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도훈에게 온 신경이 몰려 있던터라, 빈 선수들이 많았다.

파아앙-

수소는 곧바로 이과인에게 공을 내줬고,

뻐어어엉-!

이과인은 그대로 슈팅을 때렸다.

슈우우웅-

철썩-!

경기는 그걸로 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삐익, 삐이이익, 삐이이이이익-!”

정말로 끝이었다.

마침내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순간,

“결스으으으으으응-!”

“이겼다-!!”

산 시로는 그 순간 밀라노에서, 아니 이탈리아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이 되었다.

“도훈아!”

“결승이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기쁨을 만끽하는 밀란 선수들.

가투소 감독은 도훈을 죽일듯이 끌어 안아 주었고, 동료들 역시 가장 먼저 도훈에게 달려와 승리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동시에 표했다.

“오오오오, 비아크~!”

팬들 역시도 도훈을 찬양하는 응원가를 목 놓아 부르짖으며 이 말도 안되는 기적의 드라마를 써준 주인공, 도훈에게 경배를 올렸다.

말은 안됐다.

그러나 행동으론 됐다.

1,2차전을 통틀어 4골을 터뜨린 도훈.

도훈은 누가 뭐래도 밀란이 챔스 결승으로 향할 수 있었던 이유, 그 자체였다.

“...”

“...”

그 아수라장에서, 말 없이 경기장을 떠나는 바르셀로나 선수들.

메시 역시 고개를 숙이고 경기장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

메시는 갑자기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도훈에게로 걸어갔다.

“어이. 이 친구가 할 말 있나본데.”

도훈에게 볼 일이 있는 듯한 메시를 발견하고 알려주는 동료들.

도훈은 한껏 헝클어진 머리로 메시와 마주했다.

메시는 말 없이 유니폼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 도훈에게 내주며,

“다음 시즌에 볼 기회가 있을까?”

말했다.

유니폼을 벗어 메시에게 건네주는 도훈.

그리곤 어깨를 으쓱이며 메시와 손을 맞잡았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시대를 풍미했던 신.

그리고 이제 시대를 풍미할 신.

그 날의 경기 결과처럼, 두 사람의 표정 차이가 말해주듯.

“매출이 두 배는 뛰어 오르겠구만!”

도훈을 단독 모델로 하는 축구화, 푸마 넥스트 제너레이션이 두 배로 더 팔려나갈 것을 직감한 푸마 지부장의 얼굴에 함박 웃음이 피어 올랐다.

넥스트 제너레이션.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ㆍㆍㆍ

뻐어어엉-!

뻐어어엉-!

텅 빈 훈련장.

벌써 15년전.

AC 밀란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 무대에 마지막으로 오른 건, 히카르두 카카의 활약에 힘입었던 15년 전이었다.

그리고, 다시 15년만에 백도훈이라는 제 2의 카카가 나타나며 밀란은 결승에 올랐다.

그것이 오늘 저녁에 일어난 일이었다.

밀란팬들에게, 그리고 선수들에게 역사적이었던 승리의 순간.

모두가 그 기쁨에 취해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홀로 훈련장으로 향한 건 도훈이었다.

도훈은 마무리 슈팅 훈련을 하고 있었다.

오늘, 7만여 명의 관중들 앞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무자비한 두 골을 터뜨렸던 도훈이, 아무도 보지 않는 경기장에서 빈 골대를 향해 슈팅을 날리고 있었다.

사실, 어쩌면 마음은 지금이 훨씬 편하다.

혼자서 훈련하는 건 너무나 익숙하니까.

그러니까 이런 생각도 하는 것일테지.

‘훈련때의 100퍼센트만 나오면 좋겠는데.’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차는 족족 환상적인 궤적을 그리며 골대 구석으로 쳐박히는 슈팅.

이미 실전에서도 엄청난 골들을 무수히 터뜨려왔던 도훈이건만.

아직도 훈련에 비하면 100퍼센트가 나온다는 느낌을 받고 있진 못했다.

뭐, 이 세상의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똑같을 테지만.

‘결승전.’

이제, 남은 건 결승전.

누구에겐 데뷔 시즌만에 오른 결승전이니, 무척이나 이르다고 생각할 지도 몰랐다.

하지만, 도훈에겐 어쩌면 100년을 기다린 결승전이었다.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후회가 남아서는 안될 것.

뻐어어엉-!

도훈은 마지막 슈팅을 때리고, 숨을 크게 내쉬며 다짐했다.

‘후회없게.’

이번 결승전에 모든 걸 쏟아 붓겠다고.

ㆍㆍㆍ

74골 19도움.

총 공격 포인트 93개.

바르셀로나와의 4강 2차전까지 마친 도훈의 이번 시즌 기록.

이제 남은 경기는 리그 두 경기와, 챔스 결승전, 총 세 경기.

그러나 결승전을 위해 한 경기 휴식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도훈에게 남은 건 두 경기였다.

“백도훈의 리그 마지막 경기가 예상되기 때문일까요. 산 시로가 다시 한 번 만석을 이루었습니다.”

“보니까 경기장 밖에도 팬들이 엄청 많이 있더라고요.”

이번 시즌, 눈앞에서 도훈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기 때문일까.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팬들이 모인 산 시로.

마치, 도훈이 밀란의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뛰었던 인터 밀란과의 경기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나도 응원할게.’

그 중엔 로레나도 있었고.

“영원히, 백도훈-!!”

왠지 모르게 서글픈 이 느낌.

평소엔 활기차게 들리는 이 응원가가 오늘만큼은 가지 말라는 듯 구슬프게 들리기까지.

“...”

도훈은 경기 시작전, 응원을 보내오는 팬들에게 인사를 올린 뒤 산 시로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될 지도 모르는 리그 37라운드, 키에보전을 시작했다.

“역시..”

“대단해...”

도훈이 그 날 보여준 활약은, 후회와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기를 다했다는 느낌이었다.

자신이나, 팬들이나.

도훈은 6골.

4골도, 5골도 아닌 6골, 더블 헤트트릭을 터뜨리며 팬들의 응원에 화답했다.

이로써 리그 42골, 시즌 80골을 달성하는 도훈.

“누구도, 누구도 해내지 못한 기록입니다.”

“한 시즌 80골... 메시의 73골을 7골이나 뛰어넘는, 괴물의 기록입니다.. 이건, 이건 앞으로도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이에요.”

“아니죠.”

“예? 그럼 깨진다고요?”

“내년의 백도훈이 깰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

충분했다.

마지막을 장식하기엔.

물론, 정말 마지막은 아니지만.

“빅 이어, 가지고 돌아 오겠습니다.”

정말 마지막.

챔피언스 리그 결승을 위해 밀란 선수단이 공항을 떠나 결승전이 펼쳐지는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드 프랑스로 향했다.

같은 시간, 토리노에서 이륙한 유벤투스의 전용기와 함께.

ㆍㆍㆍ

“이런 게 있구나.”

“몰랐어? 네가 1등인데 그것도 모르냐.”

전용기안.

심심했던지 도훈의 옆 자리에 앉은 케시에가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엔 축구 선수들의 이름과 의미를 모르겠는 숫자들이 써있었다.

1. 백도훈 1/11

2.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12/3

3. 네이마르 16/2

4. 리오넬 메시 22/1

.

.

.

“이 숫자가 뭔 말이에요?”

“배당률. 쉽게 말하면, 발롱도르를 너가 받는다에 돈을 11원걸면, 1원을 번다는 이야기야. 맞춰도 1원밖에 안준다는 게 무슨 뜻이겠어?”

“...예상하기 쉽다?”

“그렇지. 그니까 한 마디로, 네가 제일 유력하다는 거야 지금.”

발롱도르 배당률.

압도적으로 1위에 올라있는 건 도훈이었다.

물론 아직 올 해의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

이 시기의 순위와 실제 발롱도르 수상자의 순위가 일치하지 않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미 차이가 많이 벌어져있는 배당률.

그건 그만큼 누구도 믿지 않는 도박사들 마저 도훈을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

발롱도르를 수상할 것으로.

“우리도 돈 걸까?”

“우리끼리 할 거면, 우리끼리 걸어야지. 배당을 크게 해서 말이야.”

재밌겠다는 듯 앞좌석에서 고개를 내미는 수소와 로마놀리.

그러나, 이내 이들은 내기를 포기했다.

“이러면 내기가 안되잖아.”

모두가 한 사람에 걸겠다고 했으니.

< 잘못 건드린 벌집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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