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못 건드린 벌집 (1) >
“xx, 이거지!”
“이게 진짜 신이다, 알겠냐!”
전반 8분만에 도훈의 선제골이 터지는 순간, 산 시로가 들썩였다.
순간 지진이라도 난 듯.
중계 카메라마저 격하게 흔들릴 정도로 7만여 명의 관중들이 자리에서 방방 뛰며 열광했다.
심장을 울리는 환호성.
도훈은 코너 플래그로 달려가 선 뒤, 두 팔을 벌렸다.
마치 자신을 경배하라는 것처럼.
“비아아아크크크크-!”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날 가져요!”
안 그래도 다들 경배하고 있었다.
두 팔을 들고 허리를 연신 숙이며 도훈에게 경의를 표하는 팬들.
심지어 눈물까지 보이며 탄복하는 팬들.
“백도훈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죠. 이게 백도훈이에요.”
믿음은 굳건했다.
다시 한 번 기적을 행해 보였으니.
의심할 구석이 1도 없었다.
이게, 신이었다.
산 시로의 신, 백도훈.
“경기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미쳐갑니다!”
“바르셀로나 선수들도 이런 분위기는 익숙치 않을 거에요. 라리가의 팬들 역시 열정적이지만, 여긴 차원이 다르 거든요.”
“이 곳 팬들에 비하면 아주 얌전하죠. 그 쪽은.”
해설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관중석과 그라운드의 거리도 가까운지라, 정말 잘못하면 관중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분위기.
이럴 수록 선수들끼리 더 많이 커뮤니케이션을 나눠야 하건만,
“필리페! 필리페!”
쿠티뉴를 부르던 자신의 목소리가 팬들의 함성 소리에 묻히자 부스케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친 분위기였다.
미친 경기장이었다.
일단 이른 시간에 터져버린 실점.
바르셀로나로서는 빠르게 동점골을 노리기 보다, 일단 분위기를 가져오는 게 먼저였다.
때문에 천천히 공을 돌리며 열기를 가라 앉히려 노력했다.
그러나,
~믿는다! 누구를!
~밀라노의 주인! 로쏘네리!
~찬양한다! 누구를!
~산 시로의 신! 백도훈!
7만여 명이 한 목소리처럼 목놓아 부르는 응원가에, 경기장의 분위기는 절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건..’
천천히 공을 돌리며 메시는 생각했다.
이 분위기를 가라 앉힐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다고.
다른 걸로는 절대 가라 앉힐 수 없었다.
골을 넣는 것밖에는.
파아앙-
오른쪽의 네이마르에게 공을 주고 올라가는 메시.
그리고 수아레즈가 공간을 찾아 나섰다.
“네이마르, 기회를 찾습니다.”
공을 잡고 천천히 기회를 노리던 네이마르는, 칼라브리아를 데리고 뛰며 중앙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래의 공간으로 다시,
파아앙-!
패스를 내주는 네이마르.
그 공을 오른쪽으로 이동한 수아레즈가 넘겨 받았다.
자파타를 앞에 두고 툭툭 치고 들어가는 수아레즈.
쉬이익-
타타탓-!
그러다 순식간에 속도를 높이며 사이드를 파고드는 수아레즈.
벗겨지는 자파타.
계속해서 박스까지 파고드는 수아레즈.
그런데,
‘소리가..?’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거라곤,
“자빠져라!”
“치아레즈!”
골대 뒷편에 있는 관중들의 목소리들 뿐.
어쩔 수 없이 공에서 시선을 떼고 박스 안을 훑는 수아레즈.
그러나 그 틈에,
촤아아아-
파아앙-!
“자파타가 책임 집니다!”
다시 따라붙은 자파타가 태클로 공을 골 라인 밖으로 걷어냈다.
“여기로 주지.”
“말을 해야지.”
“했잖아. 계속.”
“하나도 안 들렸어.”
불만을 터뜨리는 메시와 네이마르.
사실 둘은 빈 공간에 자리를 잡고 패스를 기다렸던 상황.
패스가 갔다면 찬스가 만들어질 수 있었으니 그들이 불만을 표하는 것도 당연.
그러나 수아레즈도 전혀 듣지 못했으니 억울했다.
물론 경기 중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눈빛만 봐도 호흡이 맞는 그들이기에, 이건 분명히 좋은 상황이라고 볼 수 없었다.
산 시로는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점유율 64대 36. 역시나 바르셀로나가 높습니다. 하지만 1차전때 만큼은 아니죠?”
“패스 미스가 늘었어요. 1차전때 바르셀로나의 전체 패스 횟수가 무려 771개였습니다. 그리고 미스가 24개밖에 되지 않았는데, 전반 15분까지 흐른 지금 벌써 18개의 패스 미스가 나왔어요. 선수들간의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모습입니다.”
1차전과 마찬가지로 경기를 주도하고 있는 건 바르셀로나.
그러나 좀처럼 패스 미스를 하지 않는 메시나 부스케츠 같은 선수들마저 몇 번의 패스 미스를 범하고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눈치채지 힘들 수 있지만, 분명히 흔들리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경기력.
여기서 밀란은 잘 생각해야 했다.
현재 합산 스코어는 4대3.
원정골을 3골이나 벌어놓은 상황이었다.
2대2로 비겨도 자신들이 결승으로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지금까지의 분위기도 좋았다.
상대는 제대로 된 자신들의 플레이를 펼치지 못하고 있었고.
반면 자신들은 경기장의 기세를 타고 분위기를 끌어 올리고 있는 상황.
급할 것 없으니 이대로 분위기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내친 김에 더 몰아쳐 기세를 완전히 잡을 것인가?
고냐, 스톱이냐.
“도훈!”
잠시 공이 터치라인 밖으로 나간 사이, 가투소 감독이 도훈을 불렀다.
그리고 전해주는 쪽지 하나.
도훈은 제 자리로 돌아가며 쪽지를 펴보았다.
거기엔 선수들의 위치가 포메이션 형태로 적혀 있었다.
쪽지를 읽고 동료들에게 외치는 도훈.
“올라가자!”
남자라면 여기서 스톱을 외칠 리가 없었다.
4-3-3의 쪽지를 전해준 가투소 감독.
원래의 4-4-2에서, 도훈과 수소를 각각 오른쪽, 왼쪽 윙어로 전진 배치시키는 형태.
그리고 한 가지 더.
‘인사이드 커터.’
도훈에게 주문하는 역할.
자르고 들어가, 골을 노려라.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분위기 그대로 전반을 완전히 가져올 셈.
파아앙-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겨 공을 건네받는 도훈.
앞을 가로 막는 호르디 알바.
그러나 진짜 상대는 알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알바는 이용할 방패일 뿐.
슥-
타타탓-!
오른쪽으로 파고들 듯 상체 페인팅을 준 도훈이 왼쪽으로 접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역시나 덤벼들지 않던 알바는 그런 도훈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빠릅니다!”
중앙으로 올라가는 속도가 워낙 빠른 도훈.
때문에 알바는 멀리 가지 않아 부스케츠가 담당하고 있는 영역으로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개의치는 않았다.
공을 잡은 게 백도훈이라면 포메이션에 상관없이 끝까지 달라붙어야 하는 게 책임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수비의 입장에서 혼자 보다 옆에 동료가 있을 때 더 불편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타타탓-!
도훈은 중앙으로 계속해서 치고 올라갔고, 알바는 부스케츠를 피하느라 멈칫하며 속도가 줄었다.
부스케츠 역시 뒤늦게 도훈을 따라가 보지만, 이미 속도가 붙은 도훈을 따라가기엔 역부족.
그렇게 중앙에서, 도훈에게 왼발 슈팅 각도가 열렸다.
가깝지는 않은 거리.
그러나 도훈의 슈팅력이 어느 정도인 지 알기에, 박스 밖으로 밀고 나오는 움티티와 랑글레.
도훈은 개의치 않고 왼발을 크게 당겼다가,
파아앙-!
한 번 더 치고 들어갔다.
아예 처음의 위치에서 반대편 박스까지 한 번 더 치고 들어간 것.
왼쪽에서 세르지를 데리고 움직이던 수소가 중앙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을 보인 덕분에, 박스 왼쪽은 무주공산.
도훈은 박스 바깥을 훑으며 알바, 부스케츠, 그리고 랑글레와 움티티까지 제쳐낸 것이었다.
완전히 무너지는 바르샤의 수비 체계.
이게, 인사이드 커터.
뻐어어엉-!
박스 안으로 진입한 도훈은 그대로 왼발 슈팅을 때렸다.
속도를 줄인 게 아니었기에 몸이 붕 뜨며 땅을 구르는 도훈.
그러나, 골대를 보지 못하고 넘어지면서도 도훈은 알 수 있었다.
슈팅을 때리기 직전 순간적으로 조용해졌던 경기장.
7만여 명이 동시에 숨을 죽이고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었는데,
“와아아아아아앗-!”
잠시 후 다시 큰 함성이 터져 나왔으니, 꼭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나.
안봐도 비디오지.
“고오오올-! 골입니다, 백도훈! 동점골이 아니라 달아나는 골! 밀란이 두 번째 골을 터뜨립니다!”
“이야, 이건 예상 외인데요. 밀란이 두 골을 더 달아나네요!”
도훈의 챔피언스 리그 13번째 득점.
밀란의 GO가 통하며, 완전히 대박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삐익, 삐이이익-!”
2대0.
전반 종료.
GO는 완전히 성공이었다.
한 골도 모자라 두 골까지 터뜨린 도훈 덕분에 선수들의 기세는 완전히 살아났고, 산 시로의 팬들은 이미 승리라도 한 것처럼 열광했다.
반면.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경기장을 빠져 나와 드레싱 룸에 모였다.
졸전이었다.
이런 정도의 형편 없는 경기력을 보인 건 올 시즌 처음일 정도로.
다들 심각한 얼굴.
침체된 분위기에, 교체 조끼를 입은 피케만이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좀처럼 파이팅이 될 수 없었다.
메시마저도 고개를 숙이고 고민에 빠져만 있는 순간.
피케는 어쩔 수 없이 그걸 상기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레오. 유벤투스가 결승에 올랐어.”
“...”
“크리스티아누가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
4강의 반대편 대진.
1,2차전에서 3골을 터뜨린 호날두는 유벤투스를 챔피언스 리그 결승 무대에 올려 놓았다.
역시 챔피언스 리그의 사나이 답다는 세간의 찬양을 받고 있는 호날두.
메시가 호날두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게 있다면, 역시나 챔스, 그리고 토너먼트에서의 활약.
그 지적이 사실인지, 반대편 팬덤의 비난일 뿐인지를 결정하는 건 오로지 메시 스스로의 몫.
여기서 탈락한다면 그들의 비난에도 할 말이 없어진다.
그건 사실이니까.
멈출 순 없다.
절대로.
“다들.”
메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경기 내내 고민하던, 경기를 뒤집을 방법을 선수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고 선수들은 메시의 말을 경청했다.
“가보자!”
후반전을 위해 드레싱 룸을 나서는 바르샤 선수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삐이이익-!”
시작되는 후반전.
두 골의 여유.
밀란은 급할 게 없었다.
전반처럼만 45분을 보낸다면, 챔스 결승으로 향하는 건 자신들.
올 시즌이 시작될 때,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세리에의 AC 밀란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할 것이라고.
16강, 8강, 그리고 4강.
밀란은 매 순간 이번이 한계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보란듯이 여기까지 왔고, 이제 45분만 버텨내면 또 한 번 세간의 예상을 뒤집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적을 써오는 동안, 가장 중요했던 건 그게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이었다.
이길 수 있다고, 아니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며 뛰었다.
오직 목표는 챔스 우승.
모두가 허황된 목표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정말로 그것을 원하며 뛰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행보는 절대로 기적이 아니었다.
오늘 경기에서 이기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무조건 이길 것이었다.
퍼어억-!
“삐이익-!”
라키티치의 파울에 넘어지는 케시에.
그러나 케시에는 벌떡 일어나 경기를 재개 시켰다.
팬들의 응원 소리라는 기름에 활활 타오르는 투지.
선수들 모두에게 그런 투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후반전, 바르셀로나가 이용하려 마음 먹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흥분 시키자.’
조용히 도훈의 등 뒤로 다가가는 부스케츠.
딱 경고와 퇴장 사이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모든 이들의 흥분을 유발할 수 있는 기술적인 파울을 해줄 수 있는 건 부스케츠뿐.
뻐어엉-!
공이 높게 떴을 때, 부스케츠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을 따내기 위해 도훈이 뛰어오른 순간, 등 뒤에서 거칠게 달려 들었다.
퍼어억-!
부스케츠와 부딪혀 공중에서 크게 넘어지는 도훈.
곧바로 휘슬이 울렸고,
“헤이!”
“이런 씹!”
성난 관중들의 고함 소리와 함께 밀란 선수들이 순식간에 부스케츠에게 달려 들었다.
두 손을 들고 물러나는 부스케츠와 그런 부스케츠를 거칠게 밀어버리는 밀란 선수들.
곧바로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밀란의 선수들이 흥분한 것은 당연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수를 건드렸으니.
도훈만큼은 그 누구도 건드려선 안될 동료였다.
“질 것 같으니까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떨거지 구단 주제에 기고만장하긴!”
거친 설전을 벌이는 양 팀 선수들.
감정 싸움으로 번지는 양 팀.
그러나,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겉으론 흥분한 체 하고 있으면서도, 속으론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더 흥분해라. 더.
일부러 더 거친 욕설을 하고, 상대를 밀치며 밀란 선수들을 자극하는 바르샤 선수들.
과열된 산 시로의 열기는 분명 그들에게 힘이 되고 있었다.
전반전까지는.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독이 될 수도 있었다.
지나친 흥분감.
축구 선수들도 인간이다.
축구를 축구로 하지 못하게 되면 경기는 정상적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고.’
등 뒤에서 부딪혀 오는 바람에 고통을 호소하던 도훈은 금새 털고 일어났다.
그러면서 고개를 저었다.
상대의 생각이 뭔지 대번에 알 수 있었으니까.
감정적으로 건드려 흥분하게 만들 셈인 건데.
‘실수야, 그거. 여긴 말로만 하는 곳이 아니라고.’
도훈은 그 속셈이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산 시로의 팬들은,
“어어, 저런 건 막아야죠.”
진짜 열 받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지금 그들이 건드린 건, 성난 벌들이 살고 있는 벌집이란 말이었다.
슈우우웅-
화르륵-!
“성난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홍염을 던지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흥분감을 더 지속할 새도 없이, 그라운드로 날아드는 홍염에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고,
“잠깐만..”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퍼졌다.
< 잘못 건드린 벌집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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