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68화 (68/173)
  • < 모독 (3) >

    “잘가.”

    “갈게.”

    집을 나서는 도훈을 배웅하는 로레나.

    어느 덧 대화를 나누는 말투에서 느껴지는 친밀감.

    웃으며 인사를 나눈 둘은 헤어졌고, 잠시 후 마티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때? 이야기는 좀 많이 했냐?”

    “많이 했지.”

    “잘 얘기 했어?”

    “오빠.”

    “응?”

    로레나는 마티니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야기했다.

    “미안해. 솔직히 시키는 대로 못했어.”

    “못했다니?”

    “밀라노에 남아 달라는 말, 못했다고.”

    로레나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는 마티니.

    “왜?”

    “그냥.. 못하겠어.”

    마티니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로레나를 쳐다 봤다.

    몇달 전.

    고마움이 많은 녀석이기에 마티니는 도훈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었다.

    거기서 자연히 동생 로레나를 도훈에게 소개시켜줬고.

    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정말 자연스럽게 둘이 만났던 것 뿐이었다. 동생을 보고 정신을 못차리는 도훈의 모습이 웃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낸 건 마티니의 에이전트였다.

    밀란이 도훈을 붙잡을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

    그건 3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로레나를 이용해서라도 도훈을 붙잡을 수 있지 않겠냐는.

    솔직히 마티니는 이 방법이 내키지 않았다.

    밀란을 떠나 더 큰 팀으로 가야한다고 누누이 떠들고 다녔던 게 마티니, 본인이었으니까.

    동생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에도 거부감이 들었고.

    하지만 에이전트가 밀란 코치에게 말했고, 서로 정말 좋은 방법인 것처럼 떠들어대니 그대로 따랐을 뿐이었다.

    “도훈이가 너랑 잘해 볼 마음 없대?”

    “그건 아닌데..”

    “그럼?”

    “그냥.. 못하겠어.”

    “뭐를?”

    “나... 솔직히 진심으로 도훈이가 좋아.”

    로레나의 말에 마티니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그런데 어떻게 밀란에 남으라는 말을 해.. 얘기해보니까, 고민이 엄청 많은 것 같았어. 내년에 어느 팀으로 가야할 것인지. 자기의 꿈이 어떻고, 어떻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얘기하는데 내가 어떻게 거기에 대고 밀란에 남으라고 이야기 하냐고.”

    “...”

    “그래서 말 못했어. 그냥 어디로 가든 계속 응원하겠다고 말했어.”

    마티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로레나의 마음때문에 계획은 틀어졌다.

    그런데 왜 마티니는 웃음이 나오고 있을까.

    “잘했다. 가끔은 내 동생 답구만.”

    “뭐가...”

    “잘했다고. 그냥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근데, 오빠로서 말하면 진짜 걔랑 잘해 봐. 걔..”

    “...?”

    “내년엔 수백억대 연봉 받을 애니까.”

    “치... 솔직히 여자한테 별로 관심 없는 것 같아. 방금도 운동해야 된다고 칼같이 가버리잖아.”

    “하하. 그게 진짜 남자지. 멋있는 놈이다.”

    마티니는 웃었고, 로레나도 피식 미소를 터뜨렸다.

    ㆍㆍㆍ

    -백도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가나? “500억대 연봉 제시” 총력 기울여

    ㄴ응 맹이딱

    ㄴ멘데스가 확실히 일할 줄 아네. 맨유는 이용해먹는 게 딱이야~

    -레알, 바르샤, 맨유 3파전 압축? 천문학적 연봉에 백도훈 영입 포기하는 팀들

    ㄴ일단 밀란은 챔스 우승해도 붙잡기 힘들 것 같고.. 확실히 돈이랑 비전까지 맞춰줄 수 있는 건 레알 바르샤인 듯. 맨유는 중국팀 가는 거나 다름 없지. 돈 많이 받고 유로파 경쟁이나 하고 있으면 뭐하냐

    ㄴ바르샤는 이미 주급 포화인데... 차라리 정리할 선수들 많은 레알이 선수단 정리 싹 하고 백도훈한테 올인하는 게 가능성 있어 보이는 얘기인 듯

    “어떻게 됐나?”

    “자세한 건 바르셀로나 전이 끝난 뒤 다시 이야기하자고.. 근데 마음은 떠난 것 같습니다. 잡을만한 비전이 마땅치 않아요.”

    “별 수 없지.”

    멘데스와 도훈의 재계약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거의 이야기가 정리되었다는 걸 직감한 밀란은, 도훈을 통해 챙길 수 있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어떻게 쓸 지에 대해 더 고민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점점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2021년, 4월 16일.

    리그 34라운드.

    캄프 누 원정을 떠났던 도훈을 비롯한 주전 선수들이 빠진 사수올로 원정.

    어이없게도 그 경기에서 밀란은 사수올로에게 0대2로 패배했다.

    사수올로는 리그 11위에 머물러 있는 팀.

    그런 팀에게, 주전들이 빠졌다고 캄프 누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두고 돌아온 팀이 무기력하게 패배했다는 것.

    선수진의 얇은 뎁스, 주전과 비주전의 전력차이.

    그리고 도훈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생각보다도 컸다.

    “내년 시즌을 위해선 선수단을 보강할 필요성이 큽니다. 언제까지고 백도훈에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년에 백도훈이 남을지도 의문이니..”

    결국 고생해야 하는 건 도훈이었다.

    1주 뒤인 35라운드, 제노아전에 선발 출전한 도훈은 1주일간의 휴식이 얼마나 보약이 됐는 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불과 전 경기에서 졸전을 펼치며 사수올로에게 패배를 당했던 밀란은 2골 2도움을 몰아친 도훈의 활약에 힘입어 4대1로 제노아를 물리치고 마침내 챔스권 확보, 최소 4위 확정을 확정 지으며 리그 경기의 부담을 한결 놓았다.

    이 경기에서 도훈은 리그 36골로 올라섰다.

    득점 2위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는 8골 차이.

    후반기부터 시작한 페이스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기록이었고,

    1위 백도훈 28골

    2위 파코 알카세르 26골

    분데스리가의 기록 역시 여전히 도훈이 1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도르트문트의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알카세르가 3골 이상을 기록하지 않는 이상 도훈이 득점왕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이번 시즌 총 36경기에 나서 71골 19도움을 기록한 도훈.

    11/12시즌 메시가 60경기에 나서 기록했던 73골 29도움이라는 불멸의 기록.

    최종적인 수치는 아직 그걸 넘어서지 못했으나, 경기 수 차이를 비교한다면 과연 도훈이 어떤 업적을 이뤄내며 여기까지 온 건지 짐작할 수 있을 터.

    물론,

    “오랫동안 1위 리그를 유지해온 라리가에서 이룬 기록과, 세리에와 분데스리가에서 이룬 기록이 같을 수는 없다.”

    “한 차원 높은 리그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본다. EPL에서도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 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소리는 아니다.”

    따위의 이야기들이 전문가라는 작자들의 입에서 나오기도 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론은, 새로운 신의 탄생이 아니냐하는 것이 지배적.

    이미 올 시즌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도훈의 다음 시즌은 축구 역사상 역대급 기록이 터질 해가 아닐까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도훈의 생각은 달랐다.

    ‘멀리갈 것 뭐 있어.’

    다음 시즌까지 갈 것도 없다.

    이번 시즌부터, 역사는 쓰여질 것이다.

    시작보다 중요한 건 마무리.

    남은 경기들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오늘도 도훈은 구슬땀을 흘렸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밀라노에 입성했다.

    ㆍㆍㆍ

    “산 시로입니다.”

    캄프 누가 원정 팀의 무덤이라면, 올 시즌 산 시로 역시도 그렇게 불릴 수 있을만한 곳.

    특히나 이 곳의 팬들 역시 그들의 신을 모시고 있다.

    “비아크-!!”

    “이겨줄 거라 믿습니다!”

    경기장에 나와 몸을 푸는 것만으로 환호성이 이는, 이 곳은 백도훈이라는 신을 모시는 곳.

    그 산 시로에 캄프 누의 신을 비롯한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캄프 누 원정에서 좋은 결과를 들고 돌아온 밀란이었다.

    원정 골도 3골이나 넣었고, 패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심할 수 없는 건 상대가 그래도 바르셀로나기 때문.

    때문에 산 시로의 홈팬들은 더욱 더 목소리를 높여 경기장의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이젠 도훈도 없으면 어색한 홍염이 경기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결승 진출이 달린 양 팀의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 시작 하겠습니다!”

    휘슬과 함께 바르셀로나와의 두 번째 경기가 시작 되었다.

    양 팀의 스타팅 멤버는 1차전 그대로.

    더 바꿀 것도 없었고, 이게 베스트인 두 팀.

    말 그대로 정면 승부였다.

    다른 것도 아닌, 챔피언스 리그 결승행 티켓이 걸린 승부.

    경기는 초반부터 치열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어이! 뭐 하자는 거냐!”

    “버스 뒤집히고 싶지!”

    호르디 알바의 거친 태클에 넘어지는 수소를 보며 분개해 외치는 밀란 팬들.

    그런 팬들의 반응에 알바는 입술을 내밀고 어깨를 으쓱이며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에 더욱 더 날아드는 욕설.

    산 시로의 분위기는 대단했다.

    좋게 말하면 열정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폭력적일 정도.

    경기 시작전부터 이미 바르셀로나를 조롱하는 노래들이 메들리처럼 끊이지 않고 있었고, 캄프 누의 팬들이 들으면 귀를 막아버릴 정도로 메시를 조롱하는 구호 역시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반쪽짜리 신!”

    “흰색과 하늘색이 섞인 유니폼을 입으면 아무것도 못하지요~!”

    “나는 신 메시! 그러나 사비와 이니에스타가 없으면 네이마르와 쿠티뉴라도 있어야 하지! 그래도 나는 신 메시!”

    경기 중인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조롱에, 바르셀로나 선수들도 그 소리를 듣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

    “...”

    거슬리는 게 사실일 것이었다.

    아무리 수년 간을 뛰어온 프로라고 해도.

    그래서인 것일까, 아니면 전술일 뿐일까.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생각보다 거칠게 플레이하며 경기 초반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경기장의 분위기는 뜨겁다뿐이었다.

    하지만,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수까지 건드렸을 때, 경기장의 분위기가 과열되기 시작했다.

    퍼어억-!

    “삐이익-!”

    다소 흥분한 듯한 라키티치의 태클에 허벅지를 채여 넘어지는 도훈.

    도훈이 거친 파울을 당하자,

    “에에에에에이-!”

    “저 xx, 죽여!”

    산 시로의 팬들이 벌떡 일어나 죽일 듯이 라키티치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관중석에서 내려와 경기장으로 난입할 듯한 팬들.

    다른 건 몰라도, 도훈을 건드리는 건 이들에 대한 모욕.

    ‘분위기 한 번 살벌하네.’

    라키티치는 심판에게 주의를 받은 뒤 두 손을 들며 뒤로 물러났다.

    산 시로의 기세에 약간 당황하는 듯한 바르셀로나 선수들.

    ‘역시 산 시로야.’

    도훈은 툭툭 털고 일어나며 프리킥을 짧게 내주며 경기를 재개 시켰다.

    확실하고 짚고 넘어갈 게 하나 있었다.

    여기는 캄프 누가 아니었다.

    여기는 산 시로였다.

    그리고, 상대는 분명히 그 분위기에 붕 뜨고 있었다.

    지금처럼 자신에게 달려드는 행동은, 캄프 누에선 없었다.

    그 때와 다른 플레이가 나오고 있다는 것.

    그들이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건 기회였다.

    파아앙-

    파아앙-

    패스를 돌리며 경기를 주도하기 시작하는 밀란.

    1차전과는 다른 모습.

    사실, 이런 산 시로의 분위기가 바르셀로나 선수들에게만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런 팬들에게 더욱 압박을 받는 건 오히려 밀란 선수들 일지도.

    하지만 그 압박은, 분명히 좋은 방향으로 밀어지는 것 일수도 있었다.

    여기서 졸전을 펼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 압박이 밀란 선수들로 하여금 최상의 집중력을 끌어낸다는 것.

    또한 도훈은,

    “보여줘라!”

    “끝장 내버려!”

    공을 잡을 때마다 거대한 환호성을 등에 업을 수 있었다.

    이 곳에서의 신은 자신이었다.

    툭-

    “백도훈.”

    “밀란의 분위기 입니다!”

    캄프 누에선 공격 진영에서 공을 잡을 기회조차 몇 번 없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중앙에서 공을 잡는 도훈.

    상대는 산 시로의 분위기에 약간은 붕 떠있는 상황.

    차분하게 내려 앉았던 1차전과는 다른 수비 진형이 도훈의 눈에 들어왔다.

    타타타탓-!

    속도를 높이며 전방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하는 도훈.

    갑작스레 속도를 높이는 도훈에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는 상대 수비들.

    역시나 중앙으로 간격을 좁히고 있었다.

    그것으로도 쉽게 막아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 방법밖엔 없었으니.

    파아앙-!

    “왼쪽으로.”

    “수소가 받습니다.”

    중앙으로 뚫고 들어갈 듯 달려가던 도훈이 왼쪽으로 패스를 내줬다.

    파아앙-!

    “다시 뒤로!”

    “백도훈!”

    왼쪽 사이드에서 공을 받은 수소가 다시 중앙으로 패스를 내줬다.

    달려들며 그 공을 받는 도훈.

    그 터치가,

    스르륵-

    물이 흘러가는 듯 부드러웠다.

    그리고 곧바로,

    스르륵-

    파아앙-!

    “마르세유 턴!”

    도훈이 우아하게 돌아서며 앞을 가로 막으려던 세르지 로베르토 앞을 빙글 돌아 지나쳤다.

    그러나 회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툭-!

    도훈은 다시 왼발로 공을 꺾으며 직각으로 꺾어 들어갔다.

    중앙으로 접어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예상했던 랑글레가 예상치 못한 접기에 박스 안으로의 진입을 허용하고 말았고,

    ‘여긴 산 시로고.’

    도훈에게 곧바로 왼발 슈팅 각도가 열렸다.

    대각선으로 자세를 잡으며 골대를 가리는 테어 슈테겐.

    ‘여기의 신은.’

    도훈은 상관 없다는 듯 왼발을 당겼다.

    뻐어어어엉-!

    촤아아아아-

    낮게 깔려 들어가는 묵직한 슈팅.

    슈팅은 파 포스트를 향해 박스를 대각선으로 갈랐다.

    발목 높이로 날아드는 빠른 슈팅.

    손으로 막기엔 늦어 테어 슈테겐은 왼발을 뻗어 막으려 했다.

    그러나,

    ‘나야.’

    그마저도 늦고 말았다.

    철썩-!

    “와아아아아아앗-!”

    전반 8분.

    광분하는 도훈의 광신도들.

    산 시로가 과열을 넘어 폭발하고 말았다.

    < 모독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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