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67화 (67/173)
  • < 모독 (2) >

    불균형한 시소가, 기어이 평형을 이루는 순간.

    도훈이 세 번째 골을 터뜨리자 캄프 누에 적막이 찾아 들었다.

    8만 명이 한 순간 입을 다문 것.

    뭘 본건가 싶었다.

    이런 플레이에 환호한 적은 많았다.

    메시 덕분에.

    대체 뭘 본건지 의문스러울 정도의 플레이에, 환호하고 열광한 적은 많았던 바르샤 팬들이었다.

    그러나, 그걸 반대로 당해 버렸다.

    지금 그들의 눈을 의심케 한 건 그들의 신, 메시가 아니라 도훈이었다.

    그것도 과연 메시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퍼포먼스로.

    그러나 무서운 건, 백도훈이 눈을 의심케하는 플레이를 펼쳐 보인 것이 아니었다.

    바르샤 팬들이 스스로 그들의 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말 무서운 것이었지.

    “...”

    환호하는 동료들을 뒤로 하고 도훈은 공을 가지고 하프 라인을 향해 뛰었다.

    아직 이긴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30분 가량 남은 시간은 다시 대부분이 바르샤의 시간일 것.

    경기는 어떻게 끝날 지 몰랐다.

    도훈은 이기고 싶었다.

    웬만하면 이 곳, 캄프 누에서.

    파아앙-!

    도훈은 킥 오프나 하라는 듯, 메시의 발 앞에 공을 찍은 뒤 밀란 진영으로 돌아갔다.

    “...”

    그 모습을 바라보며 메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순간 메시도 마음 속에서 피어 오르는 불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시 균형이 맞춰진 경기.

    바르샤로썬 참으로 난감했다.

    경기 내용은 분명히 자신들이 압도하고 있는 경기.

    사비가 보고 있다면 내용에선 이겼으니 한 잔하라고 권할 정도의 경기 내용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3대3이라는 스코어에 만족할 수가 없는 바르샤였다.

    그래야 했다.

    근데, 왜일까.

    왜 잘못 발을 디뎠다간 더 큰 일이 날 것 같은, 오히려 이대로 끝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조심스러움이 생기는 것은.

    킥 오프를 하자 마자 시작됐던 도훈의 중앙 돌격에 그대로 허물어져 버렸던 수비진.

    그런 장면이 다시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상대가 백도훈인 이상.

    결국 메시보다도 파괴적인 드리블 돌파라는, 이미 말도 안되는 한 방을 얻어 맞은 바르샤로써는 동점골을 헌납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점유율을 유지하는 식으로 경기를 풀어 나갔다.

    ‘이제부턴 단 한 번도 공을 만지게 해서는 안 돼.’

    공격을 위해 공을 돌리는 건지, 도훈을 피하기 위해 공을 돌리는 건지.

    그렇게 캄프 누에서, 경기를 압도하면서도, 동점에 만족한다는 듯한 ‘바르셀로나’.

    그것은 축구팬들에게 너무도 익숙치 못한 장면이었고, 캄프 누를 찾은 팬들에겐 실망스럽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바르셀로나가.. 서두르지 않습니다.”

    “홈에서 3대3이라는 결과에 만족하는 걸까요.”

    바르샤가 그렇게 나온다면 밀란도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전략적 협정이라도 이뤄진 것일까. 그렇게 남은 시간은 꽤나 루즈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

    그 속에서 조용히 한 방을 노리는 선수는 여전히 존재했다.

    메시였다.

    메시의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복잡한 감정이었다.

    ‘이게 바르샤인가?’

    고개를 젓는 메시.

    이렇게 플레이하는 건, 스스로가 스스로를 모독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결국 시간이 속절 없이 흐르고, 어느 덧 정규 시간이 모두 끝나갈 무렵.

    툭-

    “메시.”

    마음을 먹은 메시가 하프 라인에서 공을 잡고 전방을 바라 봤다.

    전원 수비에 가까운 밀란.

    그러나 메시가 그런 수비에 두려움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타타탓-!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메시.

    다시 믿음을 부여해야 한다.

    의심을 지워야 한다.

    확인 시켜야 한다.

    이 곳의 신이 누구인지를.

    파팡-!

    “메시! 계속 들어 갑니다!”

    케시에와 수소를 혼자 제쳐내고 오른쪽으로 파고드는 메시.

    파아앙-

    파아앙-!

    그리고 네이마르와 원 터치 패스를 주고 받아 로드리게스까지 허물어 내고 박스 오른쪽까지 접어드는 메시.

    “메시, 메시, 메시!”

    빨라지는 해설자의 목소리.

    그리고 바르샤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여주나?

    지금까지의 의심을 말끔히 씻어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는가?

    ‘강림.’

    부스케츠는 속으로 기도 했다.

    사죄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믿음에 보답해주소서.

    제발 신을 의심한 것을 회개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하고 모두가 기도하는 순간.

    파아앙-!

    박스 오른쪽에서 골문을 향해 달려들던 메시가 달려드는 자파타를 피해 왼쪽으로 공을 접었다.

    벗겨지는 자파타.

    곧바로 열리는 왼발 슈팅 각도.

    메시는 지체 없이 왼발 슈팅을 때렸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

    파 포스트로 때리기 좋았던 각도.

    돈나룸마는 성급히 결단을 내린 자신을 탓했다.

    이미 자파타까지 벗겨진 이상, 슈팅을 보고 몸을 날리면 늦기에 오른쪽으로 중심을 기울였던 상황.

    그러나 메시의 슈팅은 니어 포스트쪽으로 꺾어져 들어오고 있었다.

    잘 버텨냈는데.

    도훈이 혼자 동점까지 만들어 줬는데.

    마지막을 버티지 못해 실점인가 싶은 그 순간.

    촤아아아-

    돈나룸마의 앞을 가로 질러 몸을 날리는 선수가 있었다.

    도훈이었다.

    파아앙-!

    “백도훈이!”

    “이걸 걷어 냅니다!”

    몸을 날리며 다리를 뻗은 도훈.

    그 도훈의 발에, 메시의 슈팅이 걸렸다.

    그리고 종이 한 장 차이로, 공은 골대를 벗어나 골 라인을 나갔다.

    “슈퍼 세이브!”

    “백도훈이 한 골을 막아냈습니다! 이건 사실상 오늘 네 골을 기록한 것이나 다름 없는데요!”

    순간 동시에 머리를 감싸쥐는 바르셀로나 선수들과 8만여명의 팬들.

    들어갔다 싶었던 순간.

    마지막까지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백도훈이라는 존재.

    “삐익, 삐이익, 삐이이이익-!”

    그리고 경기는 종료 되었다.

    결국 그렇게 경기가 종료 되었을 때.

    진한 아쉬움이 캄프 누를 가득 메웠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은 생각을 하는 팬들도 많았다.

    분명 경기를 압도 했고, 그럼에도 무승부를 거뒀거늘.

    이상한 경기였다.

    “저 친구 정말..”

    “메시의 뒤를 이을 자격이 있네.”

    “어이! 다음 시즌부턴 캄프 누에서 다시 보자!”

    역시나 도훈 때문일까.

    팬들은 경기 결과에 대해 말하기보다,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도훈에 대해 이야기 했다.

    대부분은 자기네 팀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이었고.

    “정말 대단했네요.”

    “원샷 원킬의 표본입니다. 이미 몇 차례 보여줬었죠. 어쩌면 저런 집중력을 가지고 있을까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멘탈이 대단합니다. 17살 아닙니까? 그런데 멘탈은 마치 100년이라도 산 사람 같아요.”

    다시 말하지만, 바르샤 팬들은 굉장히 눈이 높다.

    그들에게 있어 ‘우리 팀에서 뛸 만 하다’ 라는 평가는 어쩌면 선수에게 있어 최대의 찬사.

    그런 그들이, 도훈에게 꼭 우리 팀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 하나로, 오늘 도훈의 활약이 어땠는 지는 설명 끝.

    애초부터 균형이 맞을 수 없도록 설계된 시소였다.

    그러나 도훈은 시소에서 내려, 완력으로 밀란쪽을 끌어 내려 균형을 맞춰 버리고 말았다.

    또한, 캄프 누의 신이라는 메시보다 더 돋보였던 건 두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다음에 여기 올 일이 있다면, 그 땐.’

    도훈은 승리하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일 것이었다.

    ㆍㆍㆍ

    “어쩔 생각입니까?”

    “마음 같아서야 지켜내고 싶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밀란의 구단주 집무실.

    밀란 구단주, 가투소 감독, 그리고 조르제 멘데스가 대담을 나누고 있었다.

    밀란과 도훈의 계약이 끝나는 날까지는 3개월 남짓.

    이미 재계약에 대해 몇 차례 멘데스와 이야기를 나눴던 밀란이었다.

    당연히 도훈을 붙잡고 싶었다.

    산 시로의 기둥 하나를 뽑아 팔아서라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백도훈은 기량도 기량이거니와, 스타성도 겸비해 엄청난 부가 수입을 거둬들여줄 수 있는 선수니까. 아시아권, 특히나 중국에서 백도훈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중국 쪽에서는 1년 연봉으로 1천억을 부르더군요.”

    “현실성 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그래서 유럽 팀들 중엔 어디가 제일 많이 불렀습니까?”

    구단주의 질문에 턱을 쓰다듬는 멘데스.

    “어디라곤 구체적으로 말 못하지만. 이적료로 3,800억을 부른 팀이 있었소.”

    “3천... 8백억? 연봉은..?”

    “700억.”

    사색이 되는 밀란 구단주.

    3,800억의 이적료.

    그리고 700억의 연봉이라니.

    그러나 그런 구단주의 표정을 보며 멘데스는 크게 웃었다.

    “미안하지만, 한달 전까지만 해도 3천 2백억 수준에 600억 수준이었소. 근데 한 달만에 지금처럼 불어난거지. 그럼, 다시 한달 뒤엔?”

    “...”

    “정말 붙잡고 싶다면, 그리고 그럴 방법이 있다면 선택은 빠를수록 좋겠지.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면 느긋해도 나쁠 건 없소.”

    멘데스의 말에 생각이 깊어지는 구단주와 가투소 감독.

    돈으로는 절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반면, 도훈을 보낸다면 챙길 수 있는 이적료는 너무나 군침이 도는 액수였고.

    “어쩔텐가, 젠나로..”

    침묵만을 지키고 있는 가투소 감독을 쳐다보는 구단주.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꼬고 있던 가투소 감독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에게 방법이 뭐 많습니까?”

    “많지.. 않지 않은가.”

    “붙잡을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뿐 아닙니까?”

    “실낱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있기야 있죠. 챔스 우승. 밀란이 유럽 최고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밖에 답이 있겠냔 말입니다. 그게 아니면..”

    “아니면?”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가투소 감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돈 문제로 왈가왈부 해봐야 밀란에게 답은 없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방법밖에 밀란에게 답은 없어 보였다.

    “고민이 많아 보이십니다.”

    “음? 컨디션은 어떤가, 조르지오.”

    밀란 훈련장.

    수심이 깊은 표정의 가투소 감독에게 찾아온 조르지오 마티니.

    훈련에 대해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던 둘은, 이내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처럼 목소리를 낮추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느낌이 좋다고는 하는데..”

    “홀딱 반했던가?”

    “분명히 반했긴 했을텐데. 아직 적극적으로 해보진 않아서요. 적극적으로 해보면, 분명 넘어오긴 할 겁니다.”

    “시간이 없어. 깊어져야 할 것 아냐.”

    둘의 대화는, 다름 아닌 로레나 마티니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늘 집에 초대해서 오기로 했으니까..”

    “잘해봐, 임마.”

    그 내용이 뭘진 두고봐야 알 일이었다.

    “어서와요!”

    “또 실례하게 됐네요.”

    그 날 저녁.

    도훈은 마티니의 집으로 저녁 초대를 받았다.

    이번엔 임찬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도훈 혼자.

    다시 근사한 저녁 식탁을 마주한 도훈은 신나게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가 끝난 후.

    이야기 꽃을 피우는 도훈과 마티니, 그리고 로레나.

    어린 시절에 어땠다는 둥, 밀라노의 어디가 그렇게 예쁘다는 둥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던 중.

    “잠시.”

    마티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로레나와 단 둘이 남게 되는 도훈.

    마티니가 없으니 찾아드는 어색함.

    그 순간.

    “로, 로레나?”

    도훈은 심히 당황하고 말았다.

    “흑, 흑..”

    로레나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으니.

    방금까지만 해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로레나가 갑자기 운다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훈이 적잖이 당황한 것은 당연했다.

    “진정 좀 하고.. 왜, 무슨 일 있어요?”

    “끅..”

    간신히 진정을 하는 듯한 로레나.

    로레나는 젖은 목소리로 힘겹게 이유를 털어 놓았다.

    “제가... 싫으신가요?”

    “예? 갑자기 그게 무슨..”

    “그냥 계속 느끼고 있었어요. 처음 만날 땐 그럴 수도 있지 생각했는데, 그 뒤에 만났을 때도, 저번에 파티장에서 만났을 때도. 제가 말만 걸면 무표정에 대답도 대충. 제가 싫으신거 잖아요.”

    “아, 아니..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그건 그냥...”

    얼굴이 벌개져 머리를 긁적이는 도훈.

    그냥 쑥스럽고 할 말도 없어서 단답식으로 대답을 했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운다고?

    “확실하게 말해주세요. 제가 싫으세요?”

    “아니요. 아니요. 싫지 않아요. 제가 왜 싫어해요?”

    “그럼..”

    그렁그렁, 커다랗고 깊은 갈색 눈동자로 도훈을 빤히 쳐다보는 로레나.

    그 눈빛에 도훈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제가 좋으신가요..?”

    난감.

    대체 무슨 말이지?

    “좋죠. 동료의 가족분이신데...”

    “아니요. 그런 거 말구요. 저는... 이미 남자로서 도훈씨가 좋은데...”

    “...예?”

    “도훈씨는 제가 여자로서 어떤 것 같냐구요. 좋아요, 싫어요?”

    너무 갑자기 아니야?

    아니, 뭐 굳이 따지라면야..

    “싫기보단 좋은 쪽이..”

    “정확히 말해줘요.”

    “...좋다고 생각해요.”

    당황이라고 얼굴에 써있는 도훈을 보며, 여전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로레나가 베시시 미소를 지었다.

    도훈의 심장을 뛰게 하는 미소.

    “정말인가요?”

    “정말... 이죠.”

    “너무 기뻐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도훈의 어깨를 감싸 안는 로레나.

    얼굴에 닿는 로레나의 비단결같은 머리칼과 코를 어지럽히는 향기.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도훈의 정신이 혼미해졌다.

    < 모독 (2) > 끝

    ⓒ 한명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