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65화 (65/173)

< 불균형한 시소 (3) >

“짧게 골 킥을 연결합니다. 백도훈. 백도훈이 상당히 낮은 지역에서 공을 잡고 올라 갑니다.”

로마놀리에게 짧게 내준 돈나룸마의 골 킥.

공을 다른 다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도훈에게 연결 되었다.

도훈은 거의 수비형 미드필더인 케시에와 비슷한 위치까지 내려와 있었다.

이 곳에서부터 자신이 끌고 올라가지 않는다면, 하프라인을 넘기도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

도훈의 근처엔 메시가 있었다.

그러나, 도훈은 메시를 무시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을 막으려 들 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실제로 메시는 도훈이 지나치는 걸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이반 라키티치.”

하프라인 부근부터 시작되는 저지선부터는 완전히 달라지는 상황.

상대는 견고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도훈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는 듯.

라키티치부터는 쉽게 돌파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메시가 막지 않은 만큼 더 열심히 막아야 하는 임무를 가진 게 라키티치니까.

‘답은 공격뿐이야.’

그러나 그렇다 해도.

뚫어내야 한다.

바르샤를 꺾을 방법은 공격뿐이었으니.

타타타탓-!

“속도를 높입니다! 라키티치를 제쳐내고 올라가는 백도훈!”

라키치티를 속도로 제쳐내고 올라가는 도훈.

그러나 그 뒤엔 부스케츠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포백 보호의 신, 부스케츠.

랑글레와 움티티의 조합 역시 세계 최고지만, 그들에게 가려면 그 앞을 지키는 부스케츠를 뚫어내야 한다.

그걸 쉽게 해내는 공격수는 유럽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

그러나 도훈이기에,

“과연!”

사람들은 기대를 가지고 지켜 보았다.

도훈은 현재의 다른 어떤 공격수들과도 궤를 달리하는, 분류 외의 공격수니까.

‘와 봐.’

달려드는 도훈을 바라보며 자세를 낮추는 부스케츠.

사실, 바르샤의 팬들은 누구보다도 축구를 보는 눈이 높다.

그럴 수밖에 있겠나.

매주 눈앞에서 메시와 네이마르의 플레이를 보는데.

하물며 부스케츠같은 그들의 동료는 어떠할까.

특히, 부스케츠는 메시의 전성기를 함께한 주축 멤버.

한창 메시가 인간같지 않은 플레이를 밥 먹듯이 할 때, 가장 가까이에서 메시의 플레이를 지켜본 게 부스케츠였다.

웬만해서는 부스케츠의 눈썹 조차 들어올릴 수 없다는 뜻.

‘알아.’

그래서 도훈은 다리를 휘젓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을 것.

아낄 필요가 없었다.

시작부터, 달린다.

휘이익-

휘이익-

부스케츠 앞에서 춤을 추는 도훈의 두 다리.

‘지주신보.’

고속으로 움직이는 도훈의 다리를 마주한 부스케츠의 눈썹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처음보는 드리블.

아니, 이걸 드리블이라고 규정지어야 하는 건가.

이런 느낌은 두 번째였다.

연습 때 처음으로 메시를 상대했을 때 이후론 처음.

그러나 그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부스케츠가 물러 납니다!”

“덤벼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스케츠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단 뒤로 물러나는 부스케츠.

부스케츠의 판단은 빨랐다.

그는 이미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무방한 선수이지만, 지금으로썬 저 드리블을 혼자 막아낼 수 없다고 인정했기에.

또한 미리 준비했던대로.

부스케츠는 랑글레와 움티티 사이로 들어가며 라인을 형성했다.

들어오려면, 이 사이로 들어오라는 식으로.

‘일단은.’

파아앙-

도훈은 다리를 멈추고 오른쪽으로 패스를 돌렸다.

딱히 강한 압박을 통한 수비 방식을 취하지 않는 바르셀로나.

8강 상대였던 아틀레티코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기다린다는 느낌.

이런 수비에 균열을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좌우로 흔드는 것.

“수소. 다시 백도훈에게.”

오른쪽으로 패스를 내줬던 도훈은, 패스를 내주며 자신도 같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수소의 뒤 쪽으로 돌아 들어가며 다시 공을 받아 사이드를 치고 들어가기 시작.

앞을 가로 막는 호르디 알바를 왼쪽에 둔 채 코너 플래그 근처까지 파고드는 도훈.

알바 역시도 덤비기 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자리를 지키는 모습.

모두가 상당히 경계하고 있었다.

도훈의 드리블 돌파를.

그러나 어차피, 지금까지 경계하지 않은 상대는 없었고, 경계한다고 뚫리지 않았던 상대도 없었다.

“들어 갑니다!”

“이제 물러설 수만은 없어요! 박스 안까지 진입을 허용할 순 없으니까요!”

대놓고 호르디 알바의 정면을 향해 툭툭 치고 들어가는 도훈.

도훈은 걷고 있었다.

이것은 도발.

이래도 뺏으러 오지 않을 거냐는.

격투기로 치면 가드를 내린 것이라고 할까.

“...”

표정을 숨기고 공만을 바라보는 알바.

호르디 알바야 말로 1대1에서 자존심을 접고 들어가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절대로.’

알바는 참았다.

자존심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경기 전, 블랑 감독이 선수들에게 한 이야기가 있었다.

“메시를 상대한다고 생각하고 해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내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박수를 쳐줄 것이다. 참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마라.”

메시에게 돌파를 당한다고 해서 자존심을 상해하는 수비수는 없다.

화가 날 수는 있어도.

왜?

어차피 그가 세계최고라는 건 수비수들이 먼저 인정하는 바이니까.

알바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 메시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고 있었다.

훈련 때와는 반대였다.

메시를 백도훈이라고 생각하며 상대하는 훈련을 했었으니까.

이번 경기를 준비하며 바르셀로나는 메시에게 ‘코모딘’ 역할을 부여한 뒤 메시가 ‘백도훈’ 이라 상정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진행 했었다. 코모딘이란 어느 팀에도 속하지 않는 조끼를 입은 선수를 두고, 그 선수는 공을 잡을 시 무조건 공격팀에 속하게 하는 훈련 방식.

그러니까, 바르셀로나 선수들 전원이 메시를 막아내는 훈련을 한 것이나 다름 없는 셈이었다. 그 메시를 백도훈이라 생각한 것이고.

그런 훈련까지 했었다.

이 녀석을 막아내기 위해서.

알바는 꾹 참으며 제 자리를 지켰다.

“...”

그 순간, 걷고 있던 도훈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럴 거 같았어.’

툭-

뻐어어어엉-!

“번개같은 슈웃-!”

가만히 서 있는 알바를 두고, 왼쪽으로 살짝 친 뒤 그대로 인프론트 슈팅을 때리는 도훈.

그 동작이 벼락같았다.

눈 뜬 채로 슈팅을 허용하는 알바.

슈우우웅-

슈팅은 높게, 그러나 빠르게 감겨 먼 쪽 포스트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분명히 각이 없었던 곳에서의, 그리고 먼 거리에서의 슈팅.

“큭..!”

부우웅-

파아앙-!

“테어 슈테켄!”

그 슈팅을 테어 슈테겐이 뒤로 몸을 날리며 손바닥으로 간신히 쳐냈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슈테겐.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조금만 반응이 늦었다면 실점을 허용했을지도.

“나이스.”

“좋았어.”

바르샤 선수들은 코너킥을 준비하며, 호르디 알바에게 손을 내밀었다.

과연 준비한대로 드리블 돌파를 허용하지 않은 알바.

결과만 놓고 보면 일단은 성공이었다.

그런데, 왜.

‘막은 것 같지 않은 거지?’

알바는 푸우우, 하고 입술을 튕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뻐어어엉-!

파아앙-!

“움티티가 머리로 걷어 냅니다.”

도훈의 슈팅으로 이어졌던 코너킥.

도훈은 킥을 차는 대신 박스 안에 있었다.

그러나 아틀레티코 전의 그 골을 의식하는 지, 움티티가 도훈에게 바짝 붙어있어 쉽게 공중볼을 따낼 수는 없었다.

확실히 바르샤는 도훈을 대비하는데에 있어 완벽을 기하고 있는 듯.

파아앙-!

“올라 갑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역습.

움티티가 걷어낸 공을 받은 라키티치가 빠르게 전진 패스를 뿌렸고, 오른쪽에서 쿠티뉴가 공을 받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뻐어엉-!

그리고 멋진 시야.

쿠티뉴가 반대편에서 파고드는 네이마르에게 로빙 패스를 뿌렸다.

그 패스를 다시 네이마르가,

“멋진 패스!”

뒷발로 툭, 환상적인 트래핑 겸 원 터치 패스로 뒤에서 달려오던 메시에게 내줬다.

그리고 메시였다.

파팡-!

“라 크로케타!”

메시는 로마놀리를 앞에 두고 슬쩍 상체 페인팅을 넣더니, 곧바로 라 크로케타를 선보이며 로마놀리를 제쳐냈다.

박스 안으로 진입한 메시는,

뻐어어엉-!

그대로 왼발 슈팅을 때렸고,

촤아아아-

철썩-!

그 슈팅은 골문 구석에 꽂히고 말았다.

“와아아아아앗-!”

일순간 터져 나오는 함성.

메시의 선제골이었다.

“역시 메시입니다! 리오넬 메시!”

“8강전에 침묵했던 메시의 골이 4강전에서 터져 나옵니다!”

과연.

그가 이 곳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

말 없이 경기 재개를 준비하는 도훈.

방금 전.

메시의 돌파를 보며 도훈은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드리블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

그런데, 그가 방금 보여줬던 라 크로케타가 너무도 익숙했고, 닮아 있었다.

자신의 유령신보와.

‘설마?’

피식 웃음을 짓는 도훈.

설마 메시도 어디선가 수련을 한 것일까?

사실은 5살 때부터 동굴에 들어가 비급을 수련했던 게 아닐까?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

파아앙-

킥오프로 경기가 재개 되었다.

방금의 실점으로, 도훈은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운이 따라주는 것이 아닌 이상, 현재 밀란의 수비력으론 상대를 감당해낼 수 없다는 걸.

올라가야 한다.

확실한 찬스를 만들어야 한다.

최대한 빨리 동점골을 넣어야 한다.

동료들이 경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수비들이 자리를 다 잡고 있습니다.”

도훈이 하프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자, 바르샤의 수비는 역시나 지역 방어 식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아까도 봤듯, 개인으로 덤비는 것이 아니라 참으며 지역을 지키겠다는 것.

‘비슷한 생각일테지.’

또한 마찬가지로 도훈은 저들이 자신들과 같은 생각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밀란이 메시를 막기 위해 준비했던 수비 방식 그대로를 상대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저들은 자신을 메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반가운 소리는 아니었다.

도훈은 자신이 메시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반대로 가야 돼.’

첫 번째 공격 때, 드리블 돌파 대신 곧바로 슈팅을 떄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상대는 자신을 메시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역으로 가야 했다.

메시가 못하는 것.

메시가 잘 하지 않는 것.

그런 방식으로.

“백도훈, 다시 한 번 파고 드나요.”

“어엇.”

30미터가 조금 안되는 먼 거리.

공을 잡고 천천히 전방을 살피던 도훈이,

스르륵-

공을 슥 밀더니,

그대로 오른발을 크게 당겼다.

메시는 슈팅이라는 선택을 거의 내리지 않는 위치에서.

‘바람에 맡긴다.’

뻐어어어어엉-!

그리고 불을 뿜는 오른발.

거의 정지해 있다시피한 바르샤 선수들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대포알같은 슈팅.

무회전격.

이 또한 메시는 보여주지 않는 킥의 종류.

슈우우우웅-

빨랐다.

무시무시한 킥력.

“...”

부스케츠는 자신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공의 무늬를 읽을 수 있었다.

발등에 제대로 얹힌 공은 높이 날아가다,

부우우웅-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먼 거리였음에도, 아니 먼 거리였기에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던 테어 슈테겐 키퍼.

슈테겐은 뒤늦게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큭...!”

슈테겐의 몸은 이번에도 뒤로 젖혀졌다.

워낙 빠른 슈팅이 이미 자신을 지나치려 하고 있었기에.

철썩-!

“고, 골...!”

경기장의 그 누구도 준비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터진 골이라 그런지 모두의 반응이 늦었다.

도훈의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이 골문을 가르고 만 것이었다.

불과 실점 뒤, 1분만에.

“예에에에-!”

골이 들어가는 순간 만세를 부르며 도훈에게 달려드는 동료들.

“역시!”

“믿고 있었다!”

솔직히 실점 이후, 무기력함을 느꼈던 밀란 선수들이었다.

상대는 차원이 다른 공격력을 맛보여주고 있었고, 과연 이 경기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불과 전반 10분만에 든 것이 사실.

그러나, 잠깐 잊고 있었던 걸 도훈이 일깨워준 기분이었다.

밀란이 그 동안 수많은 난적들을 꺾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

백도훈이라는 말도 안되는 존재.

“엄청난 중거리 슈팅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건 뭐 거의 전성기 호날두같은..”

“정말 시원한 골 하나가 터졌네요. 이건 바르셀로나도 어쩔 수 없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바르샤 선수들.

어안이 벙벙한 실점.

원래 모든 팀들이 그러하듯, 실점 이후엔 선수들끼리 실점에 대해 분석하고 다음 번엔 수비가 되도록 선수들끼리 피드백을 나누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할 말이 없었다.

이건 뭐 피드백을 할 거리조차 없었으니.

“1대1입니다. 정말 곧바로 동점을 만드는 AC 밀란, 백도훈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그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그 골은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대단했지만, 그래도 바르샤 선수들에게 한 가지 ‘공포감’ 까지 주는 정돈 아니었으니.

그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바르샤 선수들에게 그 공포감이 떠오른 건 다시 5분이 지나지 않아 도훈이 공을 잡았을 때였다.

누구도 부정하고 싶은 그것.

‘메시보다.. 잘 한다?’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그 문장이, 바르샤 선수들의 머릿속에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으니.

그 문장은, 바르샤 선수들에게 있어 가장 큰 공포를 줄 수 있는 문장이었다.

< 불균형한 시소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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