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63화 (63/173)
  • < 불균형한 시소 (1) >

    “안녕하세요, 도훈씨!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파티장에서 도훈은 정신이 없었다.

    워낙 너도 나도 도훈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밀란의 메인 스폰서인 푸마의 지부장부터 시작해서, 여러 업계 유명인사들이 도훈을 보기 위해 줄을 섰고 사진을 찍어 갔다.

    유명인들의 유명인사가 된 도훈.

    특히 푸마쪽에서는,

    “이게 그거예요. 에이전트 통해서 들으셨죠?”

    “아, 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축구화 모델을 직접 도훈에게 선물했다.

    새로 출시될 이 모델의 이름은, 푸마 넥스트 제너레이션 1.0, 백도훈 에디션.

    왼발엔 BAEK이라는 글씨 자수가, 오른발엔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도훈만을 위해 맞춤으로 제작된 축구화.

    “엄청나게 팔릴 겁니다! 하하. 그 수익의 절반은 도훈씨에게 돌아갈 거구요.”

    “감사합니다.”

    “어때요?”

    직접 그 자리에서 축구화를 신어본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네요. 괜찮은데요?”

    맞춤으로 제작된 기능에 대해 설명하는 지부장의 말을 대강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도훈.

    이번 스폰서 계약으로 이미 어마어마한 인센티브를 지급받았던 도훈이었다.

    요즘은 주급보다도 부수입이 훨씬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동료들 몇 명과 찍었던 디젤 광고는 밀라노의 지하철 역에 도배가 되다 시피 한 상태였고, 멘데스의 말에 따르면 광고를 찍자는 유수 브랜드들의 요청만 몇십 개가 쇄도하고 있다고.

    “이건 그대로 모아두마.”

    “아뇨, 알아서 다 쓰세요. 그건 어차피 부수입이니까.”

    그 돈의 대부분은 한국으로 송금했던 도훈.

    아버지는 평생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금액을 받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에겐 몇 년을 뼈 빠지게 일해야 벌 수 있을까 말까한 돈이었으니.

    그러나 그것도 지금의 도훈에겐 축구 외적으로 벌어 들이는 부수입일 뿐이었다.

    게다가 당장은 돈 쓸 일도 없거니와, 올 시즌이 끝나고 새로운 계약을 한다면 지금 벌어 들이는 돈은 정말 푼 돈 수준밖에 되지 않을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으니.

    이제 돈이라는 건 도훈에게 큰 의미가 되지 못했다.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할까.

    중요한 건 그 돈으로 가족들의 삶이 이전에 비할 수 없게 훨씬 나아질 수 있다는 것뿐.

    도훈에겐 그걸로 족했다.

    이미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건, 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도훈이었으니까.

    “벌써 가시려구요?”

    “예. 가야죠, 뭐.”

    파티가 한창 무르익을 저녁.

    도훈은 조용히 파티장을 나가려다 로레나와 마주쳤다.

    도훈이 간다니 아쉬운 기색이 역력한 로레나.

    “맛있는 것들 많은데, 더 있다 가지 그래요?”

    “제 입 맛엔 별로 안 맞네요.”

    “그럼 저희 집으로 가실래요? 부모님 안 계시는데..”

    “배는 불러요. 괜찮아요. 일이 좀 있어서..”

    어색하게 웃으며 로레나의 권유를 뿌리치고 파티장을 나오는 도훈.

    도훈은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정장 재킷의 단추를 풀었다.

    임찬주와 함께 차에 올라탄 도훈.

    “눈치 없는 놈.”

    “뭐가?”

    “가서 물이라도 마셔야지 인석아. 배는 불러요가 왜 나와.”

    “아, 내가 그 정도 눈치도 없겠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렇지.”

    “대단하다, 대단해.”

    차를 출발시키는 임찬주.

    도훈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훈련장.

    지금, 도훈에게 중요한 건 다른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남은 시즌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것뿐.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ㆍㆍㆍ

    어느 덧 익숙했던 선수들의 입김도 사그라들고.

    하나둘씩 긴팔 대신 반팔 유니폼을 찾기 시작하며, 리그도 후반기로 접어드는 시기.

    하지만 도훈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연료는 아직 충분했다.

    “리그 29라운드, AC 밀란과 토리노 FC의 경기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토리노의 홈 구장이지만, 솔직히 토리노 팬들 중 절반은 백도훈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을 정도.

    도훈의 존재 자체로 활기를 띄는 세리에.

    도훈은 그런 관중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백도훈! 오늘도 멋진 골을 기록합니다! 리그 26골째! 이로써 현재 기준으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제치고 득점 선두에 오르게 됩니다!”

    “이야, 정말로 한 시즌 두 개 리그 득점왕이 가능해지는 순간이네요!”

    전반 7분만에 적팀의 팬들 조차도 일으켜 세워버리고 마는 도훈.

    도훈은 단순히 적팀의 선수 정도가 아니라, 세리에 전체를 대표하는 스타.

    그런 스타의 플레이 하나 하나에 환호성을 터뜨리는 관중들.

    이제 이런 플레이를 직접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지 모른다는 걸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일까.

    도훈만큼은 밀란의 선수도, 토리노의 선수도 아닌 존재처럼 취급받고 있었다.

    그저 세리에 최고의 스타.

    어느 덧 도훈은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백도훈이 백도훈 했던 경기 였습니다. 헤트트릭, 사실 헤트트릭이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죠?”

    “헤트트릭을 못한 날이 더 신기한 백도훈 선수죠.”

    토리노와의 리그 29라운드가 끝나고.

    마침내.

    세리에 A 득점순위

    1위 백도훈 28골

    2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5골

    도훈은 세리에 A의 득점왕으로 올라섰다.

    째째하게가 아니라, 한번에 3골을 앞서면서.

    이미 챔피언스 리그에서 라리가의 팀들을 무찌르면서 증명하고 있듯, 세리에는 도훈을 담아내기엔 좁은 곳인 듯 보였다.

    누군가에겐 꿈의 리그인 그 세리에 A 조차도.

    심지어 전반기 동안 터뜨린 자신의 28골과 같은 골수를, 세리에에선 11경기만에 달성시켰다.

    도훈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었다.

    시즌 30경기 60골 15도움.

    괴물.

    괴물이 승부를 끝장내기 위해 다시 한 번 마드리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ㆍㆍㆍ

    두 번째 방문.

    많은 건 아니지만, 올 때마다 느끼는 건 참 사람 살기 좋은 동네라는 느낌.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고.

    확실히 편하게 축구를 하기엔 최고의 지역이 아닐까 싶은 곳.

    하지만 그런 최상의 조건에서 치뤄야 하는 건 거친 전쟁.

    1차전을 2대1로 이겼던 밀란의 선수들을 태운 버스가 마드리드 완다 메트로폴리타노 구장에 도착했다.

    알레띠(Aleti)의 팬들도 가득 메워진 메트로폴리타노 스타디움.

    솔직히 밀란에게 패배할거란 생각은 못했지만, 그래도 백도훈이 풀타임으로 뛴 원정에서 1대2의 스코어라면 나름 나쁘지 않은 결과.

    충분히 오늘 경기로 합산 스코어가 뒤바뀐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기 때문인지, 마드리드 팬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경기장을 찾았다.

    로히블랑코(Rojiblanco)라는 애칭을 가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팬들.

    이들은 팀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넘치는 팬들이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아틀레티코만을 응원하고 아틀레티코만을 사랑하는 이들.

    어떤 선수가 오더라도, 그가 상대팀이라면 열렬한 야유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 곳.

    “2차전, 시작 됐습니다!”

    그런 곳에서.

    도훈이 경기를 시작했다.

    1차전 때.

    분명 도훈은 팀을 승리로 이끌었었다.

    두 개의 골 모두가 푸스카스상 1,2위로 나란히 꼽혀도 이상하지 않을 원더골들까지 터뜨리며.

    하지만, 도훈 스스로는 그다지 만족할 수 없는 경기였다.

    밀란에 비해 아틀레티코는 강했고, 수비력이 대단했기에 쉽지 않은 경기였으니까.

    확실히 도훈으로서도 아틀레티코라는 팀을 존중할 수밖에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1차전.

    때문에.

    도훈은 더욱 더 마음을 먹고 2차전에 나선 상태였다.

    도전의식이 들게 하는 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그런 팀이었다.

    이런 정도의 팀은 되어야, 도훈을 자극할 수 있었다.

    “수소, 백도훈에게.”

    “스텝오버! 아리아스를 뚫어 냅니다!”

    1차전에서 어느 정도 교훈을 얻었던 아틀레티코였다.

    차라리, 맞불을 놓는 게 더 낫겠다는.

    밀란은 그걸 예상하고 있었다.

    또한, 밀란 역시도 도훈이 아틀레티코의 방패를 뚫어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어냈었고.

    맞불의 맞불.

    경기는 시작부터 불이 튀기기 시작했다.

    왼쪽 윙 포워드로 출전한 도훈은 첫 터치부터 아리아스를 제쳐내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쉬이익-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고, 고오올! 백도훈의 골! 중앙으로 접어 들어가며 때린 중거리 슈팅이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전반 5분만에, 난타전의 시작을 알리는 골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8분 뒤.

    전반 13분, 아틀레티코는 코너킥 상황에서 공격에 가담한 히메네즈의 헤더로 곧바로 1대1, 따라 붙었다.

    경기는 더욱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예열이 끝난 도훈은 미쳐 날뛰듯 살아 있는 불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질 못하는군..”

    “붙으면 곧바로 벗겨지니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기다리면, 도훈이 다가가고.

    그리고 도훈이 지나간 자리엔 벗겨진 수비수들만이.

    파아앙-

    뻐어어엉-!

    철썩-!

    역시나 오늘도 도훈에 대한 집중 견제는 여전했다.

    그러나 그걸 뚫어내는 도훈 역시도 여전했고.

    자신에게 거의 모든 수비를 이끌어낸 도훈이 고딘의 다리 사이로 패스를 내줬고, 그걸 이과인이 마무리했다.

    25분, 다시 2대1로 앞서가는 밀란.

    그러나 다시 5분 뒤.

    “그리즈만의 프리킥!”

    이번엔 그리즈만이었다.

    뻐어어엉-!

    슈우우우웅-

    철썩-!

    멋진 프리킥.

    수비벽을 살짝 넘기는 감아차기로 동점골을 터뜨리는 그리즈만.

    과연 로히블랑코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만한 그리즈만이었다.

    “삐익, 삐이이익-!”

    “네! 전반전, 2대2로 종료 되었습니다. 아, 아주 화끈한 전반전이었네요!”

    “어떻게 보면 두 팀 모두 수비적인 모습을 주로 보여줬던 1차전과는 완전히 정반대죠? 후반전도 기대가 됩니다.”

    뜨거운 경기는 후반전으로 이어졌다.

    후반전의 흐름도 역시나 마찬가지.

    이미 경기장의 분위기는 과열.

    두 팀 모두 물러섬이 없었다.

    마치 그런 것 같았다.

    늦은 밤, 택시 하나를 두고 언쟁을 벌이는 술 취한 두 아저씨의 싸움같은 느낌이랄까.

    “너 이 쉐끼, 몇 살이야?”

    “너보다 많이 자셨다, 이 쉐이야. 넌 몇 살 쳐먹었는데 반말이야?”

    “내가 임마, 이 쉐끼야. 너 몇 살이야?”

    “쳐먹을만큼 쳐먹었다, 근데 넌 몇 살인데 반말이야?”

    택시를 두고 싸우던 아저씨들이 어느 새 몇 살이냐며 싸우고 있고, 그 사이에 택시는 다른 손님이 타고가는, 흔한 장면.

    지금 밀란과 아틀레티코의 싸움이 그랬달까.

    어느 새, 챔스 4강 진출이라는 결과를 놓고 싸우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저,

    뻐어어어엉-!

    슈우우웅-

    “빗나갑니다! 아쉬워하는 그리즈만!”

    뻐어어어엉-!

    슈우우웅-

    파아앙-!

    “골대 강타! 아쉬움을 삼키는 백도훈!”

    누가 더 많은 골을 넣느냐를 위해서 싸우는 듯.

    혈투가 벌어졌다.

    어느 새 밀란도 라인을 높이고 있고, 아틀레티코도 라인을 높이고 있고.

    그저 닥공.

    로히블랑코의 뜨거운 열기와 함성이 그 싸움을 부추기는 듯.

    “고오오올-! 그리즈만이 해냅니다! 그리즈만 환상적인 패스에 이은 디에구 코스타의 골입니다!”

    그 함성에 힘 입어 아틀레티코가 마침내 역전.

    해내는 듯 싶었으나,

    “다시 동점! 백도훈입니다! 역시 백도훈!”

    도훈의 환상적인 프리킥 골로 다시 동점.

    3대3.

    손에 땀을 쥐는 경기가 계속되고,

    시간은 어느 덧 후반 40분.

    “합산 스코어는 5대4. 이대로라면 밀란의 진출입니다!”

    아틀레티코는 2골이 필요한 상황이 되버렸기에, 총공세.

    시메오네 감독도 터치라인까지 나와서 선수들을 독려해보지만,

    뻐어어엉-!

    파아앙-!

    “역습! 역습입니다!”

    그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것 마저도,

    타타타타탓-!

    뻐어어엉-!

    철썩-!

    도훈이었다.

    “경기가 이렇게 끝나나요! 백도훈의 2경기 연속 헤트트릭입니다아아앗-!!”

    무서운 스피드의 역습으로 쐐기골을 박아 버리는 도훈.

    그 마지막 골이 터지는 순간.

    그 어떤 상대에게도 야유만을 보냈던 로히블랑코가 마침내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

    “...대단하네.”

    “어쩔 수가 없잖아, 이건.”

    “젠장. 이렇게 된 바에 그냥 니네가 우승해라! 4강에서 탈락하는 건 우리가 허락 못한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백도훈 선수에게 박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대체 여기가 어디죠? 메트로폴리타노입니다! 그런데, 아틀레티코의 홈팬들이 백도훈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도훈에게로.

    그건 진정으로 응원의 박수였다.

    패배를 인정함과 동시에, 자신들을 이긴 상대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바라는.

    “...”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감명을 받는 도훈.

    도훈은 손을 들어 보임과 함께 고개를 숙이며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이이익-!”

    “경기 종료! 스코어 4대3, 합산 스코어 6대4! AC 밀란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꺾고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킵니다!”

    도훈이 난적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꺾고 마침내 밀란을 챔스 4강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하는 순간이었다.

    “괴물이야.”

    “괴물.”

    “정말 괴물이다.”

    31경기 63골.

    괴물.

    백도훈.

    ㆍㆍㆍ

    “그럼,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밀란이 아틀레티코를 꺾고 4강의 마지막 자리에 오르며 완성된 네 개의 팀.

    FC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시티.

    유벤투스.

    AC 밀란.

    세리에 팀이 두 개나 4강에 오르는 이변 아닌 이변.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는 건, 역시나 밀란이 4강 마저도 뚫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

    그러나 나머지 3팀의 전력 역시 만만치 않은 가운데.

    4강 대진 추첨이 시작 되었다.

    “AC 밀란입니다.”

    첫 번째로 뽑힌 공, 밀란.

    곧바로 다음 공을 뽑는 진행자.

    여기서 뽑히는 팀이 밀란의 4강 상대.

    ‘어차피 우승이 목표인데..’

    누가 뽑혀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목표는 우승이니.

    그렇다 해도,

    “FC 바르셀로나입니다.”

    바르셀로나가 뽑혔을 때, 가투소 감독은 웃었다.

    상관 없다던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 같아서.

    '만만치 않겠구만.'

    우승으로 가는 길이 순탄할 수는 없었다.

    < 불균형한 시소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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