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방패 (4) >
“제, 제가 지금 뭘 본거죠?”
“지금, 같은 걸 본 것 맞죠? 제 눈이 이상한 거 아니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해설자들의 목소리.
코너 플래그를 향해 달려가는 도훈.
웬만하면 요란한 세레머니를 즐기지 않는 도훈이지만, 지금만큼은 도훈도 어쩔 수 없었다.
촤아아아-
환호하며 무릎 슬라이딩.
이후 벌떡 일어나 공중을 향해 날아 오르며,
“예에에에-!”
포효.
산 시로를 가득 메운 팬들도 거대한 함성으로 흥분감을 마음껏 표현했다.
미친 순간이었다.
“도훈-!!”
“믿을 수 없는 골이다, 도훈!”
관중들보다 더 흥분해 도훈에게 달려드는 동료들.
광란의 도가니로 변해가는 산 시로.
그럴 수밖에.
지금,
눈 앞에서 단연 올 해 최고의 골을 마주했는데.
“갸아아악-!”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감독님!”
가투소 감독은 형용할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벤치를 부술 듯 흔들어 대고 있었다.
반면, 시메오네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입 주변을 쓸어 내렸고.
‘이건 뭐.’
이건 감독으로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얼마나 어이가 없냐면, 이것 때문에 져야 한다면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정도로.
누구도 저 골 때문에 마드리드를 비판할 수는 없을 것.
깨끗하게 어이가 없는 골이었다.
짝짝짝짝짝-
골이 들어간 순간부터.
공이 다시 하프라인에 놓이고 경기가 재개될 때까지.
관중들의 기립 박수는 계속 되었다.
손을 들어 그런 박수에 감사를 표하는 도훈.
도훈의 원더골로 기세를 가져오는 밀란이었다.
“이건 정말이지.. 올 해의 푸스카스 상 감이 아닌가 싶네요.”
“최소 후보 3위안엔 무조건 들 것 같습니다. 투표가 불공정하게 이뤄지지 않는 이상이요.”
그리하여, 전반전이 끝이 났을 때 이미 밀란의 팬들은 경기를 이긴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또한 확실히 전반의 결과도 그만큼 좋았으니.
단단하게 걸어 잠구며 상대의 공격은 막아냈고, 마찬가지로 잠구는 상대의 방패는 무엇이든 뚫어낼 수 있는 창, 도훈으로 뚫어냈다.
신의 방패도, 신의 창 앞에서는 뚫린다는 걸 확인했던 전반전.
경기는 그대로 후반전으로 이어졌다.
전반이 끝난 뒤, 고민이 많았던 아틀레티코였다.
경기를 뒤집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해 보였다.
어찌됐든 이대로 똑같이 간다면, 경기가 지지부진해 질테고 요행을 바라는 수밖에 없어질 뿐.
한 마디로 백도훈을 막아내는 건 실패였다.
어찌됐든 백도훈에게 실점 했으니.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쪽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골이었으니까. 세트피스 시에도 도훈을 견제한다는 것만 새롭게 인지하면 될 뿐이었다.
중요한 건 공격 쪽에서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
현재로써는 디에구 코스타가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코스타 역시도 밀란의 수비진 사이에서 묻혀 있기엔 너무 아까운 스트라이커.
“승부를 보자.”
시메오네 감독은 코스타에게 직접 이야기했다.
승부를 봐라.
단순히 액션이 아니라, 진심으로 공격성을 표출하라는 것.
이제 백도훈을 많이 뛰게 만드려는 것도 큰 의미가 없었다. 급한 게 오히려 이 쪽이 됐으니.
때문에, 아틀레티코는 후반 초반 상당히 도전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점유율을 중시하며 상대를 갉아 먹으려던 모습이 아니라, 공을 잡으면 무조건 도전적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다시 밀란을 두드리길 10분.
파아앙-!
“디에구 코스타가 공을 받아 냅니다!”
박스에서 로마놀리를 등지고 공을 받아내는 코스타.
툭-
코스타는 다가오는 그리즈만에게 공을 내줬고, 곧바로 몸을 돌리며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리즈만이 다시,
파아앙-
칩샷으로 가볍게 로빙 패스를.
수비의 키를 넘기는 그 패스를 다시 코스타가,
뻐어어엉-!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
이것이,
슈우우웅-
철썩-!
대각선으로 날카롭게 깔리며 돈나룸마의 손을 벗어났다.
짐승처럼 포효하는 디에구 코스타.
아틀레티코가 동점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디에구 코스타와 그리즈만의 합작.
그 순간의 센스와 결정력에 허물어진 수비는, 도훈이라고 해서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건 그저 뛰어난 두 명의 공격수가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골이었으니.
다만.
여기서부터가 문제.
과연 아틀레티코가 동점으로 만족하고 다시 수비적으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기에 계속해서 지금의 스탠스를 유지할 것이냐?
‘지금이 맞아.’
당연히 후자였다.
공격적으로 나선지 10분만에 동점골을 넣었다.
진작 이렇게 했다면, 오히려 경기는 쉬워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
“이대로 간다!”
아틀레티코는 한 골을 더 사냥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대로, 공격적으로.
하지만, 딜레마는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백도훈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골을 넣는 수밖에 없지.’
코스타는 그 해답을 자신이 지어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공격적이면서도 상대를 막아내야 한다면, 공격적인 것에서 끝맺음을 지어야 한다.
공격 실패는 곧 역습의 기회를 상대에게 주는 것.
이미 골 맛도 봤다. 두 번째 골이라고 못할 것 없다고 충분히 코스타는 자신을 믿었다.
“여기!”
다시 로마놀리를 등지고 공을 달라고 외치는 코스타.
그런 코스타에게 향하는 공.
첫 골을 맛 본 코스타는 자신감이 넘쳤다.
똑같은 패턴으로 다시 공격을 한다 해도, 상대가 막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러나,
파아아앙-!
도훈이 두 번 당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끊어 냅니다, 백도훈!”
그리즈만의 뒤에서 번개처럼 나타나 패스를 끊어내는 도훈.
동점골을 내줬을 때.
분명히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도훈이었다.
이 경기를 이기려면 최소한 3인분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뇌리에 각인시키고 있었다.
실점 장면을.
그 장면을 다시 허용할 순 없었다.
툭-
공을 빼앗은 뒤 수소에게 내준 도훈은,
타타타타탓-!
전방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
그리고 수소는 다시 긴 스루 패스로,
뻐어어엉-!
도훈의 앞 쪽으로 연결.
알다시피 밀란의 역습 패턴은 간단했다.
그리고 간단한 만큼, 고민이 필요 없으니 빨랐다.
무조건 도훈에게 연결할 뿐.
“백도훈!”
도훈이 하프라인을 넘은 지점에서 다시 공을 받아 몰고 가기 시작했다.
황급히 돌아오는 아틀레티코 선수들.
그러나 이전처럼 여섯 명이 도훈을 둘러쌀 수는 없었다.
“중앙인가요!”
중앙으로 달려드는 도훈.
순식간에 아틀레티코의 수비 전원이 모여 들었다.
센터백들은 물론 좌우 풀백까지 제 자리를 버리고 중앙으로.
그렇게 채워진 게 미드필더인 로드리까지 더해서 다섯.
‘뚫는다.’
마음을 먹고 달려드는 도훈.
찝찝함이 남았던 전반이었다.
그걸 날려 버리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눈 앞의 틈을 통과함으로써.
파팡-!
파팡-!
번개가 맞물렸다.
두 번의 유령신보.
그것이 그린 ㄹ자의 직선은 공을 뺏어내려는 10개의 다리를 순식간에 지나쳤고,
“배, 백도훈!”
기어이 도훈은 다시 한 번 그 사이를 뚫고 나왔다.
그러나 전반 때와 다른 게 있다면, 여전히 공은 도훈의 발에 붙어 있었고 오블락 키퍼도 나올 수 없었다는 점.
뻐어어엉-!
도훈은 박스 정면에서 지체 없이 오른발등에 슈팅을 얹었고,
슈우우웅-
철썩-!
오블락을 가볍게 뚫어냈다.
“고오오오올-! 백도훈의 두 번째 골입니다-!!”
아틀레티코는 백도훈의 딜레마에서 또 다시 졌다.
“삐익, 삐이익, 삐이이이익-!”
후반 14분 터진 도훈의 두 번째 골.
그 이후론 서로 운이 부족한 장면들이 연출 되었을 뿐,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2대1로 경기 종료.
밀란이 8강 1차전마저도 승리로 장식하게 된 것.
“최고다, 백도훈!”
“근데, 아틀레티코도 강하더라. 수비력 하나는 최고가 맞다고.”
밀란팬들이 승리에 기뻐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모두가 주목하게 된 것은 오히려 아틀레티코의 수비력.
과연 신의 방패라 할 만 했던 수비.
오늘 정도로 도훈을 막아낸 건 지금까지의 상대 팀들 중 보여준 수비 중에선 최고였으니까.
물론 두 골을 내준 게 최선이라는 말이 웃기긴 한다만.
도훈은 그 정도였으니까.
“마드리드에서 봅시다.”
“좋은 시합이었소.”
가투소 감독과 시메오네 감독이 두꺼운 손으로 악수를 나누고, 그 날의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마드리드에서 펼쳐질 2차전을 기약하며.
AC 밀란은 오늘도 패배하지 않았다.
ㆍㆍㆍ
-믿을 수 없는 골이 터졌다, 백도훈 ‘푸스카스상 일찌감치 예약이요’
ㄴ새벽에 소리 질러서 엄마 깨버림 ㅋㅋㅋㅋㅋㅋ 진짜 이걸 라이브로 본 게 평생의 행운이다
ㄴ예전에 호날두가 레알 시절에 유벤투스 상대로 넣었던 오버헤드킥 골 기억함? 그 골보고 그것보다 더 멋있는 킥은 루니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바뀜 ㅋㅋㅋㅋ 최고다
-정녕 한국인의 기록? 백도훈, 시즌 57골 15도움 달성, 메시가 첫 발롱도르를 받았던 해보다 10골 앞서
ㄴ메시랑 동나이대 비교해보면 압도적인데? 진짜 믿기지 않는다는 말밖에 안나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다.
ㄴ이거 그대로 10년, 아니 5년만 가도 메날두 넘어 서는 거임.. 진짜로 17살에 누가 이렇게 했냐 그것도 현대 축구에서
-‘한 시즌 73골’ 메시의 대기록, 백도훈이 넘을 수 있을까?
ㄴ올 해는 몰라도 언젠간 깰 수 있을 듯 무조건 ㅇㅇ 진짜 올 해가 데뷔시즌이라는 게 백도훈이 가장 무서운 이유
ㄴ73골 29도움. 이게 스탯으로만 보면 메시 커리어 하이 시즌인데. 중요한 건 총 60경기에서 만들어낸 거. 백도훈은 올 시즌 지금까지 29경기 뜀. 절반 안되게 뛰고 57골이니까 경기당 득점에서 백도훈이 대단하다는 거. 내년에 챔스랑 컵 병행해서 경기수 늘리면 진짜... 농담 아니라 세자리 득점도 가능할지도? 물론 경기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부담이 느는 것도 사실이지만 ㅇㅇ 중요한 건 메날두처럼 철강왕이 되냐 마느냐인 듯. 일단 재능은 둘 넘어선다고도 봄
이미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만으로, 도훈은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당연한 일.
아시아의 그 누구도, 아니 전 세계의 그 누구도 보여준 적 없던 임팩트를 보여준 게 지금의 도훈이니까.
그런 만큼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걸 도훈은 알고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어려운 건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
도훈은 매 년 발전해가겠다는 생각뿐.
때문에 도훈이 이제부터 중점적으로 정진해야할 것은 부상에도 끄떡없을 수 있는 강인한 신체와 체력을 만드는 일일 것.
“177.5. 두 달 사이에 2센티가 컸네?”
“나이스.”
1월달에 쟀던 키가 75였는데 3월인 지금, 2센티가 커 있었다.
“지금이 가장 많이 클 시기네요. 성장판이 열려 있고, 영양 섭취만 충분하다면 기대 신장은.. 분석 결과 최소 182. 최대 188입니다.”
키가 작아서 유리한 점도 분명히 있을 순 있었다.
낮은 중심의 빠른 드리블은 메시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키가 커서 좋은 점은 단점보다도 훨씬 많았다.
만약 도훈이 정말로 188의 키까지 클 수 있다면.
그 땐 정말 무결점의 축구 병기가 될 지도.
지금의 도훈에 더해, 고공 폭격까지 가능한 스트라이커가 탄생한다고 생각해보라.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때문에 밤마다 느껴지는 성장통이 도훈으로선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커가는 키가 반가운 이유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와, 키가 많이 크셨네요? 저보다 커지셨어. 갈수록 남자다워 지시네요.”
괄목한 성과를 보여준 선수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마련된 축하 파티.
밀란의 스폰서인 디젤(Diesel) 의 수트를 입고 멀끔하게 나타난 도훈을 보며 로레나 마티니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덧 자신의 눈높이가 로레나의 이마에 닿는 걸 보며 도훈은 흘러 나오는 미소를 애써 감췄다.
"밀란이 우승할 수 있을까요?"
"제가 있잖아요."
"맞아요. 도훈씨만 있으면 우승할 수 있죠."
허세와 자신감은 한끝 차이.
도훈을 바라보는 로레나의 시선에 선망이 가득했다.
< 신의 방패 (4)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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