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60화 (60/173)

< 신의 방패 (2) >

“안녕하십니까, 산 시로에서 인사 드립니다. 오늘은, AC 밀란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경기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틀레티코의 방패, 그리고 백도훈이 그걸 뚫어낼 수 있을지 주목을 모으는 경기인데요. AT 마드리드의 선발 명단부터 살펴 주실까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4-3-3) 감독 : 디에고 시메오네]

GK 얀 오블락

CB 디에고 고딘

CB 호세 히메네즈

LB 뤼카 에르난데스

RB 산티아고 아리아스

MF 사울 니게즈

MF 로드리고 에르난데스

MF 앙투완 그리즈만

FW 토마스 르마

FW 앙헬 코레아

FW 디에구 코스타

“평소와 조금 다르죠?”

“4-3-3. 아틀레티코하면 딱 떠오르는 4-4-2의 전형이 아닙니다. 그리즈만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고요. 르마와 코레아가 공격적인 윙어로 배치 됐습니다. 공격적인 거죠. 아틀레티코가 밀란을 공격력으로 제압할 생각인 듯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드리드의 수비력이 헐거워진 느낌은 아니죠?”

“전혀 아니죠. 고딘과 히메네즈의 단단함. 니게즈와 로드리의 중원은 질식 그 자체입니다. 밀란은 이 단단한 라인을 파괴할 방도가 있어야 할 겁니다. 뭐, 그 해법은 백도훈이겠지만요.”

하나의 완성도 높은 전술로써 인정받는 아틀레티코의 두터운 중앙 수비.

그 수비를 헤쳐나가야 할 밀란의 해법은, 단 하나.

백도훈이라는 선수 자체.

밀란은 오늘 도훈을 4-4-2의 쳐진 스트라이커로 내세워 상대의 중앙을 흔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쳐 보였다.

과연 이 창과 방패의 대결은 누구의 승리로 돌아갈 것인가.

“삐이이익-!”

휘슬이 울림과 함께 도훈의 두 번째 마드리드전이 시작 되었다.

파아앙-!

“빠르게 치고 올라 갑니다. 그리즈만!”

경기 초반.

중앙의 그리즈만을 중심으로 경기를 공격적으로 풀어 나가기 시작하는 AT 마드리드.

확실히 그리즈만의 존재는 팀 전술을 유연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연계, 전진 드리블, 시야, 패스까지.

다재다능한 그리즈만이 비교적 낮은 위치에서 많은 터치를 가져가며 주도권을 쥐었고, 밀란의 중원진은 그런 그리즈만에게서 쉽사리 공을 빼앗아내지 못하는 모습.

밀란에 도훈이 있다면, AT 마드리드의 공격을 이끄는 건 누가 뭐래도 그리즈만.

파아앙-!

“앙헬 코레아가 공을 잡습니다. 흔들어줄 수 있죠!”

“드리블 돌파 시도!”

그리고 오른쪽의 앙헬 코레아.

그리즈만이 지휘관이라면 저돌적인 움직임을 계속해서 시도하는 스타일의 코레아는 돌격대장. 코레아는 오늘도 역시나 첫 터치부터 과감하게 사이드를 파고들기 시작했고,

타타탓-!

뻐어어어엉-!

슈우우우웅-

“살짝 벗어 납니다! 아쉬운 슈팅!”

칼라브리아를 제쳐낸 뒤 중앙으로 접어 들어가며 과감한 슈팅을 때렸다.

슈팅이 덜 감기며 골대를 빗겨나가긴 했으나, 첫 슈팅부터 상당히 위협적인 아틀레티코의 공격.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더니, 예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시작되는 경기.

‘좀 다르다.’

도훈은 중앙에 서서, 그 모습과 함께 상대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하며 생각했다.

분명 경기 전 분석했던 상대 팀의 평소 모습과는 달랐다.

올 시즌, 아틀레티코는 그 어느 팀과 상대를 하더라도 4-4-2의 전형을 벗어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 그들의 전형은 4-3-3.

무엇이 더 공격적이고 수비적인지 단순히 포메이션만으론 규정지을 순 없다.

그러나 당장 필드 위의 선수들이 어떻게 뛰고 있는 지를 봤을 때, 도훈은 알 수 있었다.

아틀레티코는 수비가 아니라 공격으로 이 경기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는 걸.

‘기회를 기다릴 것이냐, 아니면 수비에 도움을 줄 것이냐.’

자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는 도훈.

높은 위치에서 기다리며 역습을 통해 라인을 올린 상대의 뒤를 노릴 것이냐?

아니면 내려가 직접 그들과 맞붙을 것이냐?

‘토너먼트를 거칠수록..’

판단을 끝낸 도훈이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야 했다.

판단의 근거는 간단했다.

과연 기회가 올 때까지 동료들이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이기나 보자라는 배짱부리는 식으로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인가?

대답은 아니다였다.

솔직한 말로, 현재의 밀란보다 상대 아틀레티코가 훨씬 강한 팀이라는 건 도훈도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을 제외한다면.

그러나, 자신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도훈이 최대한 경기에 많은 관여를 해야 하는 게 맞았다.

혼자 모든 걸 다 할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도훈이 아래로 내려가는데, 아틀레티코의 태세가 조금 바뀐 것은 그 때부터였다.

마치 도훈이 내려오길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즈만이 다시 공을 잡습니다. 아, 백도훈이 뒤에서 붙습니다! 어느 새 내려온 백도훈.”

중앙에서 공을 잡은 그리즈만의 뒤를 밟은 도훈.

곧바로 그리즈만도 도훈의 인기척을 느낀 듯 왼쪽으로 툭 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훈은 끝까지 그리즈만을 쫓았고, 결국 앞을 가로 막고 서는데 성공.

“...”

“...”

도훈을 앞에 두고 선 그리즈만.

도훈은 공격수다.

그리즈만이라면 충분히 돌파를 시도할 수 있음직한 상황.

그러나,

파아앙-!

그리즈만은 아주 잠깐도 고민하지 않고 패스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보며,

‘똑똑한데.’

도훈은 과연 그리즈만이 똑똑한 선수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덤벼주길 바랐으니까.

드리블 돌파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원래의 두 줄 수비에서 도훈은 보충된 인원일 뿐이었다.

제쳐낸다 해도 원래의 수비 라인은 그대로라는 것.

드리블 돌파로 도훈을 제쳐내고 들어간다 해도, 오히려 그것은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사지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그걸 아는 그리즈만은 사이드로 공을 돌린 것이었다.

패스를 해야할 때와 돌파를 해야할 때를 아는 것.

그것만 할 줄 알아도 이 바닥에선 먹고 산다.

그리즈만은 그런 류에서 최정점에 서 있다고 봐도 무방한 사나이였다.

“르마, 다시 그리즈만에게.”

계속해서 공격을 주도하는 그리즈만.

왼쪽에서 공을 받았던 르마가 다시 그리즈만에게 공을 돌려줬다.

다시 한 번 도훈과 마주하는 그리즈만.

그러나 이번에도,

파아앙-!

그리즈만은 패스를 돌렸다.

이번엔 반대쪽.

‘널 상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즈만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좋다.’

정장차림으로 날카롭게 경기를 지켜보며.

시메오네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즈만은 고딘과 함께 선수단에서 시메오네 감독이 가장 신뢰하는 선수.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안다는 게 딱 그리즈만이었다.

그런 그리즈만에게, 이번 경기의 운영을 맡기며 전달한 포커스는 하나였다.

“백도훈을 많이 뛰게 만들어야 한다.”

굳이 4-3-3의 전형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였다.

평소와 달리 더욱 공격적으로 나서는 듯 보이게 만들기 위함.

그러나 실제론 아니었다.

말만 4-3-3이지, 수비시엔 4-4-2로 돌아가며 여느 때처럼 두 줄 수비를 가동할 것이었으니.

그러나 경기 초반, 상대를 정말로 혼돈시키기 위해선 액션이 필요했다.

그 액션에 더해 골까지 나와주면 더할 나위가 없고.

때문에 전반 초반, 아틀레티코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백도훈도 아래로 내려올 것이라고 시메오네 감독은 생각했었다.

분명히 분석때 드러난 결과.

밀란엔 백도훈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그런 백도훈이 밀란을 이끌고 경기를 이기기 위해선, 경기 전반에 크게 관여를 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그러려면 당연히 많이 뛰어야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든다.

다만, 주의할 점 하나.

절대로 공을 가진 채로 녀석과 상대하지 않는다.

무조건 반대로 전환.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고, 갉아 먹는다.

‘남자답다는 게.’

큰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씨익 웃는 시메오네 감독.

앞뒤없이 무식하게 정면으로 들이받는 게 남자다운 건 아니다.

궁극의 목표를 위해선, 잠시 접을 줄도 아는 게 남자다운 거지.

시메오네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경기를 지켜 보았다.

파아앙-!

파아앙-!

“점유율을 확실하게 가져가고 있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전반 15분까지 76대 24. 상당히 많은 점유율 차이인데요.”

도훈이 아래로 내려간 뒤.

아틀레티코는 뒤에서 공을 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때문에 도훈도 압박을 위해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자 다시 아틀레티코는 전진을 시도했다.

철저히 도훈 근처에서 공이 도는 것을 피하는 형국.

그 쯤 되니 도훈도 낌새를 알아차릴 수밖에.

‘나를 피한다.’

자신이 왼쪽으로 움직이면 상대는 오른쪽으로 돌린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상대는 공과 자신이 같이 있는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영향력이 최저가 되게끔 만들겠다는 것인데.

도훈의 몸이 하나인 이상 개처럼 공을 따라다닐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아무리 피해가려 해도.’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피해가도 좋다.

하지만, 결국 아무리 피해가려 해도 그들이 자신이 있는 곳을 지나쳐야 하도록 만들어주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골대는 제 자리에 있으니까.

결국 도훈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다시 뒤로 공을 돌리는 아틀레티코.

그러다 도훈이 계속해서 중앙에 자리 잡고 있으니, 사이드로 패스를 여는 상대.

‘힌트는 너희가 준거야.’

도훈은 수비 태세를 갖춘 동료들에게 간격을 좁히라고 외쳤다.

상대 윙어 앙헬 코리아가 공을 잡은 상태임에도, 붙어주러 나가지 말고 박스 쪽으로 견고히 모일 것을 주문하는 도훈.

이건, 사실 아틀레티코의 수비법이었다.

사이드의 공간은 내주더라도, 중앙의 디펜스 라인을 좁게 구축하여 절대 중앙만큼은 내주지 않는 것.

어쨌든 골이 들어가려면, 이 곳을 지나쳐야 할 수밖에 없다.

굳이 상대를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막아야할 곳만 단단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이 수비법의 효과는 이미 상대가 수년 동안 증명해온 바.

상대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여줄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을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려는 걸 알아차린 도훈이었으니,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 필요도 없었고.

파아앙-

“그리즈만에게. 그리즈만, 바로 때립니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밀란이 박스를 중심으로 단단하게 뭉치자, 이때껏 빠르게 패스만을 돌리던 그리즈만이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그러나,

파아아앙-!

촘촘한 수비망에 걸리는 슈팅.

이내 공은 자파타가 걷어냈고, 아틀레티코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밀란이 단단하게 수비를 구축합니다!”

“아틀레티코와 비슷한 겁니다. 4-4-2라인의 두 줄 수비. 게다가 백도훈까지 내려와 중앙을 잠구고 있어요. 재밌네요. 항상 아틀레티코를 상대하는 팀이 이걸 어떻게 뚫어내는지만 봤었는데, 이젠 아틀레티코가 이걸 어떻게 뚫어내는지를 봐야겠는데요.”

“밀란도 분명히 유벤투스,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좋은 수비를 펼쳤던 팀이죠?”

“분명 강점이 있는 팀입니다.”

창과 방패가 뒤바뀐 느낌으로 경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확실히 레알 마드리드 전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던 것이 좋은 경험이 된 듯한 도훈.

도훈은 계속해서 중앙에 머물며 수비의 구심점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비만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도훈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단순히 이렇게 막기만 하는 것으론 절대 경기를 이길 수 없다는 걸.

그러니 계속해서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를 주시하며 호시탐탐 역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무리 상대가 점유율을 높이며 조심스럽게 경기를 펼친다 해도, 실수는 분명히 나올 것이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앙투완 그리즈만.”

밀란의 수비가 단단해 질수록 공을 잡는 시간이 길어지는 그리즈만.

그리즈만이 공을 잡는 동시에 도훈이 나서 압박을 가하자, 그리즈만은 역시나 공을 돌렸다.

그렇게 공을 돌리자 도훈은 의례적인 압박이었다는 것처럼 재빨리 뒤로 물러났고.

‘집중력이 떨어졌을 때가 됐을텐데.’

하지만 그러면서, 도훈은 재차 튀어나갈수 있도록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전반 25분.

경기는 똑같은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고, 서로의 패턴 역시 계속해서 동일하게 흘러가고 상황.

집중력이 떨어지기 딱 좋은 조건이었고,

파아앙-

그리즈만에게 공을 받았던 사울 니게즈가 습관적으로 다시 그리즈만에게 공을 돌려줄 때였다.

그 순간.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던 호랑이처럼 도훈이 패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촤아아아-

파아앙-!

“백도훈!”

“끊어 냅니다!”

슬라이딩 태클로 공을 탈취해낸 도훈이 재빨리 일어나며,

타타타타탓-!

전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방패들의 틈에 숨어 있던 창이 번개처럼 찔러 나오는 순간이었다.

< 신의 방패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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