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58화 (58/173)

< 신의 한 수 (2) >

‘실전이 더 쉽다니까. 그것도, 상대가 강할 수록 더.’

슬라이딩 태클로 패스를 끊어낸 도훈.

도훈은 벌떡 일어나 직접 공을 몰고 박스 안을 빠져 나왔다.

순식간에 달려드는 모드리치와 베일의 협력 압박.

그러나,

“와우, 멋진 마르세유 턴!”

“위험지역에서도 침착합니다! 저런 능력이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백도훈 선수의 모습이죠!”

여전히 위험지역이지만, 도훈은 침착하고도 우아하게 공을 다루며 둘의 압박을 떨쳐냈다.

아름다운 마르세유 턴.

탈압박 하나는 유럽 최고인 모드리치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도훈.

뻐어어엉-!

그 뒤의 플레이 역시 빠르고 간결했다.

선수들이 베일 쪽으로 몰려 있었기에 반대편 사이드는 공간이 넓었고, 도훈은 칼라브리아 쪽으로 패스를 열어주며 선수들에게,

“올라가!”

전체적으로 밀고 올라갈 것을 주문했다.

그 모습에 감탄하는 팬들, 동료들, 해설자들.

과연 이것이 오늘이 중앙 미드필더로 처음 뛰어보는 선수란 말인가.

그렇다기엔, 너무나 베테랑같이 원래 그 자리에서 뛰던 선수인 듯한 모습.

중원의 사령관, 그 자체였다.

‘솔직히, 연습 땐 몇 번 놓친 적도 있었지.’

연습 경기를 떠올리는 도훈.

도훈은 상대가 공격을 시작할 때, 미리 어떻게 공격이 들어올 지 예측해 수비수들에게 전달을 해 주었다.

하지만, 그 예측이 몇 번 틀렸던 적도 있었다.

기의 흐름을 읽고, 상대의 시선을 읽으며 어떤 식으로 공격을 시도할 지 예측을 했음에도.

어떤 때냐면, 그런 경우였다.

‘모두가 나 같다고 생각하면 안되겠구나.’

상대의 생각이 도훈을 따라오지 못할 때.

도훈은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그것을 예상한 뒤 선수들의 위치를 잡아주고 수비 방향을 지시했었다.

허나, 상대가 도훈이 보는 걸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레알같은 강팀과의 실전이 도훈에겐 더 쉬웠다.

어쨌든 그들의 클래스는 연습 경기 때 보단 훨씬 자신의 클래스에 가까웠으니까.

고수는 하수의 수를 읽는 것보다, 같은 고수의 수를 읽는 것이 훨씬 쉬운 법이었다.

“천천히 템포를 조절합니다.”

“그렇죠. 밀란은 최소한 1대1로 비겨도 8강에 올라 갑니다. 물론 안전한 방법은 아니지만요. 급한 건 레알이에요.”

어쨌든 득점이 필요한 건 레알 쪽이었다.

한 점이라고 해도 일단은 넣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밀란은 이대로만 가도 괜찮은 상황.

때문에 도훈도 전략적으로, 굳이 높게 올라가거나 전진 패스를 계속해서 시도하는 대신 여유있게 패스를 돌리며 템포를 조절해 나갔다.

이 역시 도훈이 계속해서 생각을 하며 플레이 해야 할 일.

도훈의 지휘 아래 오히려 여유가 있어보이는 건 밀란 쪽.

“백도훈, 괜찮은데요!”

“괜찮은 걸 넘어, 솔직히 대단합니다. 저 자리에서도, 원래 저 자리를 뛰는 선수들 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지션에 구애 받지 않는 실력이네요, 역시나.”

수비수들은 도훈의 등을 보며 느꼈다.

최전방에 있을 때나, 아니면 자신들의 바로 앞에 있을 때나.

BAEK

13

저 등의 이름과 번호가 주는 신뢰감은, 똑같았다.

진행되는 경기.

시간이 지날 수록 급해지는 레알.

빠르게 선제골이 터지지 않는다면 답답해질 수 있는 상황.

아니, 이미 답답했다.

‘백도훈이 아래쪽으로?’

만만히 본 게 사실이었다.

공격일 때야 잔뜩 긴장하고 마주할 테지만, 그 반대라면 무서워할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도 백도훈은 훨씬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나 거슬리는 건,

‘왼쪽? 오른쪽?’

마치 모든 걸 다 꿰뚫고 있다는 듯한 저 눈빛.

오늘 도훈이 보여준 패스 차단은 전반 30분인 현재까지 벌써 4개.

개인으로만 그 정도고, 도훈의 리딩으로 동료가 끊어낸 패스도 꽤나 됐다.

때문일까.

레알의 중원진들이 패스를 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하는 듯 주춤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 쪽이라고 생각하려나.’

자신의 의중을 꿰뚫는 도훈의 의중을 한 번 더 꿰뚫기 위하여.

그러나, 생각을 많이 한다고 공격 옵션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지공 상태기 때문에 공을 빠르게 처리하지 않을 수록 대처는 더 쉬워질 뿐.

그러다 보니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전반전이었다.

“삐익, 삐이익, 삐이이익-!”

결국, 전반은 0대0 그대로 종료.

전문 미드필더가 아닌 선수가 지키고 있는 밀란의 수비를, 레알 마드리드가 뚫어내지 못한 것이었다.

“좋아! 정말 잘했어! 완벽하던데.”

전반이 끝난 뒤.

제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도훈을 칭찬하는 가투소 감독.

훈련 때 보다도 더욱 완성도 있는 플레이를 보여줬으니, 정말 백도훈이라는 선수는 언제까지 자신을 놀라게 만들 것인지.

그러나.

“파악은 이제 끝냈어요. 후반전엔 좀 더...”

도훈은 자신의 전반전 플레이에 대해, 50점 정도로 밖에 생각치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처음이다 보니, 조금 안전하게 플레이하려 했달까. 상황이 상황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제 적응은 끝났고 파악도 끝났다.

“과감하게 해볼 생각입니다.”

후반전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삐이이익-!”

시작되는 후반전.

1분 1초가 급한 레알은, 여전히 공격 일변도.

전반 동안 중원에서 뿌려지는 전진 패스가 전혀 통하지 않았던 레알은, 마르셀루를 이용한 사이드 공략을 중심으로 후반전 변화를 주려 했다.

“마르셀루, 직접 끌고 올라 갑니다!”

패스 플레이 보다는 마르셀루의 개인 능력을 통한 공격 전개.

도훈도 직접 사이드로 내려가 마르셀루를 마크하진 못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이는 해법.

“너무 나가지 마! 중앙! 사람 놓치지 마!”

그에 대응해 도훈은 박스의 동료들에게 크로스를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

어쨌든 사이드를 내줘도 중앙에서 막으면 된다는 판단.

특히나,

“발 밑 조심!”

뻐어어엉-!

땅볼 크로스를 주의하라고 외치는 도훈.

아니나 다를까, 사이드를 파고든 마르셀루가 박스를 향해 빠른 땅볼 크로스를 뿌렸다.

약속이 되어 있던 듯, 그 크로스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킬리안 음바페.

하지만,

이건 이미 1차전에서도 밀란이 대비를 잘 하고 있었던 움직임이었다.

애초에.

파아아앙-!

“로마놀리가 끊어 냅니다!”

음바페를 집중 견제해왔던 로마놀리와 자파타.

자파타가 음바페를 몸으로 견제하는 동시에 로마놀리가 앞으로 나서며 크로스를 끊어냈다.

사실 어쩔 수 없었던 변화였다.

모드리치나 크로스 같은 좋은 패서들을 활용해 단번에 수비 뒷 공간을 노리려던 게 원래 2차전을 준비해왔던 레알 공격의 골자.

그것은 1차전에서 음바페를 적극 활용하는 전법이 잘 통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예상치 못한 도훈의 리딩에 막히고 말았으니, 다시금 단순하게 1차전의 전술로 회귀한 것.

즉, 이미 한 번 통하지 않았던 전술을 어쩔 수 없이 꺼내든 것이라는 뜻이었다.

파아앙-

“백도훈이 잡습니다.”

“급할 게 없겠죠. 템포를 조절할 겁니다.”

로마놀리는 곧바로 도훈에게 공을 전달했다.

이런 위험 지역에서 키핑을 해줄 수 있는 건 도훈뿐.

전반전에도, 도훈은 멋진 키핑 능력을 보여주며 이런 상황에서 템포를 조절하며 레알의 흐름을 끊어 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타타타탓-!

“앗, 직접 끌고 올라 갑니다!”

혼잡한 틈에서 직접 공을 몰고 전진을 시도하는 도훈.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전반과 달라진 레알의 공격 전개와 이어지는 이유.

상대 풀백의 전진이 높았다.

이럴 땐 상대의 재압박도 높은 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역습을 올라가는 게 오히려 더 안전한 판단.

당연히,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괜찮게 하던데, 너.’

빠르게 올라가려는 도훈을 가로막는 토니 크로스.

도훈은 크로스의 패스 실력을 인정했다.

자신이 예측한대로,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그 말은, 크로스가 나름 도훈이 볼 수 있는 패스의 길을 비슷하게 봤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도훈도 인정해주는 것.

하지만, 과연 반대로도 가능할까?

파팡-!

앞을 가로막는 크로스를 향해 더 속도를 높이며 달려든 도훈은, 번개같이 유령신보를 치며 크로스를 제쳐냈다.

도훈은 크로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크로스는 그러지 못했다.

뻐어어엉-!

크로스를 제친 뒤 곧바로 크게 난 오른쪽 공간을 향해 오른발 아웃프론트 패스를 뿌리는 도훈.

그 패스를 향해 넓은 공간을 달려가는 마티니. 도훈도 멈추지 않고 박스를 향해 계속해서 뛰었다.

순식간에 이어지는 역습.

“빨라요!”

도훈은 무섭게 달렸다.

크로스나 카세미루, 모드리치 그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속도.

때문에, 마티니가 오른쪽에서 도훈의 스루 패스를 따라 잡은 순간 이미 도훈은 박스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고,

파아아앙-!

마티니는 다시 박스 안으로 논스톱 패스를 뿌렸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그 직전.

마티니와 눈을 마주친 도훈이 곧바로 패스가 올 것이라고 알아차린 순간.

타탓-!

오드리오솔라를 앞에 두고 달려가던 도훈이 왼쪽으로 달려갈 듯 움직였다가,

타타탓-!

오드리오솔라가 그 움직임에 반응하자 곧바로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재밌게도, 지난 경기에서 배운 움직임.

유벤투스의 호날두를 보고 감명을 받았던 오프 더 볼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도훈.

촤아아아-

덕분에 오드리오솔라와 거리를 벌린 도훈은 마티니의 패스를 향해 잘라 들어가는 움직임이 되었고,

파아아앙-!

가볍게 발을 대며 논스톱 슈팅을 때렸다.

슈우우웅-

철썩-!

너무나 빠르게 휙휙 지나가서일까.

주먹을 꽉 쥐고 지켜보던 밀란 팬들은,

“와아아아앗-!”

1초쯤 늦게 벌떡 일어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먼저 골문을 연 것은 급한 레알이 아니라, 밀란.

도훈의 골이었다.

“정말 번개같은 역습이었습니다! 마치 호날두가 레알에 있던 시절의 역습을 보는 듯 했으나, 이번엔 레알이 아니라 밀란입니다!”

“역시 백도훈! 이게 우리가 아는 백도훈이죠! 오늘은 중앙에서 머물렀던 백도훈이지만, 이렇게 번개처럼 마무리까지 지을 수 있다니! 정말 무서운 자원이 아닐 수 없네요! 레알, 속수무책!”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팬들을 바라보며, 유유히 고개를 끄덕이며 달리는 도훈.

간단했다.

자신의 위치를 버리면서도 역습을 감행하는 건 리스크가 있는 행동.

그러나, 이렇게 마무리까지 책임져 버리면 리스크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마치 두 선수가 한 몸으로 뛰는 것 같아요!”

중원에서 단단함을 보여줬던 미드필더가, 역습을 올라올 땐 이렇게 무서운 공격수로 변신할 수 있다니.

“두 얼굴의 사나이네요!”

다재다능이라는 말이 딱.

어쩔 수 없는 대처였지만, 오히려 도훈을 내렸던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도훈이 경기장을 지배하고 있었으니.

후반 13분 터진 도훈의 환상적인 역습 골.

뜨겁게 타오르는 산 시로의 분위기에, 이미 스스로의 경기력에 답답함을 느끼던 레알의 선수들은 고개를 떨궜다.

거의 전의를 상실했다는 느낌이랄까.

“좀 뛰어!”

“왜 앞으로 줘? 발 밑으로 주면 되잖아!”

설상가상.

패스 미스를 한 후 말다툼을 벌이는 아센시오와 음바페.

이윽고 아센시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뒤돌아섰고, 다른 선수들의 표정 역시 굳어 버렸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자멸하는 느낌.

안되는 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실,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누구나 알고 있었다.

단 한 명 때문에, 경기가 이렇게 흘러와 버리고 말았다.

단 한 명, 백도훈 때문에.

‘끝낼 때가 됐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공격을 퍼붓는 레알이지만, 그 펀치에선 전혀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젠, 그들이 빨리 단념할 수 있도록 쐐기를 박아주는 게 예의라고 느껴질 정도로.

뻐어어엉-!

“다시 올라 갑니다!”

“레알의 진영이 완전히 무너져 있습니다!”

선수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이미 먹통.

밀란 선수들은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올라갔고,

도훈 역시 뒤를 걱정할 필요 없이 박스를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파아아앙-

왼쪽에서 온 락살트의 패스를 박스 바깥에서,

툭-!

뒷발로 접으며 한 번의 터치만으로 수비를 속여내고 박스 안으로 진입한 도훈이,

뻐어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왼발 슈팅으로 골문 구석을 가르면서,

“쐐기 골입니다, 이건!”

“레알, 무너집니다!”

경기는 사실상 끝이 나고 말았다.

“삐익, 삐이익, 삐이이이익-!”

그리고,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순간.

“와아아아아아앗-!”

산 시로를 뒤덮는 함성과 함께 밀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이 만세를 부르며 경기장으로 뛰쳐 나왔다.

모두가 예상하기 힘들었던, AC 밀란이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잘했어! 도훈! 넌 정말 최고다!”

“넌 어디서 뛰어도 최고야! 네가 해낸거다!”

레알 사냥의 1등 공신.

그저 적당히 비글리아의 자리를 메꿔주는 정도만을 바랐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완벽한 활약을 보여준 도훈.

도훈은 동료들과 함께 8강 진출의 기쁨을 나누었다.

ㆍㆍㆍ

“이야기는 끝난거나 다름 없지. 어마어마한 돈을 내놓을 거야. 우리가 아주 갑의 위치를 틀어 쥔거지.”

“흠.”

경기가 끝난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던 도훈을 잠깐 복도로 불러낸 것은, 경기장을 찾았던 조르제 멘데스였다.

역시나, 멘데스의 예상대로 경기를 슈퍼 캐리하며 팀을 8강에 올려놓은 도훈.

그런 도훈에게 레알의 패배를 지켜봐야만 했던 페레즈 회장이었기에, 이제 협상은 끝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라고 멘데스는 생각했다.

이제 더 기다릴 것도 없이, 곧바로 물밑 협상을 진행하면 될 차례.

이번 여름, 초대형 계약이 성사될 것이라며 멘데스는 잔뜩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어떤가? 최고의 클럽에 한 자리를 예약한 기분이?”

“근데요.”

“응?”

“레알 마드리드 있잖아요. 페레즈 회장이랑.”

“응.”

“전 별로 안좋아하거든요. 이상하게 정이 안간단 말이죠.”

도훈의 반응이 조금 의외였다.

< 신의 한 수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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