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56화 (56/173)
  • < 페이스 메이커 (2) >

    후반 초반 정도는 체력을 비축하며 조용히 보낼 것이라던 해설자들의 예상.

    그러나 도훈은 후반 첫 터치부터 무섭게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전반보다도 더 빠르게.

    “수소! 어떻게 이어 나가나요.”

    “잘 선택 해야죠.”

    오른쪽에서 도훈의 정확한 패스를 이어 받은 수소.

    빠르게 역습을 이어나가는 중간다리 역할을 맡게 된 수소는 생각이 많을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론 간단했다.

    ‘어차피 목적지는 정해져 있고.’

    전방엔 이과인도 공간을 향해 침투하고 있지만, 어쨌든 역습의 최종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어떻게든 도훈의 발에 다시 공이 돌아가게 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자신들의 역할은.

    이미 밀란 선수들은 도훈에게 아주 많은 걸 의지하고 있는 상태.

    ‘백도훈 의존증’ 에 걸렸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니까.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의존할만 하니까 의존하는 것을.

    파아아앙-!

    “수소, 비글리아에게 내줍니다.”

    한 마음 한 뜻.

    수소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 같이 한 가지 목표로 향하니 자연히 물 흐르듯 이어지는 패스.

    파아아앙-!

    모두 그 정도의 역할은 해줄 수 있는 동료들이었다.

    ‘역할은 다 했다.’

    왼쪽 사이드를 파고드는 도훈에게 패스를 전달한 뒤, 도훈이 그 공을 잡아두는 순간 비글리아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한 이야기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가 한계.

    유벤투스는 이들에겐 너무 강한 상대였다.

    그저 도훈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것까지일 뿐.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믿음이었다.

    때문에 도훈이 공을 잡는 순간, 재밌는 장면이 펼쳐졌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뛰는 걸 멈추며 모두가 도훈만을 쳐다보기 시작한 것.

    그리고 도훈이 다시 한 번 박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앞을 막아서는 칸셀루.

    “백도훈과 주앙 칸셀루!”

    사실 상대 공격수와 1대1을 하는 건 어쩌면 중앙 수비보다 풀백이 그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게다가, 칸셀루는 경험보단 순발력과 기술로 공격수를 막아내는 타입이니, 어쩌면 경험의 키엘리니보다 도훈을 상대하는데 있어 더 강점이 있을 수도.

    그러나 지금의 도훈은, 자극받아 있는 상태라는 게 문제였다.

    ‘환영신보.’

    중앙으로 접어들어갈 듯 잔상을 보낸 뒤,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도훈.

    그 동작에,

    콰당-!

    칸셀루는 몸이 뒤집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유벤투스 팬들은 충격.

    그들이 아는 칸셀루는, 이렇게 누군가의 앞에서 완벽히 무너진 적이 없는 믿을맨이었거늘.

    마치 메시 앞에서 마취총을 맞은 듯 넘어졌던 제롬 보아텡을 보는 듯.

    자존심을 제대로 구기는 칸셀루.

    “백도훈!”

    또 다시 뚫리는 수비에 욕설을 내뱉는 데 헤아.

    박스 왼쪽을 파고드는 도훈을 보고, 데 헤아는 자세를 낮춘 채 두 팔을 벌리고 각을 좁히려 나왔다.

    보통이라면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섣불리 나가봐야 좋을 게 없기 때문에.

    그러나 백도훈이라면 무조건 혼자 해결하려들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데 헤아는 골문 앞의 이과인도 무시한 채 도훈만을 바라보며 나왔다.

    정답이긴 했다.

    도훈이 혼자 해결할 생각은 맞았으니.

    그러나 문제는,

    “슈웃-!”

    툭-!

    슈우우웅-

    안다고 막을 수 있는 게, 백도훈은 아니라는 것.

    데 헤아가 나오는 것을 보고 정확한 타이밍에 공을 툭 찍어 찬 도훈.

    그 공은 데 헤아의 어깨 너머로 날아갔고, 데 헤아는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모기를 잡듯 손을 휘둘렀으나 이미 공은 어깨 위를 지나친 뒤.

    슈우웅-

    퉁-!

    그 공은 골대 안에 가볍게 튕겼다.

    그 순간, 발을 멈췄던 밀란의 모든 선수들이 만세를 부르며 도훈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고오오올-! 믿을 수 없습니다-!! 백도훈의 세 번째 고오올-! 헤트트릭, 유벤투스를 상대로 헤트트릭입니다-!!”

    골을 넣은 뒤 유유히 코너 플래그를 향해 뛰는 도훈.

    도훈은 굳어버린 관중석을 바라보며,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할 말을 잃는 유벤투스 팬들.

    “정말 자이언트 킬러네요! 유럽 최강팀 중 하나인 유벤투스를 상대로도 세 골을 몰아치는 백도훈!”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정말로 대단하네요, 이 선수. 앞으로, 더 큰 경기에서도 이런 영웅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지 기대가 됩니다!”

    조끼를 입고 몸을 풀고 있던 선수들까지, 밀란 스쿼드 전체가 몰려든 듯 도훈을 둘러싼 선수들.

    그러다 이과인이 도훈의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집어 넣더니, 도훈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백도훈!”

    환호하는 밀란 선수들과, 그 위에서 한 손을 들어 보이는 도훈.

    마치 제국의 군대를 물리치고 돌아온 영웅의 금의환향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밀란이 이 경기를 뒤집나요. 저력이 대단 합니다.”

    “유벤투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유벤투스도 패배하면 안돼요. 나폴리와의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유벤투스는 1위 팀이란 말이죠. 1패가 그냥 1패가 아닌 팀입니다.”

    “자, 앞서 유벤투스의 필승 공식을 말씀해 주셨었는데, 설마 그 공식이 오늘 깨지게 될까요. 물론 아직 시간은 30분 가량이 남았습니다.”

    아직 남은 건 30분 이상.

    그렇기에 다들 아직까지도 도훈의 페이스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하는 건 여전했다.

    여기서 가만 있을 유벤투스도 아니고.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유벤투스는 뒤쳐지지 않기 위해 다시 페이스를 더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거리가 벌어지면, 다시 거리를 좁힐 힘이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았으니.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걸 알아야 했다.

    당장 무리해 이 페이스를 따라 붙을 수 있을 진 몰라도, 그게 오버 페이스가 된다면 그 다음이 문제라는 걸.

    이건 도훈의 페이스였다.

    ‘감당할 수 있겠어?’

    유벤투스는 도훈의 페이스에 휘말려 들고 있었다.

    그건 호날두 마저도 포함이었고.

    뻐어어엉-!

    슈우우웅-

    “호날두의 슈팅, 골 포스트를 벗어 납니다!”

    “오늘 10번째 슈팅입니다. 유벤투스 전체가 아니라, 호날두 개인이요.”

    원래도 많은 슈팅을 때리는 호날두지만, 오늘은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슈팅을 때려내고 있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골문을 외면하는 슈팅들.

    “후우, 후우.”

    날아간 슈팅을 바라보며, 결국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숨을 몰아쉬는 호날두.

    이 순간, 처음으로 호날두는 원망했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이란 녀석을.

    26살때 보다도 빠른 페이스로 70분간을 뛴 호날두는, 그 순간 스스로 지쳤다는 걸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호날두가.

    다른 누구도 아닌 호날두가 말이었다.

    반면.

    도훈의 페이스는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왜?

    오버 페이스를 한 적이 없으니까.

    자신의 페이스로 달려왔을 뿐이니, 계속해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게 누군가에겐 오버 페이스를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속도라는 게 문제였을 뿐.

    “대단한데요. 그렇게 무리하게 보일 정도로 힘을 쏟아내고도, 아직 힘이 남아 있습니다.”

    “애초에 무리가 아니었던 게 아닐까요.”

    어느 덧 후반 40분도 지나가고 있는 경기.

    이상했다.

    경기를 뒤지고 있는 유벤투스가 오히려 힘이 먼저 떨어지고 있었으니.

    당장 무승부를 넘어 승리를 위해, 그러니까 2골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건만.

    선수들의 발이 무거운 것이 한 눈에 느껴지고 있었다.

    오히려 뒷심을 발휘하는 건 밀란 쪽.

    “지쳤어요, 지쳤어요.”

    경기장 한 가운데서 공을 잡고 제 멋대로 움직이는 도훈.

    그러나, 누구도 그런 도훈을 저지하지 못하고 있는 유벤투스.

    힘이 없었다.

    애초에 힘이 남아있을 때도 건드리지 못한 상대.

    힘을 다써버리고 한껏 지친 상태인 지금은 오죽하랴.

    그건 호날두도 어찌할 재간이 없었고,

    결국.

    “삐익,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이번 라운드 최고의 이변입니다! 유벤투스의 리그 첫 패배! AC 밀란이 백도훈의 헤트트릭에 힘 입어 유벤투스를 3대2로 꺾었습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리 울려 퍼지는 순간.

    밀란의 선수들은 리그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만세를 불렀고,

    “...”

    그 사이에서 호날두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그라운드를 빠져 나갔다.

    도훈이 호날두의 유벤투스를 완벽하게 꺾어내는 순간.

    “도훈아!”

    “네가 이긴거다! 네가 유벤투스를 이긴거야!”

    밀란 선수들이 도훈에게 달려들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건 정말 백도훈과 유벤투스의 대결이었고, 승리한 것은 도훈이었다.

    도훈의 승리였다.

    “말씀대로 됐네요?”

    “그렇게 됐구만. 이거 참. 또 좋은 카드가 생겨 버렸네.”

    “페레즈 회장이랑 이야기 할 때요?”

    고개를 끄덕이는 조르제 멘데스.

    이미 도훈의 몸값은 상상할 수 없는 만큼의 가치.

    그러나 오늘 경기, 백도훈은 또 다시, 아니 지금껏 중에 최고의 활약을 펼쳐 보였다.

    이 경기는 페레즈 회장의 지갑을 더 털어낼 수 있는 좋은 카드.

    하지만,

    “바로 연락 넣으시면 되겠네요?”

    “뭐, 지금 페레즈 회장한테? 아니지, 아니지.”

    “그럼?”

    “아직 챔스가 남았잖아.”

    멘데스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직은 카드를 낼 때가 아니었다.

    아직은 해일 하나가 더 남아 있었으니까.

    그것도 가장 큰 녀석 하나가.

    레알과의 챔피언스 리그 2차전.

    멘데스는 도훈의 밀란이 이 경기를 이길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다시, 지금과 같은 활약을 보여주며.

    “나, 승부사야.”

    그리고, 눈 앞에서 패배를 목격한 페레즈 회장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금액을 지불할 마음을 먹을 것이고.

    “멘데스는 지지 않는다구.”

    득의만만한 미소를 짓는 멘데스였다.

    ㆍㆍㆍ

    -[칼럼] 유벤투스 vs AC밀란, 유럽 최고의 팀과 유럽 최고의 선수의 대결이었다

    ···확실히 유벤투스는 강했다. 점유율, 패스 횟수, 슈팅 횟수, 만들어낸 찬스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밀란을 압도했다. 하지만, 밀란엔 백도훈이 있었다. 백도훈은 3골 모두를 거의 혼자의 힘으로 넣는 괴력을 선보이며 유벤투스를 무너 뜨렸고, 이는 마치 3년전 러시아 월드컵에서 호날두가 스페인을 상대로 헤트트릭을 하며 무승부를 거뒀던 경기의 오마주같은 느낌이었다. 그 땐 호날두가 인간계 최강의 팀을 상대하는 ‘신’ 의 입장이었지만, 어제는 그 반대였다. 새롭게 신계 입성에 도전하고 있는(어쩌면 이미) 백도훈 앞에서, 세계 최고의 팀에 속한 호날두도 한 명의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ㄴ인정한다... 날두형 백도훈한테 따라 잡히는 거 보고 진짜 세월이 야속하더라.. 근데 솔직히 어제 백도훈 포스는 전성기 날두형급이기도 했음...

    ㄴ진짜 5년전부터 메날두의 시대가 가고 있다, 끝났다 말은 많았어도 그래도 어쨌든 메날두 둘이 세계최고인 건 부정 못했었는데.. 이젠 진짜인 것 같다. 새 시대가 오고 있음. 난 네이마르만 끼인 시대라고 불쌍한 줄 알았더니 음바페도 똑같은 꼴 나게 생겼네? 이제 좀 발롱 노려볼까 하니까 백도훈 나타남 ㅋㅋㅋ

    -여전히 분데스 득점 1위, 백도훈. 세리에 리그 17골 몰아치며 득점 4위 등극.. 유럽최고 양국 리그 동시 득점왕 가능성 보인다

    ㄴ진짜 실화냐? 그 누구도 못한 걸 한국 선수가 해낸다고? ㅋㅋㅋㅋ

    ㄴ진지하게 백도훈이 지금 있는 별별 기록들 다 깰 것 같은 느낌 나만 드냐? 내가 볼 땐 두개 리그 동시 득점왕부터 시작임 ㅇㅇ

    호날두와, 유벤투스를 꺾은 도훈.

    그리고 밀란.

    이 기세라면 산 시로에서 충분히, 아니 무조건 레알을 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은 당연.

    그러나, 그 경기를 앞두고 생각지 않은 문제가 밀란에게 생겼다.

    “3주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만..”

    “이런..”

    그것은 바로 밀란 중원의 중심, 공수 조율의 핵을 맡고 있는 루카스 비글리아의 부상.

    “어쩌다 이런 거야?”

    “호날두와 부딪혔을 때, 그 때 근육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요.”

    하필 비글리아라니.

    비글리아의 역할은 대체하기 어려운 역할이었다.

    비글리아가 빠진다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는 그나마 찰하노글루 정도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찰하노글루의 폼은 떨어질대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거니와 원래 찰하노글루가 정확히 그 역할로 뛰는 선수도 아니었다.

    때문에 고민이 깊어지는 가투소 감독.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찾아야 하는 입장.

    최선의 선택이라.

    “찰하노글루보다는 마티니가 낫지 않겠습니까?”

    “마티니? 무슨 소리야. 마티니는 중앙 미드필더로 뛰어본 적이 없는데.”

    코치의 말에 무슨 소리냐는 듯 묻는 가투소 감독.

    그러나 코치는 말 뜻은 그게 아니었다.

    “마티니는 도훈 대신이고요. 도훈을 비글리아 자리에서 뛰게 하는 거죠. 그 자리에서도 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건, 지금 도훈뿐이지 않습니까?”

    “중앙 미드필더로.. 도훈을?”

    코치의 말에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기는 가투소 감독.

    이내, 가투소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최선일 것 같기는 한데..”

    지금껏 경기 중 자의적 판단으로 미드필더 역할을 한 적은 몇 번 있었던 도훈이었다.

    하지만, 아예 공격수 자리가 아니라 미드필더로 경기를 뛰게 한 적은 없었다.

    비글리아의 자리는, 단순한 자리가 아니라 공수의 흐름을 연결하고 경기를 조율해야 하는 자리.

    도훈이 그것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훈련 중 도훈을 불러 이에 대해 가투소 감독이 이야기 하자 도훈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할 수 있죠.”

    못할 건 전혀 없었다.

    < 페이스 메이커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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