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55화 (55/173)

< 페이스 메이커 (1) >

“중앙으로 들어 가나요!”

원래 도훈이 있어야 할 자리.

그 자리에서 보누치와 키엘리니가 도훈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치고 들어간다는 건, 보통의 공격수들에겐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

빠져나갈 수 없는 올가미에 스스로 발을 집어넣는 셈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사이를 향해 달려들고 있는 이가 백도훈이었기에,

‘들어온다.’

보누치와 키엘리니는 문을 닫듯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백도훈이라면 충분히 이 사이를 돌파하려들 선수였으니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선수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왜?’

문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세상 모든 일은 할 수 있다고 하는 게 아니다.

해야 하는 이유가 있으니 할 뿐.

굳이 그 사이를 돌파할 이유가 없었기에, 달려들던 도훈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방향을 꺾었다.

보누치와 키엘리니의 사이로 들어서기 직전, 왼쪽으로 공을 접으며 꺾어 들어간 것.

그 움직임에 선 채로 당하는 보누치와 키엘리니.

접고 들어가며 보누치를 지나쳐 박스 왼쪽에 진입하는데 성공하는 도훈.

촤아아아-

그러나 곧바로 따라붙은 칸셀루의 과감한 태클이 들어왔다.

박스 안에서 슬라이딩 태클이라니 본인의 태클 실력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

그러나 뒤 쪽에서 들어오는 태클마저 예상했다는 듯,

파팡-!

도훈은 양발 드리블로 태클을 피해낸 뒤 한 번 더 치고 들어갔다.

그리곤 온 몸을 뒤틀며,

뻐어어어엉-!

왼발 슈팅을 때렸다.

촤아아아-

속도가 산 채로 체중까지 실어 꺾어 찬 슈팅에 넘어져 바닥을 뒹구는 도훈.

“...!”

반대편 포스트를 향해 낮게 깔려가는 슈팅에, 데 헤아는 동물적인 반응으로 넘어지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발로 막을 걸.

손으로 막기 위해 넘어지는 사이 이미 버스는 떠난 뒤.

반응 속도만큼은 세계 최고인 데 헤아마저 늦을 수밖에 없는 슈팅이었다.

철썩-!

촤아아악-!

도훈이 때린 슈팅이 골대 바로 안쪽에 꽂힌 뒤 골망을 타고 롤러코스터처럼 골대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동점골이었다.

“고오오올-! 백도훈입니다, 백도훈-!! 유벤투스의 수비를 단독으로 뚫어내는 환상적인 돌파에 이은 마무리까지!”

“백도훈은 백도훈이네요! 이거 참.. 유벤투스의 수비까지 이렇게 시원하게 뚫어낼 줄은 몰랐습니다!”

골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일어나 관중석을 바라보며 천천히 달리는 도훈.

적막에 잠긴 경기장을 바라보니 또 다시 짜릿한 이 기분.

이 기분이, 제일 좋다.

중독된 것처럼.

“도훈-!!”

“이 자식! 이러니까 우리가 널 좋아할 수밖에 없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동료들도 골에 취한 듯 도훈에게 달려 들었다.

전반 33분.

피아니치의 선제골로부터 6분만에 터진 동점골.

도훈의 개인 능력으로 수비를 부수는 완벽한 골이었다.

그 골이 자존심을 건드린 것일까.

유벤투스는 이전보다 더욱 무섭게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특히나 무언가에 자극을 받은 듯 페이스를 올리기 시작한 건, 호날두였다.

“왼쪽, 만주키치에게.”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 만주키치에게 향하는 케디라의 로빙 패스.

파아앙-

칼라브리아보다 한 뼘은 더 높이 뛰어오른 만주키치가 공을 떨궈냈고,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로 흘러 들어가는 공.

사실 사이드에서의 헤더가 그런 식으로 크로스처럼 흘러들어올 것이라곤 쉽게 예상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때문에 밀란의 수비수들이나, 골키퍼 돈나룸마의 반응이 늦었다.

그렇게 그들이 보고도 반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만주키치가 뛰어오른 순간 이미 골 냄새를 맡고 뛰어들고 있는 이가 있었다.

역시 호날두였다.

촤아아아-

몸을 날려 발을 뻗는 호날두.

파아앙-!

철썩-!

그리고 그의 발에 맞은 공은 가볍게 골문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도훈의 동점골이 있은지 7분만에 다시 리드를 잡는 골.

역시나 득점왕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호날두.

“호우우우우-!!”

호날두가 호쾌하게 특유의 세레머니를 펼쳐 보였고, 유벤투스의 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역시 득점 1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번 골로 리그 21번째 골로 올라 섭니다!”

호날두의 골로 다시 앞서가는 유벤투스.

그러나, 유벤투스는 득점 이후로도 공격적인 움직임을 계속해서 유지했다.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한 골을 더 넣어 완전히 거리를 벌리려는 듯 달려가는 유벤투스.

페이스를 완전히 끌어 올리고 있었다.

“호날두, 슈우웃-! 빗나갑니다! 오늘 6개째 슈팅, 호날두!”

두 번째 골 사냥에 박차를 가하는 호날두.

역시 호날두라면 절대 1골로는 만족할 수 없을텐데.

‘괜찮겠어?’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호날두를 보며 도훈은 생각했다.

분명 도훈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페이스를 끌어 올리며 첫 골을 터뜨리자, 호날두도 페이스를 급격히 끌어 올렸다는 것을.

마치 서로가 서로의 페이스 메이커인 것처럼.

하지만, 도훈은 생각했다.

호날두는 자신의 훌륭한 페이스 메이커가 될 수 있지만 자신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은 절대 좋은 페이스 메이커가 될 수 없었다.

그 누구든 오버 페이스를 하게 만들어 버릴 테니까.

‘누가 먼저 나가 떨어지나 볼까.’

페이스를 더 올린다.

도훈이 최전방을 이과인에게 맡기고 하프 라인 아래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파아앙-!

“로마놀리, 몸으로 막아 냅니다.”

그 순간 호날두의 7번째 슈팅이 로마놀리의 몸에 맞고 튕겨 나왔다.

그리고, 그 공을 도훈이 잡았다.

“백도훈이 왜 여기 있죠?”

밀란의 박스 근처.

상당히 아래까지 내려온 도훈의 위치는 중앙 미드필더인 비글리아보다도 아래.

도훈이 공을 잡자 곧바로 호날두가 재차 달려 들었다.

‘수비로 최고는 아니니까 이해해요.’

그러나 호날두는 도훈을 막아낼 수 있는 수비 실력이 전혀 아니었다.

파아앙-!

타타타탓-!

도훈이 가볍게 호날두를 떨쳐내고 돌아선 뒤,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갑작스런 턴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피아니치마저 도훈을 저지하는데 실패했고.

도훈은 무섭게 치고 올라갔다.

“위험 지역을 벗어 납니다!”

“빨라요! 빠르죠!”

중원의 마지노선을 구축하고 있던 케디라의 표정이 구겨졌다.

공간은 넓었고, 달려드는 저 녀석을 막아야 하는 건 오직 자신뿐.

그러나 녀석의 속도는 이미 너무나 빠르게 붙어 있는 상태였다.

타타타탓-!

“케디라까지!”

케디라마저 제쳐내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도훈.

어디까지 갈 것인가.

“끝까지 가나?”

주먹을 쥐는 밀란의 팬들.

얼마나 답답했으면 박스 근처까지 내려와 공을 몰고 저기까지 올라갈까, 하는 게 이들의 시선이었을 것.

도훈이 어떻게든 동점골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오버 페이스를 감수하면서까지 힘을 내는구나라고 이들은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전혀.’

무리하게 페이스를 끌어 올리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마치 쇼트트랙의 레전드 선수가 보여줬던 분노의 질주처럼.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아니, 지금보다 더 빨리.

“다시 중앙으로 파고 듭니다!”

다시 한 번 마주치는 키엘리니와 보누치.

이번엔 대형이 조금 달랐다.

아깐 둘이 나란히 서 있었다면, 지금은 앞 뒤로 서 있는 상태.

보누치가 1선을, 키엘리니가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번엔 그 둘을 뚫기 위해선 둘 모두를 제쳐내야 했다.

‘네가 앞에 있는 이유를 알지.’

그러나 사실상, 도훈에겐 하나다.

“보누치를 간단하게 제쳐냅니다!”

속도를 붙인 채 출렁이는 상체 페인팅에 가볍게 벗겨지는 보누치.

아쉽게도 보누치의 대인방어 능력으론 도훈을 막아내긴 무리.

진짜는 키엘리니였다.

백전노장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

키엘리니는 살아있는 레전드였다.

‘지주, 환영신보는 못 쓴다.’

속도가 붙어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자체적으로 속도를 줄여야하는 두 신보는 사용 불가능.

그렇다면 남은 건.

‘유령신보.’

파팡-!

번개처럼 튕기는 양 발의 터치.

“...!”

키엘리니는 시야에서 공을 잃어 버렸다.

그러나, 발을 뻗었다.

정확한 방향으로.

쉬이익-

공을 본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보고 예측해 뻗은 태클.

경험이었다.

십수년간 최고의 공격수들을 상대한 그 경험으로 뻗은 태클.

과연 키엘리니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키엘리니도 도훈 앞에서 경험을 내세우는 건,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꼴이라는 것.

툭-!

도훈이 왼발이 다시 한 번 번개처럼 움직여 공을 건드렸다.

그 터치에, 키엘리니의 다리 사이로 궤도를 변경하는 공.

스르륵-

그와 동시에 도훈은 키엘리니의 등 뒤를 감싸듯 돌아 들어가 공과 재회했고, 바짝 웅크린 데헤아와 마주했지만,

뻐어어어엉-!

“슈우우웃-!”

슈우우웅-

철썩-!

데헤아는 공이 골망에 꽂힐 때까지 웅크린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와아아아아아앗-!”

믿을 수 없는 두 번째 골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반칙으로 막았어야지!”

도훈의 골이 들어간 순간.

먼 발치에서 지켜보던 호날두가 성을 냈다.

호날두는 도훈이 자신의 압박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직감할 수 있었다.

‘반칙으로 막아야 돼.’

호날두는 알고 있었다.

정말 많은 경험이 있었으니까.

반칙이 아니면 막을 수 없는 선수가 아군의 수비를 유린한 뒤 골을 넣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봤던 수많은 경험이.

호날두는 도훈에게서 그 선수의 향기를 맡은 것이었다.

‘절대.’

하지만 호날두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다시 분위기를 바꿔 동료들에게 박수를 치며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절대 그럴 순 없다.

절대 그런 선수가 다시 나올 순 없다.

자신과 대등하게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건, 절대 그 녀석 이후로 다시 나올 순 없었다.

‘보여주마.’

호날두는 한 번 더 페이스를 올려야 겠다는 생각을 머금었다.

“삐익, 삐이이이익-!”

그러나 시간은 거기까지.

2대2, 전반 종료.

전반 45분은 정말로 뜨거웠다.

“상당히 스피디했던 전반이었습니다. 역시 백도훈 선수의 두 골이 기억에 남죠?”

“특히나 그 두 번째 골은, 메시나 마라도나의 골과 비견될만한 골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능가하죠. 거리도 거리고, 제쳐낸 선수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고요. 아주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건 말이죠.”

“뭔가요?”

“밀란에서는 백도훈 선수만 뛰는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죠. 전반은, 백도훈 선수가 괴력을 발휘하며 억지로 2대2를 맞춰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백도훈 혼자서 유벤투스를 상대한거죠. 하지만, 유벤투스는 전반의 페이스를 후반에도, 그 이상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과연 백도훈 선수가 그럴 수 있을까요? 솔직히 오버 페이스한 느낌이 없지 않거든요.”

해설자의 말 대로, 동점으로 전반을 마친 밀란은 결과에 만족했으나 걱정스러운 부분은 존재했다.

도훈에게 너무 많은 게 달려 있었으니.

이것은 어찌보면 유벤투스와 백도훈의 대결.

유럽 최강의 팀을 상대로 홀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게 도훈의 상황.

그러나, 충분히 짊어질 수 있는만큼의 무게였다.

도훈에겐.

이어지는 후반전.

“백도훈의 체력이 관건이겠죠. 아마, 많은 골을 바라진 않을 겁니다. 후반을 전반과 다르지 않게 수비 위주로 버티면서, 한두번 오는 기회를 백도훈이 살려주길 바라고 있겠죠. 백도훈은 그럴 수 있는 선수니까요. 무승부만 거둔다고 해도, 밀란은 유벤투스의 필승 공식을 깨버리는 겁니다. 선제골, 그리고 홈. 유벤투스는 전승이니까요.”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호날두가 움직입니다.”

왼쪽에서 공을 잡고 로드리게스와 대치하는 호날두.

이미 작정을 하고 나온 호날두는 보여주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인간계 최강과, 신의 차이를.

쉬이익-

타타탓-!

사이드를 돌파할 듯 하다, 헛다리를 짚은 뒤 오른쪽으로 차놓고 달리는 호날두.

중앙으로 접어들어가던 호날두는,

뻐어어어엉-!

오른발 강슛을 날렸다.

호날두의 전매특허.

발등에 얹혀 강하게 쏘아져 나가다 골키퍼 앞에서,

부우우웅-

드롭이 걸려 뚝 떨어지는 슈팅.

투우웅-

파아앙-!

“잡지 못합니다!”

한 번에 잡아내긴 어려웠던 슈팅은 돈나룸마의 가슴팍을 맞고 튕겨 나왔다.

세컨볼을 따내기 위해 재차 달려드는 선수들.

뻐어어엉-!

다행히 먼저 걷어낸 것은 로마놀리.

길게 클리어 되는 공.

아쉽게 날아간 기회에 지금까지 8번의 슈팅을 때린 호날두가 아쉬움을 삼키는 순간.

‘따라오려면 힘드실텐데.’

걷어낸 공을 잡은 건, 다시 한 번 도훈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뻐어어엉-!

“잘 봤어요!”

반대편으로 길게 전환하는 패스를 뿌린 후 달려가는 도훈.

역습 상황에서 멀리 있는 동료를 향해 뿌린 패스는, 너무도 이상적인 궤적과 스피드로 날아갔다.

“예상 외로 밀란이 속도를 붙여 봅니다!”

오버 페이스라고?

전혀.

못 믿겠다면 증거를 보여줄 수도 있었다.

전반보다, 더욱 페이스를 올려 보임으로써.

“경기가 더욱 뜨거워 집니다! 밀란의 역습!”

도훈이 다시 한 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 페이스 메이커 (1) > 끝

ⓒ 한명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