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54화 (54/173)
  • < 중독 (2) >

    세리에 최강.

    유벤투스.

    분데스리가에 바이에른 뮌헨이 있다면, 세리에를 지키고 있는 건 유벤투스.

    세리에뿐만 아니라 유벤투스는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꾸준히 상위 성적을 거두며 유럽에서도 막강한 전력을 인정받고 있는 강 팀.

    지난 시즌 유벤투스는 새롭게 합류한 최상급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둬냈다.

    그런 유벤투스를 AC밀란이 리그 25라운드에서 만나게 되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물론 도훈이 주목하고 있는 건 단 한 명.

    그 동안 세계최고라 불리는 선수들은 꽤 만났던 도훈이었다.

    킬리안 음바페부터 시작해서, 뮌헨의 선수들, 도르트문트의 선수들, 그리고 레알의 선수들까지.

    그들의 실력에 감탄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도훈 개인적으론 모드리치나 베일 등을 보며 많은 영감을 얻기도 했었고.

    하지만.

    ‘신.’

    언제나 그들의 한 단계 위에서 군림했던 선수.

    근 10년간을 넘도록 유이하게 ‘신계’ 에 자리했던 선수를 직접 마주하는 것은 또 다른 무게감이었다.

    득점순위

    1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0골

    .

    .

    .

    5위 백도훈 14골

    그러나, 도훈은 세리에에 합류한 이후 6경기만에 호날두가 전반기 동안 쌓아올린 골 수와 동일한 골을 퍼부었다.

    도훈에게 ‘신’ 이라는 건 단 한 명뿐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호날두라도 스승님한텐 안되지.’

    정확히 말하면 호날두도 그저 인간 중에 가장 잘하는 인간일 뿐.

    그러나, 그마저도 틀린 말이라는 걸 도훈은 이번 경기에서 증명하고자 했다.

    인간 중에 가장 잘하는 인간은, 호날두가 아니라 백도훈 자신이 될 것이었으니까.

    “이야, 오늘 ‘멘데스는 지지 않는 날’ 이네요?”

    “엉? 그렇지. 하하하. 개인적으로 둘이 세 골씩 넣고 비겼으면 좋겠군.”

    “에이, 진심 이십니까?”

    “너 말야. 넌 가끔 날 너무 잘 아는 것 같아서 무섭단 말야.”

    “하하. 제가 한두 해 같이 했습니까? 솔직히, 백도훈이 좀 더 활약하길 바라시죠?”

    “크리스티아누 귀에 그 얘기가 들어갔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겁나는 구만.”

    경기장 한 켠에 앉아 있는 조르제 멘데스.

    오늘 멘데스는 양 팀에서 활약 중인 자신의 고객들의 대결을 직접 보기 위해 이 곳 알리안츠 스타디움을 찾았다.

    옆에 앉은 남자가 떠드는 대로, 양 팀 모두에 자신의 고객들이 뛰고 있으니 사실 경기는 누가 이겨도 멘데스가 이기는 경기.

    하지만, 멘데스는 내심 도훈이 좀 더 경기에서 활약해주길 기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호날두는 멘데스에게 있어 가족 이상의 존재.

    하지만 백도훈은 미래의 먹거리였다. 호날두가 인터넷이라면, 백도훈은 AI.

    게다가 당장 페레즈 회장에게 받은 연락도 있었으니.

    “언제 한 번 그대의 고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자리를 마련했으면 싶네. AC 밀란의 그 친구 말이야.”

    “그러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6세의 나이에, 아시아 시장 개척이 가능한 한국인이지만 병역 문제는 없음.

    상대팀을 가리지 않고 세리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연일 골 세례를 퍼부으며 활약을 펼치고 있는 공격수.

    도훈의 주가는 현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멘데스가 도훈의 에이전트가 된 이후로,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연락을 수십 통이나 받았을 정도였으니.

    조만간 대형 뉴스 하나가 뜰 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 전까지 계속해서 더 잘해줬으면 하는 게 멘데스의 바람이고.

    "잘해보자고, 친구들."

    멘데스는 손을 비비며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리그 25라운드, 알리안츠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유벤투스와 AC 밀란의 시즌 두 번째 맞대결! 먼저, 홈 팀 유벤투스의 선발 라인업부터 살펴 드리겠습니다.”

    [유벤투스 FC (4-4-2) 감독 :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GK 다비드 데 헤아

    CB 지오르지오 키엘리니

    CB 레오나르도 보누치

    LB 알렉스 산드로

    RB 주앙 칸셀루

    MF 미랄렘 피아니치

    MF 사미 케디라

    MF 파울로 디발라

    MF 블레이즈 마투이디

    FW 마리오 만주키치

    F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인업만 봐도 유럽 최정상이라는 게 느낌이 오는 명단.

    “양 팀 선수들이 악수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과 경기 전 악수를 나누는 도훈.

    키엘리니, 보누치, 피아니치, 그리고,

    “...”

    “...”

    도훈은 호날두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찡긋-

    호날두는 도훈에게 윙크를 한 뒤 어깨를 툭 쳐주고 지나갔다.

    ‘나를 알고 있나?’

    슬쩍 흐르는 미소.

    분명 호날두가 다른 선수들에게도 윙크를 하고 지나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호날두가 도훈을 알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호날두가 나를 안다.’

    축구 수련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막연히 했던 생각.

    호날두 같은 선수가 되어 막대한 부와 명예를 누려보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수련을 시작했던 자신이, 이젠 호날두와 악수를 나누고 함께 시합을 뛰게 된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게다가, 막연히 일방적인 동경의 대상이었던 호날두가 자신의 존재를 알 정도로 자신의 위치는 바뀌었고.

    ‘역시.’

    하지만, 도훈은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재밌게도 호날두같은 선수가 되고픈 마음은 그 순간 더욱 커졌다.

    도훈은 자신도, 다른 누군가가 ‘백도훈이 나를 안다’ 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설렐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었으니까.

    그러기 위해, 일단 오늘 이긴다.

    유벤투스와, 호날두를.

    “삐이이익-!”

    “경기 시작 됐습니다!”

    도훈이 유벤투스를 상대로 경기를 시작했다.

    연이은 강팀들과의 경기로 이제는 익숙해진 패턴.

    역시나 경기 주도는 유벤투스가 하기 시작했고, 도훈은 하프라인에서 기다리며 상황을 살폈다.

    ‘이탈리아 수비의 최정상..’

    자신의 곁을 지키는 키엘리니를 흘끔 살피는 도훈.

    호날두와 함께 40살까지 최고의 선수로 뛰겠다던 그의 말은 사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키엘리니의 나이도 어느덧 올해 서른여섯.

    그러나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운동 능력과 한 해가 갈수록 더 쌓여가는 경험은 그를 최정상의 자리에서 내려갈 수 없도록 붙잡아두고 있었다.

    어쩌면, 레알의 라파엘 바란보다도 위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웬만한 것으론 베테랑 중의 베테랑 키엘리니를 당황시킬 수 없다는 것일 것이었다.

    누구처럼 치아로 깨물어버리지 않는 이상은.

    “마투이디, 호날두에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어쨌든 먼저 걱정해야할 건, 수비가 유벤투스의 공세를 버텨낼 수 있느냐 하는 것.

    전반 3분만에 왼쪽 사이드에서 첫 터치를 가져가는 호날두.

    뻐어어엉-!

    슈우우웅-

    파아앙-!

    그런 호날두가 빠르게 각을 만든 뒤 박스 안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풀쩍 뛰어오른 만주키치가 머리를 가져다 댔다.

    골대를 빗나가는 헤더.

    그러나 골이 되지 않았을 뿐, 밀란의 수비는 그 공격에 어떠한 제어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호날두의 컨디션이 좋아 보입니다.”

    “대단한 자기관리죠. 나이도 나이고, 무릎 부상 이력도 있습니다만 그런 걸 생각하지 말고 지금 그라운드 위의 호날두 자체만 봐보세요. 그는 여전히 빠르고, 위협적입니다. 여전히 최고의 공격수에요.”

    중앙 공격수로 나섰지만 윙처럼 움직이는 호날두.

    호날두가 대단한 것은, 그렇게 윙어로의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언제든지 득점을 할 수 있는 감각이 살아 있다는 것.

    ‘막아보고 싶다.’

    그런 호날두를 보며 문득 든 생각.

    포메이션을 떠나, 그와 1대1을 겨뤄보고 싶었다.

    비록 둘 다 공격수니 결과가 어떻든 결론이 나진 않겠지만, 도훈은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호날두의 위압감이 어느 정도인지.

    대체 어느 정도길래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수비수들이 쩔쩔 메는 건지.

    그러나 지금 당장 뜬금없이 자리를 이탈해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인데.

    “삐익-! 코너-!”

    그러던 차에 기회 아닌 기회가 만들어졌다.

    밀란의 이과인이 얻어낸 코너킥.

    코너키커로 도훈이 나섰고,

    뻐어어엉-!

    슈우우웅-

    파아앙-!

    도훈이 올린 공이 키엘리니의 머리에 맞고 박스 바깥쪽으로 튕겨 나왔다.

    그 공이, 코너킥을 찬 뒤 자연스럽게 나오던 도훈과, 바깥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호날두의 사이로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

    공을 먼저 잡은 건 호날두였다.

    코너킥을 위해 많은 선수들이 올라가 있던터라, 공간이 훤히 빈 역습 상황.

    밀란 선수 중 공에 가장 가까이 있던 건 도훈이었다.

    도훈이 아무리 공격수라지만, 이건 따라붙어서 저지해줘야 하는 상황.

    한 마디로,

    “달립니다!”

    호날두와 도훈이 터치 라인을 타고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탓-!

    타타타타탓-!

    앞서 출발한 건 호날두였다.

    그러나 분명 공을 드리블하면서기에, 도훈은 점차 거리를 좁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빠르다.’

    분명히 도훈은 호날두의 뒤를 따라 잡으며 느낄 수 있었다.

    빨랐다.

    민첩성의 문제가 아니라, 폭발력의 문제.

    넓은 공간에서 긴 거리를 치고 달리는 속도는, 호날두도 여전히 죽지 않은 모습.

    빠르긴 빨랐다.

    그래서 도훈은 더욱 아쉬웠다.

    ‘10년만 일찍 만났으면.’

    이런 호날두를 10년 일찍 만났다면, 더욱 재밌는 경험이 되었을 것 같은데.

    서른여섯의 호날두가 아니라 스물여섯의 호날두와 달리기 시합을 펼쳤다면, 더욱 짜릿한 모습을 모두에게 보일 수 있었을텐데.

    촤아아아-

    파아앙-!

    “백도훈의 태클!”

    “이야, 지금은 상당히 깔끔했네요! 호날두를 따라잡은 백도훈이 멋진 슬라이딩 태클로 공을 걷어 냅니다! 좋은 역습 저지죠!”

    “나이스, 도훈!”

    “멋진 태클이다!”

    하프라인을 넘어가는 호날두를 따라잡은 도훈이 슬라이딩 태클로 공을 터치라인 바깥으로 걷어냈다.

    고마움을 표하는 동료들.

    “...”

    하이파이브라도 할까 내심 기대했던 도훈.

    그러나 호날두는 말 없이 도훈의 옆을 지나쳤고, 도훈은 어깨를 으쓱인 뒤 제 자리로 돌아갔다.

    진행되는 경기.

    수비에 집중하는 밀란과 최대한 빨리 선제골을 터뜨리려는 유벤투스의 치열한 공방전.

    밀란은 레알을 상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로마놀리의 지휘 아래 호날두와 만주키치를 집중 봉쇄하려 애썼다.

    그러나 문제는, 유벤투스에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가 그 둘 뿐만이 아니라는 것.

    그게 유벤투스의 무서움.

    전반 27분, 박스 바깥 좌측에서 미랄렘 피아니치의 오른발이었다.

    뻐어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강력하게 꽂힌 중거리 슈팅은 돈나룸마도 반응할 수 없는, 불운의 원더골.

    그 골로 경기는 유벤투스가 리드를 잡고 흘러가기 시작했다.

    역시나일까.

    유벤투스는 강했다.

    “올 시즌 유벤투스는 경기에서 선제 득점을 했을 경우의 승률이, 놀라지 마세요.”

    “얼마죠?”

    “100퍼센트입니다. 선제골을 넣은 경기에선 모두 이겼습니다.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어요. 또한, 홈에서는 단 한 번도 지거나 무승부를 거두지 않았던 유벤투스이기도 합니다. 그 두 데이터가 합쳐진다면, 유벤투스는 필승 공식을 이미 쓴 것이죠.”

    “과연 밀란도 그 확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인지.”

    홈에서 역전패는 커녕, 선제 실점도 한 적이 없는 유벤투스.

    다른 팀이라면 몰라도, 유벤투스에게 ‘역전’ 이라는 것을 노리기엔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공격진도 유럽 최강이지만, 수비진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최강이니까.

    좌우를 지키는 산드로와 칸셀루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핫한 풀백들이고, 보누치와 키엘리니는 말할 것도 없었다.

    가히 현 유럽에서 가장 철옹성같은 포백 라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지금의 이 넷.

    “이과인, 공을 빼앗깁니다. 칸셀루 앞에서 저렇게 공을 오래 가지고 있으려는 건 욕심이에요.”

    선제 실점 이후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템포를 올려보는 밀란.

    그 공세에 잠시 방패를 올려주는 유벤투스.

    그러나, 너무 가벼운 느낌.

    방패로 막을 필요도 없어 보이는 밀란의 공격을, 피도 눈물도 없이 너무도 완벽하게 막아버리려는 듯한 유벤투스.

    ‘벽이 뚫리지 않는다.’

    키엘리니와 보누치 사이에서 기회를 노리던 도훈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는 건 상대의 뒤를 노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인질이 되어 고립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으니.

    2선 동료들은 그들과 도훈 사이에 있는 벽을 도저히 뚫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건 도훈이 내려가 줘야 했다.

    파아앙-

    “백도훈 선수가 많이 내려와서 공을 받는군요.”

    “전방으로 정확한 패스가 연결되지 않으니까요.”

    결국 거의 하프라인 근처까지 내려와 공을 받는 도훈.

    그와 동시에 붙어오는 사미 케디라와 주앙 칸셀루.

    ‘불법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실력을 보여줘라..!’

    그 순간 벤치의 가투소 감독과, 관중석의 조르제 멘데스가 동시에 입술을 깨물었다.

    타타탓-!

    “돌아 섭니다!”

    도훈이 그 압박에 물러설 듯 뒤로 가려는 듯 하다, 공을 발바닥으로 긁으며 순식간에 돌아서 그 둘의 사이를 빠져 나와 달려가기 시작했다.

    “사이를 빠져 나옵니다!”

    케디라와 칸셀루의 동시 압박.

    심지어 칸셀루는 사이드로 내려와 있던 이과인을 무시한 채 자의적인 판단으로 도훈에게 달려든 것이었다.

    그러나, 도훈은 그 사이를 빠져 나와 순식간에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해도 이제 고작 한 겹을 뚫어냈을 뿐.

    ‘아직도냐.’

    도훈은 좌우를 살피며 치고 들어갔다.

    왼쪽에 이과인이, 오른쪽에 수소가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처음 밀란에 왔을 때, 그들에게 받은 인상은 상당히 좋았었다.

    나름 신뢰할만한 동료.

    최근까지도, 아니 어제까지도 그 생각은 변치 않았고, 다음 주가 되면 다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오늘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만큼은 그들을 신뢰하고 패스를 넘길 수가 없었다.

    상대가 상대인만큼.

    이건 죽이되든 밥이되든 혼자 해결해봐야겠다 싶었다.

    < 중독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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