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52화 (52/173)
  • < 베르나베우의 나비 (3) >

    왜일까.

    왜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기분인 것일까.

    베르나베우의 높은 곳에서, 페레즈 회장은 경기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레알의 경기력은 우월했다.

    공을 들여 데려온 선수나, 공을 들여 어린 나이에 데려와 키워낸 선수나.

    지금 뛰고 있는 레알의 모든 선수들은 어렵게 어렵게 하나씩 모은 선수들이었고 결국 이 팀을 이렇게 만들어 냈다.

    특히나 지난 시즌에 데려온 음바페는 화룡정점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레알을 이끌 재목.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그랬던 것처럼, 음바페만 데려올 수 있다면 더 이상 든든할 것이 없을 줄만 알았다. 음바페만 사면, 정말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마리아가 가끔 했던 이야기가 있지.”

    “뭔가요?”

    “옷은 사도 사도 입을 게 없다고. 이 옷만 사면 올 겨울은 끝이다, 해놓고 다음 날 또 다른 걸 고르고 있게 된다고.”

    “하하.”

    “내 기분이 지금 그렇네.”

    “예?”

    늙은이의 눈에 생기가 돌게 만들고, 입가에 군침이 돌게 만든다.

    웬만한 건 모두 가져봤지만, 또 가지고 싶다.

    저런 선수가 레알의 유니폼을 입고, 지금 레알의 선수들과 함께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조만간 연락을 취해봐야 할 것 같았다.

    호날두 때문에 꽤나 많이 얼굴을 마주했던, 조르제 멘데스와.

    다행히 아는 인물이 에이전트로 있으니 이야기는 쉬워질 수도 있을 듯 했다.

    물론 멘데스의 수완을 알고 있기에, 이번엔 그가 어떤 요구를 해올 지는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지만.

    얼마라도 좋다.

    저걸 살 수만 있다면.

    우적우적-

    페레즈는 손에 집힌 청포도를 씹어 먹으며 도훈을 응시했다.

    후반 16분 터진 도훈의 동점 골.

    베르나베우에서, 홀로 공을 잡은 뒤 바란을 제쳐내고 넣은 그 골은 너무도 아름다운 골이었다.

    세계 최고의 리그, 세계 최고의 팀의 팬이라는 자부심이 어마어마한 레알의 팬들이 보기에도.

    때문에 비록 적이지만, 레알 팬들은 잠자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란이 쓰러졌다는 사실에 조금 충격을 받은 듯.

    “마드리드 팬들도 감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럴 만 하죠. 원 샷 원 킬. 16세의 소년이 해냈으니까요. 양 팀 중 가장 어릴 수 있었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보다도 4살이 더 어립니다.”

    그러나 감탄이나 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레알은 곧바로 다시 리드를 되찾기 위해 움직였다.

    “비니시우스가 나오고 루카 모드리치가 들어 갑니다.”

    “이스코가 좀 더 위 쪽으로 올라 가겠네요.”

    이스코를 중심으로 다시금 공격을 풀어 나가는 레알.

    그냥 무승부도 아니고, 홈에서 압도하던 경기를 실점한 채 무승부로 끝내는 건 너무도 손해.

    5분 뒤엔 카세미루를 빼고 아센시오까지 투입하며 총공세를 펼치는 레알.

    그러나 선수들이 바뀌어도,

    “여기!”

    파아앙-

    마지막 패스는 대부분 음바페에게 향했고, 음바페는 마무리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아센시오가 때릴만한 위치에서 슈팅을 때렸을 때 음바페는 대놓고 불만을 표하기까지.

    누가 더 레알에 오래 있었는 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헷갈릴 정도.

    그러나,

    “모드리치, 찔러 줍니다!”

    “베일!”

    파아앙-!

    후반 31분.

    그래도 음바페는 기어이 증명을 해냈다.

    왜 그렇게 자신에게 공을 요구하는 지.

    모드리치의 수비 사이를 꿰뚫는 킬 패스.

    그리고 침투에 성공한 베일의 컷 백.

    그걸 음바페가,

    뻐어어엉-!

    골문 구석으로 차 넣은 것이었다.

    레알의 두 번째 득점.

    “...”

    코너 플래그로 달려가 팔짱을 끼는 특유의 셀레브레이션을 펼치는 음바페.

    그 표정은, 이게 나다라는 표정이었다.

    ‘꼴같잖네.’

    음바페를 바라보는 마티니는 고개를 저었다.

    마치 지가 다 한 것처럼 뻗대는 꼴이.

    누가 봐도 동료들이 만들어 준 기회구만.

    ‘그래, 계속 그렇게 생각해라.’

    하지만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다행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골을 넣고, 모두가 해결사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른 동료들의 기회를 빼앗고 팀을 억제시키고 있다는 걸 스스로 모르고 있다면, 상대 팀으로써야 나쁠 게 전혀 없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마티니는 겉에 입고 있던 조끼를 벗었다.

    “좋아, 좋아!”

    실점에 낙담하는 선수들에게 괜찮다고 외치는 가투소 감독.

    잘 버틴 건 사실이었다.

    어쩌면 3점, 4점 이상을 내주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던 경기였다.

    “후우.”

    음바페를 꼴같잖게 바라본 건 도훈도 마찬가지.

    이게 팀 스포츠.

    불가항력.

    수비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도훈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

    아무리 도훈이라 해도, 수비까지 내려가 모든 걸 해결해줄 순 없는 일이니.

    “음바페, 오늘 두 골입니다.”

    “이럴 때 해결해주는 게 스트라이커, 해결사죠. 음바페가 자신의 몸값을 증명해 냅니다.”

    박수를 보내는 베르나베우의 관중들.

    그래도 음바페가 해주는 구나, 라며 모두가 15분여밖에 남지 않은 경기의 결과를 승리로 예감하고 있는 듯.

    그러나 베르나베우의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밀란이 정말로 준비해온 건, 지금부터의 15분 동안이라는 것을.

    “레알은 이제 수비적으로 스탠스를 바꾸나요?”

    “아니요, 계속 갈 것 같습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라는 생각 같네요.”

    이미 공격적인 자원들을 교체로 넣으며 밸런스를 공격에 실었던 레알.

    어차피 이제와서 한 점 차를 지키기 위해 수비에 치중하기엔, 지금까지 펼쳐왔던 경기력이 너무나 우세.

    굳이 상대를 위해 잠궈줄 필요가 없어 보이는 듯한데.

    “오히려 밀란이 공격적인 교체를 하네요. 케시에를 빼고 수소를 투입 합니다. 또 보나벤투라를 빼고 조르지오 마티니 선수를 투입 합니다.”

    “이과인은 오늘 컨디션이 별론가요? 이과인 대신 신인 마티니를 투입하는 군요.”

    밀란은 그런 레알의 자존심을 예상하고 있었고, 이런 후반의 상황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 계속 공격적으로 움직여라. 지금처럼.

    준비했던 카드를 투입 시키는 밀란.

    미드필더 대신 들어가는 마티니와 수소.

    수소는 아래 쪽으로 내려갔고, 마티니는 곧바로 상대 센터백, 오드리오솔라 쪽으로 붙었다.

    오드리오솔라는 175센티미터로, 190센티에 가까운 마티니에 비하면 상당히 단신.

    ‘한 점.’

    손을 비비며 터치 라인에 서서 경기를 지켜보는 가투소 감독.

    최악의 경우엔 세 점을 뒤지는 것까지 예상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가정보다 훨씬 좋았고, 한 점이라면 오히려 역전까지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상황이다.

    뒤집는다.

    베르나베우, 적의 심장에서.

    “수소가 많이 내려와서 뜁니다.”

    라리가의 템포에 그나마 익숙한 스페인 국가대표, 수소.

    포백 앞에서 공을 잡고 볼 간수에 도움을 주는 수소의 모습은 바로 바로 걷어내기 급급하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

    하지만 이내 수소는 곧 공을 잡고 휙 돌아 서더니,

    뻐어어엉-!

    전방으로 길게 공을 차냈다.

    결국 걷어내는 것인가?

    하지만 달랐다.

    그건 분명 동료를 보고, 동료를 향한 패스였으니까.

    ‘내 역할.’

    떠오는 공을 바라보며 위치를 잡는 마티니.

    곧바로 오드리오솔라가 편히 공을 잡지 못하도록 몸으로 미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마티니는 밀리지 않았다.

    ‘패스란 건 달라고 해서 주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는 동안, 도훈이 뛰기 시작했다.

    마티니를 믿고.

    '안 주면 손해니까 주는 거지.'

    파아앙-!

    “마티니가 공을 따냅니다!”

    “아아, 이런 전략인가요. 단순하게 갑니다!”

    풀쩍 뛰어 오른 마티니가 이마로 공을 돌려 놓았다.

    이렇게 공을 따내 줄 선수가 있다면, 걷어내기도 롱 패스로 바뀔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세컨 볼을 백도훈이 따냅니다!”

    그 세컨 볼을 잡아줄 수 있는 도훈.

    움직일 일이 많지 않았던 오늘, 덕분에 도훈의 체력은 후반임에도 넉넉.

    파아앙-!

    도훈은 마티니가 건네준 공을 단번에 차놓고 오른쪽 사이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따라오는 바란을 흘끗 곁눈질로 바라보며.

    ‘확실하게 해볼까.’

    마티니가 공을 건네줬기 때문일까.

    문득 확실하게라는 말이 떠오른 도훈.

    이미 한 번 바란을 이겼다.

    하지만, 적어도 삼세번은 붙어봐야 제대로 된 결판을 낼 수 있는 법.

    도훈은 바란에게 설욕의 기회를 주기 위해, 다시 한 번 공을 놓고 바란과 마주했다.

    박스 오른쪽에서 툭툭치고 들어가는 도훈.

    “마티니가 박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훈이 바란과 마주하는 틈에 박스 안에서 자리를 잡는 마티니.

    박스 안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건 마티니였다.

    때문에 바란도 크로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

    도훈은 그걸 이용하기로 했다.

    흘끗-

    바란 어깨 너머, 박스 안쪽으로 시선을 주는 도훈.

    그리고,

    툭-

    왼쪽으로 공을 친 뒤 곧바로 왼발을 크게 당겼다.

    그리고 그 왼발이 휘둘러지는 순간, 바란이 크로스를 차단하기 위해 발을 뻗었다.

    하지만,

    스르륵-

    도훈은 크로스를 올리는 대신, 발바닥으로 공을 오른발 뒤로 굴렸다.

    흔히 크루이프 턴이라 불리우는 그 기술.

    “...!”

    그러나, 바란은 따라왔다.

    애초에 정말 크로스라고 속았다면, 발을 뻗는 동시에 몸을 완전히 돌렸을 것.

    그랬다면 크루이프 턴에 영락없이 제쳐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바란은 발을 뻗으면서도 무게 중심을 잡아두고 있었다.

    시선은 끝까지 공에 두면서.

    때문에 도훈이 공을 뒤로 접는 걸 보고 이를 악물며 다시 몸을 뒤틀었다.

    ‘인정 한다니까.’

    역시, 첫 번째로 마주했을 때 느꼈듯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정하기 때문에 도훈 역시도 바란이 재차 따라올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간단히 제쳐질 상대가 아니었으니.

    덕분에 도훈도 하나를 더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스르륵-

    툭-!

    “...!”

    바란의 눈이 커졌다.

    공이 자신의 다리 사이를 지나치고 있었기 때문.

    크루이프 턴으로 접어놓은 공은, 방향 상으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도훈은 단순히 크루이프 턴으로 끝낸 것이 아니었다.

    공을 접었던 왼발.

    그 왼발로 오른발 뒤로 가던 공을 툭 앞으로 밀었다.

    라보나 킥의 자세.

    그렇게 민 공이 바란의 다리 사이를 지나쳤던 것이고,

    타타탓-!

    도훈은 곧바로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

    또 다시,

    “바란을 제쳐내는 백도훈!”

    바란을 제쳐내고 박스 오른쪽을 뚫고 들어가는 도훈.

    박스 중앙엔 마티니가 있지만, 예전 마티니가 그 곳에 있을 때완 표정부터 달랐다.

    도훈은 쿠르투아의 자세를 살핀 뒤,

    그대로 오른발을 당겼다.

    뻐어어어엉-!

    왼발로 먼 포스트를 향해 크게 감아찰 수도 있었다.

    그러나 키가 크고 공중볼 처리에 능한 쿠르투아에겐, 그것보단 그냥 가까운 쪽을 빠르게 뚫어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에 의한 슈팅.

    슈우우우웅-

    쿠르투아의 얼굴에 대고 때린 슈팅이었다.

    그 슈팅의 속도는, 이미 쿠르투아가 슈팅이 어디로 날아오는 것인 지 확인한 순간엔 이미 자신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고 있었을 정도로 빨랐고,

    철썩-!

    공은 골망 상단을 뚫을 듯 쿠르투아를 꿰뚫고 지나가 버렸다.

    “고오오올-! 백도훈의 두 번째 고오올-! 원 샷 원 킬! 또 다시 레알의 심장을 꿰뚫어 버리는 밀란의 백도훈!”

    도훈이 두 번째 골을 터뜨리는 순간 마티니가 만세를 부르며 도훈에게 달려와 안겼다.

    “삐익, 삐이익, 삐이이이익-!”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순간.

    아쉽다는 표정을 지은 건 레알이 아니라 밀란의 선수들과, 가투소 감독이었다.

    그만큼, 후반 막판 10분은 완전히 밀란이 몰아쳤던 경기.

    그러나, 아쉽게도 더 이상의 골은 터지지 못했다.

    운이 좀 따르지 않았다고 할까.

    “어쨌든 만족스러울 겁니다. 2대2. 밀란 입장에선 적의 홈, 그것도 베르나베우에서 2골을 넣고 무승부를 거뒀다는 건 확실히 성과죠.”

    “백도훈 선수가 챔스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인 것 또한 수확이겠죠?”

    “그렇죠. 분데스리가, 세리에에서의 활약을 챔스 무대에서도 그대로 보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백도훈 선수가 가진 재능이 유럽에서도 최정상급이라는 걸 확인한 경기였으니까요.”

    반면 홈에서 아쉬운 결과를 얻어냈기 때문일까.

    레알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응원을 보내준 홈 팬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그라운드를 빠져 나갔다. 홈팬들 역시도 적당히 박수를 보낸 뒤 경기장을 빠져 나갈 채비를 마쳤고.

    그런데 잠시 뒤, 놀라운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도훈을 비롯한 밀란 선수들이 어렵게 응원을 보내줬던 원정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관중석으로 다가간 순간.

    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

    큰 박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

    “네가 제일 잘 하더라!”

    “어이! 우리 팀으로 올 생각 없나?”

    도훈에게 향하는 박수였다.

    적이지만, 인정.

    두 번의 슈팅으로 두 번 모두 레알의 골망을 꿰뚫은 이 어린 소년에게 레알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대단한데요. 적이지만, 이 소년의 재능은 그들을 감탄시키기에도 충분했던 모양입니다. 과거 마라도나, 호나우지뉴, 메시, 델 피에로 등이 이 베르나베우에서 적임에도 기립 박수를 받았었죠. 오늘은 이 백도훈이 그 박수를 받고 있습니다.”

    “저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어린 소년의 멋지고 당찬 활약이었습니다.”

    도훈은 그 박수를 받으며, 솔직히 조금 소름이 돋았다.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봐달라는 건 아니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2차전때 봐줄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도훈도 베르나베우의 관중들이 보내주는 박수에 인사로 답했다.

    “이거, 기사로 내라고 해.”

    “예? 어떤 걸요?”

    “레알 팬들이 백도훈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고. 그리고 나도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고 기사를 내라고.”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런 도훈을 내려다 보며 탐욕스러운 미소를 짓는 페레즈 회장이었다.

    < 베르나베우의 나비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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