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49화 (49/173)

< 웰컴 투 세리에 (2) >

경기 전.

소리아노는 쿨리발리에게 도훈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었다.

평소 소리아노는 신인 답지 않게 자신감이 넘치는 녀석으로, 호날두가 있는 유벤투스와 상대했을 때도 자신있다던 녀석이었는데 그런 녀석이 이런 말을 하다니 쿨리발리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예. 장난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요. 조심해야 돼요, 걔.”

"알겠다, 알겠어."

소리아노의 말에 웃고 마는 쿨리발리.

유령이니 환영이니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확실히 소리아노가 어린 녀석이긴 했다.

자신도 처음 유럽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폴리에서만 7년차쯤 되니, 그런 건 있을 수 없었다.

처음보는 드리블이라니.

“너 메시 상대해본 적 없지?”

“저요? 없죠.”

“수비는 경험이야. 오늘 보여주지.”

지난 해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에서 나폴리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바가 있었다. 쿨리발리의 활약에 힘입어.

그리고 그 때가 쿨리발리에겐 마지막이었다.

경험 해보지 못한 드리블을 구사하는 상대를 만난 건.

“삐이이이익-!”

밀란과 나폴리의 경기가 시작 되었다.

오늘도 이과인과 짝을 이룬 쳐진 스트라이커로 출전한 도훈.

사실 많은 이들이 도훈과 쿨리발리의 대결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막상 포메이션상으론 이과인이 쿨리발리와 부딪히게 될 자리.

도훈은 비교적 아래 지역에서 뛰며 볼 터치를 가져가는 모습.

“백도훈, 전방을 살핍니다.”

“나폴리의 수비는 정렬이 잘 되어 있죠.”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은 뒤 전방을 살피는 도훈.

줄 곳이 없었다.

과연 단단함의 나폴리인가.

워낙에 나폴리 수비수들이 대인 마킹을 잘 붙고 있어서, 침투할 기회조차 내주고 않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다들 서서 도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일단은 균열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어 보였다.

툭-

왼쪽 사이드.

도훈이 공을 발 아래 두고 가만히 서있자 다가오는 지엘린스키.

균열을 내는 건 간단했다.

스윽-

파팡-!

“백도훈, 시작하나요!”

공은 가만히 두고, 몸만 오른쪽으로 갈 듯 움직였다 왼쪽으로 치고 달리는 도훈.

아무리 잘 정돈된 수비라 해도, 한 명이 제쳐지는 순간 균열은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드리블러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고.

“다시 돌파 하나요!”

지엘린스키를 제쳐낸 도훈이 박스를 향해 대각선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중앙을 단번에 뚫고 들어가겠다는 듯.

'너, 오랜만이다?'

‘젠장.’

박스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잔뜩 긴장한 소리아노.

동시에 풀백 히사이가 돌파를 막으려는 듯 달려드는 상황.

그러나, 도훈은 돌파하는 대신 중앙쪽으로 공을 접고 들어가며 모두의 시선을 이끈 뒤,

파아앙-!

“좋은 패스입니다!”

“노 룩 패스!”

박스 안으로 패스를 찔러 넣었다.

도훈은 반대편 사이드를 보고 있었다.

그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소에게 공간이 조금 열려 있었고, 그 쪽으로 패스하는 게 쉬운 길로 보였다.

하지만 직각으로 꺾어 넣은 노 룩 패스는 그 순간 침투해 들어가던 이과인을 향한 것이었고, 모두를 속인 패스는 수비수 사이를 찔러 들어가며 완벽한 찬스를 만드는 듯 했다.

그러나,

촤아아아-

파아앙-!

“쿨리발리!”

이과인보다 한 발 앞선 것은 쿨리발리였다.

예측하고 있던 것일까.

몸을 날려 긴 다리로 패스를 끊어내는 쿨리발리.

모두가 속았을 때, 홀로 도훈의 의중을 꿰뚫어 낸 건 쿨리발리 뿐이었다.

“과연 쿨리발리입니다.”

“저걸 끊어내는 군요.”

뻐어어엉-!

패스를 끊어낸 쿨리발리는 곧바로 전방을 향해 롱 패스를 뿌렸고, 나폴리의 역습이 시작 되었다.

‘흐음.’

전방을 다시 한 번 살피며 고개를 끄덕이는 도훈.

뭐, 이 정도로 충분할 것 같은데.

탐색전은.

“곤살로!”

“지금?”

“예.”

“알겠어.”

이과인과 눈짓을 주고 받는 도훈.

그리고, 도훈과 이과인이 서로 위치를 바꾸기 시작했다.

“메르텐스, 인시녜에게! 인시녜, 슈우웃-! 벗어 납니다!”

쿨리발리가 끊어낸 밀란의 첫 공격시도 이후로, 나폴리는 좀처럼 밀란에게 공격권 자체를 넘겨주지 않았다.

아직 이유를 알 순 없으나, 도훈이 이과인의 자리로 올라가면서 중원 개입이 적어졌고, 마렉 함식을 중심으로한 나폴리의 중원이 경기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것.

그러나 밀란은 흐름이 상대에게 넘어갔어도 차분히 수비를 지키며 기회를 기다렸다.

견적내기를 끝낸 도훈에게 기회가 한 번만 가길 기다리며.

‘자신감이냐?’

쿨리발리는 이과인과 자리를 바꾼 도훈의 등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기가 직접 상대하겠다, 뭐 이런 것 같은데.

하지만 이건 전술적으로 틀린 선택이라고 쿨리발리는 생각했다.

5짜리 패가 있으면 4를 잡을 때 쓰고, 4짜리 패는 3을 잡을 때 써야 한다.

백도훈은 나름 5짜리 패라고 인정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6 이었다.

상대에게 생각이란 게 있다면, 4짜리인 이과인을 자신에게 붙이고 5짜리인 백도훈이 다른 쪽을 공략하는 게 맞거늘.

이렇게 된다면 5짜리도 4짜리도 모두 쓸모 없게 되버린다. 모두 지는 싸움이 되버리니까.

모두가 지는 최악의 선택을 밀란 스스로 하고 만 것.

파아앙-!

“케시에, 끊어 냅니다! 수소에게!”

“수소, 백도훈에게!”

촤아아-

툭-

그러나 그건 물론 쿨리발리만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붙어보면, 누가 5인지 6인지는 판가름이 날 것.

간만에 다시 도훈에게 공이 왔다.

박스에서 3미터쯤 떨어진 지점.

등 뒤로 달려드는 쿨리발리의 압박을 피해 뛰어 나오며 공을 잡은 도훈은, 곧바로 돌아섰다.

공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둘.

‘보여줘봐. 그 유령인지 환영인지.’

자신만만한 쿨리발리.

그러나 태도와 달리 자세는 낮았고, 빈 틈은 없었다.

호날두도, 메시도 상대해봤다. 음바페나 네이마르야 그 아랫급이니 거론할 필요도 없고.

그들도 맛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이 꼬맹이가?

어림 없었다.

파아앙-

“치고 들어갑니다!”

쿨리발리의 정면을 향해 달려드는 도훈.

쿨리발리를 마주하며 생각난 건 니클라스 쥘레를 상대할 때였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거대한 체구.

그러나 아까 봤듯 쿨리발리는 스피드와 순발력면에서, 쥘레를 약간이나마 상회하는 수준.

확실히 소리아노나 좌우를 공략하는 것보다, 이 쿨리발리를 공략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도훈이 이과인과 자리를 바꾼 이유는 있었다.

한 번의 탐색으로 알아낸 정보.

나폴리의 쿨리발리에 대한 신뢰.

쿨리발리가 한 선수를 담당하고 있으면, 다른 선수들과 달리 협력 수비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쿨리발리가 도훈을 상대한다면 그것은 온전히 1대1이 될 수 있었다.

문득 도훈은 궁금해졌다.

지금의 이 쿨리발리가, 과연 명성이 아니라 순수 기량 자체만을 놓고 비교했을 때 과거의 말디니나 스탐, 바레시보다 떨어질까?

확실히 과거보다 눈에 띄게 진보한 현대 축구의 수준인데.

‘보자고.’

쿨리발리와 한 보폭까지 달려든 도훈이 다리를 빠르게 휘젓기 시작했다.

그 순간.

“...!?”

유럽축구 10년차의 쿨리발리는 느끼고 말았다.

자신은 아직도 베테랑이라고 하기엔 멀었다는 걸.

처음이었다.

다리가 8개처럼 보이는 드리블은.

어린 애의 과장이라고 생각했던 그 말이, 사실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빠릅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쿨리발리.

도훈은 쿨리발리의 밸런스를 주시하다가, 상체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그렇군.’

그리고 쿨리발리가 오른쪽으로 따라 들어올 때, 허공을 휘젓던 다리를 멈추고 공을 오른쪽으로 툭 차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뚫어 냅니다!”

“쿨리발리를!”

그 순간 도훈은 알 수 있었다.

현대 축구는 진보했지만, 세리에는 오히려 퇴보했다는 것을.

만약 지금 세리에의 최고라는 쿨리발리가 네스타, 말디니, 스탐 등이 군림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 사이에서도 최고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누구나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그 질문에, 도훈만은 단언할 수 있었다.

직접 그들을 상대해 봤으니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백도훈! 슈우우웃-!”

뻐어어엉-!

쿨리발리를 제쳐내고 박스 안으로 진입한 도훈이 지체없이 오른발을 당겼다.

파 포스트를 보고 때린 공.

슈팅은 정강이 높이로 묵직하게 날아가,

슈우우웅-

철썩-!

반대편 그물망을 찢을 듯 꿰뚫었다.

“고오오오올-! 백도훈이 해보입니다! 쿨리발리를 완전히 제압하고 득점에 성공하는 백도훈!”

“이 정도인가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공이 골대안에 쳐박힌 것을 바라보는 쿨리발리.

어이가 없었다.

방금의 그건..?

“...”

자기가 뭐랬냐는 듯 쿨리발리를 바라보는 소리아노.

그런 소리아노의 눈을 마주하며, 쿨리발리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대단합니다. 보세요. 쿨리발리를 앞에 두고, 공간을 향해 드리블을 하는 게 아니라 정면으로 달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뭐죠? 마치 호날두의 화려한 드리블 같지만, 훨씬 빠른 발놀림. 쿨리발리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쿨리발리가요!”

“인터뷰를 통해 자신감을 표했던 쿨리발리인데요. 백도훈이 지금까지 약한 상대만 상대했을 뿐이라고, 자신을 상대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고 했었죠. 하지만, 보여줬습니다. 지금까지 백도훈의 활약은 약한 상대만을 상대했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도훈의 골로 앞서가는 밀란.

“잘했어!”

“역시! 믿고 있었다!”

그 골로 밀란의 기세와 자신감은 확 불타 올랐다.

다른 것도 아니고, 상대 수비의 핵인 쿨리발리를 혼자서 뚫어내고 만들어낸 골이었으니.

‘반은 틀렸고, 반은 맞았네.’

도훈도 알고 있었다.

쿨리발리가 인터뷰로 자신이 아직 약한 상대만 상대했다고 말했던 것을.

반은 맞는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약한 상대만 상대했던 게 맞았으니까.

그러나 반은 틀렸다는 건, 좀 더 말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약한 상대만 상대한 것이 아니라, 도훈보다 약한 상대만 상대했다는 걸.

도훈보다 강한 상대는 없었으니까.

그건 쿨리발리도 당연히 포함되는 이야기였다.

쿨리발리가 도훈에게 패배하는 건, 안첼로티 감독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때문에 수비의 핵이 상대 공격의 핵에게 완전히 잡아 먹히자, 경기는 갈 수록 어려워져 가기 시작했다.

쿨리발리는 수비에서만 강점이 있는 게 아니라, 첼시의 다비드 루이즈처럼 공격도 높게 올라가는 유형의 수비수였다. 그러나 수비가 먼저 불안한데 공격을 올라갈 수는 없는 일.

역으로 도훈에게 묶여버린 쿨리발리 때문에, 공격 옵션 중 꽤나 쏠쏠했던 옵션 하나를 못 쓰게 된 나폴리는 답답해지게 되었고, 도훈은 자유롭게 자신의 영향력을 필드 곳곳에 미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인시녜가 어떻게 개인 능력으로 전반 23분 동점골을 터뜨리긴 했으나, 곧바로 29분 다시 쿨리발리를 이겨내고 도훈이 내준 패스를 이과인이 마무리하며 밀란은 리드를 되찾았다.

그리고 이어진 후반전.

약 팀만 상대했으니 두세 골씩 몰아넣는게 가능했다던 쿨리발리 앞에서,

“주고 들어갑니다!”

“허물어 지네요!”

도훈은 수소와 멋진 호흡으로 2대1 패스를 주고 받으며 수비진을 붕괴 시킨 뒤,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도훈은 또 다시 자신의 두 번째 골을 터뜨려 보이고야 말았다.

그렇게,

“삐익, 삐이익, 삐이이익-!”

경기는 3대1.

밀란의 승리로 끝이 났다.

리그 2위 나폴리마저 도훈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밀란의 기세가 정말로 무섭습니다! 후반기 5연승! 백도훈이 팀에 합류한 이후로 한 번도 지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2위인 나폴리라고 해도 말이죠!”

웰컴 투 세리에.

밀란의 팬들은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한참이나 도훈의 이름을 소리 높여 연호했다.

“쿨리발리의 인터뷰, 알고 계셨나요?”

경기 후 이어진 기자회견.

가투소 감독과 함께 경기 MOM 으로 선정된 도훈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었다.

한 기자의 질문에 미소를 짓는 도훈.

“뭐, 약 팀만 상대한거다, 자신들을 만나기 전까진 세리에를 뛴 게 아니다, 약 팀과의 경기에서 두세 골 몰아 넣은 걸 활약이라고 할 순 없다, 이런 거요?”

잘 모르겠다는 말투로 정확히 쿨리발리의 대사를 읊는 도훈의 질문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회견장.

“그런 쿨리발리를 오늘 아주 곤욕스럽게 만드셨는데, 한 마디 하신다면?”

“뭐.. 그건 기자님들께서 그 선수에게 다시 물어봐주시면 좋겠네요. 아직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는 지 말이에요. 재밌지 않나요? 아직도 맞다고 생각한다면, 전 오늘도 두 골과 한 개의 도움을 했으니 스스로 나폴리가 약 팀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는 거니까요. 꼭 다시 물어봐주세요. 하하.”

다시 한 번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회견장.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도훈을 아빠 미소로 바라보는 가투소 감독이나, 기자들 역시 웃음으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다시 가투소 감독님께 마지막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이 다음 주로 다가 왔습니다. 상대가 만만치 않은데요. 어떤 각오로 경기를 준비하실 생각이신지?”

기자의 질문에 입맛을 다시며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대는 가투소 감독.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최근 몇 차례나 우승컵을 들어올린 팀이니까요. 하지만, 현재 저희 팀의 기세는 무척이나 좋습니다. 선수들의 분위기가 좋고, 컨디션도 좋아요. 특히 이 친구, 백도훈이 있으니 상대도 우릴 쉽게 생각하진 못할 겁니다. 1차전이 원정인만큼, 절대 지지 않는 축구를 할 계획입니다.”

2월, 다시 시작되는 별들의 전쟁, 챔피언스 리그.

라리가의 맹주, 레알 마드리드와의 16강 1차전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 웰컴 투 세리에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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