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48화 (48/173)

< 웰컴 투 세리에 (1) >

“야, 나가자.”

“드럽게 못하네. 퉷!”

도훈의 두 번째 골이 터지는 순간.

밀란 팬들이 환호하는 사이 인테르 팬들 쪽 스탠드는 하나둘씩 비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람들이 줄지어 경기장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경기는 가망이 없었고, 더 보고 있어봐야 밀란 팬들이 부르는 조롱의 노래를 듣고 있어야만 했으니.

"좆됐네, 진짜."

"10년감이다, 이건.."

밀라노 데르비에서 이런 처참한 결과라니.

10년치, 아니 대대로 조롱감이었다.

“백도훈 선수를 빼주는 군요?”

“굳이 더 뛰게 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겠죠.”

경기가 완전히 기울어진 후반 16분.

도훈은 찰하노글루와 교체되었다.

선수 보호 차원.

도훈을 굳이 그 전쟁터에 위험하게 놔둘 필요는 없었다.

인테르 선수들이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도훈만 보면 개처럼 달려들고 있었으니.

그렇게 도훈이 그라운드를 빠져 나올 때,

짝짝짝짝-

짝짝짝짝-

“기립 박수가 나오네요.”

“데뷔전에서 기립 박수를 받는 선수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밀란 팬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말이 밀란 팬들이지, 그게 거의 5만여 명.

5만여 명이 한 번에 일어나 박수를 보내오고 있는 것이었다.

도훈도 그 박수에 다시 박수로 답하며 그라운드를 빠져 나왔다.

산 시로는 멋진 곳이었다.

“사랑한다!”

“밀란에 온 걸 환영한다!”

신성한 경기장에서 담배를 문 채 소리를 지르는 팬들을 보니 그리 오래 있을 곳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지만.

어쨌든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고,

“삐익, 삐이익, 삐이이익-!”

도훈과 교체로 들어간 찰하노글루의 마지막 골까지 더해져 마침내 5대0으로 밀라노 데르비가 끝났을 때.

밀란 팬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에 다시 한 번 도훈은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뭐랄까.

여긴 정말 거친 남자들의 경기장이었다.

리그마다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도 재밌는 일이었다.

“고생했어. 첫 경기부터 못 볼 꼴을 보여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멋지셨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내려온 가투소 감독.

비록 퇴장을 당했지만, 오늘 도훈 덕분에 라이벌에게 압승을 거둔 가투소 감독은 술 대신 승리에 거나하게 취한 듯,

“멋진 산 시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군! 한 바퀴 돌고 와라!”

선수들의 등을 떠밀었다.

든든한 형들과 함께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응원에 인사로 보답하는 도훈.

그러나 팬들에게 보답은, 이미 밀라노 데르비를 5대0으로 마친 것으로 충분했다.

도훈의 산 시로 데뷔는 여기저기서 타오르고 있는 홍염만큼이나 뜨거웠다.

ㆍㆍㆍ

-“역대 레전드들을 보았다” 백도훈, 밀란 더비에서 2골 1도움 맹활약.. 현지팬들 찬사

ㄴ밀란팬들 미쳐 날뛰는 거 봤냐... 인종차별이고 뭐고 잘하면 걍 미친듯이 좋아해주네

ㄴ교체로 나올 때 안심한 건 처음임.. 인터밀란 애들 죽이려고 달려들더라. 근데 애들이 몸으로 막아주는 거 보고 내가 울컥함 ㅋㅋ

-가투소 감독, “내가 본 재능 중 최고.. 그 중에 호나우지뉴도 포함” 백도훈 활약에 극찬

ㄴ더 찬스에서 보고 바로 빼갔다며.. 그 땐 아마추어일 때인데 가투소 감독 보는 눈 있네.. 근데 지뉴보다 뛰어난 재능이라고 말할 정도면 어느 정도인거지..

ㄴ밀란이 운 좋은거지. 지금 데려가려고 했으면 절대 못 데려왔을 듯. 더 찬스 참가한 게 밀란한테 이렇게 돌아오네.

-“한 시즌 두 개 리그 득점왕 도전하겠다” 포부 밝힌 백도훈. 누구도 비웃지 못한다

ㄴ패기보소 ㅋㅋㅋㅋ 근데 ㄹㅇ 가능할 수도 있는 거 아님? 전반기에서만 28골 넣어서 분데스 득점왕 가능성 높고, 어제 하는 거 보니까 세리에에선 더 넣을 수도 있겠던데?

ㄴ가능하다면 전무후무한 기록이네.. 꼭 역사에 이름 올려라. 응원한다. 요즘 백도훈 덕분에 새벽잠 설쳐도 즐겁다.

도훈의 산 시로 데뷔전.

세계의 평가는 역시나 극찬, 그 자체.

밀란의 레전드들도 밀란의 부활을 위해 놓쳐선 안되는 재능이 나타났다며 도훈을 칭찬하기 바빴다.

과연, 세리에를 정복하겠다던 포부에 걸맞았던 데뷔전.

그 단 한경기만으로, 사람들은 백도훈이라는 소년이 올 시즌 어떤 파란을 불러 일으킬 지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2021년 1월 24일 기준-

세리에 A 득점 순위

1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16골

2위 마우로 이카르디 15골

3위 패트릭 쉬크 14골

4위 치로 임모빌레 10골

5위 로렌조 인시녜 10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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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한 선수긴 해.’

만 36세의 나이로 당당히 득점랭킹 1위에 서 있는 호날두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였다.

이제 세리에 3년차인 호날두는 첫 시즌에 득점왕을 차지했고, 두 번째 시즌은 아쉽게 놓쳤으나 올 시즌 두 번째 득점왕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

또래의 선수들은 이미 은퇴를 했거나 변방 리그에 가 있는 시점에서, 호날두의 녹슬지 않는 실력과 자기관리는 정말 도훈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최고령 득점왕에 도전할 것이다. 나밖에 할 수 없는 기록일 것이다.”

현재 세리에 최고령 득점왕 기록은 루카 토니의 만 38세.

호날두에겐 아직 2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러야 가능한 기록이었지만, 그가 호날두이기에 누구도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호날두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지.

도훈은 많은 선수들이 그렇듯 호날두를 좋아하고 존경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를 눌러주어야 했다.

데뷔전에서 2골을 적립한 도훈.

이번 시즌 후반기, 1경기를 치루고 17경기를 남겨둔 도훈의 목표는 세리에 득점왕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28골이라는 기록을 남겨둔 분데스리가에서의 기록이 추격 당하지 않는다면, 한 시즌 동시에 두 개 리그 득점왕이라는 기록에 도전하는 것.

이건 호날두도, 메시도 못한 기록.

실력이 아니라 한 시즌에 두 개의 팀에서 뛰는 상황까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니 이건 정말 지금의 도훈만이 도전할 수 있는 기록이었다.

기록.

100년을 수련했다.

도훈의 목표는 세계 최고, 그리고 역대 최고가 되는 것.

도훈은 역대 모든 기록의 최정점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생각이었다.

“이건 내가 봐도 헛웃음이 나오는 군.”

앞으로 깨지지 힘들 것이라는, 불멸의 기록들은 도훈이 봐도 대단한 것들이었다.

호나우두의 21년 3개월, 최연소 발롱도르 수상.

호날두의 5시즌 연속 50골 이상 기록, 챔스 11경기 연속 득점, 챔스 최다골 등.

리오넬 메시의 한 시즌 73골, 한 해 91골, 그리고 21경기 연속 골, 4연속 발롱도르 수상 등.

“메시가 끝판왕인 줄 알았드만, 역시 이 양반인가.”

그리고 펠레의 비공식 골 기록, 1281골.

통산 헤트트릭 92회까지.

정말 인간의 기록인가 싶은 끝판왕급 기록들이 즐비했다.

이외에도 미셸 플라티니의 유로84 전 경기 결승골이라든지, 쥐스트 퐁텐의 월드컵 한 대회 13골, 지코의 통산 프리킥 101골 등 재밌는 기록들까지.

도훈은 이 모든 기록에 도전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가능, 불가능의 이야기를 넘어, 그것에 도전한다는 자체가 의미있는 것.

물론 도훈은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 첫 계단은 호날두를 넘어 이번 시즌 득점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부터.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지금은 호날두가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있겠지만, 의식하게 되는 건 조만간일 것이었다.

레코드 브레이크.

레이스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ㆍㆍㆍ

득점왕의 기본 소양은 다른 것도 많겠지만, 몰아 넣을 수 있을 때 몰아 넣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첫 번째일 수도 있었다.

몇 경기를 침묵하다가도, 한 경기에서 3,4골씩 터뜨리며 어느 새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게 득점왕들의 저력.

하물며 스타트가 늦은 도훈에겐 더욱 필요한 게 몰아 넣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인테르와의 경기 이후 이어지는 홈 3연전은 좋은 기회.

볼로냐, 우디네세, 헬라스 베로나 이 세 팀을 상대하게 된 일정은 매우 좋았다. 세 팀 모두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팀들이었으니.

밀란이 리그 4위로 올라서기 위해서도, 도훈이 득점랭킹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도 중요한 3연전.

그 첫 번째, 볼로냐 FC와의 경기.

“비아크-!”

도훈을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는 지난 경기보다 높아져 있었다.

도훈이 밀란의 부활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까.

더비였던 인테르와의 경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오늘 경기마저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아와 있었다.

새로운 스타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도훈은 차근히 부응해나가기 시작.

“고오오오올-!”

전반 12분 수소와의 2대1 패스로 상대 수비를 허물고 들어간 뒤 완벽한 오른발 마무리로 첫 골을 넣더니,

“또 고오오오올-!”

전반 27분엔 코너킥 상황에서 상대가 걷어낸 공을, 중앙에서 기다리고 있다 멋진 중거리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고,

“또또 고오오오올-! 뜨리쁠레따- 백도후우우운느-!”

후반 9분 이과인이 떨궈준 공을 몰고 들어가 골키퍼까지 제쳐내고 세 번째 골까지 터뜨려내는 도훈이었다.

헤트트릭.

볼로냐에게 3골을 몰아 넣으며, 3연전을 산뜻하게 시작하는 도훈이었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도훈에겐 아닌 듯 했다.

이어진 3연전 두 번째 경기, 우디네세 전에서 또 다시 헤트트릭, 3골을 몰아 쳤고.

“무서운 페이스입니다! 단번에 득점 랭킹 1페이지에 이름을 올리는 백도훈!”

세 번째 경기 헬라스 베로나와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으며 3연전을 마무리 했으니까.

3경기에서 총 8골.

3개의 도움을 곁들인 건 덤.

그렇게 1월부터 2월초까지.

한 달만에 10골 고지에 올라서는 도훈이었다.

올 시즌으로 합한다면 벌써 21경기에서 38골 14도움이라는 괴물같은 스탯을 쌓게 되는 도훈.

“175.2. 라이프치히에서 몇이었지?”

“174.4였나 그랬을텐데요. 5개월 동안 거의 1센티 컸네?”

다행히 무럭무럭 커가는 키와 함께 맞이하게 된 2월.

지금껏 비교적 쉬웠던 상대들과 달리, 2월부터는 도훈도 나름 긴장을 해야 할 지도 몰랐다.

현재 리그 2위이자, 유벤투스를 가장 바짝 뒤쫓고 있는 SSC 나폴리가 2월의 첫 상대였으니까.

나폴리는 리그에서 가장 실점이 적은 팀이었다.

"나폴리, 역시 단단합니다!"

"쿨리발리, 그가 세리에 최고의 수비 중 하나라는 건 누구도 이견이 없겠죠."

그 중심엔 요즘 세리에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수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칼리두 쿨리발리가 있었고.

유벤투스의 키엘리니나 보누치보다 수비 능력에 있어선 오히려 더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게 바로 나폴리의 쿨리발리.

당연히 사람들은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리그에서 가장 고평가를 받고 있는 수비수와, 혜성처럼 나타난 생태계 파괴자 공격수.

그 둘의 대결에 기대가 모아지면서, 나폴리가 사수올로를 제압한 뒤의 인터뷰에서 기자들은 쿨리발리에게 백도훈의 존재에 대하여 묻는 질문들을 쏟아냈다.

역시나 쿨리발리는 자신감이 넘쳤다.

“10골? 꽤 많이 넣었네요. 하지만, 그는 아직 세리에에 온 뒤로 제대로 된 팀을 상대한 적이 없습니다. 베로나나 볼로냐같은 팀은 말할 것도 없고, 인테르 같은 경우에도 수비가 강한 팀은 아니죠.”

“약 팀만 상대한 것이다? 10골은 의미가 없다?”

“뭐... 우리 팀은 아직까지 한 경기에서 3골 이상을 실점한 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와 경기할 땐 그런 모습을 보여주긴 힘들 겁니다. 약 팀과의 경기에서 두세 골씩 몰아넣는 건, 그 선수를 평가하는데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쿨리발리는 웃었다.

“질문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는데요.”

“어떤 부분이?”

“그 소년에게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쿨리발리를 뚫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고 말이죠. 저는 당연히.. 그 누구라도 막아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최고라고 자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죠.”

쿨리발리가 그렇게까지 말한다고 해도, 그 자리에 있던 많은 기자들은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지금의 쿨리발리였으니까.

“우리 팀과 맞붙기 전까진 아직 세리에를 뛰었다고 말할 순 없을 겁니다. 다음 주 경기에서 말해주겠습니다. 진정으로 세리에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아직 백도훈은 세리에에서 뛴 것이 아니라고 쿨리발리는 선을 그었다.

자신을 만나지 않았기에.

그러나,

그런 쿨리발리의 자신감이 경기가 끝난 후에도 유지될 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었다.

ㆍㆍㆍ

“산 파올로입니다. 바로 선발 라인업부터 살펴 드리겠습니다. SSC 나폴리의 선발 명단입니다.”

[SSC 나폴리 (4-3-3) 감독 : 카를로 안첼로티]

GK 알렉스 메렛

CB 칼리두 쿨리발리

CB 마르코 소리아노

LB 실바 두아르테

RB 엘세이드 히사이

MF 피오트르 지엘린스키

MF 앨런 루레이로

MF 마렉 함식

FW 로렌조 인시녜

FW 드리스 메르텐스

FW 호세 카예혼

“올 시즌 나폴리, 요 몇 시즌간 유벤투스를 가장 강력하게 위협했던 적이었습니다만, 그 위협은 올 해가 가장 강합니다. 안첼로티 감독이 올 시즌 일을 낼 것 같다는 예측을 하는 전문가들도 많은데요.”

“정말 안정된 경기력입니다. 확실히 칼리두 쿨리발리가 철옹성같은 단단함을 주고 있는 게 크죠. 올 시즌부터 쿨리발리와 짝을 맞추게 된 소리아노 역시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고요.”

오늘 경기엔 도훈에게 있어 지금까지의 경기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단순히 지금까지보다 한층 높은 수준의 수비를 보여주는 팀을 상대로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도훈을 한 번 상대해 본 ‘정보’가 있는 선수가 상대팀에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마르코 소리아노.

도쿄 올림픽때 도훈과 맞대결을 펼쳤었던 아르헨티나의 그 센터백이 나폴리에서 뛰고 있었고, 오늘 선발 출장을 했다.

“솔직히, 처음 상대해보면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어요. 정말 처음 보는 드리블을 구사 하거든요.”

“처음 보는 드리블? 그게 뭔데?”

"제 동료말로는 다리가 유령처럼 움직인다고도 하고, 환영이 보이기도 한다고.. 저도 당했고요."

"뭐? 유령? 환영? 푸하하핫!"

소리아노의 말에 쿨리발리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 웰컴 투 세리에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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