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46화 (46/173)
  • < 누구의 재림인가? (1) ------무료 마지막 >

    잠깐의 휴식.

    잠시 일본에 돌아갔다 학기를 마치고 돌아온 임찬주와 함께 도훈은 밀라노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자네 굉장히 똑똑하구만. 시간 있으면 우리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해볼 생각 없나? 마침 아시아 지부로 회사를 확장하려는 참인데 말야.”

    도훈이 멘데스와 계약을 하면서, 임찬주는 진지하게 일해 볼 생각 없냐는 멘데스의 말에 다른 모든 걸 제쳐두고 밀라노로 넘어와 일을 배우는 중.

    “이거 씻어서 껍질 까놓으면 되는 거에요?”

    “응, 그렇긴 한데. 내가 해야될 일인데.”

    “저도 빌어먹는 입장이라, 뭐라도 해야죠.”

    “참 둘 다 심성이 바른 청년들이네. 호호.”

    가사일을 도와주시는 한국인 아주머니를 도우는 임찬주.

    두 꿈많은 청년들은 밀라노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구단 관계자의 말처럼 당장 아버지와 동생을 데리고 오고 싶었던 도훈이었지만, 가족들도 각자의 생활이 있는 법.

    당장 동생은 꿈을 위해 특성화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며 이제 중2가 되는 어린 나이에도 혼자 잘 공부하고 있는 듯 했고, 아버지도 알아서 잘 하고 있는 도훈보단 그런 딸이 더 신경이 쓰이시는 듯 했다. 그나마 올림픽때 포상금으로 받았던 2천만원을 그대로 드렸으니 아버지도 일은 좀 더 쉬엄쉬엄 하셔도 될 것이었다.

    도훈이 당장 신경써야 할 건 자신뿐이었다.

    “오랜만이네.”

    “여기서 만나는구나.”

    밀란의 1군 훈련에서 만난 조르지오 마티니.

    그래도 안면이 있다고, 그다지 첫 인상이 좋지 않았던 녀석이었지만 도훈은 마티니와 가장 빨리 친해지게 되었다.

    “너, 좀 바뀌었다?”

    “뭐가?”

    “유스팀에서 보던 걔가 아닌데. 어깨가 좁아졌어.”

    마티니는 뭔가 좀 바뀌어 있었다.

    유스에 있을 땐 완전히 자기 세상처럼 행동하던 녀석이, 1군에서 형들 틈에서 후보로 뛰다보니 예전의 모습은 없고 어딘가 풀이 죽어 있는 듯한 느낌.

    여전히 구단은 마티니를 구단의 미래라고 생각하며 출전 시간을 밀어주고 있다지만, 마티니 본인은 고민이 많은 듯.

    “뭐가 문제인데?”

    “글쎄다. 다들 잘하더라고. 솔직히 말하면, 난 나보다 잘 하는 선수가 팀에 있는 경험을 네가 팀에 왔을 때 처음으로 느꼈어. 그리고 여기 1군 오고나선 매일 느끼고 있고.”

    마티니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날 땐, 마티니가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할 때였다.

    누가 와도 이길 수 있다는 듯 박스 안에 떡하니 자리 잡아, 패스가 오면 어떻게든 슈팅으로 마무리짓는 믿음직한 스트라이커.

    그러나 1군에 온 뒤로, 경기에서 마티니는 그런 플레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전반기를 마쳤다. 선배인 곤살로 이과인과 함께 훈련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경기에서 부족한 플레이가 쌓여 나가자 마티니는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사실 예전과 똑같았다면 도훈도 마티니와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텐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짠한 게 사실.

    “부럽다, 넌. 잘하더라.”

    “진짜 안 어울리게 왜 그래.”

    중학교때 잘 나가다 다른 지역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찐따가 된 학교짱을 보는 느낌이랄까.

    “도훈. 조끼 입어라.”

    “아, 예.”

    3일 앞으로 다가온 밀란 더비.

    그 경기에 나설 선발 11명이 조끼를 입고, 나머지 선수들이 상대를 하는 연습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

    마티니와 달리 도훈은 조끼를 입으며 훈련을 준비했다.

    “어이, 보던데로 대단하던데.”

    “감사합니다.”

    “잘해보자고. 팀 좀 살려줘.”

    그리고 훈련이 끝난 뒤.

    같은 팀으로 뛴 곤살로 이과인이 도훈에게 손을 내밀며 포옹했다.

    수소나 비글리아,

    “같이 뛰게 될 줄 알았다고.”

    더 찬스때 만난 칼라브리아와도 악수를 나누며 훈련을 마치는 도훈.

    호흡을 맞춰본 소감은, 괜찮았다.

    실전은 아니었지만, 수비진의 느낌도 좋았고 공격진들간의 호흡은 라이프치히에서보다 더 유기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단순한 공격 패턴 위주였던 라이프치히에서와 달리, 이 곳에서는 조금 더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할 듯 보였다.

    베테랑 이과인은 역시 클래스 있다는 느낌이었고, 수소 역시 도훈을 많이 도와주고, 또 도와줄 수 있겠다는 느낌.

    “죽어도 못 지는 거, 다들 알고 있지?”

    “물론이죠.”“예.”

    훈련이 끝난 뒤.

    선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다음 경기, 인테르와의 경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가투소 감독.

    지금도 엄청난 열기를 띠는 양 팀간의 경기지만, 가투소 감독이 밀란의 선수로 뛰던 시절의 밀라노 데르비는 지금보다 몇 배의 열기를 띤, 전쟁과도 같은 더비였다.

    그 시절을 직접 겪었던 가투소 감독은 감독이 된 이후로도 인테르에겐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했다.

    그러나, 최근 6경기에서 밀란은 1승 2무 3패로 열세.

    불과 한달 전 치뤘던 전반기 더비에서도 1대3으로 패배했던 밀란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는 걸 보여주라고 가투소 감독은 열변을 토했다.

    그런 가투소 감독을 보며, 더비의 역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도훈마저도 꼭 이겨야 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

    “확실히 이번엔 다를 거야. 우리에겐, 새로운 스타가 왔으니까. 어때, 친구. 한 마디 하겠나?”

    가투소 감독이 웃으며 턱으로 도훈을 가리켰다.

    도훈에게 쏟아지는 시선.

    뭔가 각오라도 한 마디 해야될 것 같은데.

    “그.. 제가 비행기를 타고 밀라노로 오면서 세운 목표 하나가 있습니다.”

    “뭐지?”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와 세리에 A에서 동시에 득점왕을 차지하는 것. 그게 저의 올 시즌 목표인데요.”

    도훈이 말하자 그 당돌함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미 전반기 동안에만 28골을 몰아치고 온 도훈인만큼, 그것은 절대로 비웃음이 아니었다.

    “이번 밀라노 데르비는 목표로 향하는 시작이 될 겁니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 봐. 지금 득점 1위가 호날두인데 가능 하겠어? 벌써 15골을 넣었던데."

    "..그거 밖에 안됩니까?"

    "하하하!"

    “아주 좋아! 그 보다 마음에 드는 각오는 없구만! 자! 다들 목숨을 걸고 해보자!”

    모든 선수들이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훈련은 그것으로 마무리.

    남은 건 산 시로 스타디움이 가득차길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ㆍㆍㆍ

    2021년, 1월 20일.

    이탈리아 밀라노, 쥐세페 메아짜 스타디움.

    정식으론 쥐세페 메아짜 스타디움으로 불리는 이 곳이지만, 오늘은 AC 밀란의 홈 경기기에 산 시로가 되었다.

    “밀라노 데르비입니다. 오늘, 최근 데르비와 비교해봐도 관중들이 더 가득 가득 찼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는데요.”

    “간만에 예전 느낌나는 데르비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겠죠.”

    8만 명 가까이 되는 엄청난 관중들이 운집한 경기장.

    경기 시작 전부터 관중석 여기저기서 붉은 홍염이 불타오르고 있었고, 관중들은 소리 높여 상대방을 있는 힘껏 비난하며 반드시 이기리라는 염원을 부르짖고 있었다.

    ‘분위기 죽이네.’

    직전 경기가 이두나 파크에서의 경기였던 도훈이었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를 슬쩍 보곤 혀를 내둘렀다.

    이만큼 많은 관중이 모인 경기는 처음이었거니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까지.

    이두나 파크에선 악당이 되었음에도 집에 무사히 돌아갔었지만, 여긴 정말로 악당이 되었다간 집에 무사히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

    아니, 애초에 몸 성히 경기를 끝마칠 수나 있을까.

    “긴장되나?”

    “괜찮습니다.”

    “난 긴장돼.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이 밀라노 데르비는 언제나 긴장이 되더군.”

    선수 입장 전, 터널에서 도훈에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곤살로 이과인.

    “근데 이 긴장감이 난 기분이 좋아. 경기를 앞두고 이렇게 긴장이 된다는 건, 축구 선수로서 기분 좋은 일 아닐까. 아직 내가 살아있단 느낌이 들거든.”

    “그런가요.”

    “이렇게 주절대는 것도 다 긴장되서 그런거지. 자, 무조건 이기자.”

    “물론입니다.”

    AC밀란과 인테르의 선수들이 쥐세페 메아짜, 또는 산 시로를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비아크-!”

    “비아크! 환영한다! 저 파란 쥐새끼들을 쳐부숴줘라!”

    밀란 팬들의 환영은 거대했다.

    자기들네 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을 바라보는 도훈.

    응원을 하는건지 화를 내는건지 헷갈릴 정도지만, 어찌됐든 무조건 이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엔 충분.

    경기 시작 전 상대 선수들과 악수를 나눌 때에도 평소완 분위기가 달랐다.

    이건, 정말로 적이다.

    경기가 끝나도 절대 동료로 돌아갈 수 없는.

    “삐이이익-!”

    밀라노의 전쟁이 시작 되었다.

    현재 AC밀란은 9승 5무 5패로 리그 5위.

    인터 밀란은 13승 2무 4패로 리그 3위인 상황.

    전반기때 보여준 객관적인 전력은 인테르가 확실히 위였다. 실제로 맞대결 자체에서 승리한 것도 인테르니까.

    최전방의 이카르디는 꾸준함을 보여주고 있고, 나잉골란은 여전히 묵직하며 이반 페리시치 역시 날카로웠다.

    하지만.

    “수소, 백도훈에게.”

    “이 선수에 기대를 거는 밀란 팬들이 많죠.”

    전반기의 밀란과 후반기의 밀란은 아예 다른 팀이라는 걸, 이미 밀란의 감독이나 선수들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 땐 도훈이 없었지만, 지금은 도훈이 있다.

    "세리에에서의 첫 터치입니다, 백도훈!"

    상대 진영 중앙에서 공을 잡는 도훈.

    한 번도 상대해보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밀라노 더비가 원래 그런 것일까.

    도훈이 공을 잡자마자 인테르 선수들이 무섭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훈은,

    툭, 툭-!

    “좋은 탈압박!”

    함부로 그러면 안된다는 걸 보여주기 시작했다.

    몇 번의 회전.

    도훈은 공을 가지고 달려드는 선수들의 발을 피해내며 이리 저리 돌았다.

    발에 붙어있는 듯한 컨트롤과,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반대로 움직이는 침착함. 그리고 상대를 속여내는 상체 페인팅까지.

    “오오..!”

    달려든 세 명 사이에서도 공을 빼앗기지 않는 도훈을 보며 탄성을 터뜨리는 밀란 팬들.

    그러나 탄성을 터뜨리기엔 이르다는 듯,

    ‘노련하다니까.’

    도훈은 세 명의 상대 너머, 수비 뒤로 돌아 들어가는 이과인의 노련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패스를 찔러 넣었다.

    파아앙-!

    그리고 그 패스가 예술이었다.

    관중석의 오랜 밀란팬과 인테르의 팬이 동시에,

    “피를로같아...!”

    라고 말했을 정도로.

    촤아아-

    절묘히 오프 사이드 라인을 부수고 들어가며 박스 안에서 도훈의 패스를 받는 이과인.

    '거짓말이 아니었군, 꼬마.'

    긴장이 되지 않는다던 경기 전의 말이 사실이었나.

    패스는 너무나 좋았다.

    놓치면 너무 미안할 정도로.

    불과 전반 4분.

    경기가 시작된 후 첫 번째 밀란의 공격에서,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노련하디 노련한 이과인의 마무리와 함께,

    “와아아아아아앗-!”

    AC 밀란의 선제골이 터져 나오는 순간.

    산 시로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붉은 물결이 벌떡 일어나 우레와 같은 함성을 터뜨렸다.

    “와아아-!”

    “예에에-!”

    “바모스-!”

    팬들이나, 선수들이나 광분에 가까운 포효를 내지르며 만끽하는 선제골의 기쁨.

    선제골을 도운 도훈이 얼떨떨할 정도.

    그 순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 중 하나를 직접 뛰고 있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는 듯.

    “패스 좋았다! 아주 좋았어!”

    “마무리도 좋았어요.”

    다른 선수들을 제쳐놓고 먼저 도훈을 끌어안는 이과인.

    이미 훈련 때도 느꼈으나, 도훈의 존재는 정말로 기대 이상.

    공격수로서 이런 동료와 같이 뛴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은 없을 거라고 느꼈을 정도였으니.

    방금의 패스도 감탄이었다.

    사실 침투를 하긴 했으나, 동료가 모든 침투를 캐치하고 정확한 타이밍에 패스를 찔러 줄 수는 없다. 특히나 최근 밀란에서 뛸 땐, 10번 침투해 한 두번 패스가 오면 잘 오는 편이었고.

    하지만 방금의 패스는 완벽했다.

    마치 과거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시절, 메시의 패스를 받던 기분이었다.

    “5분도 안되서 AC 밀란의 선제득점! 자, 전반기 때의 경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것 같은데요!”

    “이야, 백도훈의 저 패스. 분데스리가를 씹어 먹고 온 클래스를 여기서도 보여주는군요! 방금은 순간 안드레아 피를로의 재림을 보는 듯 했습니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밀란 팬들은 웃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이들의 피를로의 이름을 거론하며.

    안드레아 피를로는 여전히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밀란의 레전드.

    이들이 도훈에게서 피를로를 봤다고 말할 정도라는 건, 굉장한 극찬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선제골 이후 10분 뒤.

    “폴리타노, 어어, 빼앗깁니다! 백도훈!”

    파아앙-

    타타타탓-!

    “치고 달립니다!”

    “무서운 속도!”

    하프라인 근처 왼쪽에서 폴리타노의 공을 빼앗아낸 도훈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브루살리코의 옆으로 공을 길게 차놓고 달리는 순간.

    그리고 몇 발자국 가지 않아 브루살리코를 앞질러 무섭게 달려가는 순간.

    밀란 팬들은 또 다시 그들의 다른 레전드의 모습을 도훈에게서 느끼고 말았다.

    '히카르두 카카...!'

    < 누구의 재림인가? (1) ------무료 마지막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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