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45화 (45/173)

< 악당 (2) >

단순히 전반기 1위 결정전이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는 우승을 놓고 다투는 리그 마지막 경기인 듯 불타오르고 있는 이두나 파크.

후반전이 시작 되었다.

흐름은 전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르트문트의 중원은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경기를 풀어 나갔고, 로이스를 필두로 한 공격 역시 날카로움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하프타임때 나겔스만 감독의 말이 선수들에게 와닿았을까.

‘멋진 악당이 되는거다.’

라이프치히의 선수들의 집중력은 전반전보다 더 좋아진 듯 보였다.

이젠 홈팬들의 적대적인 응원에도 적응이 된 듯, 서로 의사소통하며 상대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는 모습.

그런 버팀의 원동력은 역시나 도훈이 전반에 보여줬던 가능성 덕분이기도 했다.

버티다 보면 결국 기회는 온다.

그 기회가 한 두번일 뿐이라고 해도, 확실히 살려줄 수 있는 동료가 있으니 수비수들은 더욱 믿음을 가지고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아무리 오늘 일이 고되더라도, 오늘만 끝나면 주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버텨낼 수 있는 것처럼.

“흐름 상으론 도르트문트가 한 골 정도는 넣어야 하는 흐름인데, 라이프치히가 단단하네요. 이렇게 버티다보면 조급해지는 건 도르트문트죠.”

앞서 말했듯, 도르트문트의 라이프치히 파훼법은 더욱 막강한 공격력으로 도훈의 존재감을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계획대로 공격도 잘 풀리는 듯 했고.

하지만 1대1이었다.

최소한 3대1 정돈 되었어야 하는 흐름인데,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 동점임에도 라이프치히와 도르트문트가 갖는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도르트문트는 마치 지고 있는 듯한 느낌.

후반전도 20분이 그대로 흘러가는 상황.

촉박해지는 시간.

도르트문트는 더욱 공세의 고삐를 당기기 시작했고,

“괴체, 슈우웃-!”

“오반의 몸을 맞고 튕겨 나옵니다, 로이스 재차 슈팅-!”

파아아앙-!

파아아앙-!

5분 동안 슈팅이 5개나 나올 정도로 선수들이 슈팅을 아끼지 않기 시작했다.

모두 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들이 있는 선수들이다 보니, 자신에게 기회가 열렸다 싶으면 곧바로 슈팅을 가져가는 모습.

슈팅이 많아지면 골이 들어갈 확률도 높아지는 게 당연한 법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분명 전반전의 공격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전반전 동안, 도르트문트의 공격진은 유기적인 플레이로 찬스를 만들어가며 최대한 완벽한 찬스를 가진 선수가 슈팅을 가져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쉽게 말하자면, 조금씩 선수들이 난사를 하고 있다는 것.

라이프치히 수비수들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상대가 급하다.’

동이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라이프치히 선수들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 새벽이고, 조금만 버티다 보면 해가 뜨겠다는 것을.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후반 30분이 지나가는 시점이었다.

“로이스의 코너킥!”

왼쪽에서 로이스가 코너킥을 찼다.

약속했던 플레이가 있던 듯 짧게 니어 포스트로 붙인 코너킥.

그러나 킥이 계획보다도 조금 더 짧았고, 그걸 사라치가 튕겨낸 상황.

“역습 올라 가나요!”

그 공을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세프 폴센이 잡았다.

그 순간 도훈은 본능적으로 전방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타타타탓-!

다른 건 보지 않았다.

동료들이 도훈을 보며 신뢰를 얻은 것처럼, 도훈도 마찬가지였다.

도훈도 동료들이 저 거센 상대의 공세를 버텨내는 걸 보며 믿음을 가졌다.

그리고 신뢰의 질주를 달려 나갔다.

어수선한 상황이지만, 공은 분명히 전방을 향해 날아올 것이었고, 도훈은 그걸 받아줘야 했다.

“빠르게 나가야죠!”

라이프치히의 박스 쪽에 몰려 있던 선수들이 한꺼번에 방출되는 상황.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는 도르트문트 수비수들이 어지럽게 지나치는 상황에서 폴센은 뒤로 공을 내주었다.

그리고 그 공을 스테판 일센커가 케빈 캄플에게 내줬고, 캄플은 침착하게 전방을 향해 로빙 패스를 뿌렸다.

뻐어어엉-!

공이 하프라인을 넘어 도르트문트 진영의 공간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도훈이 믿었던 대로.

타타타탓-!

“빠릅니다!”

또 다시 도훈에게 찾아온 역습 찬스.

공간으로 떨어지는 패스를 향해 달려가는 도훈과 도르트문트의 수비수들.

그러나 이런 속도 경합에서 도훈은 질 자신이 없었고,

파아앙-!

가장 먼저 공을 잡아낸 것 역시 도훈이었다.

그러나 떠왔던 패스가 역회전이 걸려 있었어서, 바운드가 되며 속도가 조금 죽었다.

그 틈에 헐레벌떡 복귀한 도르트문트의 수비수들이 박스에 자리를 잡았고.

박스 오른쪽에서 공을 잡은 도훈에게도 게레이루가 붙어 왔다.

그런데,

“후우, 후우!”

그런 게레이루의 상태를 살핀 도훈이 속으로 웃었다.

어찌나 빠르게 복귀를 한 것인지, 녀석은 숨이 얼굴에 느껴질 정도로 거칠게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으니.

“넘어져라!”

“못 뚫는다!”

뒤에서 느껴지는 저주의 시선들.

‘기필코 이번엔.’

도훈은 완벽하게 저들의 입을 틀어막을 기회가 왔다는 걸 느꼈다.

게레이루를 앞에 두고 도훈이 툭툭 치고 들어가다,

순식간에 양발이 번개처럼 움직였고,

파팡-!

게레이루는 시야에서 공을 잃어 버렸다.

웬만한 동체시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유령신보.

“도훈!”

도훈이 게레이루를 제치고 박스를 향해 달려감과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나겔스만 감독과 라이프치히의 벤치.

나겔스만 감독은 경기장에 거의 들어갈 듯 라인에 바짝 붙어 고개를 길게 내밀었다.

“해보여라!”

박스 오른쪽으로 진입하는 도훈.

앞을 막아서는 건 마누엘 아킨지.

워낙 공격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미 후반 중반임에도 아킨지와 대면하는 것은 처음.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도훈은 유리한 입장이었다.

불리하다 해도 상관이 없거늘, 유리하다면 어떠할까.

도훈은 지체 없이 왼쪽을 향해 달려 들었다.

“...!”

그러나 그 모습은 경기장 전체에서, 아킨지만이 볼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환영신보.’

도훈은 왼쪽으로 밸런스가 무너진 아킨지를 뒤로 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그리고 완벽히 열리는 각.

다시 부르키 키퍼와 1대1로 마주하는 도훈.

완전히 정면인 것은 아니지만, 첫 번째 골보다 훨씬 더 각도가 좋은 상황.

어려울 게 있겠는가.

도훈은 지체없이 오른발을 당겼다.

파아악-!

“...!”

그러나 슈팅을 때리려던 도훈의 오른발 앞 코가 잔디에 깊게 박혔다.

때문에 슈팅이 되지 못했고, 이미 슈팅을 예상하고 몸을 날린 부르키 키퍼가 뻘쭘해진 상황에,

도훈은 그제서야 진짜 슈팅을 때렸다.

빈 반대편 골대를 향해 가볍게.

슈팅 페인팅으로 부르키 키퍼까지 완벽하게 속여낸 뒤의 의도된 슈팅.

슈우우웅-

출렁-!

“골입니다-! 고올-! 백도훈의 두 번째 골!”

“이야, 대단하네요! 역전 골입니다! 이 경기가 이렇게 되나요! 라이프치히가 역전 골을 뽑아내네요!”

“그렇지!”

골이 들어가는 순간, 나겔스만 감독이 펄쩍 펄쩍 뛰며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동료들이 역시 환호성을 내지르며 도훈을 향해 달려갔고.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이두나 파크는 다시 한 번 조용해졌다.

첫 번째 골과는 달랐다.

그 땐 잠깐의 적막 이후 곧바로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다시 나왔으나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왜, 더 떠들지?’

도훈이 코너 플래그를 향해 천천히 뛰며, 더 떠들어 보라는 듯 손을 펼쳐 귓가에 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바로 오늘 꼭 하겠다고 생각했던 그 셀레브레이션.

“...”

“...”

그런 도훈을 보면서도, 아무런 말을 잇지 못하던 수만 명의 도르트문트 팬들이 이내,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후반 33분, 백도훈의 역전골로 라이프치히가 2대1로 앞서 가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꾸는 골!”

“아, 라이프치히 강하네요. 이런 역습을 바로 득점까지 연결할 수 있는 백도훈이라는 공격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 이게 지금까지 라이프치히가 1위를 지킬 수 있던 이유죠.”

“자, 이제 남은 시간 어떻게 될까요.”

홈에서의 패배.

이두나 파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홈팬들은 두 손을 모으고 빠른 시간안에 동점골이 나와주길 바라는 모습.

“폴센이 나오고 할스텐버그가 들어 갑니다.”

나겔스만 감독은 수비수를 보충하며 이 점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공격의 숫자는 줄었어도 도훈이 남아있는 이상 역습의 부담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도르트문트의 아이러니.

“한 골만..”

시간이 40분이 넘어가면서, 도르트문트 팬들의 바람은 역전에서 동점으로 바뀌어가고.

“로이스, 슛!”

“무리죠, 지금은.”

두드려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골문에 답답해져만 가는 도르트문트의 선수들.

잘 풀릴 땐 그렇게 무섭던 재능 넘치는 공격수들이, 지금은 눈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들처럼 시야가 골대에만 있는 듯.

‘진다고?’

그리고 45분이 지나 주어진 추가 시간 3분.

공을 잡은 제이든 산초는 고개를 젓고 싶었다.

분데스리가에 혜성처럼 등장한 산초는 언제나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장본인이었다.

자신의 재능이 그 누구에게도 뒤쳐진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산초였다.

그러나,

“아, 좋은 협력 수비입니다. 공을 뺏어내는 우파메카노!”

“산초가 턴오버를 범하네요.”

파아아앙-!

“남은 시간은 30초가량! 백도훈에게 다시 공이 갑니다!”

새롭게 나타난 녀석은 두 골을 넣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나 완벽한 재능을 뽐내며.

“그렇죠. 무리할 생각이 없죠.”

도훈은 경기를 완벽히 끝내기 위해 공을 가지고 천천히 터치 라인으로 향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달려드는 도르트문트 선수들.

그러나 너무나 얄밉게도 도훈은 그 좁은 곳에서도 요리조리 움직이며 공을 빼앗기지 않았고,

“삐익, 삐익, 삐이이익-!”

결국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순간.

“2대1! 라이프치히의 승리입니다! 무패팀들간의 전반기 마지막 대결, 유일하게 무패를 유지하게 된 건 라이프치히였습니다!”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물론 수만 명의 홈팬들 역시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잘했어!”

“다들 잘했다! 도훈! 오늘도 최고였다!”

도훈과 라이프치히의 선수들은 주인공을 쓰러뜨린 악당이 되었다.

ㆍㆍㆍ

8월 17일부로 라이프치히 입성.

그 후 17경기에서 28골 기록.

17세의 나이로 데뷔 시즌에 압도적인 득점 1위까지 오르는 파란을 일으킨 도훈.

짧은 시간이었지만, 라이프치히 구단과 팬들에게 도훈은 거대한 기쁨을 안겼다.

“고마웠네. 앞으로 또 볼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

“잘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도 진심으로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작별의 인사.

라이프치히는 전반기 시즌이 끝나자마자 AC밀란 측에 완전 이적 항목을 제시하며 협상을 시도했다.

이야기가 힘들어질 거라던 구단주도 최대한 도훈을 붙잡아 보기 위해 노력 했고.

그러나 밀란은 테이블에 앉자 마자 아주 단호히 입장을 밝혔다.

“절대 불가입니다.”

“아니, 얘기를 들어 보지도 않고..”

“구단에서 이미 결정한 사항입니다. 저희한테 권리가 있는 건 아시잖아요?”

이적은 물론 임대 연장마저 절대불가.

그리하여 도훈은 도르트문트전을 마지막으로, 밀라노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밀라노 공항.

“도훈!”

돌아온 도훈을 반갑게 끌어안은 것은 마중을 나와준 가투소 감독과 밀란의 구단주였다.

돌아온 밀라노.

도훈의 위치는 조금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미 1군 홈구장 드레싱 룸에 도훈의 라커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구단은 클럽 하우스가 아닌 시내의 주택으로 도훈이 거처를 마련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이게 제가 쓸 집이라고요?”

“좀 좁나?”

“아뇨.. 너무 넓은데요.”

“걱정 말게. 청소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매일 식단 챙겨주시는 분도 계시니까. 한국분으로 준비했네.”

라이프치히에서보다 더 크고 깔끔한 집.

걸어서 5분 거리안에 식자재점이나 각종 편의시설들이 있는 건 물론, 가사일을 도와줄 분들도 모두 구단에서 지원을 해준 상태. 혹시나 불편할까 가사 도우미분을 한국인으로 준비해준 배려까지.

이건 이만큼이나 밀란이 도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원한다면 가족들을 모셔와도 좋네. 구단에서 챙겨드릴 수 있으니까.”

“아.. 예. 감사합니다.”

도훈은 멋진 카페트가 깔린 거실을 지나 안락한 소파에 몸을 뉘여 보았다.

푹신했고, 비행의 모든 피로가 풀리는 듯한 기분.

처음 꿈꾸던 것은 이것이었다.

축구로 성공해 이러한 삶을 사는 것.

여전히 슈퍼스타들의 삶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곰팡이 핀 골방에서 살던 도훈에겐 이 정도만 해도 벌써 꿈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는 일.

물론 사람이란 적응의 동물인지라, 지금의 도훈은 당연히 이 정도로 만족하고 끝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지만.

“아주 좋아. 후반기 첫 경기부터 밀라노 데르비(Milan Derby) 였는데, 자네가 이렇게 합류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구만.”

도훈의 운명이 특이한 것일까.

새로운 환경에 오면 꼭 첫 상대로 강한 상대를 만나게 된다.

합류 후 첫 경기 상대가, 바로 인테르, 인터 밀란.

“팀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도훈의 말에 호탕하게 웃는 가투소 감독.

문득, 도훈에게 한 가지 목표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이미 분데스리가에서 반 시즌 동안 28골, 득점왕 수준의 기록을 올렸다.

이는 시즌이 다 끝나도 도훈이 여전히 득점왕 일 수도 있는 기록.

그렇다면, 세리에에서도 못할 건 없지 않은가.

후반기부터 기존의 선수들을 모두 따라잡고, 득점랭킹 1위에 오르는 것.

‘한 시즌, 두 개 리그 득점왕.’

듣도 보도 못한 기록.

그 기록에 도전할 수 있는 건 현재의 자신뿐이라고 도훈은 생각했다.

< 악당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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