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당 (1) >
리그 초중반부터, 분데스리가 팀들의 연구는 시작 되었다.
도훈에 대해서.
도훈의 실력은 숨길 수 없는 것이었고, 그런 도훈과 라이프치히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에 대해 다른 팀들은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도르트문트는 가장 유리한 입장이었다.
전반기 중엔 가장 마지막에 만났으니.
그만큼 라이프치히에 대해 연구할 시간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분석 결과는 다른 팀들과 조금 달랐다.
다른 모든 팀들이 도훈에 대해 집중할 때, 도르트문트는 라이프치히의 수비에 집중했다.
도르트문트가 자랑하는 건 막강한 공격력이었으니까.
백도훈이 아무리 날뛴다 해도, 도르트문트의 공격력이라면 라이프치히의 수비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였고, 화력으로 압도한다면 백도훈은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팀 대 팀의 대결이니까.
그리고 그 해답은, 정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 18분부터.
파아앙-!
“찔러주고, 리턴. 올라갑니다, 마르코 로이스!”
모든 공격의 시작 마르코 로이스가 원투패스로 하나를 제쳐낸 뒤 중앙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각자의 자리로 침투하는 잘 훈련된 공격수들.
라이프치히의 수비들 역시 각자의 수비 위치로 흩어졌지만, 이미 로이스의 돌파로 인해 균열은 만들어진 상태.
“...”
로이스는 중앙을 향해 공을 몰고 가면서도 좌우로 시선을 줬다.
파아앙-!
선택은 오른쪽.
뒤로 돌아 들어가던 마리오 괴체였다.
수비 사이를 꿰뚫는 킬 패스.
그리고 공을 받은 괴체는,
뻐어엉-!
지체없이 논스톱으로 재차 크로스를 찔러 넣었고,
촤아아아-
파아앙-!
철썩-!
그 크로스가 골문으로 쇄도해 들어가던 알카세르의 발에 닿았다.
완벽한 패스 플레이.
굴라시 골키퍼가 막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의 슈팅.
도르트문트가 먼저 라이프치히의 골망을 흔든 것이었다.
“와아아아앗-!”
순간 터져 나오는 우레와 같은 함성.
지진이 일어나는 듯 흔들리는 중계 카메라.
“파코 알카세르의 골! 그 이전에 로이스와 괴체의 콤비 플레이가 예술이었습니다!”
“이게 도르트문트의 무서움이죠. 저 공격력, 올 시즌 누구도 막기 힘들었습니다.”
다시금 도르트문트의 응원가로 넘실거리는 이두나 파크.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팬들과 함께 셀레브레이션을 펼치며, 경기장의 분위기를 광란으로 몰고 갔다.
더 큰 환호성을 내지르라는 듯 두 팔을 번쩍이는 득점자 알카세르.
"..."
그 가운데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라이프치히 선수들 입장에서는 매우 힘든 일.
말 없이 공을 하프 라인으로 차내는 굴라시 키퍼와, 고개를 숙이는 수비수들.
확실히 도르트문트 원정은 지옥인 것인가.
“경기장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1위로 올라서는 건 도르트문트니까요. 물론 아직 경기가 끝나려면 멀었습니다만.”
완전히 기세가 오르는 도르트문트.
선제골 이후에도, 도르트문트는 전혀 전술 변화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 기세를 타고 한 점을 더 넣으려는 듯,
“제이든 산초! 좋은 돌파입니다!”
관중들에 함성을 타고 물 밀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파아앙-!
“우파메카노! 몸으로 막아 냅니다!”
제이든 산초의 과감한 슈팅.
우파메카노가 몸으로 막아내긴 했으나, 다시 도르트문트의 코너킥으로 이어지는 공격.
“집중해! 집중! 얼 빠지지 말고!”
우파메카노가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정신이 없는 건지 자기 자리를 놓치고 있는 윌리 오반을 제 자리로 밀면서.
지금은 초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시점.
우파메카노의 분노 섞인 일갈에 그나마 선수들은 제 정신을 부여 잡으려 애썼고,
뻐어어엉-
파아앙-!
“걷어 냅니다!”
코너킥 위기를 넘겼다.
“정신 차리고 하자아악!”
우파메카노가 다시 한 번 동료들을 향해 짐승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이대로라면, 정말 위기였다.
우파메카노의 일갈 덕에 다행히 한 고비를 더 넘긴 라이프치히.
그러나 경기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도르트문트의 분위기였고, 그들의 공격은 이어졌다.
“공을 잡는 제이든 산초. 아, 산초가 공을 잡을 때마다 어떤 플레이가 나올 지 기대가 되는데요.”
선제골을 도운 산초가 자신감이 오른 듯 공을 잡은 뒤 풀백 사라치를 앞에 두고 개인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산초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터져 나오는 탄성.
산초는 공을 잡을 때마다 가장 기대감을 주는 선수.
그만큼 번뜩이는 재능을 가진 천재과의 선수였다.
“뚫어냅니다! 역시 산초!”
그런 산초가 사라치를 제쳐내자 함성은 더욱 커졌다.
‘시끄러워 죽겠네.’
욕설을 내뱉으며 커버를 뛰쳐 나가는 우파메카노.
라이프치히의 수비 리더인 우파메카노는 오늘 정말 할 일이 많았다.
동료들의 정신을 챙기랴, 빈 공간을 커버하랴.
사실은 제 혼자 정신차리기도 바쁘건만.
파아앙-!
“우파메카노의 좋은 커버!”
산초의 드리블을 저지하는 우파메카노.
다시 그 공을 몸으로 등지며 지켜내면서, 우파메카노는 전방을 살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오늘 상대하고 있는 도르트문트의 공격력은, 지금까지 리그에서 상대했던 팀들 중 가장 강했다. 경기장의 분위기도 수비를 힘들게 만들고 있었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훈련때보단 쉬웠다.
앞에서 마테우스가 놀란 재능이라던 산초가 까불고 있어도, 훈련 때 도훈을 상대하는 것보단 훨씬.
‘저깄다.’
뻐어어엉-!
나름 위험지역이었지만, 우파메카노는 침착하게 도훈의 위치를 확인한 뒤 패스를 뿌렸다.
왜일까.
필드 안에선, 도훈만 보면 마음이 진정되는 우파메카노였다.
물론 도훈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에만.
‘느끼게 해줘. 넌 혼자서도 이것보다 더 큰 압박을 줄 수 있으니까.’
슈우우웅-
“걷어냅니다!”
“바로 역습 가야죠! 백도훈이 받아내나요!”
한껏 오른 도르트문트의 기세만큼, 수비 라인 역시 한껏 올라와 있는 상태.
조용히 최전방에서 도사리고 있던 도훈이 패스를 향해 뛰었다.
공을 향해 달리며 낙구위치를 가늠하는 도훈.
지금은 오버래핑을 나간 상대 풀백이 자리를 비운 왼쪽이 휑하니 열려있는 상태.
지체할 필요는 없다.
이 흐름을 살려 그대로.
파아앙-
타타탓-!
“와앗, 좋은 턴입니다!”
돌아서지 못하도록 막아서기 위해 달려들었던 악셀 비첼.
그러나 도훈은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다가, 공을 잡는 동시에 돌아섰다.
마치 아무런 터치가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 찰나에, 도훈은 원하는 대로 공을 컨트롤 시켜놓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빠릅니다!”
“지금은 일인 역습입니다!”
도르트문트가 공격적이었던만큼, 라이프치히도 거의가 전원 수비였던 상황.
역습조차도 너무나 빨라 하프라인을 넘어온 선수는 도훈이 유일.
이건 도훈이 혼자 해결해야하는 역습.
다시 말해,
‘반가운 상황이네.’
도훈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타타탓-!
왼쪽 사이드를 파고드는 도훈.
비상이 걸린 상대 수비수들은 다급히 각자의 위치를 향해 달렸다.
상대 두 센터백 중 하나는 박스를 향해, 하나는 도훈의 뒤를 따라 왼쪽 사이드로.
자신을 따라오는 그 수비를 보며, 도훈은 판단을 내려야 했다.
골 라인을 향해 돌파할 것이냐, 중앙으로 접어 들어가 조금 더 큰 각을 만들 것이냐.
‘중앙이겠지.’
도훈을 막으러 나오는 센터백 자가두는 생각했다.
도훈의 패턴 연구는 질리도록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양발에 가깝지만 어쨌든 녀석은 오른발을 즐겨쓰고, 속도를 살린 동안에도 방향전환이 빨라 사이드를 타고 가다 중앙으로 접고 들어가는 걸 알고도 막지 못해 실점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마치 과거 뮌헨의 에이스 아르옌 로벤이 그랬듯.
자가두는 분명히 그것을 의식했다.
때문에 미리부터 그 루트를 염두에 두고, 미리 속도를 줄일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건 명백한 실수였다.
툭-!
“한 번 더 치고 들어갑니다!”
도훈은 박스 왼편까지 도달한 상태에서, 접는 척하다 골 라인을 향해 한 번 더 치고 들어가는 선택을 했다.
그 움직임에 움찔하며 타이밍을 완전히 내주고 돌파를 허용하는 자가두.
“어떻게 할 건가요!”
그 한 번의 선택으로 일단 박스 왼쪽까지 진입하는데엔 성공.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건 혼자 해결해야하는 역습.
컷 백을 받아줄 동료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건, 돌파를 했음에도 오히려 도훈이 가질 수 있는 각도 자체는 줄어든 상태.
파고드는 도훈을 향해 키퍼 부르키가 두 팔을 벌리며 골대를 가렸다.
확실히 각은 좁다.
도훈의 시야에선 골대의 거의 전부가 부르키 키퍼에게 가려져 있을 정도.
하지만.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러고 서 있으면 안되지.’
보였다.
도훈에게, 하나의 길이.
아니, 정확히는 두 개의 길이었지만 도훈의 구미를 당기는 쪽이 환히 빛나고 있었고, 도훈은 지체없이 왼발을 크게 당겼다.
뻐어어엉-!
도훈에게만 보였던 하나의 길.
거대한 몸으로 골대를 가로 막고 서 있지만,
두 다리로 서 있는 인간인 이상 그 곳은 습관적으로 벌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촤아아-
잔디를 쓸며 낮게 깔려 들어가는 슈팅.
“...!”
키퍼 부르키는 뒤늦게 아차하며 다리를 오므렸다.
그러나 슈팅은 워낙에 쏜살같았고,
철썩-!
“들어갔습니다! 골-! 백도훈의 동점골-!”
공이 다리 사이를 뚫어내는 것을 막지 못했다.
도훈의 골이었다.
“...”
부르키의 다리가 함락된 순간.
전광판의 숫자가 1-1로 바뀌는 순간.
순간 이두나 파크에 적막이 찾아 들었다.
그렇게 시끄럽던 관중들의 소리도, 지치지도 않고 펄럭이던 깃발들도 멈춰 버렸다.
거대한 도서관이 되어 버리는 이두나 파크.
그 순간, 도훈은 소름이 돋았다.
짜릿했다.
'최고야.'
역시 자신은 변태가 맞았다.
“백도훈이 혼자서 해냅니다!”
“아, 이런 찬스는 안 놓치는 선수에요. 정말 대단합니다. 벌써 27번째 골입니다!”
적막은 잠깐이었다.
이 정돈 괜찮다는 듯한 박수와 함성이 곧바로 다시 터져 나왔다.
그래, 이 정도론 아직 부족하겠지. 저들의 입을 완전히 틀어 막는 건.
도훈은 생각했던 셀레브레이션을 하는 대신 빠르게 공을 주워 하프라인을 향해 달렸다. 그 모습을 보며 도르트문트의 팬들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분노의 함성을 내질렀다.
그 행동은, 경기를 이기려는 팀이 동점골이나 만회골을 넣었을 때나 하는 행동이었으니까.
“믿고 있었다. 내가 패스준 거 알지?”
“예. 한 골 더 만듭시다.”
단신으로 역습을 성공시킨 뒤 공을 들고 하프라인으로 돌아온 도훈을 맞이하는 동료들.
그런 도훈이 동료들에겐 구원자처럼 보일 수밖에.
동료 수비수들에겐 여포인 우파메카노도 도훈에게만큼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도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수비진으로 돌아가며, 우파메카노는 다시 표정을 바꾸며 소리쳤다.
“도훈이가 저렇게 해주는데, 한 골 더 쳐먹으면 안되겠지? 집중해보자!”
“오케이!”
상대 팬들의 함성 소리 따위는 듣지 않겠다는 듯, 라이프치히의 선수들이 도훈의 동점골에 힘입어 더욱 크게 서로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삐익, 삐이익-!”
전반전은 그렇게 1대1로 마무리가 되었다.
점유율은 61대39로 도르트문트 우세.
슈팅도 9대3으로 도르트문트 우세.
패스 횟수도 242대 121로 도르트문트의 우세였다.
기록만 놓고 보더라도 알 수 있듯, 도르트문트가 완벽히 주도한 전반전.
그러나 스코어는 1대1이라는 게 중요했다.
그것도 이두나 파크에서.
“잘 했어! 다요랑 윌리도 잘했고, 이브라히마도 잘했어. 사라치, 산초 상대가 힘든 건 알겠지만 좀 만 더 힘내주고. 미들들도 괜찮아! 주도권 내주는 건 어쩔 수 없어. 역습 올라갈 때 패스만 퀄리티 있으면 돼. 잘 하고 있어. 그리고, 도훈아.”
“옙.”
“난 어릴 때부터 만화를 보더라도 이상하게 주인공보다 악당이 더 멋있더라. 오늘 주인공은 홈인 저들이라고 쟤들은 생각할거다. 하지만, 멋진 악당이 되어보자. 네가 악당이 되어서, 주인공이 되는거다. 네가 주인공이 되어봐라.”
“알겠습니다.”
“가자! 가자!”
나겔스만 감독의 말에 파이팅을 외치며 드레싱 룸을 나서는 선수들.
경기는 후반전으로 이어졌다.
< 악당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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