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43화 (43/173)

< 낭중지추, 군계일학 (2) >

10월, 그리고 11월.

나겔스만 감독의 비호 아래 도훈은 마음껏 경기에서 뛰놀았다.

도훈이 있는 한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던 연승 행진은 비록 7연승에서 멈췄으나, 첫 무승부의 경험은 배움이 되었고 이후 다시 승리는 이어졌다.

도훈은,

10월, 5경기에서 7골 1도움.

11월, 4경기에서 6골 2도움.

전반기 16경기에서 26골 7도움을 기록했다.

전반기 마무리까지 한 경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득점 2위인 파코 알카세르와 무려 13골이라는 무지막지한 차이를 벌리며 득점 랭킹 선두에 서있는 도훈.

말도 안되는 파괴력이었다.

도훈의 활약에 힘입어, 라이프치히는 11승 5무를 거두며 리그 테이블 가장 윗 자리를 전반기 내내 고수했다.

“넌 최고야.”

나겔스만 감독 역시 도훈을 중심으로 하는 전술로 연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도훈 혼자만의 힘으로 이런 연승 행진은 거둔 것은 아니었으니. 분명 그 뒤엔 동료들과 나겔스만 감독의 전술이 존재했다. 그 전술의 주인공이 도훈인 것은 맞았지만.

도훈 개인적으로 배운 것도 많았다.

정말 세세한 부분 전술부터, 훈련 외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은지, 휴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등등.

나겔스만 감독은 17살의 도훈이 완벽한 프로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을 물심양면 도왔다.

단지 반 시즌일 뿐이지만, 배운 게 많은 시간이었다.

“지난 시즌 득점왕이었던 레반도프스키의 기록이 28골이었습니다. 백도훈의 페이스는 상상 이상인 것이죠.”

데뷔 시즌에 압도적인 득점왕 페이스.

변방 리그도 아니고, 유럽 4대 리그 중 하나인 분데스리가에서 이런 활약을 보인 건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없는 일.

“야, 뽀시...”

“그거 하지 말라니까.”

“아, 알았어. 멘데스한테 또 전화왔었어, 아까. 생각은 잘 하고 있냐더라.”

그런 활약 때문일까.

조르제 멘데스의 러브콜은 거의 재촉이 되어 있었다.

괜히 다른 들고양이들이 더 달라 붙기 전에 도훈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

“좋은 조건인 건 맞지?”

“솔직히 다른 사례들 많이 조사해 봤는데, 이 정도면 엄청 좋은 거던데? 호구 계약은 절대 아니고, 거의 1류 선수들급 대우야. 뭐, 너야 그만한 대우를 받을 만 하지.”

계약 자료들을 검토해주었던 임찬주가 그렇게 말하니, 도훈도 더 이상 재고 따질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주에, 결국 보도자료가 떴다.

-백도훈, 초호화 군단 멘데스 사단 합류... 호날두, 델레 알리 등과 한솥밥

조르제 멘데스가 도훈의 에이전트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ㆍㆍㆍ

라이프치히의 전반기 마지막 경기 상대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였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올랐던 도르트문트.

분데스리가의 왕은 뮌헨이라면, 도르트문트는 공작쯤 되는 위치.

그러나 현재 순위는 오히려 도르트문트가 2위고 뮌헨이 3위인 상황으로 ,분위기는 도르트문트쪽이 더 좋았다. 게다가 도르트문트 역시 라이프치히와 마찬가지로 뮌헨과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니, 어찌 보면 라이프치히와 도르트문트 두 팀이 제대로된 적수를 만난 건 오늘일지도 몰랐다.

“전반기, 꼭 1위로 마무리 하자. 리그 마지막 경기인 것처럼 임하자고.”

경기 전, 선수들에게 이야기하는 나겔스만 감독.

현재 2위 팀과의 대결.

그 경기를 승리로 가져가고, 전반기를 1위로 마치는 건 분명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겔스만 감독은 오늘 경기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듯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동기부여를 시켜 주었다.

라이프치히는 전반기가 끝나도 계속해서 후반기를 달려 나갈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오늘이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 선수가 있었으니.

“평소대로 부탁한다.”

“예.”

도훈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나겔스만 감독.

마지막도 평소처럼만이면 충분했다.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벌어지는 올 시즌 1, 2위의 대결입니다. 또한 무패 팀들간의 대결이죠. 먼저, 2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선발 라인업 살펴 보시겠습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4-5-1) 감독 : 루시앙 파브레]

GK 로만 부르키

CB 악셀 자가두

CB 마누엘 아킨지

LB 하파엘 게레이루

RB 아치라프 하키미

MF 토마스 델라니

MF 악셀 비첼

MF 마리오 괴체

MF 마르코 로이스

MF 제이든 산초

FW 파코 알카세르

“뭐, 중원의 탄탄함과 공격진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사실 분데스리가 최강급이라고 봐야 하고요. 알카세르와 로이스는 뭐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제이든 산초의 기량이 만개한 것이 가장 무서운 점이겠죠.”

“사실, 백도훈이 세기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제이든 산초의 지난 경기들 역시도 그랬지 않습니까?”

“재능과 재능의 대결이네요.”

경기가 시작되기 전.

선축을 위해 센터 서클에 서 있는 도훈에게 쏟아지는 시선들.

사방을 가득 메운 노란 물결은 물론이거니와, 마르코 로이스나 괴체, 제이든 산초 등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이 모두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능이라.’

사실 분데스리가에서 재능이라 함은, 로이스, 괴체, 산초가 지겹도록 듣던 말이었다.

도르트문트를 지키는 에이스, 마르코 로이스.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재능, 마리오 괴체.

마테우스가 러닝머신을 멈추고 티비를 바라보게 만든 제이든 산초.

특히나 산초는 2000년대생 최초로 챔피언스 리그에서 득점을 올린 어린 재능 중의 재능.

그런 그들이, 새롭게 나타난 재능이 반갑게 보일 리는 없었다.

그 재능을 시험해보고 싶을 뿐.

‘우릴 늦게 만난 게 행운이지.’

라이프치히가 16경기 무패행진을 한 것은, 단순히 자신들을 17번째로 만났기 때문인 것을 그들은 보여줄 셈이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우리는 그대들이 어디를 가든지 따라갈 거에요~

~Schalalala Schalalalala Schalalala Schalalalala!

~아무리 힘든 시간이 있더라도, 우린 따라갈 거에요~

~Schalalala Schalalalala Schalalala Schalalalala!

“응원의 열기가 대단합니다.”

“이게 이두날 파크죠. 도르트문트의 응원은 전 세계 최고일 겁니다.”

이두날 파크의 전경은 장관이었다.

노란 물결로 가득한 채, 하나인 듯 움직이고 있는 도르트문트의 응원단.

도훈이 바라보기에도 압도 당하는 느낌.

홈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도르트문트의 원동력 중 하나는, 역시나 이런 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일 것이었다.

단순히 열광적인 것뿐이 아니라, 이들은 일사불란한 카드섹션이나 통일감 있는 응원으로 원정팀인 라이프치히를 압박하고 있었다. 응원만 따진다면 아마 유럽 최고가 아닐까 싶을 정도.

솔직히, 도훈도 그 모습을 보며 상당히 감탄하고 있었다.

산처럼 높은 관중석 모두가 노란색 물결로 일렁이고 있었고, 수만명의 관중이 모두 그들의 응원가를 소리 높여 부르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이 모두가, 도르트문트의 선두 점령을 바라고 있는 것.

여기서 괜히 눈에 띄는 짓을 했다간 집에 조용히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삐이익-!”

그렇다고 조용히 있을 순 없었다.

경기가 시작 되었다.

도훈의 선축으로 천천히 경기를 시작하는 라이프치히.

아무리 도훈과 라이프치히라 하더라도, 이 곳에서의 승리를 장담하기란 쉽지 않은 일.

일단 전반 초반은 탐색전으로 시작하려는 듯한 라이프치히의 움직이었다.

하지만,

“비첼, 끊어 냅니다! 곧바로 로이스에게. 로이스, 올라 갑니다!”

“와아아아-!”

도르트문트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공을 가로채자 마자 공격적인 전진을 시작했다.

동시에 천둥이 치듯 진동하는 팬들의 함성.

“로이스, 찔러 줍니다. 오른쪽에서 공을 받는 산초, 흔들 수 있죠. 돌파 하나요. 아! 돌파 합니다!”

공격의 시작은 마르코 로이스.

그리고 산초가 그 중간을 맡으며,

“컷 백! 알카세르, 슛! 아, 굴라시 키퍼의 선방입니다.”

알카세르의 마무리까지.

첫 공격부터 슈팅까지 가져가는데 성공하는 도르트문트.

“서로에게 엄지를 세워 보이네요. 이 공격쪽 조직력이 도르트문트가 올 시즌의 성적을 거두는데에 1등 공신이겠죠.”

솔직히 도훈과 유세프 폴센의 조합인 라이프치히보다, 공격력의 총합은 도르트문트가 더 클지도 몰랐다.

물 오른 기량의 공격진들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유기적인 공격.

단순히 잘 훈련된 전술로만은 막아내기 힘든, 순간의 임기응변까지 동반되어야 하는 천재적인 공격을 퍼붓는 게 도르트문트였으니.

도르트문트의 공격진은 그 모두가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었다.

“천천히 해. 동요할 것 없어!”

골 킥을 하기 전, 수비수들에게 외치는 굴라시 키퍼.

언제나 느끼지만, 도르트문트 원정은 그 어떤 경기보다도 힘들다.

당장 바라보고 있는 반대편 골대 뒤까지도 노란 물결이 가득하니. 뒷통수쪽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 이 곳에서 자신들은 철저히 악역이다.

“어이! 다른 곳과는 비교가 안되지?”

“오늘은 너도 아무것도 못할거다! 여긴 우리들의 땅이니까!”

도훈은 분명히 경기장 중앙에 서 있었다.

그런데도 얼핏 관중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

확성기라도 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대의 응원과 비난이 귓가를 스치는 환경.

하지만.

‘여기가 제일 재밌네.’

도훈은 공이 오길 기다리며 생각했다.

올림픽에서 나라를 위해 뛰며 받았던 국민들의 응원.

홈 경기장에서 받았던 라이프치히 팬들의 환호.

그리고, 헤트트릭으로 세 번의 침묵을 이끌어냈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의 기억.

도훈이 축구 선수로서 정말 재밌는 일이라고 느꼈던 건, 자신의 플레이로 수만 명을 웃게 할 수도, 수만 명을 울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저 수만 명이 멋대로 떠들어대고 있지만, 나 혼자의 힘으로 그들 모두를 조용히 만들 수 있다는 것.

얼마나 재밌는 일인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많은 경기장들을 다니며 경기를 해봤지만, 지금껏 뛰어본 경기장 중엔 오늘 이 곳, 이두날 파크가 가장 재밌다는 생각을 하는 도훈이었다.

이 곳만큼 저 많은 입들을 다물게 해주고 싶은 곳이 없었다.

“하프 라인에서, 백도훈. 자, 과연 도르트문트를 상대로도... 아!”

“말하기 무섭게 치고 올라 가네요.”

노란색의 수만대군.

그 거대한 산을 향해 도훈은 공을 몰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앞을 가로막는 토마스 델라니.

그러나,

툭, 툭-!

상체 페인팅 만으로 델라니를 떨쳐내고 하프라인을 넘어서는 도훈.

“오늘도 첫 드리블부터 성공입니다, 백도훈!”

“현재까지의 기록으로 보면, 백도훈이 유럽 최고의 드리블러라는 자료가 있습니다.”

해설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경기당 평균 드리블 돌파 횟수(성공률)

백도훈 - 7.2회(86%)

네이마르 - 7.6회(69.7%)

메시 - 7.1회(74.3%)

아자르 - 6.8회(79%)

.

.

.

유럽 5대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데이터.

이미 네이마르, 메시, 아자르 같이 드리블러 하면 떠오르는 선수들과 기록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훈이었다. 비록 횟수로는 네이마르에게 약간 뒤쳐지지만, 그 차이에 비해 압도적인 성공률은 도훈이 훨씬 더 효율적인 드리블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횟수 역시도 라이프치히의 전술 특성 때문이지, 만일 도훈이 네이마르 자리에서 대신 뛰었다면 어떤 기록이 나올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데이터를 뛰어넘는 데이터도 있었으니,

촤아아-

파아앙-!

“삐익-!”

“파울로 끊어냅니다, 비첼!”

상대의 반칙을 유도하는 횟수 역시 어쩌면 드리블 성공 횟수보다도 많다는 것.

파울이 아니면 도훈을 저지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안닿았잖아요!”

태클을 한 뒤 휘슬이 불리자 억울함을 표하는 악셀 비첼.

그렇게 많은 파울을 당하면서, 도훈도 점점 꾀가 늘 수밖에 없었다.

파울 유도라든가, 애매해도 일단 넘어져 휘슬이 불리게끔 만들든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성할 것 같지 않을 정도로 달려드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심판들도 도훈이 하도 파울을 많이 당하니 애매해도 웬만하면 휘슬을 불 수밖에.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반칙만 하면 막을 수 있냐.

그것도 아니었으니.

“26골 중 프리킥 골이 6골이었습니다. 높은 비율이죠.”

“이번에도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입니다. 거리는 27미터로 약간 있지만, 이 거리에서의 무회전 킥 역시 강력한 백도훈 선수니까요.”

“우우우우-”

도훈이 마주하고 있는 골대, 그리고 그 뒤의 노란 물결.

진심을 다해 야유하는 관중들과, 거대한 깃발들을 아래 위로 흔들며 시야를 어지럽히는 관중들.

‘나 변태인가.’

도훈은 피식 웃으며 프리킥을 준비 했다.

왜 지금 이 순간이, 홈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프리킥을 준비할 때보다 짜릿한 느낌이 들까.

“삐이익-!”

타타탓-

뻐어어엉-!

큰 보폭으로 두세걸음 달려들어 인프론트로 강하게 때리는 프리킥.

무회전격이었다.

그 킥은 있는 힘껏 뛰어오른 벽의 머리를 넘어섰고,

슈우우웅-

역시나 비현실적인 궤적을 그리며 골대를 향해 날아갔지만,

타아아앙-!

골망이 흔들리는 소리 대신 울려 퍼진건 경쾌한 타격음.

“골대! 아쉽게 골 포스트를 강타합니다!”

“와아아아!”

“골대 맞추러 왔냐!”

“못 넣어~ 절대 못 넣어~”

도훈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골 킥으로 이어지자 쏟아지는 환호와 조롱들.

‘아무래도 변태가 맞나봐.’

도훈은 아쉬워하며 웃었다.

관중들이 더 크게 야유를 퍼부을 수록, 도훈은 더욱 더 골을 넣고 싶다는 의지만 타오를 뿐.

그 순간, 도훈은 오늘 골을 넣은 뒤 할 셀레브레이션 하나가 떠올랐다.

그게 재밌을 것 같았다.

“부르키 키퍼의 골 킥으로 경기가 재개됩니다.”

그 셀레브레이션, 오늘 꼭 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하는 도훈이었다.

< 낭중지추, 군계일학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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