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중지추, 군계일학 (1) >
바이에른 뮌헨, 하노버, 레버쿠젠까지.
3경기에서 7골 1도움을 기록한 도훈.
17살의 데뷔 시즌을 보내는 선수가 3경기에서 8개의 공격 포인트라니.
다른 또래의 선수들은 1군 데뷔만 해도 재능 소리를 듣는데.
도훈의 센세이션한 행보는 다른 전설적인 선수들과 같은 나이때를 비교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는, 오히려 앞서는 기록이었다.
“리오넬 메시는 17살때 바르샤 B팀에 있었습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스포르팅 CP 유스 팀에 있었죠. 네이마르 역시 산투스 FC의 유스에 있었고, 그리즈만이나 음바페 또한 유스 팀에 있던 때입니다. 뭐, 펠레같은 인물은 17살에 월드컵 우승을 했지만 그건 예외로 치죠. 그러니까, 저 나이에 1군 데뷔를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작금의 활약은 데뷔만 한 수준이 아니니 더욱 충격인 것이고요.”
그 누구도 기록한 적 없는 페이스.
출발선부터 달랐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이건 시작일 뿐이었고, 이제 3경기를 고작 치뤘을 뿐이었다.
“전무후무한 신인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운이 아니잖아요. 실력이라는 걸 모두가 봤지 않습니까.”
운이 아닌 실력이라는 건, 경기가 쌓여 나갈 수록 증명이 되었다.
뮌헨을 꺾었을 때의 그 활약이 계속해서 이어졌으니까.
도훈이 이끄는 라이프치히는 호펜하임, 헤르타 베를린, 프라이부르크를 연이어 꺾으며 무려 리그 6연승을 달려 나갔다.
도훈은 그 세 경기에서 역시나 모두 선발 출장해 4골 2도움을 기록했고, 계속해서 경험치를 먹으며 쑥쑥 커나갔다. 이제 성인 무대와 분데스리가의 템포엔 완벽히 적응한 듯 보이는 도훈이었다.
물론 도훈이 제일 큰 공을 세운 건 맞았지만, 팀이 6연승을 거뒀다는 건 도훈만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항상 좋은 인재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라이프치히답게 수비부터 중원까지 탄탄한 전력을 바탕으로, 거기에 도훈까지 더해지니 무서운 상승 기류를 타고 있는 것.
“참 훈훈한 모습입니다. 백도훈 선수가 입고 있던 셔츠를 꼬마 팬에게 벗어 주네요.”
“저 꼬마는 아마 저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저 행복한 표정 좀 보세요.”
'Can I have your shirts, Baek?' 이라는 문구를 들고 경기를 지켜봤던 꼬마팬에게 유니폼을 벗어준 뒤 사진까지 함께 찍어주는 도훈.
도훈은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선수였고,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도훈 스스로도 라이프치히에 오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연 이 연승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바이에른 뮌헨이 6연승을 했다면 그러려니 하겠으나, 라이프치히가 이렇게 치고 나가니 언제 꺾일지가 궁금해 지는군요.”
그러나 그렇게 도훈의 활약이 이어지면서, 라이프치히로서는 연승 행진이 매우 기쁘면서도 한 가지 걱정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걱정이라기 보단 욕심일까.
사실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이런 짜릿한 선수를 데리고 연승행진을 거두는 것을, 단 반 시즌만으로 끝낸다는 게 너무도 아쉽다는 건.
아예 안 먹는 게 낫지, 한 입만 먹고 말라는 건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일.
라이프치히는 도훈을 더 데리고 있고 싶었다.
제발 도훈을 완전 이적으로 데리고 와 달라는 팬들의 열화에 누구보다 답하고 싶은 게 구단이었다.
최소한 반 시즌만 더, 그러니까 이번 시즌까지 만이라도.
그러기 위해선 겨울 이적 시장때 밀란과의 대화가 원활히 이루어져야 할 터였다.
“일단은 완전 이적을 요구로 협상을 시작해야 겠지.”
가장 좋은 건 완전이적 조항을 꺼내 도훈을 완전히 라이프치히 선수로 데려오는 것.
그러나 그걸 밀란이 순순히 허락할 리는 없었다. 최소한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해 올테니.
17살에 분데스리가를 씹어 먹고 있는 지금의 백도훈이라는 선수는, 아무리 냉정하게 평가해도 유럽 최고의 유망주였다. 더 희망적으로 말한다면 이미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하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고.
이미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같은 구단들이 대놓고 관심을 표한적도 있는 상황이니, 밀란이 바보가 아니라면 적당한 금액에 백도훈을 완전히 넘길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그런 빅 클럽들이 제시할만한 금액을 상회하는 금액을 내놓거나, 아니면 적당히 임대를 연장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할 것인데.
현실적인 건 당연히 후자였다.
그것만으로도, 도훈의 잔류만으로도 라이프치히는 어쩌면 분데스리가 우승을 바라볼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우승은 모른다 해도, 최소한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은 안정적이라고 판단해도 될 정도니까.
챔스를 진출하고 진출하지 못하고의 차이는 생각보다도 컸다. 앞으로의 구단 운영에 있어서 챔스 진출은 상당히 편리함을 제공할 것이었다. 라이프치히가 노리는 게 그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밀란이 반 시즌 임대 연장에 동의할 수 있는 방법.
“자네의 협조도 필요하네.”
“제 협조요?”
“그렇지. 그게 뭐냐면..”
그 방법에 대해 이미 구단 내부 회의를 펼친 바 있는 라이프치히.
그 방법이 무엇인지, 구단주의 설명을 듣는 나겔스만 감독의 표정이 갈수록 굳어지기 시작했다.
“컨디션은 좀 어때.”
“좋습니다.”
오늘은 리그 14위 뒤셀도르프와의 경기가 있는 날.
경기 시작전 나겔스만 감독이 친근하게 도훈의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전하실 말씀이라도?”
“음.. 아냐. 기다리고 있어.”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듯 곁을 떠나지 않는 나겔스만 감독을 보며 도훈은 고개를 갸웃.
그러나 이내 나겔스만 감독은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흠.”
경기가 시작 되려는데, 벤치에 앉아 있는 도훈.
여유있는 팀과의 경기이기 때문일까, 6경기를 거의 다 풀타임 소화했던 도훈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
그러나, 무언가 고민이 있는듯한 나겔스만 감독의 표정.
있었다.
아주 큰 고민이.
“선발로 내지 말게.”
“예?”
“부상명단에 올리든가, 아니야. 그냥 벤치에 두거나 명단 제외 시켜. 언론 플레이는 내가 맡을테니, 자네는 그렇게만 해주라고.”
“구단주님, 그건..”
“방법이 없지 않은가? 이게 최선일세.”
나겔스만 감독은 구단주에게 한 가지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
그것은 바로, 도훈을 선발 출장 시키지 말라는 것.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팀은 도훈 덕분에 6연승을 기록하고 있고, 분위기는 완전히 살아나 이대로라면 무난하게 전반기 1위를 달성할 수도 있을 듯 보이는 상황이었다.
이 모든 것이 도훈 덕분인데, 그런 도훈을 선발 명단에서 뺀다는 건 당연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
그러나 라이프치히 입장에서 문제는, 도훈이 너무나 뛰어난 활약을 펼쳐보인다는 것에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전반기를 불태우는 게 중요한가, 아니면 백도훈을 후반기까지 우리 팀에 남도록 만드는 게 중요한가? 누구보다 백도훈을 팀에 남겨달라고 하는 게 자네 아닌가?”
“하지만, 그건 협상을 통해 해결할 문제지 이런 식으론..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대체 왜 포르스베리와 베르너가 팀을 떠난건지 아직도 모르고 계시는 겁니까?”
사실, 포르스베리와 베르너는 나겔스만 감독이 팀에 합류한다는 사실을 듣고 잔류를 택하려 했었다.
그러나 불협화음은 예기치 않게 구단과 선수 사이에서 일어났고, 결국 그 둘은 떠나고 말았다.
그런 일을 저질러 놓고, 또 멍청한 짓을 반복하려 하는 것인가?
구단주의 뜻은 이것이었다.
도훈을 의도적으로 선발에서 제외시키는 동시에, 대외적으론 컨디션이 떨어지고 있다는 등의 부정적인 기사들을 퍼뜨리겠다는 것.
그렇게 되면 밀란과의 겨울 협상에서 좀 더 가능성을 가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겔스만 감독이 생각하기에 이건 말도 안되는 방책이었다.
한창 잘하고 있는 선수를 경기에 내보내지 말라니?
게다가 밀란이 바보인가?
이미 무서운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 숨긴다고 숨겨지겠냐는 말이었다.
그건 선수에게도 해서는 안되는 짓이었다.
나겔스만 감독은 고뇌했다.
일단은 오늘 선발 명단에서 도훈은 제외.
구단주는 아예 교체 명단에서도 제외 시킬 것을 요구했으나, 차마 그런 선택까지는 하지 못한 나겔스만 감독이었다.
이것은 도의적인 문제였다.
도훈은 한창 기량을 성장시킬 나이의 유망주.
그런 유망주에게 가장 좋은 것은 경기에 출전시키는 것이었다.
좋은 지도자라면, 당연히 그 기회를 부여해주어야 하고.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그 기회를 박탈시키라니.
다른 이유도 아니고 그를 붙잡아두기 위해서.
아무리 팀이 중요해도, 그건 아니었다.
“어이, 뭐야? 왜 백도훈 선발로 안 나와?”
“뭐냐. 하필 오늘 쉬는거냐? 그 녀석 보러 온건데!”
도훈 없이 경기가 시작되자 불만 가득한 목소리를 터뜨리는 라이프치히의 팬들.
어쨌든 그렇게 경기는 시작 되었다.
“전반전, 어떻게 보셨습니까?”
“글쎄요. 양 팀 모두 딱히 보여준 게 없는 전반전이었습니다. 뒤셀도르프는 지지 않는 것을 목표로 나온 듯 상당히 수비적인 모습을 취했고요. 라이프치히는 경기를 주도하는 듯 했으나 이렇다할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이렇게 되면 후반전, 급해지는 건 라이프치히고 뒤셀도르프는 편하게 하던대로 할 수 있겠죠. 수비 위주로 하면서, 전반전처럼 역습을 노리는 식으로.”
도훈이 없는 전반전은 답답했다.
수비나 중원의 문제는 없었으나, 수비적으로 나오는 뒤셀도르프의 후방 라인을 깨부숴줄 번뜩이는 선수가 없었다.
그게 도훈이었는데, 오늘은 도훈이 없었으니.
그러나 후반전을 위해 선수들이 터널에서 나오는 순간,
“어?”
“나왔다! 그렇지!”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도훈이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로 뛰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가고 말지.’
시작되는 후반전을 지켜보며, 굳은 얼굴로 생각하는 나겔스만 감독.
나겔스만 감독은 결국 고뇌 끝에 도훈을 출전시켰다. 절대 출전 시키지 말라는 구단주의 말을 거역하고.
도저히 이건 말이 안되는 짓이었다.
한창 피어나야 할 꽃에 비치는 햇빛을 제 손으로 막을 수 없었다.
만일 책임을 져야 한다면, 기꺼이 질 생각이었다.
“자, 백도훈이 경기를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을까요.”
상대의 텐 백을 뚫지 못해 답답한 모습만을 보이던 라이프치히.
그러나 45분을 참은 도훈이 공을 잡는 순간, 라이프치히는 180도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보여줘라!”
45분간 뚫어내지 못한 뒤셀도르프의 텐 백이었다.
그러나,
“중앙으로 치고 들어 갑니다!”
도훈은 그 텐 백을, 처음 공을 잡은 뒤,
“세 명째 제쳐내는 백도훈!”
“슈우웃-!”
뻐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와아아아-!”
“그렇지! 이거지! 이거야!”
불과 10초만에 뚫어내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합시다, 제발.’
도훈은 미쳐 날뛰었다.
90분간 쏟아낼 힘을 45분 동안 응집시켜 분출하니, 뒤셀도르프가 아무리 걸어 잠구기만 한다고 해도 막아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도훈은 2골 1어시를 해보이며 라이프치히의 공격력을 완전히 되돌려 놓았고, 그건 벤치 멤버에 둔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실력이었다.
‘이미 이렇게 까지 했는데 숨겨 지겠습니까? 밀란 구단주도 당신같이 머리가 안 돌아가는 사람이면 모르겠다만.’
도훈을 보며 생각하는 나겔스만 감독.
“라이프치히가 7연승을 달립니다!”
낭중지추.
도훈의 실력은 이제와서 숨기려 한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었다.
“뭘 한거지? 분명히 말했을텐데.”
“경기에서 이겼습니다. 제 역할은 이겁니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어렵게 되지 않나. 붙잡기 힘들어 진다고.”
“라이프치히의 목표가 세계 최고의 클럽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겠죠.”
경기 후 구단주와의 통화.
이젠 구단이 도훈을 더 잡아주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나겔스만 감독도 이 팀에 미련이 남지 않았으니까.
팀에 부임한 지 고작 2년차지만, 그 동안 일련의 결과물들은 나겔스만 감독이 라이프치히에 정을 떼기 충분한 것들이었다.
“도훈!”
“감독님.”
드레싱 룸에서 도훈을 끌어 안아주는 나겔스만 감독.
정말 아쉽다.
이런 선수라면 언제까지나 휘하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은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할 선수였다.
< 낭중지추, 군계일학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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