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41화 (41/173)

< 분데스 열중쉬어 (2) >

“대체 이게 뭔 수련입니까?”

“두려움을 없애는 수련이다.”

“...그냥 스승님 스트레스 푸시려는 거 아닙니까?”

“너를 위한 수련이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으악!”

파아아앙-!

도훈의 얼굴 옆을 강타하는 스승님의 슈팅.

도훈은 기겁을 했다.

도훈은 지금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고, 호산은 그 앞에서 도훈을 향해 슈팅을 때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수련이란 말인가.

“말했듯이, 딱 한 번만 제대로 맞히겠다. 거기 잘 가리고 있어.”

“아니, 축구 수련을 해야지 왜 격투기 수련을 하고 있는 겁니까!”

“공을 무서워 해서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냐.”

뻐어어엉-!

슈우우웅-

파아아앙-!

“큭..!”

“눈을 뜨거라. 얼굴을 피하지 않고, 공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수련할 것이다.”

“이건 완전히 3류 구닥다리 훈련... 으악!”

후로도 수련은 한참이나 계속 되었다.

절대로 쉽지 않았다.

공은 계속해서 아슬히 얼굴을 빗나가고 있었으나, 한 번은 정말로 맞힌다 했으니 자꾸만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몇 백번이나 타격음이 동굴 안을 울렸을까.

점점 도훈은 다가오는 공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슈우우웅-

파아아앙-!

“...!”

도훈의 이마에 호산의 슈팅이 강타했다.

그러나, 도훈은 얼굴을 피하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끝까지 공을 마주하고 있을 뿐.

두려움을 이겨낸 것이었다.

“나 참. 축구 선수가 되려는 게 아니라 인간 병기가 되어가는 기분인데요.”

“호산의 축구 병기 1호로구나.”

“제가 제자가 된 걸 다행으로 아세요. 저니까 버티는 겁니다.”

“다른 도사들도 제자 키울 때 이 정도는 하는 것 같던데..”

그러나 수련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보이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수련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수련으로 이어졌다.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두려움은 다시 살아났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암굴에서 공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도 명상이 끊기지 않을 때까지 수련하고, 보이지 않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며 드리블을 했다.

드리블을 하다가도 스승님이 찬 공에 맞고 넘어지기도 했고.

그 기분은, 마치 머리부터 발 끝까지 검은 옷을 입은 채 어두컴컴한 고속도로 한 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것도 결국은 수련이 되었다.

도훈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왜 이런 수련을 하는 지 아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네가 암굴에서 느낀 그 기분이,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느끼는 기분과 비슷할거다. 언제 어디서 태클이 날아들지 모르고, 어디서 팔꿈치가 날아들지 모른다. 열한 명의 상대 모두가 너 하나만을 넘어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는 그걸 뚫고 자신의 플레이를 펼쳐 보여야 하지. 그게 가능하려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그걸 오히려 역이용할 수 있는 경지까지 올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젠 웬만큼 위협적인 플레이로는 도훈을 겁 먹게 할 수는 없었다.

도훈이 겁을 집어 먹도록 만든 건 스승님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라스 벤더나 레버쿠젠 선수들이 아무리 달려 들어도 도훈이 눈 하나 깜짝할까.

“골문까지의 거리는 32미터입니다.”

32미터면, 직접 프리킥도 가능은 하나 꽤나 거리가 있는 위치.

“때려봐도 될까요.”

“마음대로 해. 믿는다.”

비슷한 상황에서 준비해 둔 세트피스 전술은 있었다.

하지만, 도훈은 슈팅을 때려보겠다는 의견을 내비쳤고 동료들도 킥을 도훈에게 맡겼다.

이젠 역으로 위협을 줄 차례였다.

거리에 상관없이, 함부로 반칙을 해 프리킥을 줬다간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 만한 위협을.

“삐이익-!”

휘슬이 울리고 성큼성큼 달려드는 도훈.

그리고,

‘무회전격.’

뻐어어엉-!

오른발이 불을 뿜었다.

슈우우웅-

공은 진작에 수비벽을 넘어 날아가기 시작했고,

“어어, 자기야!”

“걱정 마, 내가 막아줄게!”

골대 뒷 편에 자리하고 있던 관중들이 겁을 먹을 정도로 높게 날아갔다.

그러나,

부우우웅-!

하늘로 날아가는 듯 하던 공이 곧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골대를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공에 회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들어 올리듯 임팩트를 준 킥 방법 때문에 그려지는 뚝 떨어지는 궤적.

이것이 반칙을 불사하고서라도 기강을 잡으려는 레버쿠젠에게 보내는 도훈의 대답이었다.

슈우우웅-

“어어..!”

급작스럽게 뚝 떨어지는 공에 모두가 설마한 순간.

철썩-!

도훈이 찬 32미터짜리 무회전 프리킥이 토마호크 미사일처럼 레버쿠젠의 골망에 꽂혀 버렸다.

“와아아앗-!”

일순간 터져 나오는 함성.

레드불 아레나의 관중들이 벌떡 일어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봤어? 봤냐고!”

“이거지! 돈내고 경기장 온 보람이 있구나!”

흥분하는 관중들.

믿기 힘든 궤적의 멋진 프리킥이 눈 앞에서 꽂혀 버리니 그럴 수밖에.

또한 이 대부분의 관중들이 바로 이런 도훈의 멋진 플레이를 보러 온 것이었기 때문에 그 흥분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프리킥이 나오다니요~! 대단한 킥력입니다, 백도훈!"

킥의 특성상 도박인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처럼 먹혔을 땐 이만한 킥도 없었다.

코너 플래그를 향해 달리는 도훈.

그리고,

촤아아아-

"예에에-!"

홈 팬들 앞에서 무릎 슬라이딩을 하며 포효했다.

자신의 플레이에 함성을 보내주는 것에 대한 감사.

“믿는다 했지?”

“하하, 감사합니다.”

도훈의 머리를 쓰다듬는 동료들.

사실, 지나치게 거친 상대의 플레이에 다음 번부터는 그들도 참지 않을 생각이었던 라이프치히 선수들이었다.

감히 우리 에이스를 저렇게 건드리는데 동료들이 가만히 있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당사자인 도훈이 아무런 어필을 하지 않으니 동료들도 일단은 참았던 것.

‘제일 좋은 복수는 이거지.’

그러나 도훈은 똑같이 맞서는 대신 도훈만의 방법으로 복수를 해버렸다.

허탈한 듯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는 라스 벤더와 레버쿠젠의 선수들을 보며, 도훈은 웃으며 관중석을 향해 두 팔을 들어 보였다.

“네가 최고다!”

“한 골 더! 아니, 두 골 더 넣자!”

초장에 기를 꺾어 놓으려던 레버쿠젠.

그러나, 기가 산 건 오히려 도훈과 라이프치히 쪽이었다.

그 프리킥 골 이후, 레버쿠젠은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라스 벤더는 이미 경고 한 장을 받은 상태이고, 다른 선수들이 협력을 한다고 해도 쉽사리 반칙에 가까운 거친 플레이를 하긴 쉽지 않았다.

애초에 반칙을 하면서까지 거친 플레이를 하려던 의도가 무색해졌거니와, 반칙을 한다면 또 다시 위험한 상황이 되버릴 수 있기 때문에.

도훈의 킥 능력은 이미 봤듯이 무시무시했다.

그런 킥력을 가진 키커가 있는데, 거리가 어떻든 프리킥 찬스를 주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 없는 일이었으니.

결국.

뮌헨이 하지 못한 도훈의 기강을 잡아주겠다며 당당히 나선 레버쿠젠은, 뮌헨의 전철을 밟게 되었다.

한 마디로, 도훈이 날뛰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백도훈! 그러나 빠르게 좁혀 들어 옵니다, 레버쿠젠!”

물론 여전히 도훈을 집중 견제하는 전술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몸으로 몸을 막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레버쿠젠의 수비수들은, 그렇기에 도훈과 공을 놓고 경합을 벌여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도훈을 막을 수 있는 선수는 레버쿠젠에 없었다.

개개인이 아니라, 두세 명이 합심한다고 해도.

“둘러 싸입니다!”

도훈이 중앙에서 공을 잡자 라스 벤더를 포함한 세 명이 순식간에 포위망을 좁혀 왔다.

그러나, 확실히 공을 잡기 무섭게 부딪혀 오던 초반보다는 훨씬 여유가 느껴지는 도훈.

그 조금의 여유만으로도 도훈은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스르륵-!

세 명의 사이에서, 도훈이 공을 퍼올렸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그 사이를 빠져 나오기 위한 것처럼.

그러나 아니었다.

그 찰나에 이미 도훈은 뒤로 돌아 들어가고 있던 마테우스 쿤하를 보고 있었으니.

“좋은 연결 입니다!”

“저런 침착함과 시야가 있을 수 있나요!”

마치 전지적인 시점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듯 패스를 뿌린 도훈의 패스에 터져 나오는 탄성.

이미 도훈에게 세 명이 따라 붙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도 도훈은 패스를 해냈고, 다른 곳에서 인원 공백이 생긴 것은 당연했다.

도훈이 그렇게까지 해줬으니, 동료들도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뻐어어엉-!

“쿤하의 슈웃-!”

슈우우웅-

철썩-!

“들어 갔습니다! 전반 21분, 2대0으로 앞서가는 라이프치히!”

도훈의 어시스트에 이은 마테우스 쿤하의 추가골.

다시 한 번 들썩이는 레드불 아레나.

“...하아.”

또 다시 실점하는 순간, 라스 벤더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을 지나치며 동료의 골을 축하하기 위해 달려가는 도훈.

라스 벤더는 도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명언이 생각나는 순간.

철저히 준비 해왔던 레버쿠젠마저 도훈을 봉쇄해내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진퇴양난.

두 번째 실점 이후 레버쿠젠은 어쩔 수 없이 공격적인 스탠스로 전술을 변경했다.

지고 있는 상황이고, 수비적으로 나간다 해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그러나 이미 수비적인 전술 위주로 경기를 준비해 왔기 때문에, 갑자기 전술을 바꾼다고 공격이 잘 풀릴 리가 없었다.

그저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 되어 버렸을 뿐이랄까.

그런 레버쿠젠의 변화는 도리어 도훈에게 더 큰 공간을 내주는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고,

“세 번째 골입니다! 라이프치히! 이번 시즌, 정말 강합니다!”

“이러다 사고 한 번 치는 거 아닌가 싶네요.”

후반전 터진 우파메카노의 헤딩 쐐기골까지 더해져, 결국 레버쿠젠은 0대3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라이프치히의 리그 3연승이었다.

“오늘 경기의 시사점도 나름 큰 것 같습니다. 뮌헨이 그저 공격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다 백도훈에게 불의의 일격을 내준 느낌이었다면, 레버쿠젠은 그런 백도훈을 봉쇄하기 위해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왔었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봉쇄하지 못하고 결국 자멸했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결국은 백도훈이 활약하니까 상대하는 팀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파지겠네요.”

“골치가 정말 아파지죠. 앞으로 라이프치히를 상대하는 팀들은 긴장이 될 것 같습니다. 과연, 백도훈을 위시로 한 이 막강한 공격력을 어떠한 방법으로 파훼할 것인가? 분데스리가 팀들의 숙제가 되겠네요.”

도훈의 등장 하나 때문에 전 분데스리가의 팀들이 고민해야 하는 시점까지 오고야 말았다.

아직 팀 간의 체급이 다르긴 하지만, 과거 메시를 위시로 한 바르셀로나를 어떻게 파훼해야 하는 것인지가 전 유럽의 숙제였던 때처럼.

“걱정했는데 고맙다! 우리 팀에 와줘서!”

“임대 말고 진짜 우리 팀의 일원이 되어주라!”

경기가 끝난 후 도훈에게 쏟아지는 홈 팬들의 찬사.

비록 분데스리가의 골칫거리가 되었지만, 라이프치히의 팬들에겐 더 없는 보배가 된 도훈이었다.

ㆍㆍㆍ

“이거 뭐 겨울옷 주머니에서 비상금을 발견한 기분이군.”

밀란의 감독실.

가투소 감독과 구단주가 꽤나 기분 좋은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나 대화의 주제는 최근 활약이 무서운 도훈에 대한 것.

당연하게도 시장이 평가하는 도훈의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다.

이미 올림픽이 끝난 이후로, 그 전에 비해 천정부지로 오른 몸값이었지만 지금은 달을 향해 쏘고 있는 수준이었으니.

당연히 소유주인 밀란으로썬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라이프치히에 넘기기엔 아깝지?”

“당연한 소릴 합니까.”

겨울 이적시장때 다시 한 번 협상을 가질 권리가 있는 밀란.

반 시즌을 그 곳에서 더 보내게 할 수도 있고, 곧바로 데려와 써먹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밑지는 장사는 아닌 밀란이었다.

다만.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었다.

밀란의 구단주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현재 AC밀란이라는 팀이 가지는 무게감이나, 재정 상황을 봐도 그렇고.

현실적으로 백도훈이라는 선수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게 구단주의 판단.

도훈의 가능성을 무한하게 생각하고 있는 가투소 감독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함께하며 다시 밀란의 부흥을 이끌어주면 좋겠지만, 결국 압도적인 돈으로 무장한 팀들이 유럽에 즐비한 이상 백도훈은 그 거대한 클럽으로 둥지를 옮길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준비해야 하는 건 하나였다.

“이 귀한 물건을 어떻게 넘겨야 잘 넘겼다고 소문이 날까.”

보물을 넘겨주는 대가로, 챙길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을 챙기는 것.

그 뿐이었다.

< 분데스 열중쉬어 (2) > 끝

ⓒ 한명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