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39화 (39/173)

< 카이저 (4) >

‘패스해라.’

어차피 공격과 수비가 동수인, 공격이 유리한 입장.

수비로선 도박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여러 경우의 수 중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택지에.

그 판단이 바로 폴센과 도훈 사이에서 패스를 끊어내는 것.

‘신인이잖아.’

훔멜스는 도훈이 패스를 할 것이라고 봤다.

그래도 신인이니까.

그래도 데뷔전이니까 혼자서 끝까지 마무리 짓기보단, 패스를 내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분명히 패스라고 이건.

판단은 끝났다.

그 과정은 길었지만, 실제론 1초도 안되어 본능적으로 내려진 판단.

폴센과 도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두발자국 정도 더 갔을 때 훔멜스는 다리를 멈췄다.

그러나,

“한 번 더 치고 들어갑니다!”

훔멜스의 바람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도훈이 누구인가.

여태껏 모두 도훈을 상식적인 시선으로 생각하려 들었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실패했다.

왜?

도훈은 상식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100년동안 동굴 안에서 수련을 해온 사람이 어떻게 상식적일 수 있나.

도훈은 패스를 하는 대신, 중앙을 향해 한 번 더 치고 들어갔고,

뻐어어엉-!

“슈우웃-!”

그대로 오른발 슈팅을 때렸다.

쿠당탕!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며 체중을 실어 때린 공.

자연스럽게 도훈은 붕 떴다가 넘어지며 바닥을 뒹굴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켜 골문을 바라봤을 때,

또 한 번 경기장은 적막에 휘감겨 있었다.

철썩-!

“골입니다, 골! 두 번째 골이 라이프치히 쪽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또 한 번의 역습을 골로 만들어내는 백도훈입니다! 엄청난 사건이 터졌습니다!”

체중이 실린 호쾌한 슈팅은 골문 구석에 빨려 들어가 있었고, 노이어는 이번에도 제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도훈의 완벽한 두 번째 골.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나이스!”

“정말 대단한데!”

“미쳤어, 미쳤다고 너!”

이번에도 역시 동료들이 몰려 들어 도훈을 감쌌고, 도훈은 머리를 쓰다듬는 손들에 정신이 없었다.

흥분을 넘어 광분하는 동료들.

그리고 벤치.

“아, 하하.”

그러나 정작 도훈은 담담했고, 여전히 침착했다.

넣을 수 있는 골을 넣었을 뿐이었다.

아니, 솔직히 김이 새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분명히 상대는 세계 최고 레벨이라고 하였거늘.

쉬웠다.

“나이스!”

“감사합니다.”

폴센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도훈.

하지만.

그런 김새는 느낌과는 별개로 기쁜 건 사실이었다.

“2대0, 라이프치히가 완벽하게 앞서가기 시작합니다!”

어쨌든 게임은 예상과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삑, 삐이익-!”

폭풍 같았던 전반전은 그대로 끝이 났다.

“45분 중 40분을 가드 위를 때리는데 힘을 뺀 뮌헨과, 머리끝까지 가드를 올리다 단 두 번의 펀치로 두 번의 다운을 빼앗아낸 라이프치히. 전반전은 그렇게 설명할 수 있겠네요.”

전반이 끝난 뒤 양 팀 드레싱 룸의 분위기는 정반대.

뮌헨은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다급한 감독의 지시를 듣느라 정신이 없었고, 라이프치히는 할 수 있다는 파이팅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넌 정말 보물이야, 보물!”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도훈이 있었다.

나겔스만 감독부터 해서, 동료들이 도훈을 물고 빠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혼자서 뮌헨을 상대로 전반에만 두 골을 넣어 버렸는데.

이들에겐 도훈이 완전히 구세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17살의 어린 소년이 아니라.

“하지만 끝난 건 아니잖아요.”

그러나 도훈은 들뜬 그들과 달리 침착했다.

그 모습에 또 한 번 감탄하는 동료들.

그 모습은 정말로 17살이 아니었다.

“그래, 끝난 게 아니지. 후반전, 전반전처럼만 가보자! 목숨 걸고 버텨내보자고. 단순히 오늘 경기의 결과만을 위해서가 아니야. 이번 시즌이 오늘 경기에 달려 있다!”

“예!”“가자!”

승리를 위해선 아직 절반이 남아있다.

그 절반을 지켜내기 위해 파이팅을 외치는 나겔스만 감독과 선수들.

도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끝난 게 아니라는 도훈의 말 뜻은 조금 다른 의미였지만.

‘아직 더 넣을 수 있다고.’

도훈이 말한 끝은, 자신의 골 퍼레이드를 말하는 것이었다.

“후반전 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음, 뮌헨에 교체 선수가 있군요. 니클라스 쥘레가 빠지고 루카스 마이가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쥘레가 백도훈과 1대1에서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였거든요. 백도훈이라는 신성이 뮌헨의 수비까지 바꿔버렸습니다.”

전반전, 뮌헨이 공격을 제대로 허용한 건 딱 두 번뿐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그 두 번의 공격 중 두 번 모두를 도훈에게 패배해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 니클라스 쥘레였다.

그 두 번의 패배만으로 쥘레는 교체를 당해야했던 것.

뮌헨의 굳은 신뢰를 받고 있는 그 쥘레가.

도훈의 영향력은 그 정도였다.

“두 점입니다. 물론 뮌헨의 공격력을 본다면 두 점이야 아직도 사정권 안입니다만, 오늘 라이프치히의 조직력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뮌헨이 첫 경기부터 승리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시작되는 후반전.

전반과 다를 건 없었다.

뮌헨이 반코트로 가둬놓고 패는 양상.

그러나 분명히 다른 점도 있긴 했다.

“쥘레 대신 들어간 루카스 마이의 위치를 보세요. 철저히 역습에 대비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알라바 역시 오버래핑을 깊게 올라가기 보단 뒤에서 머무르고 있고요.”

“폴센과 백도훈의 역습을 경계하는군요.”

“예. 정확히는 백도훈을 경계하는거죠.”

2점을 뒤지면서도 뒷문을 대비할 방도를 세워둔 뮌헨.

물론 공격적인 전술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 정도만 해도 뮌헨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경계 자세.

도훈을 인정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세계최고의 팀답긴 하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하는 도훈.

확실히 대처가 세계최고를 자부하는 팀답긴 했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자부가 없었다면, 고작 수비 둘 정도를 뒤에 세워두는 것으로 대비를 마치지는 않았을텐데.

최고라는 자존심만 없었다면, 아직도 이렇게 허술하게 자신에게 공간을 내주지는 않았을텐데.

역시나 아직 정신을 덜 차렸어. 아직도 이 경기를 이길 생각이란 말이지.

한 골 정돈 더 쳐박아줘야 제대로 수비를 세우려나, 하는 생각으로 도훈은 다시 하프라인 근처를 어슬렁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뮌헨은 뮌헨이었다.

지난 해부터 확실히 포텐을 만개시킨 킹슬리 코망과 헤나투 산체스가 활발히 휘젓는 사이드는 수차례 빈틈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뮌헨에서 첫 경기를 갖는 베르너 역시 호시탐탐 친정팀의 골문을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후반 12분,

“코망, 뒤로 내주고. 로드리게스, 슛! 골, 골입니다. 하메스 로드리게스!”

“침착하게 잘 마무리 했네요. 한 점 따라가죠. 이러면 모르는 거에요. 시간은 많습니다.”

왼쪽을 허물고 박스 안까지 치고 들어간 코망이 깔끔하게 컷 백을 내줬고,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공을 들고 하프라인으로 뛰어가는 뮌헨 선수들.

이제 점수는 1대2.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점수차였다.

다른 팀도 아니고, 바이에른 뮌헨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뀔 겁니다.”

해설자의 말대로, 라이프치히 선수들은 확실히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

집중력은 좋았다.

끝까지 지켜내겠단 생각으로 수비에 임했고.

하지만 실점했다.

방심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지만 실점을 막을 수 없었던 것.

상대의 공격력은 마음가짐 따위만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때문에 오히려 쫓기는 입장이 되어버리는 라이프치히.

“흔들립니다. 라이프치히의 수비 간격이 조금씩 흐뜨러지고 있어요.”

“완전히 동점골 흐름인데요. 뮌헨은 이 기회를 놓쳐선 안되겠죠.”

축구엔 흐름이란 게 있다.

어느 팀이 경기를 하더라도 90분간을 같은 흐름으로 이어갈 수는 없다.

똑같이 90분을 몰아 붙이더라도 골이 나오는 건 10분간일 수도 있고.

지금이 그랬다.

조금의 흔들림이 라이프치히의 수비 간격을 스스로 흩뜨려 놓았고, 뮌헨은 다시금 되찾은 감각으로 그 틈을 비집으려 했다.

템포가 빨라지고 있었다.

확실히,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올림픽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템포가 빨랐다.

이 템포를 역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완전히 기세를 올립니다, 뮌헨!”

“라이프치히가 이 시간대를 버텨낼 수 있을지.”

뮌헨이 동점을 위해 기세를 올리는 지금.

뒷문을 지키라는 명을 받았던 루카스 마이마저 흐름에 취해 몇 발자국 앞으로 나온 지금.

“베르너, 슈웃! 그러나 잡아냅니다, 굴라시. 골키퍼 정면!”

“바로 가야죠.”

뻐어어엉-!

잡은 공을 곧바로 전방으로 차내는 굴라시.

그 방향은 역시나 도훈에게.

‘높다.’

그러나 좋은 킥은 아니었다.

빠르게 역습으로 나가기 위함이었다면 낮고 빠르게 차야 했다.

하지만 굴라시의 킥은 높았고, 체공 시간이 길었다.

때문에 도훈은 낙구지점에 서서 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 틈에 마이가 충분히 붙어오고 있었다.

‘높이 싸움은..’

높이 싸움은 답이 없었다.

상대인 마이는 도훈보다 거의 20센티미터가 더 큰 체격의 소유자.

헤딩으로는 공을 따낼 수 없다. 허공답보라도 깨우치지 않은 이상.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잔꾀밖에 더 있겠나.

“흐읍..!”

도훈은 바짝 자세를 낮췄다.

점프를 하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는 뜻.

그 모습을 보며 따라붙은 마이 역시 점프를 위해 몸을 웅크렸고, 공을 향해 뛰어 올랐다.

마이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공중에 몸이 뜬 뒤였다.

“...!”

타타탓-!

점프할 듯 웅크렸던 도훈이 점프를 하지 않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페이크였다.

사실 정확한 낙구지점은 도훈이 서 있던 곳이 아니라, 더 뒤였던 것.

그러나 도훈이 점프를 할 듯 모션을 취하자 도훈에게 시선을 두고 있던 마이가 공을 끊어내기 위해 그 자리에 앞서 점프를 했던 것이었다.

슈우웅-

공은 마이의 머리 위를 지나쳐 떨어졌고,

파아앙-!

도훈은 그 공을 부드럽게 끌어당겨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엉망이구만.’

그 모습을 보며 분노하는 노이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수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오늘 경기 결과가 어찌되든 시합이 끝나면 수비수들을 불러놓고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노이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일단 이걸 막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할 말이 있을테니.

“훔멜스가 따라 잡을 수 있나요!”

“늦어요! 백도훈이 워낙에 빠릅니다!”

순식간에 박스까지 도달하는 도훈.

뒤따라 커버를 들어오는 훔멜스는 다섯 보폭이나 뒤쳐져 있는 상황.

“노이어, 나옵니다!”

완벽한 1대1 찬스.

노이어가 거대한 몸을 이끌고 뛰쳐 나왔다.

무방비로 노출된 슈팅 각도를 줄여보기 위함.

보통의 선수라면 그 위압감에 머리가 하얘질 상황에서,

도훈은 너무도 침착했다.

오늘 유령신보 2성을 써먹으려고 기대하고 있었건만, 필요도 없어 보였다.

파아앙-!

“슛..!”

도훈은 가볍게 공의 밑둥을 찍어 찼다.

슈우웅-

그 공은 뛰쳐 나오던 노이어의 키를 유유히 넘겼고,

퉁-!

출렁-!

골대 앞에서 한 번 튕기며 골망에 사뿐히 안겼다.

“너무도 침착한 피니시..!”

“골, 완벽한 골입니다.. 노이어를 농락하는 백도훈! 헤트트릭입니다!”

도훈의 헤트트릭이 작렬하는 순간이었고,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알리안츠 아레나의 참사였다.

“삑, 삐익, 삐이익-!”

“경기 이대로 종료됩니다! 충격적인 결과입니다. 올 시즌 최대의 이변이 아닐까 싶은데요. 라이프치히가 바이에른 뮌헨을 3대2로 격파했습니다!”

도훈의 세 번째 득점은 뮌헨의 멘탈을 파괴하는 동시에 흐름을 완전히 절단내는 골이었다.

그나마 종료 직전 세트피스에서 한 방을 얻어맞긴 했으나, 그건 운이 나빴을 뿐.

결국 3대2, 라이프치히가 뮌헨에게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오늘은 아마도 역사의 날이 아닐까 싶은데요. 바로 17살의 소년, 오늘이 데뷔전인 선수가 뮌헨을 상대로 헤트트릭을 해보였으니까요. 그것도, 말도 안되는 개인능력으로 말이죠. 아, 이 선수 제가 볼 땐 올 시즌 가장 핫한 선수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나 라이프치히의 승리 자체보다 사람들이 놀란 건 역시나 도훈의 활약.

이 보다 충격적인 데뷔전 임팩트는 아마 역사상으로도 몇 되지 않을 것이었으니.

“도훈아!”

“멋지다! 넌 우리의 보물이야!”

한 경기만에, 모두의 마음을 빼앗아 버렸다.

분데스리가의 카이저, 바이에른 뮌헨이 도훈 앞에서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도훈의 분데스리가 점령기는.

< 카이저 (4)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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