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38화 (38/173)

< 카이저 (3) >

“빠, 빠릅니다!”

도훈이 달릴 수록 해설자의 흥분은 더욱 심해졌다.

휑한 뮌헨의 오른쪽 사이드.

공격에 집중하던 뮌헨의 진영은 빈 틈이 크게 노출된 모습.

그 사이드를 향해 공을 길게 차놓고 달리는 도훈.

그 스피드는,

“...”

순간 수만 명이나 되는 뮌헨팬들이 숨을 죽이도록 만들기 충분했다.

“나가서 막아!”

팔을 들며 수비수들에게 외치는 뮌헨의 수문장 노이어.

노이어의 불호령에 박스에서 뛰쳐 나가는 니클라스 쥘레.

‘거인..’

자신에게 달려오는 쥘레를 바라보며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2미터에 가까운 키에 무서운 얼굴을 한 인간병기가 성큼성큼 달려오고 있었으니.

“1대1 해볼 수 있나요? 과감하게!”

박스 왼쪽에서 먼저 자리를 잡는 쥘레.

애초에 도훈은 단번에 치고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워낙 쥘레의 중압감이 거대해 속도를 줄이며 각을 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달랐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이것은 성인 프로무대의 리그 경기이고, 상대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중 하나.

그런 선수가 전력을 다해 막으려들 것이었다.

게다가 수만 명의 적이 자빠지라고 저주를 퍼부으며 지켜보고 있다.

“데뷔전의 신인이 뚫어낼 수 있을까요! 상대는 쥘레입니다!”

툭툭 치고 들어가며 쥘레와 정면으로 맞서는 도훈.

워낙 거대한 체구 덕분에 보이지 않는 빈틈.

하지만, 그건 지금처럼 밸런스가 유지될 때의 이야기.

‘어디 좀 흩뜨려볼까.’

쉬이익-

상체 흔들며 페인팅을 주는 도훈.

“...”

하지만 수비 기계처럼 생긴 거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정도 페인팅으론 움직여줄 생각이 없다는 듯.

‘고작 이 정도론 못 움직여 주시겠다?’

과연.

쥘레가 보여주는 안정감에 도훈은 웃어주고 싶었다.

좋은 상대다.

그래. 이 정돈 돼야지.

이 정돈 돼야 초식을 쓸 맛이 나지.

이런 상대는, 초장에 기선을 제압해 놔야 한다.

도훈은 이 대목에서 고민 없이 기를 발산 시켰다.

‘지주신보.’

도훈의 다리가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걸 마주한 쥘레는, 지금껏 굳건하던 모습과 다르게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난생 처음보는 광경이었으니.

다리가, 다리가 8개였다.

이게 무슨

반면,

‘다리가 멈췄다.’

도훈의 다리가 휘몰아칠 수록 쥘레의 다리는 멈추는 게 도훈의 눈에 포착 되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굳어버린 것일테지.

도훈은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끼고,

파아앙-

바깥발로 공을 툭 차며 쥘레의 오른쪽으로 파고 들었다.

“어엇!”

“뚫립니다!”

간단했다.

아니, 지주신보까지 썼으니 간단한 건 아닐지도.

어쨌든 지주신보에 꼼짝없이 돌파를 허용한 쥘레 덕에 박스 안까지 침투하는데 성공하는 도훈.

“...”

그리고 도훈은 뮌헨의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와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노이어까지 뚫어낼 수 있을까요!”

마누엘 노이어.

올해 만으로 서른셋.

어느덧 노장의 반열에 든 그지만, 여전히 명성은 세계최고.

어느 공격수라고 해도 그와 정면으로 마주한다면 생각이 많아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최고의 골키퍼였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도훈은 오히려 측은한 눈빛으로 노이어를 바라 보았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과 붙었을 때, 급한 나머지 하프라인까지 나왔다가 공을 빼앗겼던 때가 시작이었을까.

‘빈 틈이 너무 많잖아..’

도훈의 눈에 지금의 노이어는, 그래도 지금까지 상대해 본 골키퍼들 중엔 단연 거대한 위압감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의 최고라는 명성에 비해선 너무나 초라했다.

도훈은 오른발로 공을 툭 밀며 골대 왼쪽 상단을 바라 보았다.

그 곳은 노이어가 노출하고 있는 여러 빈 공간 중 하나였다.

다른 선수라면 그 찰나의 상황에 캐치할 수 없는 정도였을 뿐이지만, 도훈에겐 아니었다.

“슈우웃-!”

뻐어어엉-!

슈팅과 함께 도훈의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슈팅 역시 오른발이었다.

앞발이었던 오른발 아웃프런트킥.

골키퍼 입장에선 가늠할 수 없는 한 박자 빠른 슈팅이었고, 그나마도 슈팅은 멋진 궤적을 그리며 노이어의 손아귀를 지나쳤다.

그리고,

슈우우웅-

철썩-!

“고, 골!”

“골입니다 골! 들어갔습니다! 백도훈이 먼저 뮌헨의 골문을 열어 젖혔습니다! 환상적인 골!”

침을 튀기며 흥분하는 해설자들의 목소리와 반대로, 뮌헨의 관중석이 싸늘하게 식는 순간이었다.

“...”

예상은 했어도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수만 명이 자신을 죽일듯한 눈으로 노려다보는 그 상황은.

하지만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모두 두 눈으로 똑똑히 방금의 장면을 봤다는 것이었으니.

“와아아아-!”

“사고를 치는구나!”

도훈에게 달려드는 동료들.

믿을 수 없는 데뷔골.

아니, 믿을 수 있는 데뷔골.

“됐어!”

“정말 대단해!”

벤치의 코칭스태프와 나겔스만 감독 역시 온 몸에 흐르는 전율을 감출 수 없었다.

“역시 해내는 구나! 이렇게 빨리!”

마치 리그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포효하는 나겔스만 감독.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 뮌헨 상대로 전반 13분만에 선제골이라는 결과를 보여주다니.

“라이프치히가 오늘 데뷔전을 갖는 17살의 소년, 백도훈의 골로 1대0 앞서 갑니다!”

도훈은 정말 보물이 아닐 수 없었다.

“젠장.”

“다시 제대로 해.”

골망에 걸린 공을 뻥 차내는 노이어.

완벽히 골 찬스를 허용한 주범인 쥘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보가 없었다.

상대는 17살의 신인 선수.

주목할만한 유망주라는 소리를 듣긴 했으나 코치가 해주는 말을 한 귀로 흘렸던 게 사실이었다.

실수였다.

정작 쥘레 본인도 17살때 1군에 데뷔 했으면서, 그 때 자신도 자신을 무시하던 상대를 모조리 깔아 뭉갰으면서, 상대가 17살짜리 애송이라고 무시를 했으니 실수였다.

그래, 방금의 그건 실수, 실수일 뿐이다.

쥘레는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잊어 버리지 않으면, 자괴감 때문에 다음 플레이가 될 것 같지 않았으니까.

“Scheiße drauf..!”

하지만, 방금의 그 드리블은 대체 뭐란 말인가.

쥘레는 욕설을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 라이프치히의 선제 득점으로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는데요. 라이프치히가 먼저 앞서 갑니다.”

“하지만 뮌헨으로썬 어차피 오늘 대량 득점을 목표로 공격적인 전술이었으니, 차라리 다행입니다. 뮌헨에게 1점 차이를 뒤집는 건 일도 아니죠.”

실점 직후, 뮌헨의 공세는 당연히 더욱 거세졌고 라이프치히는 득점 이전보다 더욱 격렬히 저항해야만 했다.

복수를 위한 뮌헨의 공세는 거셌다.

그래도,

“나이스!”

“좋아! 잘 막고 있어!”

선제골로 라이프치히의 사기는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선수들의 눈이 이글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으니 기세가 사는 건 당연했다.

뮌헨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해 준 그 소년이 정말로 골까지 터뜨려 줬으니.

“무슨 외계인이냐..?”

도훈과 함께 했던 훈련.

그 훈련에서 선수들은 믿을 수 없는 장면을 수 차례나 목격했다.

단순히 실력만 놓고 본다면, 분데스리가에서 상대했던 그 어떤 선수들보다도 완성되어 있었다.

아니, 상상 이상.

어떤 레벨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방금.

그 소년은 뮌헨을 상대로 스스로 보여주고야 말았다.

그 믿을 수 없는 골로 라이프치히의 동료들에게 선사했던 충격을 분데스리가에 선사한 것이었다.

그 파장은 라이프치히의 선수들로 하여금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단순한 한 골이 아니었다.

“뒤로 내주는 코망. 여의치 않습니다.”

“지금 수비 간격이 굉장히 촘촘하고 좋은데요. 완전히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열이 워낙 잘 갖춰져 있어서 뚫어내기 쉽지 않아 보이네요.”

활로를 찾아보려 하지만 예상보다 더욱 단단한 라이프치히의 수비.

결국 최후방까지 되돌아오는 공.

뮌헨의 후방 플레이메이커인 마츠 훔멜스가 공을 잡은 뒤 전방을 살폈다.

‘눈들이..’

훔멜스의 시야에 들어오는 상대의 눈빛들.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이 느낌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토록 이글거리는 눈빛도 오랜만.

지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느껴지는 듯.

이런 눈을 한 상대는 결코 이기기 쉽지 않다는 걸, 훔멜스는 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겨야 한다.

저 단단해 보이는 수비를 뚫어내기 위해선, 자신의 발이 창의력을 뿜어내야 했다.

그렇게 훔멜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

“강하게 붙어 줘야죠. 편하게 공을 잡고 있도록 놔주면 안돼요. 그렇죠!”

도훈이 달려 들었다.

어떻게든 수비의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패스를 넣어야 했던 훔멜스가 가까이가 아닌 먼 쪽에 시선을 두고 있을 때였다.

그 잠깐의 순간.

그 잠깐을 찌르는 도훈의 속도는 전광석화.

파아앙-!

“빼앗았습니다!”

인기척을 느낀 순간 훔멜스는 공을 뒤로 접어보려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미 도훈의 발이 공을 건드린 상태였고, 먹이를 낚아챈 도훈이 재빨리 날개를 펼치며 달아나려 했다.

“크윽..!”

“삐익-!”

그러나 이내 멈춰버리는 도훈.

그리고 울린 휘슬.

“경고죠. 완전히 뒤에서 잡았어요.”

반칙이었다.

훔멜스에게 주어지는 옐로카드.

다른 수가 없었던 훔멜스가 도훈의 유니폼을 노골적으로 잡아 당겼던 것.

지능적이면서도 어쩔 수 없는 반칙.

“이야. 오늘 데뷔전인 선수의 존재감이 대단한데요. 뮌헨이라는 거인을 저 작은 소년이 정신 못차리게 하고 있습니다.”

훔멜스 마저 반칙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도훈.

그러나 훔멜스가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파아앙-!

“바로 전개합니다!”

도훈은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프리킥을 짧게 내준 뒤 전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욕설을 뱉으며 뒤따라 달리는 훔멜스.

훔멜스가 빌드업에 관여하는 동안, 그 뒤를 지키고 있는 건 쥘레뿐이었다.

파아앙-!

“폴센이 다시 내줍니다!”

프리킥을 건네 받았던 폴센이 스루 패스를 찔러 넣었다.

순식간에 뮌헨의 넓은 왼쪽 사이드를 향해 주인 없이 흘러가는 공.

그 패스를 향해 도훈이 질주했다.

거리만 본다면 박스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쥘레가 먼저 처리할 수도 있는 공이었다.

“...”

그러나 쥘레는 나가려다 나가지 못했다.

자신의 속도와 달려들고 있는 저 녀석의 속도.

비교해봤을 때 승리는 녀석이었으니까.

쥘레는 느린 선수가 아니었다. 거대한 덩치 치고는 무서운 속도를 가졌다고 보는 게 맞을 정도.

그러나, 기선 제압.

도훈이 첫 대결부터 지주신보를 쏟아부은 건 이런 효과도 있기 때문이었다.

잡을 수 있을만한 공도 포기하게 만드는.

쥘레는 붙어 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하고 말았으니까.

어쨌든 쥘레는 공의 소유권은 주더라도 자신은 박스 안을 지키고 있는게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것도 틀린 판단은 아니긴 했다.

일단 시간만 지연시키면 나머지 수비수들이 금방 복귀할테니.

툭-

결국 왼쪽 사이드에서 공을 잡는 도훈.

“또 1대1 입니다! 이번에도 돌파가 가능할까요!”

박스를 향해 툭툭 치고 들어가기 시작.

쥘레와 다시 1대1.

‘이번엔 또 뭐냐..’

고작 딱 한 번 붙어서, 한 번의 돌파를 허용했을 뿐이다.

때문에 그걸론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쥘레였다.

하지만, 이미 돌파를 성공해봤던 도훈은 이미 쥘레에 대한 쓸모 있는 정보가 있었다.

‘보고 움직이는 타입.’

헤딩 경합같은 걸 한다면 절대 이길 수 없을만한 수비수다.

몸싸움도 마찬가지일테고.

하지만, 녀석의 특성상 이런 드리블 싸움에서 쥘레는 자신을 이길 수 없다.

녀석은 공격수의 움직임을 보고 차단하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속도는 보고 따라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쉬익-

툭-!

“빠릅니다!”

이제 보법은 필요 없다고 판단을 내린 도훈.

도훈은 왼쪽으로 헛다리를 한 번 짚은 뒤, 오른쪽으로 공을 치고 달렸다.

쥘레의 밸런스가 헛다리에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보고 따라가는 순간 이미 쥘레는 도훈을 막을 수 없었다.

‘오늘의 밥은 너다.’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수이자 독일 국가대표 니클라스 쥘레가, 도훈에게 단단히 약점을 잡히고 마는 순간.

‘그래도..’

하지만 어쨌든 시간은 조금 지체 시켰다.

이쯤이면 이미 훔멜스가 복귀했을만한 시점.

자신은 제쳐졌지만 훔멜스가 다시 녀석에게 붙어준다면, 그 틈에 재차 자리를 잡을 시간은 있을 것.

그런 생각으로 쥘레가 고개를 돌린 순간,

‘아차.’

쥘레의 표정이 한 번 더 구겨졌다.

“주나요! 한 번 더 치나요!”

분명히 훔멜스는 복귀해 있었다.

그러나 그 옆에서 유세프 폴센 또한 쇄도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도훈 혼자서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쥘레를 제쳐내며 중앙으로 접어 들어가는 도훈과, 그 반대로 중앙에서 다시 왼쪽으로 짤라 들어가는 폴센의 움직임.

그 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훔멜스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폴센을 쫓아야 하나?

아니면 그를 놓치더라도 공을 가진 선수를 막아야 하나?

훔멜스의 몸이 하나인 이상, 누구 하나는 놓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히 혼자서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는 있다.

'끊자.'

녀석이 패스를 하는 선택을 내린다면.

< 카이저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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