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이저 (2) >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 주겠다.”
라이프치히에서의 둘째 날.
도훈은 임찬주와 함께 조르제 멘데스를 한 레스토랑의 프라이빗 룸에서 만났다.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멘데스가 대화를 이끌었고 도훈은 듣는 쪽이었다. 직접적으로 질문들을 던지고 대화를 나눈 건 임찬주 쪽이랄까.
“똑똑한 친구인데. 그건 말야.”
멘데스와 임찬주는 말이 좀 통하는 듯 보였다.
과연 수재인가.
어려운 전문 용어를 써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임찬주를 옆에 보고 있자니 사람이 좀 달라 보이기도.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사실 멘데스가 워낙 거물이기에, 조금은 은연 중에 하대하는 경향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던 도훈이었다. 그러나 멘데스는 유쾌했고, 오히려 도훈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물론 아마 계약전이니 그런 태도인 것이겠지만, 어찌보면 그만큼 계약을 따내고 싶을 정도로 도훈에게서 상품 가치를 봤다는 뜻일 수 있었다.
어쨌든 미팅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좋은 분위기였다는 것이었다.
조르제 멘데스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하나였다.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
실력적인 부분을 떠나서, 최고의 선수는 최고의 팀에서 뛰어야 하는 것이고 자신은 도훈을 최고의 팀으로 보내줄 수 있다고 했다. 광고나 다른 여러가지 부가물들은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했고.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다.
최고의 선수가 되려면, 당연히 최고의 팀에서 뛰어야 한다는 건 도훈의 생각도 마찬가지.
그의 수완같은 건 들어볼 필요도 없었다. 실력 없는 에이전트 밑에 호날두 같은 최고의 선수들이 있겠나. 그 쪽으로야 이미 보증도 필요 없지.
“잘 생각해보게.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분위기에서 첫 번째 미팅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일단은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한 멘데스와 도훈.
오랜 시간을 자리할 수는 없었다.
“훈련장 가려고? 오늘 쉬는 날이잖아?”
“몸만 좀 풀게.”
바이에른 뮌헨과의 개막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ㆍㆍㆍ
팀에 합류한 뒤, 개막전까지 보름여.
도훈은 새로운 동료들과 새로운 코치진 밑에서 함께 훈련하며 호흡을 맞췄다.
그 보름 동안, 라이프치히 선수들이나 코치들은 새 시즌에 대한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시즌이 빨리 개막되길 기다리게 되었다.
도훈이 있었으니까.
도훈이 없었다면 개막전이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펼쳐지는 뮌헨전이라는 사실에 얼굴을 찌푸렸을 지 몰랐다.
하지만, 도훈이 있는 이상, 도훈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낀 이상 마음가짐은 달랐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 줄 그 날만이 기다려질 뿐.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다가 왔다.
“공격수, 13번 백도훈.”
“예.”
개막전 선발 출장.
“상대는 강하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됐어. 개막전 상대로 바이에른 뮌헨만한 상대가 어디 있겠냐..이번 시즌은 화끈한 시즌이 될 거다. 시작부터 화끈하게 해보자!”
“가자!”“이긴다!”
FC 바이에른 뮌헨.
7년 연속으로 리그 집어 삼키고 있는 분데스리가의 카이저(Kaiser).
지난 몇 년 동안 몇 번 삐끗한 적은 있어도, 결국엔 독일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던 뮌헨은 명실상부 독일 최강의 팀이자 유럽 최강의 팀 중 하나.
‘재밌겠다.’
경기전, 도훈은 이때껏 느껴보지 못한 기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음바페의 프랑스와 맞붙었을 때나 비슷한 느낌이었을까. 그러나 그 때도 지금에 비할 순 없었다.
세계 최고 레벨의 상대를 이렇게 빨리 만나보게 되다니.
이건 기회였다.
언제까지고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는 ‘증명해야 하는 입장’ 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오늘의 상대는 아마추어도, 유스도, u23도 아닌, 성인 프로무대의 최강팀이니까.
오늘마저 증명해낸다면, 더 이상의 이견은 존재할 수도 없을 것이었다.
“자, 파이팅하고 가보자!”
“예!”“가자!”
소리를 내지르며 자기 자신을 무장하고 드레싱룸을 나서는 선수들.
그리고 도훈 역시 축구화끈을 꽉 묶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도훈의 성인 프로무대 데뷔전이 시작되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2020/21 분데스리가 시즌 개막전! 바이에른 뮌헨과 레드불 라이프치히의 경기가 펼쳐지게 될 알리안츠 아레나입니다. 먼저 양 팀의 선수 명단 보시겠습니다.”
[바이에른 뮌헨(4-5-1) 감독 : 니코 코바치]
GK 마누엘 노이어
LB 다비드 알라바
CB 마츠 훔멜스
CB 니클라스 쥘레
RB 조슈아 키미히
MF 티아고 알칸타라
MF 헤나투 산체스
MF 하메스 로드리게스
MF 킹슬리 코망
MF 레온 고레츠카
FW 티모 베르너
“네, 뭐 개막전인 만큼. 베스트 멤버로 거의 나왔다고 볼 수 있겠어요. 부상으로 이탈한 제롬 보아텡 정도를 제외한다면 말이죠.”
“이번 시즌에도 역시나 리그 우승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뮌헨이 되겠습니다. 당연히 개막전도 승리로 가져갈 생각이겠죠. 자, 이에 맞서는 레드불 라이프치히의 선발 명단입니다.”
[RB 라이프치히 (4-4-2) 감독 : 율리안 나겔스만]
GK 피터 굴라시
LB 마르셀로 사라치
CB 윌리 오반
CB 다요 우파메카노
RB 이브라히마 코나테
MF 스테판 일센커
MF 디에고 뎀메
MF 케빈 캄플
MF 마르셀 사비처
FW 백도훈
FW 유세프 풀센
“눈에 띄는 이름이 있는데요. 13번의 백도훈 선수말이죠.”
“생소하면서도 아는 분들은 아는 이름이죠? 한국을 올림픽 금메달로 이끌었던 그 17살 선수입니다. 오늘이 프로 데뷔전이고요. 올림픽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긴 했으나 오늘 같은 거대한 적을 상대로 어떤 기량을 보여줄 수 있을진 모르겠네요.”
선수 입장이 끝나고, 악수를 나누는 양 팀 선수들.
‘최고의 선수들..’
이름값으론 유럽 최고.
평범한 선수들같으면 이렇게 마주하는 것만으로 위축될만한 면면들이었다.
평소의 라이프치히 선수들도 조금은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분명 달랐다.
이전에 뮌헨과 맞붙었을 때와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스스로를 믿자. 개막전, 승리로 장식하자!”
“오케이!”“가보자!”
경기 시작 전, 원진을 그리고 파이팅을 외치는 라이프치히 선수들.
그 모습에서 꽤나 느껴지는 자신감.
“긴장하지 말고.”
“긴장은 안하는데, 기대가 되네요.”
관중들로 가득찬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는 도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는 유세프 풀센.
데뷔전을 뮌헨 홈에서 치루게 됐으니 긴장한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
그러나, 도훈은 빨리 경기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치겠군 이거. 왜 내가 더 떨리는거야.”
바이에른 뮌헨과 라이프치히의 경기를 티비로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
긴장이 되는 듯 손톱까지 물어 뜯으며 지켜보고 있는 이는 바로 가투소 감독이었다.
“잘할 겁니다.”
“그건 나도 알지.”
도훈의 뮌헨전 선발 출장 소식을 들은 가투소 감독은 다른 걸 제쳐두고 티비 앞에 앉았다.
도훈의 임대에 나겔스만 감독이 굉장히 적극적이었던 거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개막전, 그것도 뮌헨과의 경기에서 곧바로 선발로 내세운 것은 조금 의외.
물론 의외라는 건, 나겔스만 감독이 생각보다 눈썰미가 좋은 감독이라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어쨌든 가투소 감독과 밀란으로썬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뮌헨을 상대해보는 경험.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테니까.
“멋지게 해보자, 친구야..”
밀란의 경기를 지켜볼 때보다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티비를 바라보고 있는 가투소 감독이었다.
쾅! 쾅! 쾅!
~뮌헨하면 떠오르는 팀은 어디?
바이에른-!!
~이 나라 최고의 기록을 가진 팀은 어디?
바이에른-!!
~이기기 위한 모든 것을 갖춘 팀은 어디?
바이에른- 뮌헨-!!
거대하게 일렁이는 관중석.
귀를 찢어놓는 듯한 우렁찬 함성과 응원가.
킥오프 직전.
도훈은 필드 위에 서서 관중석을 주욱 둘러 보았다.
“...”
장관이었다.
이 모두가 적이다.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경기장에 입장할 때부터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사실.
“긴장한건가?”
말 없이 관중석을 바라보는 도훈의 모습을 보며, 가투소 감독처럼 긴장했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긴장해야 하는게 당연했다.
‘빨리 휘슬을 불어.’
그러나 도훈은 안달이 나 있었다.
당장 세계 최고의 팀을 상대해보고 싶었다.
“삐이익-!”
그리고 심판의 힘찬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 시작 됐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자리 지켜! 집중 놓치면 안 돼!”
상대는 바이에른 뮌헨.
뮌헨은 유럽의 어느 팀을 상대로도 주도권을 쥐고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팀이다.
당연히 리그 내에서 뮌헨의 압도적인 힘을 쉽게 저지시킬 수 있는 팀은 없었고, 그건 라이프치히도 마찬가지.
“알칸타라, 전방을 살핍니다. 왼쪽으로 내주는 알칸타라. 아, 킹슬리 코망의 센스 있는 돌파! 치고 들어갑니다!”
전반 초반부터 위협적인 상황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오늘 뮌헨은 4-5-1의 전형.
그러나 다섯명의 미드필더 중 둘은 양 날개에, 둘은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포진한 형태.
굉장히 공격적인 포메이션이었다.
그 말인즉, 뮌헨은 오늘 대량득점으로 라이프치히를 압살할 생각으로 경기를 준비해 왔다는 것.
홈에서 펼쳐지는 개막전인 만큼 뮌헨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듯 했다.
“코망의 크로스! 베르너가 기다립니다만, 골키퍼 굴라시가 먼저 잡아냅니다!”
박스 안까지의 침입이 너무나 쉬워 보이는 뮌헨.
공을 잡아낸 굴라시는 수비수들에게 소리쳤고, 수비수들도 서로에게 소리치며 집중력이 흩뜨러지지 않도록 독려했다.
그 목소리는 금새 홈팬들의 함성 소리에 묻혀 버렸지만.
“라이프치히는 일단 수비에 치중하는 모습이네요. 4-4-2, 두 줄의 수비를 세우고 뮌헨의 공세를 작정하고 막으려는 듯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죠. 라이프치히로선 최종 목표가 무승부를 거두는 것 정도 일테니까요. 포르스베리와 티모 베르너가 빠진 팀 상황을 본다면, 뮌헨에게 비기는 것만으로 이번 시즌 가능성을 보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데 집중하는 것이군요.”
해설자들의 분석은 나름 맞는 말이었다.
나겔스만 감독이 가장 강조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선제 실점하지 않는 것.
때문에 초반부터 두 줄로 단단히 가드를 올리고 수비 태세를 취하는 것도 맞았다.
하지만, 틀린 부분이 있었다.
‘무조건 이긴다.’
라이프치히의 목표는 무승부가 아니었다.
승리.
승점 3점이 오늘의 목표.
그리고 그 승점 3점을 가져다 줄 비밀 아닌 비밀 병기는 조용히 하프 라인에 도사리고 있었다.
언제든 올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며.
“하지만 경기 초반부터 너무 내려서는 건 솔직히 좋을 게 없는데요. 생각해 보십시요. 라이프치히는 앞으로 이런 공격들을 90분 동안 막아내야 하는 겁니다.”
뻐어어엉-!
슈우우웅-!
“아쉽게 빗나가는 고레츠카의 중거리 슈팅!”
확실히 뮌헨의 공세는 강했다.
7년 연속 분데스리가 챔피언.
압도적, 그 자체였고 그게 뮌헨이라면 크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이걸 90분 동안 막아내야 한다는건, 라이프치히가 아니라 유럽 어느 팀에게도 힘든 일.
때문에 무승부를 노리면서 초반부터 샌드백을 자처하는 라이프치히의 태세를 이해 못하겠다는 듯 해설자들이 떠들어대고 있을 무렵.
첫 번째 빛이 번뜩인 건 바로 그 때였다.
뻐어어엉-!
“길게 걷어 냅니다!”
오른쪽에서 차단된 헤나투 산체스의 크로스.
그리고 그 공을 곧바로 걷어낸 사라치.
슈우우웅-
그 공이 길게 떠 하프라인에 떨어졌고, 그 곳에 도훈이 서 있었다.
‘굳었군.’
다비드 알라바는 공을 향해 뛰어가며 생각했다.
도훈이 떨어지는 공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으니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17살짜리 꼬맹이가, 수만 관중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데뷔전을 치루고 있는 입장이니.
몸이 굳는 게 당연했다. 예전에 자신도 그랬던 기억이 있으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파아앙-!
“...!”
알라바는 요즘 애들이 다 자기 같진 않다는 것을 느꼈다.
파아앙-!
“기, 기가 막힌 컨트롤..!”
흥분하는 해설자.
도훈의 첫 터치 때문이었다.
높게 떴다 떨어지던 공.
굳은 듯 가만히 서서 공을 지켜보던 도훈은, 공이 완전히 떨어지는 순간 몸을 휙 돌렸다.
그리고 왼발을 뒤로 접으며 발바닥으로 공을 튕겼다.
그렇게 컨트롤된 공은 작은 아치를 그리며 뒤에서 달려들던 알라바의 머리 위를 지나쳤고,
툭-
타타탓-!
도훈은 그 공을 다시 잡은 뒤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 카이저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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